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73
272화. 비상 대책 회의 (3)
빛이 들어오는 너른 실내.
직사각형의 커다란 탁자에 수많은 흑검병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전 대륙 각지에서 활약하는 부장급 흑검병들로, 그것도 그냥 일반적인 부장급이 아닌 주요 부서의 팀장급 최고참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하나같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때였다.
드륵-.
문이 열리며 나타난 고든 크라우덴.
빠르게 걸어온 그는 자연스럽게 비어 있던 상석에 착석하며 입을 열었다.
“시작하지.”
그 한마디에 고든을 따라왔던 부관이 대신 진행을 맡아 시작을 알렸다.
“그럼 지금부터 상반기 결산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 안건으로…….”
이미 수도 없이 해 본 듯한 부관의 능숙한 진행에 회의가 물 흐르듯이 이어졌다.
회의 내내 수많은 안건이 나왔고, 고든은 그것들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회의가 진행된 지 두 시간이 흘렀을 즈음.
“다음 안건의 발언자는 엠마 그린 부장입니다.”
호명이 있기 무섭게 엠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녀는 고든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곧장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발의한 안건은 50기 유리 홀랜드의 조기 수료입니다.”
엠마의 안건에 회의장에 자리한 흑검병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침묵하는 이와 수군거리는 이.
그중 침묵하는 이는 요람 내에서 활동 중인 흑검병이었으며.
반대로 술렁거리는 쪽은 대외 활동을 주로 하는 흑검병들이었다.
그때, 대외 활동을 주로 하는 흑검병 측에서 엠마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지금 50기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하? 이제 고작 2년 차를 조기 수료 시키자고요?”
어이없다는 반응에 이어 다른 질문이 날아들었다.
“조기 수료라… 요람에 그런 제도가 있기는 했습니까?”
“문헌을 확인해 본 결과 조기 수료에 관한 제도는 분명 존재했습니다. 다만 그동안 조기 수료자가 없었을 뿐이죠.”
엠마의 차분한 답변에 술렁거림이 다시 번져 나갔다.
“요람 역사상 전례에 없던 일이라…….”
“그것도 고작 2년 차의 조기 수료라니.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나눠 드린 자료의 21쪽을 확인해 주십쇼.”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한 엠마의 빠른 답변이 끝나고, 실내에 종이 넘기는 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잠시 뒤.
“흠…….”
“으음…….”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작은 신음.
이에 엠마가 자신의 서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나눠 드린 자료대로 최근 1년 7개월간 요람의 부대 시설 복구 비용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이건… 크게 증가했다는 수준 정도가 아니군.”
“2년 전 대비 2,313%가 늘었다니…….”
모두가 심각한 얼굴로 자료를 살피는 걸 본 엠마가 탁자를 강하게 내려쳤다.
탁-!
그제야 서류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든 이들.
자신에게 몰리는 이목에 엠마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요람을 관리하는 흑검병들의 업무량 역시 최소 7배 이상 늘었으며, 그에 따른 피로도를 호소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엠마의 눈에 화르르, 분노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 모든 게 유리 홀랜드 한 사람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22쪽부터 첨부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강력한 목소리에 흑검병들이 다시 종이를 넘겨 서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엠마가 준비한 자료의 22쪽.
그곳에는 그간 유리가 때려 부순 품목들이 주르륵 적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1쪽으로 끝나는 게 아니란 거였다.
“흠, 이건…?”
“참… 다양하게도 해 먹었군.”
“이걸 혼자서 다 때려 부쉈다고?”
작은 글씨로 적힌 품목의 수가 족히 5쪽을 넘어갔다.
그제야 대외 활동을 하던 흑검병들은 어째서 엠마가 입에 거품을 물고 이리 유리 홀랜드의 조기 수료를 주장하는지 깨달았다.
덩달아 요람을 담당하고 있는 부장들이 어째서 이렇게 화난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말이다.
누군가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질문은 던졌다.
“확실히… 조기 수료를 주장하는 이유는 알겠습니다. 한데 조기 수료를 위한 조건 같은 건 없는 겁니까?”
“당연히 있습니다. 무룡 대전에서 3회 이상 우승, 공인 5단 이상의 실력 검증, 부장급 인사 10인 이상의 동의. 이 중 최소 2개의 조건을 만족해야 조기 수료가 가능합니다.”
“무룡 대전 3회 우승은 시간상으로 불가능하니 나머지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 거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유리 홀랜드는 이미 지난 무룡대전에서 성검을 사용함으로써 공인 5단급 이상의 실력을 검증했고…….”
엠마가 품에서 종이를 꺼내 탁자에 소리 나게 올려놓았다.
탁-.
“부장급 인사 10인의 동의서도 이미 준비를 끝냈습니다.”
