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90
289화. 대통합 퀘스트 (1)
9월의 초순.
요람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파란만장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러한 파란을 일으킨 이가 거주하는 곳은 너무도 고요하고 적막했다.
적어도 군터가 느끼기에는 그러했다.
‘원래 용오름이란 그러한 법이지.’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지만, 정작 그 중심으로 들어가면 조용한 게 용오름이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유리는 용오름, 혹은 그에 준하는 자연재해와 같았다
‘아니, 그보다 더한 녀석이지.’
최소 자연재해는 일정 시간이 지나며 사라지게 마련.
하지만 유리는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강해져서는 그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었다.
지금도 봐라.
한때 사망설까지 돌며 걱정을 시켰던 녀석이 멀쩡히 살아 돌아와서는, 이젠 아예 요람 전체를 쥐락펴락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놈을 걱정한 내 시간이 아깝군.’
속으로 툴툴거리며 걸어간 군터는 이내 공용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의 문을 막 통과하고 몇 걸음 나아간 순간, 군터가 우뚝 멈춰 섰다.
동시에 그의 인상이 살짝 찡그려졌으니.
“…이번에는 또 무슨 짓거리지?”
군터의 시선이 닿은 식당의 한복판.
그곳에는 다름 아닌 유리가 축 늘어져 널브러져 있었다.
멀쩡한 자기 방을 놔 두고 왜 저기서 저러고 누워 있단 말인가.
하지만 유리의 괴상한 짓거리에 당한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군터는 곧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고는 그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냐?”
그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이에 군터가 작은 한숨을 토해 냈다.
“또 뭔 짓거리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통행에 방해된다. 얼른 일어나라.”
그럼에도 유리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결국 살짝 짜증이 난 군터가 유리를 무시하고 돌아가려던 찰나.
“…….”
쥐 죽은 듯 누운 유리를 흘낏거리고는 그의 뒤통수를 발끝으로 살짝 툭 건드렸다.
희미한 미소를 지은 군터가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거봐라, 거기에 그러고 누워 있으니 이렇게 되는 거다. 이건 일어나라고 했는데도 안 일어난 네 잘못이다.”
요즘 대련 시합에서 하도 유리에게 뒤통수를 맞아서 이참에 소소한 복수를 한 군터.
그러고는 유리가 일어나기 전에 잽싸게 도망치려다가 슬쩍 뒤를 돌아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안 일어나지?’
아무리 살짝 걷어찼다고는 하지만, 저 녀석 성격이라면 진즉에 일어나서 쌍욕을 날리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유리는 여전히 똑같은 자세로 누워만 있는 게 아닌가.
이를 이상하게 여긴 군터가 유리의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무언가 이상함을 깨닫고 멈칫했다.
‘미동조차 없다고?’
아무리 깊게 잠들었다고 한들 최소한의 뒤척임, 그도 아니면 가슴이라도 미약하게 오르락내리락해야만 했다.
하지만 널브러진 유리에게서는 그런 미세한 움직임조차 없었다.
이를 알아차린 군터가 허리를 숙여 유리의 코로 손을 가져다 댔다.
“호흡이… 없다?”
다급해진 군터의 손이 빠르게 유리의 맥을 짚었다.
하지만 그의 예민한 감각에도 유리의 맥박은 잡혀 들지 않았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군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스릉-.
동시에 본능적으로 검을 뽑아 든 그는 유리의 곁에 서서 주변을 경계했다.
‘이 무슨?!’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눈과 손으로 방금 직접 확인하지 않았던가.
‘이 녀석이…….’
일부러 죽이려고 해도 죽을 거 같지 않은 이 유리 홀랜드가 죽었다니?!
소름이 돋은 군터는 등 뒤로 식은땀을 흘리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이마에 땀이 맺힌 그는 최대한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분석하려 노력했다.
‘유리는 절대 자살 따위를 할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타살이라는 뜻일 터.
문제는 그 또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거였다.
‘대체 누가? 누가 이 녀석을 죽일 수 있는 거지?’
요람의 기수 전체가 달려들고도 옷깃 하나 건드리지 못한 유리다.
그런 녀석을 어찌 죽인단 말인가.
거기다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항한 흔적이 없다.’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유리의 몸.
심지어 식당 내부도 너무 깨끗했다.
유리가 순순히 당해 줄 녀석이 아닌데, 그렇다면 최소 반경 십수 미터는 난장판이 되어 있는 게 옳지 않겠는가.
‘독? 독에 당한 건가?’
