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39
238화. 부작용 (2)
흑검병 전용 막사.
안경남은 업무를 보다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가 바라보는 방향은 지옥 훈련소가 있는 쪽이었다.
“지금쯤 슬슬 시작했겠군.”
그리 중얼거린 안경남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유리가 했던 요구 조건을 떠올렸다.
그건 상당히 의외의 것이었다.
[제 요구 조건은 뭐, 별거 없어요. 그냥 이번 51기 놈들이 지옥 훈련소에 들어오면… 그 훈련을 저한테 맡겨 주시죠. 아, 그리고 혹시 빨간 모자도 하나 구해 주시면 고맙겠네요.]51기들의 제식과 기강을 다잡는 훈련.
유리는 본래 흑검병의 업무였던 그것을 자신이 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것도 무려 300만 포인트를 깎아 가면서.
어째서 그걸 원하냐는 질문에 그는 실로 사악한 미소를 머금고 답하였으니.
[막내 교육? 그리고 재밌을 거 같기도 하고.]아마도 뒤에 따라붙은 말이 진짜 속내일 거였을 거다.
단순히 재미 때문에 51기 교육을 맡겠다니.
원래라면 승낙하지 않았을 터.
하지만 이미 흑검병을 대신해 호랑이 역마저 맡겼는데 이를 거절하기에는 명분이 약했다.
‘거기다 안 그래도 인력이 부족해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니, 승낙하기는 했다만…….’
그래도 신규 기수의 교육을 고작 1년 차 위의 기수에게 맡겼다는 사실이 조금 찝찝하기는 했다.
아무리 지옥 훈련소에 교육을 담당할 다른 흑검병들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하여 안경남은 잠시 고민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보고 와야겠군.”
녀석이 잘하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거기다 빨간 모자는 왜 구해 달라고 한 건지 궁금하기도 했고 말이다.
하여 안경남은 막사를 빠져나와 지옥 훈련소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걸어 나갔다.
* * *
빛을 등지고 나타난 군터.
무치가 그를 알아보고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구, 군터 선배님?’
마왕성의 막내인 무치에게는 직속 선배들이 몇몇 있었다.
차분하고 예쁜 테레시아 선배님.
활발하고 예쁜 아린 선배님.
이상할 정도로 친근감이 느껴지는 뽀삐 선배님.
그들 모두 무치를 귀여워했고,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무치가 여전히 친해지지 못한 단 한 명의 선배.
그건 바로 군터 아이언스였다.
‘저 선배님이 왜?’
군터가 딱히 화를 내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절도 넘치고 무감정한 그의 눈빛을 마주할 때면 이상할 정도로 위축이 됐다.
절로 오금이 저린다고나 할까?
때문에 무치가 유리보다도 어려워하는 이가 군터였다.
‘군터 선배님도 다른 선배님들이랑 있을 때는 좀 편한 분위기인데…….’
아니, 사실 다른 선배들이 일방적으로 군터를 놀린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군터가 자신에게만 딱딱하게 대하는가 싶어 시무룩했던 무치.
그러나 그는 동기들 사이에 떠도는 군터의 소문을 듣고 그게 아님을 알았다.
시작의 숲에 나타난 철혈의 귀공자.
무수히 많은 51기를 때려눕힌, 51기의 수를 반의반 토막으로 만들어 버린 주범.
그가 바로 군터 아이언스였던 거다.
이를 들은 무치는 군터가 자신에게만 딱딱하게 대하는 게 아니란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냥 다른 선배들이 군터 선배를 잘 갈구… 펴, 편하게 대하는 거였구나.’
대단한 건 저런 분위기를 가진 군터를 아무렇지도 않게 갈구는 다른 선배들이었던 거다.
무치가 조금은 어색한 눈빛으로 군터를 바라볼 때.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후배들을 보고 군터의 눈빛이 더욱 서늘해졌다.
“좋은 말로 할 때 즉시 일어나는 게 좋을 거다.”
옅은 살기를 품은 냉담한 목소리가 막사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안 그래도 슬슬 정신이 돌아오고 있던 51기들은 고막에 꽂히는 살기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흐업?!”
“므, 뭐야?!”
마치 자는 사람의 얼굴에 냉수라도 뿌린 듯, 하나둘 기겁하며 깨어나는 51기들.
그들은 살기의 진원지에 서 있는 군터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켁?! 철혈귀!”
“뭐? 저 사람이 그 철혈귀야?!”
51기들 사이에 군터를 칭하는 별명마저 생겼는지 몇몇이 그를 보고 경기를 일으켰다.
장내에 벌어진 소란에 우후죽순 깨어나기 시작한 나머지 51기들.
잠시 뒤, 모든 51기가 일어나자 그들을 스윽 훑어본 군터가 몇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열을 세겠다. 그때까지도 이 안에 남아 있는 녀석들은 내 말을 무시한 것으로 간주…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스르릉- 서걱-.
무감정한 눈빛으로 검을 빼내 지면에 박아 넣은 군터.