엠마가 내려놓은 종이에는 유리 홀랜드의 조기 수료에 동의하는 부장들의 이름과 지장이 찍혀 있었다.
이를 본 이들이 헛웃음을 흘렸다.
“허, 빠르군.”
“그걸 벌써 준비해 왔다니.”
이토록 엠마가 유리 홀랜드의 조기 수료에 적극적일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한 이들이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그때.
“웃기지도 않네.”
어디선가 들려온 삐딱한 목소리.
그 주인공은 목소리만큼 삐딱하게 의자에 앉아 있는 코코였다.
불도 붙이지 않은 궐련을 질근질근 깨물며 잔뜩 짜증이 나 있는 듯한 얼굴.
그 모습을 본 부장급 인사들이 흠칫거렸다.
‘그, 그러고 보니 벌써 두 시간이 훌쩍 넘었군.’
‘두 시간 넘게 궐련을 못 피우셨으니… 입조심해야겠어.’
궐련을 못 태워 잔뜩 짜증이 난 코코 로마니는 투견이 아닌 광견이었다.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보이는 족족 물어뜯는 광견 말이다.
이를 엠마도 알고 있기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웃기지도 않는다고 했단다. 세상에, 요즘 것들은 왜 이렇게 강단이 없는 건지. 쯧쯧.”
“…….”
“고작 돈 좀 많이 들어간다고, 그리고 일거리 좀 늘어났다고 멀쩡한 애를 수료시키겠다니? 여기가 무슨 돈 내고 다니는 흔해 빠진 아카데미인 줄 알아?”
코코의 힐난에 엠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흔해 빠진 아카데미였으면 이런 고민을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진즉에 조기 수료를 시켜 버렸겠죠. 코코 부단장님이 공인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유리 홀랜드가 공인 7단에 들어섰다고.”
엠마의 이야기는 회의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공인 7단?”
“이제 고작 2년 차인 녀석이?”
“허…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군.”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술렁거림에 엠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유리 홀랜드는 이미 일반적인 기수의 수준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이미 요람에서 얻을 게 없는 상황이란 뜻이죠. 또한, 타고난 성향이 얌전하기라도 했다면 상관은 없겠지만, 그 녀석은 교활하고 이기적이며 망설임 없이 힘을 사용합니다.”
“원래 힘은 쓰려고 키우는 거잖니?”
“그 힘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는 게 문젭니다.”
“그 녀석이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은 게 뭐가 있는데? 대량 학살이라도 했니? 고작 건물 몇 개 때려 부순 게 전부인데?”
“그 힘을 가지고 그 녀석이 저지르는 짓 때문에 요람 전체 기수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원래 힘없는 애들은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는 거란다.”
“…왜 그렇게 유리 홀랜드의 편을 들어 주시는 겁니까?”
“편을 들긴 누가 들었다고 그러니?”
“지금 코코 님이 그러고 계십니다만?”
“어머, 얘 말하는 것 좀 봐? 너 그러다… 한 대 치겠다?”
말하는 내내 입술에 달라붙어 있던 궐련을 질끈 깨문 코코.
툭-.
두 동강이 난 궐련이 탁자로 떨어지며 그녀에게서 살기가 치솟았다.
이에 엠마도 지지 않고 눈에 힘을 줄 때.
“그만.”
나직한 고든의 목소리가 끼어들며 코코의 살기가 씻은 듯 사라졌다.
그와 함께 모두의 시선이 상석 쪽으로 돌아갔다.
엠마와 코코가 날 선 논의를 펼쳤지만, 결국 이 일을 결정하는 건 단장인 고든이리라.
과연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고든이 엠마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엠마 그린.”
“예, 단장님.”
“너의 주관적인 생각을 배제하였을 때, 현재 유리 홀랜드가 요람의 기본 질서를 붕괴하였다고 판단되나?”
고든의 질문에 엠마는 섣불리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답을 내놓았다.
“현재로서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조용.”
“…….”
“유리 홀랜드의 조기 수료 건은 보류다.”
“…알겠습니다.”
고든의 결정에 엠마는 한숨 섞인 수긍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자신의 안건이 통과되지 못했지만, 그녀는 생각보다 크게 낙담하지 않은 눈빛이었다.
‘보류라고 하셨다. 기각이 아닌.’
그 말은 자신의 안건이 완전히 폐기되는 건 아니란 뜻.
또한, 언제든지 단장의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하여 엠마는 일단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결정 내렸다.
그사이 고든은 새로운 궐련을 꺼내 문 코코에게 질문을 던졌으니.
“죄의 미궁 건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아, 그거요? 잘되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제시간 안에 완전히 끝낼 수 있을 듯싶으니.”
“빠짐없이 준비해야 할 거다.”