하지만 군터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독에 당할 녀석이었다면 진즉 수잔 선배에게 당했을 거다. 그럼… 대체 어떻게?’
유리의 죽음.
그에 관한 가능성을 하나하나 세밀히 분석해 나갈수록 군터는 점점 더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무리 궁리를 해 봐도 유리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알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군터가 죽은 유리의 시신을 지키며 경계를 서고 있던 그때.
“너, 뭐 해?”
“배고프다?”
아린과 뽀삐가 식당으로 나타났다.
이에 군터가 정색하며 소리쳤다.
“유리가… 유리 홀랜드가 죽었다. 모두 조심해라! 유리를 죽인 습격자가 주변에 있을 수도 있으니!”
그 외침에 아린과 뽀삐는 움찔하며 멈춰 섰다.
그리고 이어진 두 사람의 반응.
그건 군터가 예상하던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또?”
“배고프다?”
유리의 죽음에 아연실색해도 모자라건만, 그들은 너무도 침착했다.
아린과 뽀삐는 군터 뒤에 널브러진 유리를 보고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쟤, 또 저러고 있네.”
“배고프다.”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그들의 반응에 군터는 눈을 끔뻑였다.
그는 유달리 귀에 맴도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어째서 여기서 ‘또?’란 말이 튀어나온단 말인가?
군터가 그런 의문을 품은 순간.
“흐음, 대충 알겠군.”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인기척과 나직한 음성에 군터가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부스스한 얼굴로 몸을 일으킨 유리가 있었으니.
이를 본 군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떻게?”
분명 호흡도 맥박도 없었는데?
정말로 죽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죽었던 유리가 살아난 거지?
그런 생각들로 넋이 나간 군터를 뒤로하고 유리는 자신이 깔고 누웠던 서책을 펼쳐서 무언가를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사이 아린과 뽀삐가 가까이 다가와 넋 나간 군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줬다.
“쟤, 무슨 죽었다 살아나는 마체술? 아니, 죽은 척하는 마체술이랬나? 아무튼 그런 거 익힌다고 저러더라고.”
“배고프다.”
두 사람의 설명에 군터가 붕어처럼 입술을 뻥긋거렸다.
“주, 죽은 척하는 마체술?”
“응, 그렇다던데?”
세상에 정말 다양한 마체술이 있다지만 그런 해괴한 마체술까지 있을 줄이야.
황당하다는 듯 눈을 끔뻑이던 군터가 아린과 뽀삐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말할 정도면 너희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거 아닌가?”
“응, 당연히 알고 있었지. 우리도 어제 당했거든. 진짜 얼마나 놀랐는데! 나쁜 유리!”
“배고프다!”
이에 군터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럼 왜 안 알려 줬지?”
그 물음에 아린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안 물어봤잖아.”
“…….”
“그리고…….”
살짝 말끝을 흐린 아린이 배시시 웃었다.
“우리만 당하면 억울하기도 하고.”
“배고프다.”
아린의 옆에서 동의한다는 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뽀삐를 보고 군터는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그렇게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유리는 열심히 이번에 자신이 알아낸 것들을 떠올렸다.
‘얕은 가사 상태라면 어느 정도의 외부 자극은 느낄 수 있네. 그래도 외부 자극에 반응이 둔한 건 마찬가지니 최대한 안전한 지역에서 써야겠어.’
아린이 언급한 죽은 척하는 마체술.
이는 다름 아닌 유리가 백룡고에서 가지고 나온 서적에 기술된 특수 마체술이었다.
그 정확한 명칭은 사동대법(死凍大法).
죽음을 동결시킨다는 명칭처럼, 사동대법은 생존에 특화된 특수 마체술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필요 없는 장기의 활동을 둔화시키거나 억누르는 법.
육체 활동을 조절함으로써 미약한 곡기로도 장시간 생존할 수 있는 방법.
한 줌의 호흡으로 몇 시간 동안 버티는 비법.
심지어 호흡과 심장 박동을 조절하여 강제로 가사 상태에 빠져드는 방법 등.
사동대법이라는 이름을 가진 서책에는 인체를 효율적으로 다뤄 극한의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 비법들이 담겨 있었다.
‘생성된 마나 핵에 상관없이 익힐 수 있는 특수 마체술이면 몇 개를 익혀도 상관없겠지.’
자신의 주(主) 마체술인 레드너가의 비전, 뇌운(雷雲)은 정말로 뛰어난 마체술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마체술은 거들떠볼 생각조차 나지 않았었지만, 풍도결을 익히며 생각이 달라진 유리.
