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42
241화. 각인 (1)
타도 마왕, 피의 복수에 관한 이야기가 51기 모두에게 전달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시각이라 다들 기진맥진하여 훈련소 인근에 퍼질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밌는 점은 51기 모두가 이번 복수에 꽤 적극적이라는 거였다.
“가능성만 있다면 얼마든지 협조할게!”
“솔직히 다 필요 없고 한 대… 딱 한 대만 치면 된다!”
유리를 향한 분노가 어찌나 강렬하던지 약간의 설명만을 듣고도 모두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복수에 꼭 참여하고 싶다며 말이다.
최초로 복수를 계획한 이들이 당황할 정도의 열기였다.
그렇게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마침내…….
결행일이 다가왔다.
* * *
가죽 모으기 퀘스트의 마지막 날.
해가 떨어지기까지 두어 시간이 남았을 무렵.
스스슥-.
동물의 숲 외곽 인근에 검은 그림자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푸석푸석한 얼굴에 퀭한 눈을 한 소년‧소녀들.
그러나 두 눈만은 형형히 빛나는 그들은 다름 아닌 51기들이었다.
“다 모인 건가?”
“그럼 바로 접선 장소로 이동하자.”
신중한 얼굴을 한 십여 명은 이내 인원을 확인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지옥에서 구르고 또 굴렀는지 행색이 너저분했다.
또한, 숨길 수 없는 피곤함이 전신에서 느껴졌다.
그럼에도 51기들은 현재 자신들의 상태에 만족했다.
‘그나마 훈련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도 지옥 훈련소 인근에서 나자빠져 기절했을 터였다.
즈즈즈-.
토끼 구역을 빠르게 주파하는 이들.
한가롭게 숲을 거닐던 토끼 기수들은 실로 오랜만에 나타난 51기들을 보고 놀라 움찔거렸다.
그러고는 요 며칠 망각하고 있던 자신들의 본분을 기억해 내고 51기들을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51기들은 그런 토끼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목적지를 향해 바삐 달려 나갈 뿐.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토끼 구역을 지나 사슴 구역, 그리고 막 늑대의 구역에 들어서기 직전의 경계에서 그들은 멈추어 섰다.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존재했으니.
“왔군.”
“나름 서두른다고 했는데, 우리가 늦은 건가?”
“아니, 아직 여유 있다. 일단 저쪽에서 쉬고 있으라고.”
새로 합류한 무리는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이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한쪽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했다.
그 이후로도 10명씩 조를 이룬 무리가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약 10여 분이 흘러.
마침내 모든 51기가 한 장소에 모였다.
이 동물의 숲 퀘스트가 시작된 이래 한 기수 전체가 한자리에 모인 건 분명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다 온 거 같네.”
“시작할게.”
81명이나 되는 대인원이 너른 공터에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모이자, 한 소년이 그 한가운데로 나섰다.
바로 피의 복수를 처음 언급한 소년이었다.
그는 동기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반가워, 난 코반 미첼이라고 해.”
가볍게 자신을 소개한 그는 이내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모두 내 생각에 동의해 주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호응해 줘서 정말 고마워. 그럼 시간이 없으니 바로 세부적인 계획을 전달할게.”
코반은 손가락으로 숲의 중심을 가리켰다.
“내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그 악마 새끼… 아니, 호랑이는 이 숲의 정중앙에 있을 거야. 그곳이 바로 호랑이의 영역이거든. 또한, 해가 떠 있는 동안 호랑이는 그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해.”
그가 세운 계획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낮에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해 몸을 회복한 뒤, 밤이 오기 전.
즉, 호랑이가 영역을 벗어나 활개를 치기 전에 51기 전원이 덮쳐드는 것이다.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는 코반의 목소리가 공터에 작게 퍼져 나갔다.
“호랑이 구역, 즉, 숲의 중심으로 가기 위해서는 늑대와 곰의 구역을 지나가야 해. 다만 문제는 토끼와 사슴과 달리 늑대와 곰은 선공하는 동물들이란 거지. 아마도 이곳에 늑대를 만나 본 친구들도 있을 거야. 그들은 공인 1단급 실력이라 지금의 우리한테는 큰 위협이 되지 않겠지만… 곰은 좀 위험해.”
“어느 정도로?”
누군가의 질문에 코반이 덤덤히 답했다.
“곰 역할은 일반적인 흑검병이 맡는다고 했어. 즉, 공인 3단급의 실력자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지.”
“흠…….”
곰이 흑검병이자 공인 3단급의 실력자라는 이야기에 51기들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이를 알아차린 코반이 조금 밝은 목소리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비록 흑검병이라고는 해도 이쪽은 80명이 넘어. 저 넓은 구역을 두고 흑검병들이 한곳에 몰려 있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만약 몰려 있다면?”