“네네, 알았어요. 그럼 제 보고는 이쯤에서 끝난 거 같으니 전 이만 한 대 피우러 가도 될까요?”
“그렇게 해라.”
“후후, 예.”
아직 회의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벌떡 일어난 코코가 신난 발걸음으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분위기를 정리한 고든이 부장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마저 하지.”
이대로 계속하겠다는 고든의 뜻에 부관이 회의를 진행시켰다.
“그럼, 다음 안건은…….”
그렇게 코코가 사라진 이후로도 흑검병단의 상반기 결산 회의는 쭉 이어졌다.
몇 시간 동안이나.
* * *
고즈넉한 밤.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달빛이 내려앉은 오솔길을 걸어가는 이가 있었으니.
짙고 검은 눈동자.
두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짧은 금발.
밤길을 걷는 이는 다름 아닌 권터 라이더였다.
저벅저벅-.
무감정한 얼굴로 숲길을 걸어간 그는 마침내 한 호숫가에 도달했다.
둥근 달이 아른아른 비치는 수면을 한 번 힐끗거린 권터가 이내 한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초대를 해 놓고 손님보다 늦게 나타나다니, 무례하군.”
나직한 목소리가 어둠 속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자 권터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나오지 않겠다면 가겠다.”
그 말이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는 듯 권터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정말로 떠날 듯한 그의 행동에 한쪽 수풀이 부스럭거리며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리고 이내 좁은 나무 사이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기다렸다고! 거, 야박하네!”
달빛에 비친 보라색의 머리카락.
이를 본 권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괴츠 뢰턴? 어째서 네가 거기서 나오는 거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괴츠의 뒤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아, 절 찾으시는 거라면, 전 여기 있어요!”
괴츠가 나온 곳에서 이번에는 율리아가 손을 흔들며 등장했다.
율리아와 함께 권터를 향해 걸어가며 괴츠가 너스레를 떨었다.
“아아, 아름다운 미인과 함께 걷는 달빛 품은 호수라니… 참으로 좋구려. 저 앞에서 눈치 없이 눈깔을 부라리고 있는 사내놈만 아니었다면 말이외다.”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돌려보낼 거예요?”
“하하, 장난이외다. 장난.”
그렇게 짧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앞에 선 두 사람을 보고 권터가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약속 장소에 둘이 나온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하하, 너무 그러지 말게.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동기가 보고 싶어서 이렇게 몸소 나온 거니!”
괴츠의 넉살 좋은 미소에도 권터는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대신 괴츠를 무시하며 율리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잘도 내가 있는 곳을 알아냈군.”
“파랑새의 정보력을 얕보지 마세요, 후후.”
요람의 모처, 개인 훈련실에서 수련을 이어 나가던 권터.
그런 그에게 파랑새의 문양이 찍힌 한 장의 편지가 전달되었다.
대체 자신이 있는 곳을 어떻게 알아내고.
또 어떻게 자신에게 전해진 것인지 모를 편지.
거기에는 그간 요람에서 벌어진 일들과 원탁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가 자세히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딱히 권터의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리 약속 장소에 나온 이유.
권터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건 바로 편지의 말미에 적힌 한 줄기 글귀였다.
[유리 홀랜드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협조가 필요해요.]이를 떠올린 권터가 율리아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이 자리에 나온 건 너에게 이 말을 전하기 위함이다.”
“뭔데요?”
“유리 홀랜드는 이 권터 라이더의 손으로 꺾는다!”
“…….”
“그러니 너의 그 알량한 머리를 쥐어짠 계획에 나를 이용하려 하지 마라. 이건 경고다.”
율리아가 세우고 있는 계책.
모든 기수가 힘을 합쳐 유리 홀랜드를 잡는다는 그 계획을 권터는 이해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는 율리아의 계획에 동참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하? 다 같이 힘을 합쳐 유리 홀랜드를 상대한다고?”
그런 식으로 그를 꺾는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과연 그걸로 만족할 수 있냔 말이다!
“유리 홀랜드는 나 혼자서 상대할 거다. 너희의 도움 없이.”
강한 열의를 보이는 권터의 눈빛에 괴츠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권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봐, 권터 그…….”
하여 그가 권터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려는 찰나.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요?”
뚱한 율리아의 목소리가 권터와 괴츠의 고막에 동시에 흘러들었다.
그와 함께 어이없다는 듯한 율리아의 표정이 두 사내의 시야에 담겼으니.
“제가 언제 권터 선배보고 유리 홀랜드와 같이 싸워 달라고 했나요?”
“…뭐?”
“전 분명 ‘협조’라고만 편지에 적어 뒀을 텐데요?”
율리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권터가 움찔거렸고.
“에? 그, 그게 그거 아니었소?”
괴츠는 깜짝 놀라 연신 눈을 끔뻑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