‘보조해 주는 마체술을 잘만 조합하면 주(主) 마체술의 효율을 크게 증폭시킬 수 있다.’
마체술 간에 특성이 잘 호환된다면 서로 간에 좋은 상호 작용이 일어나 동반 상승효과를 낼 수 있다.
또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동대법은 유리의 부족한 요소 중 하나를 보충해 주고 있었다.
‘뇌운은 범용성과 다양성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져.’
딸랑 뇌익과 운보만이 존재했고, 그나마 최근에 마류가 추가된 마체술.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때려 부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도 아니면 빠르게 달리거나 나중에 날아다니는 거?’
싸움에 있어서는 최고의 마체술이었지만, 그 외의 일에서는 딱히 쓸모가 있지는 않았다.
하여 유리는 그런 뇌운의 범용성을 보충해 줄 마체술을 계속해서 익혀 나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강하게 확신하며 오늘의 실험 결과를 빠짐없이 기록해 나갔다.
사각사각-.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필기에 열중인 유리를 군터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유리가 다시 책을 깔고 누워 또 호흡과 맥박이 사라지는 걸 보고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 새끼, 누가 안 잡아가나?”
잡아다가 되도록 멀리멀리 내다 버렸으면 좋겠는데.
그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아린과 뽀삐가 다시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때 군터가 아린을 향해 조용히 질문을 던졌으니.
“…저 녀석이 저 짓거리를 한다는 걸 내가 가장 마지막에 안 건가?”
“아니, 아직 텟샤 선배랑 무치도 모를걸?”
“그렇군.”
살짝 고개를 끄덕인 군터.
그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뒤틀렸다.
‘조금은 알 거 같군.’
자신만 당한 게 억울해서 안 알려 줬다는 아린의 말이 무슨 뜻인지.
군터는 확실하게 이해했다.
* * *
9월의 중순.
“유리이이잇! 집합하래애애!”
마왕성의 공식 알림과도 같은 아린의 명랑한 외침이 있고 난 뒤.
배를 북북 긁으며 입구에서 나타난 유리의 뒤로 마왕성의 모든 구성원이 따라붙었다.
“흐아암.”
하품을 쩌억 하던 유리는 자신을 새초롬하게 흘겨보는 테레시아와 시선이 마주치고 눈을 끔뻑였다.
“왜?”
“…….”
말이 없는 테레시아.
이에 유리가 멋쩍게 중얼거렸다.
“아직도 삐져 있는 거야?”
이틀 전.
마왕성의 구성원 중 가장 늦게 유리의 죽은 척하기에 당한 테레시아.
심지어 며칠간의 실험으로 더욱 정교해진 사동대법에 제대로 속아 넘어간 그녀는 정말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러다가 유리가 멀쩡히 살아서 일어난 것을 보고 안도감에 다리까지 풀려 버렸다.
그 이후로 유리를 계속 째려보며 무언의 시위를 하는 중이었다.
이에 뒷머리를 긁적인 유리.
“알았어, 내가 나중에 맛난 거 해줄게.”
그가 먼저 건넨 화해의 제스처에 조금은 누그러진 테레시아의 눈매.
대신 다른 쪽에서 난리가 났다.
“뭐? 왜! 우리는?!”
“배고프다!”
“차별은 좋지 않은 행동이다, 유리.”
“저, 저도 좀…….”
유리의 죽은 척하기에 먼저 당했던 이들이 억울함을 표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진 주변에 유리가 피곤하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퀘스트 끝나면 다 모여. 한 번에 해결하게.”
귀찮음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목소리에도 원하는 것을 얻어 낸 좌중은 그저 신난 얼굴이었다.
유리가 이렇게 선심을 쓰는 날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두가 만족스러워할 때, 유리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물었다.
“그런데 니들은 왜 따라오냐? 이거 50기 퀘스트 아니었어?”
유리가 자신을 바라보며 던진 질문에 테레시아가 한심하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참 빨리도 물어본다.”
그리고 유리의 질문에 답을 준 건 테레시아가 아닌 무치였다.
“그, 이번 퀘스트가 대통합 퀘스트랬어요.”
“어쭈? 요?”
“퀘, 퀘스트랍니다!”
“오? 그래? 그런데 갑자기 뭔 대통합?”
“아, 그게…….”
고개를 끄덕인 무치가 약간의 걱정과 기대감을 담아 답했다.
“1년 차에서 5년 차까지 전부 참여하는 퀘스트라서 대통합이라 부른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