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91
290화. 대통합 퀘스트 (2)
흑검병단장의 집무실.
고든에게 호출을 받은 엠마는 만사를 제쳐 두고 서둘러 도착했지만, 정작 그녀를 부른 이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하지만 주인 없는 집무실임에도 엠마는 한껏 긴장하여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터벅터벅-.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빠르게 몸을 돌린 엠마.
곧이어 문이 열리며 집무실의 주인이 나타나자 그녀가 절도 있게 경례를 올렸다.
척-.
엠마의 경례를 받으며 고든은 가볍게 걸음을 옮겨 책상으로 향했다.
이에 따라 엠마의 몸이 돌아가는 건 당연지사.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일이 좀 겹쳐서.”
“아닙니다!”
잽싸게 차렷 자세가 되어 답을 한 엠마는 다시 열중쉬어 자세로 돌아갔다.
군기가 가득한 그녀의 모습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고든.
“엠마 그린.”
“예, 단장님.”
“자네가 흑검병단에 들어온 게 벌써 20년째던가?”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엠마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짓자 고든이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할 수밖에. 어린 소녀가 요람을 수료하자마자 그날 바로 흑검병단에 입단한 건 자네가 처음이었으니까.”
“기억해 주신다니 영광입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일 처리가 참 깔끔하고 꼼꼼한 게 자네의 가장 큰 장점이었지. 그 점을 높게 사서 20대 후반의 나이에 부장직에 앉힌 거고.”
“그리고 절 듀란 부단장의 밑으로 보내셨죠.”
“꼼꼼한 성품을 가진 자네라면 그 덜렁이를 제대로 보좌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 결정을 한 날 원망하나?”
장난기 섞인 눈웃음을 보내 오는 고든에 엠마도 살포시 미소 지었다.
“솔직히 이렇게 고생할 줄 알았다면 아무리 빠른 승진이라도 거부했을 겁니다.”
“이런… 곧 돌아올 듀란 녀석이 들었다면 매우 섭섭해하겠군.”
그런 고든의 이야기에 엠마가 눈을 빛냈다.
“듀란 부단장이… 곧 돌아온다고 합니까?”
그녀 역시 주기적으로 보고받고 있었지만, 단장인 고든보다 정보 습득이 빠를 수는 없었다.
그런 엠마의 되물음에 고든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내로 도착할 거라고 하더군. 그 녀석이라면 나간 김에 몇 달은 놀다 올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누구한테 멱살이 잡혀 딴 데로 새지도 못하고 곧바로 귀가하고 있다던가.”
“그게…….”
“잘했다. 그리고 미리 축하하지, 부단장 대리직에서 벗어나게 된 걸.”
“감사합니다.”
그렇게 듀란의 복귀 소식과 함께 몇 마디 말이 더 오고 갔고.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흐르던 대화 분위기가 곧 이어진 고든의 한마디로 딱딱하게 경직됐다.
“엠마 그린 부장.”
조금 전과 똑같이 이름과 성을 붙였지만, 거기에 부장이랑 직위가 추가되며 고든의 어투가 서늘해졌다.
이는 사적인 대화가 아닌 공적인 대화가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엠마는 절도 있게 답했다.
“예, 단장님.”
“자네가 보기에 요즘 요람의 분위기가 어떠하지?”
“…….”
무슨 저의가 있기에 단장님은 자신을 불러서 저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그런 의문이 한가득하였지만, 엠마는 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저의 주관적인 생각을 원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엠마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엉망입니다.”
“더 정확히.”
“가장 먼저 연차별 기수의 경계가 옅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기수들 간의 경쟁 역시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보고받기로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기수들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고 하던데? 4개의 조가 치열하게 순위 다툼을 하고, 또한 실력자들을 영입하기 위해 물밑 작업까지 벌이고 있다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한 고든의 이야기.
이를 가만히 듣던 엠마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설마…….’
그제야 그녀는 눈치를 챘다.
어째서 고든이 자신을 불렀고.
또한, 이런 이야기를 자신에게 하는지 말이다.
‘단장님은 이미 답을 내리셨다. 그리고 그 답을 나를 통해 검증하려 하시는 것뿐이다.’
그리 확신한 엠마가 덤덤한 어조로 답했다.
“단장님께서 말씀하신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기수들 간의 경쟁이 줄어들었다는 너의 생각은 틀린 게 되는군.”
“그건 아닙니다.”
“어째서?”
“분명 기수들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그 경쟁이 협력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겁니다.”
“…….”