“그래도 걱정할 건 없어. 곰 역할을 맡은 흑검병들에게도 공격 횟수의 제약이 걸려 있다고 했거든.”
“공격 제한? 호랑이가 10번이면 곰은?”
“듣기로는 50번이랬어.”
“50번? 고작?”
“그래, 그러니 한 번에 6명 이상과 마주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곰 영역을 돌파할 수 있을 거야.”
코반의 확신 어린 목소리에 다른 51기들도 덩달아 얼굴이 밝아졌다.
그의 이야기가 충분히 납득 갔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그런데 말야.”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
이에 공터에 모인 이들의 고개가 돌아가니.
그곳에 있는 건 레몬빛 머리카락의 소녀였다.
좌중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린 것을 확인한 리사가 배시시 웃었고, 이에 몇몇 소년이 홀린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리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 말이지?”
“곰 역할을 맡은 게 일반 흑검병인데, 이 동물의 숲에 단 한 명뿐인 호랑이가 일개 기수인 게 말야.”
리사가 꺼낸 의문에 다수의 51기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가장 근본적인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 무려 500만 포인트짜리 호랑이인데. 그 역할을 흑검병도 아닌 고작 한 기수 위의 선배가 맡다니…….”
“그 선배, 실은 엄청 강한 거 아냐? 흑검병들보다도?”
누군가 농담처럼 진실을 언급했지만, 이를 들은 코반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 없어.”
그의 단언에 리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그리 확신해?”
리사의 되물음에 코반은 살짝 미소 지었다.
“요람을 수료해 사회로 나온 이들을 보면 대부분 공인 3단, 그보다 높으면 공인 4단급인 게 정설이야.”
“그런데?”
“일반 흑검병보다 강하다면 공인 4단급, 혹은 공인 5단급이라는 소리인데… 그 정도면 밖에서 어지간한 중소 가문의 수장급이잖아? 그 선배 나이를 생각했을 때 그게 가당키나 한 경지냐고.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어림도 없지.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코반이 시선을 무치에게로 돌렸다.
“무치가 그 선배랑 밖에서 알고 지낸 사이랬는데… 그 선배가 마체술을 익힌 기간이 이제 고작 2년쯤 되었다고 하더라고.”
그 이야기 여기저기서 술렁임이 일어났다.
“뭐?”
“2년?!”
“말도 안 돼! 그렇게 강해 보였는데 마체술을 익힌 지 고작 2년이라고?!”
모두가 놀란 눈으로 무치를 바라보았다.
그중에는 리사의 시선도 섞여 있었다.
저 말이 사실이냐는 듯한 시선이 자신에게 쏟아지자 무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음,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가 아는 거로는 2년이 채 안 됐을 거야. 유리 선배랑 처음 만났을 때 나랑 대련했었는데, 아마 그 대련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마체술을 배웠을 거니까.”
그런 무치의 이야기를 들은 리사가 질문을 던졌다.
“그 대련, 누가 이겼어?”
“그게… 첫판은 내가 쉽게 이겼는데… 다음이랑 다다음판은 내가 졌어.”
“그래? 그럼 네가 밖에서 마지막으로 유리 선배님을 봤을 때는 어느 정도 수준이었어? 지금의 너랑 비교하면.”
“지금의 나보다는 약했을 거야.”
“지금은? 지금의 유리 선배는 어떤 거 같아?”
어쩜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꼬치꼬치 캐묻는 리사.
무치도 딱히 싫은 내색 없이 답을 주었지만, 마지막 질문에서 잠시 멈칫했다.
그는 한참 동안 현재 유리의 실력을 예측해 보다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모르겠어.”
백보 의식 당시 자신이 기절한 9보에서도 당당히 서 있던 유리.
이후 그가 몇 걸음을 나아갔는지는 모른다.
그렇기에 유리의 강함이 어느 정도에 닿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무치는 그리 추상적인 말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가 단언할 수 있는 말은 있었다.
“하지만 유리 선배는 강해. 그것도 엄청.”
확신에 찬 무치의 답을 들은 리사의 눈에 감탄의 기색이 스쳤다.
그때 무치와 리사의 대화 사이로 코반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래 강하겠지. 그러니 요람에서도 그 선배에게 호랑이 역을 맡겼을 거고, 그 선배는 분명 천재라 불리는 부류에 속할 거야.”
그리 말한 코반은 살짝 인상을 썼다.
기껏 동기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는데 쓸데없는 소리로 사기를 깎는 무치와 리사에게 짜증이 난 거다.
그러나 이내 그런 표정을 지운 그는 짧고 굵게 외쳤다.
“그렇다고 해도!”