이에 51기들은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몰라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의견을 물었다.
하지만 군터는 51기들이 상황 파악 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열.”
“예?”
“아홉.”
“…어?”
“여덟.”
“……?!”
절도 있게 숫자를 세는 목소리에 51기들은 소름이 오스스 돋아 올랐다.
숫자가 줄어들 때마다 살기가 더욱 짙어졌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이 안에 계속 남아 있는다면 신변상의 문제가 생겨도 단단히 생기겠다는 것을 확실하게 암시하는 살기.
“나, 나갑니다!”
“갈게요!”
시작의 숲에서의 군터가 어떻게 미쳐 날뛰었는지 알고 있는 이들이 제일 먼저 튀어 나갔다.
그렇게 몇 사람이 나가자 나머지도 이유를 깊게 생각하지 못한 채 일단 일어나 밖을 향해 뛰쳐나갈 수밖에 없었다.
“다섯.”
“으악!”
“넷.”
이후 군터의 숫자가 넷에 도달했을 때, 막사 안에 남아 있는 이들은 없었다.
* * *
“저 선배, 대체 왜 저러는 거야?!”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건데!”
허둥지둥, 어리둥절.
군터에게 겁먹고 우르르 밖으로 빠져나온 51기들.
그런 그들을 반겨 준 건 1남 1녀였다.
“배고프다!”
“자자, 막사에서 튀어나온 우리 신입들? 이 선배님을 따라와요!”
푸른 머리의 미소녀와 대머리의 거한.
두 사람이 51기들을 보고 팔을 휘휘 내저었다.
무치가 그들을 보고 반가운 눈빛을 보냈다.
‘아린 선배님? 뽀삐 선배님?’
빨간 견장을 차고 있는 또 다른 이들의 등장에 잠시 멈칫거린 51기들.
그들 대다수가 ‘이 사람들은 또 뭐야?’라는 심정이었고, ‘뭔데 오라 마라야?’ 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펄럭-.
“여기서 뭣들 하고 있는 거지?”
곧 뒤에서 등장한 군터에게 놀라 앞의 두 사람이 안내하는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이 도착한 곳은 [재판소]라고 적힌 막사였다.
“자자, 들어가! 들어가!”
“배고프다!”
아린과 뽀삐의 재촉에 재판소로 들어선 51기.
그로부터 잠시 뒤.
“아…….”
“이게 무슨…….”
“젠장…….”
재판소에서 기본 8시간짜리 지옥 훈련형(刑)을 단체로 부여받고 나온 51기들.
얼마 되지도 않는 가죽을 모조리 빼앗긴 것도 모자라 형벌까지 받아야 하는 처지에 몰린 그들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이 누린 마지막 여유였다.
“전부 모인 건가?”
이번에도 또 다른 누군가가 재판소에서 빠져나오는 이들을 맞이했다.
그녀를 본 무치의 눈이 반짝였다.
‘테레시아 선배님!’
이번에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테레시아.
무치가 그녀를 알아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흠칫 놀라고 말았다.
‘무, 무섭다.’
눈앞의 테레시아는 평소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선배가 아니었다.
평소의 테레시아가 차분하고 온화한 느낌이었다면…….
‘추, 추워…….’
지금의 그녀는 차분하면서도 차가웠다.
“헙!”
“사, 사십구기 선배님이신데?”
북풍 한파보다 더 냉랭한 기운.
군터보다 더 절도 있고, 심장이 꿰뚫릴 것 같은 첨예한 기세.
이에 51기들은 절로 위축되어 마른침을 삼켰다.
테레시아는 그들을 서늘한 눈빛으로 노려보다가 뒤돌아섰다.
“다 모였으면, 따라와라.”
아름다운 미성에 홀린 듯, 51기들은 먼저 걸어가는 테레시아를 쫓았다.
그렇게 20여 미터를 이동했을까?
‘뭐지… 이 냄새는?’
‘불쾌해…….’
철조망에 둘러싸인 넓은 공터에 도착한 순간 그들은 불쾌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피와 땀 냄새가 농축된 듯한 지독한 내음.
감이 좋은 몇몇은 바로 그 냄새가 자신들이 밟은 땅에서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대다수가 코를 찡그리며 걸어간 그 끝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널찍한 단상이었다.
그 위에는 뒷짐을 지고 있는 검은 머리 소년이 있었으니.
51기 대다수가 그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어, 저 사람?!”
“호랑이?”
51기 중 과반수가 어젯밤 호랑이에게 후드려 맞고 기절한 이들.
그러니 비록 유리가 지금은 호피 무늬 조끼를 입고 있지 않다고 해도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이들이 있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그리고 유리를 자세히 살핀 이들은 또 놀라고 말았다.
“호랑이가… 50기였어?!”
전날 조끼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붉은 견장.
호랑이가 난데없이 이곳에 나타난 것도 놀랍지만, 그가 고작 한 기수 위의 선배라는 사실은 51기를 더욱더 놀라게 했다.