고든은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것이 계속 말해 보라는 무언의 지시임을 안 엠마는 이어서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기본적으로 요람의 경쟁은 개개인의 경쟁이었습니다. 상위 연차와 하위 연차의 경쟁은 물론이거니와 같은 연차 내에서도 동기 간의 경쟁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물론 기수 간에 협력을 요구하는 퀘스트가 주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요람의 모든 활동은 개인 간의 경쟁이 기본이었다.
그로 인해 실력이 없는 개인은 도태되고, 실력만 있다면 개인이 집단 위에 군림할 수도 있는 거였다.
그것이 지난 51년간 요람이 지켜 온 질서.
그런데…….
“현재는 개인 간의 경쟁이 아닌 4개의 무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경쟁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유리가 만든 체계.
이로 인해 끊임없이 경쟁이 일어나고는 있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각 조의 구성원들끼리는 협력하고 다른 조와 다툼을 하는 구도였다.
개인보다는 집단끼리의 경쟁.
엠마는 이를 꼬집어 말하고 있었다.
“경쟁은 빈번히 일어나지만, 그건 저희 요람이 지향하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니 이를 기수 간의 경쟁이 줄어들었다고 봐도 무방하기에 그리 말씀드린 것입니다.”
엠마의 목소리에는 강한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또한, 연차별 경계가 허물어지고 거주 구역의 구분도 엉망이 되어 기존에 기수들을 관리하던 흑검병들이 애를 먹고 있는 상황입니다.”
“…….”
“현재 요람의 상황은 51년간 저희 흑검병들이 유지해 온 체계와 확연히 어긋납니다. 지금 당장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일지 모르나 장기적인 관점으로 봤을 땐 분명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 사료됩니다.”
“의견 잘 들었다.”
작게 고개를 주억거린 고든이 엠마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럼 다시 묻겠다. 엠마 그린 부장.”
“예, 단장님.”
“너의 주관적인 생각을 배제하였을 때, 현재 유리 홀랜드가 요람의 기본 질서를 붕괴하였다고 판단되나?”
“……?!”
엠마는 살짝 움찔거렸다.
저 질문이 상반기 결산 회의에서 고든에게 들은 질문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그제야 그녀의 머릿속에서 모든 게 명확해졌다.
어째서 단장님이 자신을 불러 이런 질문을 하였는지.
무엇에 대한 답을 미리 정해 놓고 자신을 통해 검증하려 하셨던 건지.
‘그래서였군.’
당시 상반기 결산 회의에서 엠마는 고든의 질문에 오랜 고민을 거쳐 ‘그렇지 않다’라는 답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또한 길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엠마는 단호히 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현재 저희 요람은 유리 홀랜드에 의해 질서가 망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군.”
짧게 답한 고든이 말을 덧붙였다.
“상반기 결산 회의에서 자네가 올린 유리 홀랜드의 조기 수료 안건, 말끔하게 정리해서 곧장 나에게 가져오도록.”
“예? 아, 알겠습니다!”
엠마가 눈이 휘둥그레져 답했다.
‘맙소사 직결이라니!’
자신의 안건이 통과되었다는 사실도 기쁘건만, 중간 과정 없이 직결로 단장님께 가져오란다.
이는 다시 말해 자신이 가져오기만 하면 단장님께서 바로 결재를 해 주시겠다는 뜻.
그리고 단장의 결재는 그 즉시 안건의 시행으로 이어지는바.
그 말인즉슨 요람의 생태계 파괴자, 유리 홀랜드가 사라지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2년 만에 요람을 조기 수료 한다라…….’
이 또한 여러모로 요람의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이지 않은가.
물론 그보다는 드디어 앓던 이를 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쁜 엠마였다.
그때 고든이 그녀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지금쯤인가?”
“예?”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던 엠마는 곧 눈치를 채고 답했다.
“아, 예! 지금쯤이면 모든 기수가 죄의 미궁으로 이동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 그 아이에게는 요람에서 치르는 마지막 퀘스트가 되겠군.”
혼잣말처럼 그리 중얼거린 고든의 시선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용의 요람, 그 중심이 있는 곳으로.
* * *
용의 요람.
몽파르체 호수에 자리한 이 인공섬은 동서남북 4개의 섬과 그 중심에 자리한 한 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동서남북 4개의 섬의 용도는 기수들에게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중앙 섬의 용도를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한날한시, 수백 명에 달하는 모든 기수가 중앙 섬의 용도를 알게 되었으니.
‘이야, 문짝 한번 무진장 크게 만들었네.’