단호한 목소리로 좌중의 이목을 잡아끈 코반.
그는 은은한 눈길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 선배가 일반 흑검병보다 강하기 때문에 호랑이 역을 맡은 거라 해도! 분명 일반 흑검병보다 아마 약간 강한 정도일 거야.”
코반은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히 말해서, 난 그것도 잘 믿기지 않아. 마체술을 익힌 지 고작 2년 만에 공인 3단이 된다고?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그게 가능해?”
약간 헛웃음을 흘리는 코반의 말에 다른 이들도 수긍하는 눈치를 보였다.
밖에서는 난다 긴다 하는, 소문난 신동들을 모아 놓은 곳이 바로 요람이었다.
그런 재능의 자신들도 쉬지 않고 십수 년간 마체술을 익혀 지금에 이르렀고.
자신들과 비슷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요람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쳐 수료했을 때 도달하는 경지가 일반적으로 공인 3단 내지는 4단급이었다.
그런데 밖에서 이름도 들어 본 적 없는 사람이 요람 2년 차 만에 공인 3단이라고?
그들의 상식적인 기준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좌중의 분위기가 자신의 이야기에 동의하는 쪽으로 흐르자 코반은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니 너무 걱정들 하지 말자고. 거기다 호랑이는 곰보다 더 강한 제약이 있으니 우리가 힘을 모은다면 얼마든지 복수를 할 수 있다고!”
코반의 강한 목소리에 대다수의 51기가 의구심을 버렸다.
다만 소수의 몇몇은 여전히 경계심을 품었고.
무치는 잘 모르겠다는 눈빛이었으며.
리사는…….
“후후.”
왠지 모르겠지만 즐거운 미소를 띠었다.
그사이 코반이 울끈 말아 쥔 주먹을 하늘로 치켜들며 선창하니.
“동기는!”
51기들의 후창이 이어졌다.
“하나다!”
“타도!”
“유리 홀랜드!”
“피의!”
“복수를!”
끈끈한 동기애와 쩌렁쩌렁한 외침으로 육체의 피로감을 잊은 51기.
“가자!”
코반이 맨 처음 당당하게 늑대의 숲을 향해 뛰어드니.
80명의 동기가 그를 쫓아 숲의 중심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다.
그로부터 잠시 뒤.
“엇?!”
“저거?!”
똘똘 뭉쳐 달려오는 51기를 본 늑대 두 명이 화들짝 놀라 도망쳤다.
그런 늑대들의 모습에 51기들은 더욱 용기를 얻었다.
“멈추지 마!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 해!”
“달려!”
그들은 도망친 늑대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대로 다시 달려 나갔다.
그렇게 51기들이 우르르- 달려 나가고.
옅은 먼지가 폴폴 피어오른 숲속.
한쪽 나무 뒤에서 도망쳤던 늑대들이 빼꼼히 모습을 드러냈다.
“…갔어?”
“간 거 같은데?”
도망친 두 늑대는 다름 아닌 넬리와 파나였다.
그녀들은 점차 멀어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넬리가 가라앉은 먼지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거 이래도 되는 거야?”
이를 들은 파나가 어깨를 으쓱였으니.
“에이 됐어. 괜히 신경 쓰지 말자고. 우리는 보내라고 해서 보냈으니까, 나머지는 지가 알아서 하겠지.”
“그러겠지?”
“응. 그리고 걱정할 사람이 따로 있지, 그 녀석 걱정을 왜 해?”
“…그것도 맞는 말이네. 그럼 신경 끄고 구경이나 하러 갈까?”
“난 찬성!”
영문 모를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나아간 곳은 조금 전 51기들이 달려간 바로 그 방향이었다.
* * *
51기 무리의 전진에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그 이유는 해가 떠 있는 시간에 호랑이를 덮쳐야 한다는 촉박함 때문이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그들이 달려 나가는 도중에 마주친 늑대, 심지어 곰 역할을 맡은 흑검병마저 자신들을 피하는 모습에 사기가 충만해진 게 주원인이었다.
“우리가 개개인은 약할지라도 뭉치면 강하다고!”
“그래! 이거지!”
그들은 후회했다.
왜 진즉에 이러지 못했을까?
어째서 힘을 합쳐 호랑이를… 아니, 그 마왕을 처리할 생각을 진즉 하지 않았을까?
…라고 말이다.
그렇게 51기가 용기 백배, 사기 충만하여 숲을 주파하기를 20분여.
81명의 무리는 마침내 숲의 공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의 목적지.
오로지 단 한 명만을 위한 공간.
숲의 제왕인 호랑이의 영역.
그리고 그 속에서 51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 이것들이! 빨리빨리 안 튀어 오냐!”
잔뜩 뿔이 난 유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