그렇게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시선에 유리가 인상을 찡그리며 재차 일갈했다.
“이 덜떨어진 새끼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지!”
난데없는 불호령에 51기들은 영문도 모른 채 움찔거리고 말았다.
그들이 당황하는 가운데 유리가 목소리에 살기를 담았다.
“이 새끼들이, 줄 똑바로 못 서냐! 니들이 여기 놀러 온 줄 알아!”
“예?”
“당장 5열 종대로 헤쳐 모여!”
대번에 삐딱해지는 유리의 고개.
무더기로 뭉쳐 있던 51기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줄을 맞췄다.
그 틈에는 무치 역시 섞여 있었으니.
그는 유리의 얼굴을 보고 전날의 기억이 떠올라 쓴웃음을 베어 물고 말았다.
‘유리 형…….’
전날 밤의 압도적인 패배.
노력한 1년이 허무할 정도의 초라한 싸움.
‘엄청… 강하더라.’
어느 정도 예감은 하고 있었다.
자신은 유리에게 상대가 되지 않으리란 걸.
그렇기에 그와 싸우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던가.
그래도 막상 그 결과를 마주하게 되니 참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에 무치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는 사이, 유리도 같이 한숨을 내쉬며 혀를 차고 있었다.
“하아아, 이 사람 같지도 않은 모지리들을 언제 제구실하게 만들꼬. 쯧쯧.”
“…….”
“하지만 너무 걱정들 마라. 내 소싯적 별명이 인간 개조기였거든. 내게 맡겨진 니들은 운이 좋은 거다. 이곳에서의 7일 동안… 너희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테니까!”
크지는 않았지만, 작지도 않은 그 목소리에 51기들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를 본 유리가 피식 비웃었다.
“어쭈? 기분 나빠?”
“…….”
“기분 나쁘면 어쩔 건데. 허접한 것들이 쫀심만 드높아서는.”
“선배님, 말씀이 좀… 심하신 거 같습니다만?”
“오, 뚫린 입이라고 되는 대로 지껄이는 용기 가상한 대가리 깨진 놈이 있었네. 넌 조금만 기다려라, 네 깨진 대가리, 내가 곧 봉합시켜 줄 테니까.”
유리는 조금 전 불만을 제기한 이를 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이에 불만을 낸 이는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에게서 시선을 뗀 유리는 모두를 한눈에 담으며 말했다.
“좋아, 첫날이고 하니 내가 아주 신사적으로 경고해 줄게.”
턱-.
뒷짐을 지고 있던 유리가 양발을 어깨너비로 벌렸다.
그러고는 뒷짐으로 가리고 있던 물건을 앞으로 꺼냈으니.
그건 다름 아닌 빨간색의 모자였다.
유리는 이를 천천히 머리로 가져갔다.
“아마, 이 중에서 어젯밤 날 마주친 연놈들이 꽤 있을 거다. 그땐 내가 그랬지? 호랑이는 너희를 해치지 않는다고.”
낮게 깔린 유리의 목소리가 마나를 품고 공터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동시에 장내의 기온이 뚝뚝 떨어졌다.
“그러나.”
유리는 빨간 모자를 정성껏, 그리고 세심하게 머리에 눌러 썼다.
슥-.
말끔하게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널찍한 챙이 살짝 앞으로 기울어져 어느 정도 눈을 가리게 만든 유리.
척-.
그가 다시 뒷짐을 지고 살짝 거만하게 턱을 들어 51기들을 나른하게 노려보았다.
“본 교관은 얼마든지 네깟 것들의 사지를 찢어 놓을 수 있지.”
“……?!”
넓은 모자의 챙이 만든 그늘.
그 속에서 깃든 황금색 눈동자가 번뜩인 순간.
고오오오오오-!
유리에게서 끔찍한 살기가 치솟으며 51기들을 덮쳤다.
화악-!
포식자를 마주한 먹잇감이 느끼는 공포가 이러할까.
지독한 살기가 전신을 훑고 지나가자 51기들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려 버렸다.
심지어 담이 약한 몇몇은 치밀어 오르는 토기를 억누르고자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다만 한 사람.
“아아……!”
리사는 유리의 살기를 맞고 몸을 부르르 떨며 얼굴에 홍조를 만들어 냈다.
이후 유리가 살기를 거둬들였고, 그를 바라보는 51기의 시선은 대번에 바뀌어 있었다.
‘저 50기 선배는 뭔데 말을 저따위로 하는데? 자기가 뭐라도 돼?’라는 시선에서.
‘저, 저 사람… 누구야?’
옅은 두려움이 담긴 시선으로 말이다.
그렇게 단숨에 51기를 휘어잡은 유리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조교들 앞으로.”
따악-.
경쾌한 소리에 테레시아, 아린, 뽀삐, 군터가 51기 앞에 일렬로 섰다.
그들을 포진시킨 유리가 51기들을 보며 입술을 할짝거렸다.
마치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자, 그럼 어디… 놀아 볼까?”
그 말을 신호로 본격적인 51기 개조 훈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