자신이 조기 수료인지 퇴학인지 모를 것을 당할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을 꿈에도 짐작하지 못하는 유리.
그의 정신은 오로지 거대한 문에 쏠려 있었다.
아니, 유리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중앙 섬에 모인 이들 중 문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높이는 12m.
폭은 대략 5m.
그 두께는 짐작조차 가지 않는 거무튀튀한 금속으로 이뤄진 문.
세월의 풍파가 느껴지는 낡은 문은 담쟁이넝쿨에 뒤덮인 정육면체 건축물의 입구였다.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음침함이 느껴지는 저 건물이 바로 이번 1~5년 차가 모두 참여하는 대통합 퀘스트가 벌어지는 장소였다.
‘죄의 미궁이라.’
조금 전, 막 들은 이번 대통합 퀘스트의 목적은 간단했다.
앞으로 3개월의 시간 동안 죄의 미궁에 들어가 ‘조금 독특한 수정’을 캐서 나올 것.
참으로 별것 아닌 목적.
하지만 그 보상은 ‘별것’이었다.
‘수정을 하나라도 가지고 나온다면 백룡고를 이용할 수 있게 해 준다고?’
거기다 수정을 2개 이상을 가지고 나오면 그중 절반을 내어 주고.
5개 이상의 수정을 가지고 나오면 특별한 보상까지 얹어 준다고 했다.
‘심지어 가지고 나온 수정의 품질에 따라 보상을 더 줄 수도 있다고 했지.’
대체 그 수정이 뭐기에 요람에서 이렇게나 후한 보상을 내준단 말인가.
‘거기다 단순히 미궁에 들어가서 물건을 가지고 오는 것뿐인데 이렇게나 보상이 빵빵하다고?’
수상해도 너무 수상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수상함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었다.
‘저 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이 이 정도 보상을 내걸고 들여보낼 정도로 크다는 거겠지.’
그런 유리의 추론을 뒷받침해 주는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이번 퀘스트의 선택권은 너희에게 있단다.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돼. 그에 따른 불이익은 그 어떤 것도 없을 테니 마음 편히 선택하렴.”
입에 궐련을 꼬나문 채 여유롭게 설명 중인 코코.
그 말을 듣자마자 유리가 손을 번쩍 들었다.
‘또 너냐?’라는 듯 살짝 미간이 구겨진 코코가 턱을 까딱였다.
“왜?”
“저기가 그렇게 위험해요? 퀘스트를 거부한다고 해도 불이익을 면제해 줄 만큼?”
더는 추론하기도 귀찮다는 듯 그냥 바로 답을 알려 달라고 질문을 던져 버린 유리.
그런 그가 또 이상한 헛소리를 할까 봐 노심초사하던 다른 기수들은 의외로 정상적인 질문에 놀라 귀를 쫑긋거렸다.
유리의 질문은 그들도 내심 궁금해하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에 속에 코코가 입을 열었다.
“죄의 미궁 대통합 퀘스트는 지금까지 총 4번이 있었단다. 첫 번째 퀘스트에서 기수들의 생환율은 80%였고, 두 번째에서는 60%, 세 번째에서는 40%, 그리고 10년 전인 4번째에서는…….”
잠시 말끝을 흐린 코코.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이 이어지는 가운데 코코가 궐련 연기를 내뱉었다.
후욱-.
길게 흩어지는 연기 속에 섞여든 나직한 목소리.
“456명이 들어가 104명이 살아 돌아왔지.”
“……?!”
기수들의 낯빛이 충격으로 어두워졌다.
456명 중 고작 104명.
이는 대략 20%의 생환율이지 않은가.
심지어 회차가 거듭될수록 생환율이 떨어졌으니 이번에는 더 떨어질 수도 있는 법.
‘이 정도로 위험한 퀘스트였다고?’
‘대체 저 안에 뭐가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반짝이는 특별한 수정’이 도대체 뭐기에 요람은 기수들에게 이런 위험한 퀘스트를 내어 주는 걸까.
그런 의문은 이어진 코코의 설명으로 해소되었다.
“참고로 그 반짝이는 조금 독특한 수정을 우리는 이렇게 부르지… 진명로(眞明露)라고.”
코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좌중의 반응은 셋으로 나뉘었다.
“진명로?”
“그게 뭐지?”
반짝이는 수정의 정식 명칭을 듣고도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다수와.
“흡?!”
“지, 진명로?”
무언가 아는 게 있는지 경악하는 소수.
그리고.
“이거 들고 들어가면 되는 거죠? 2개 가져가도 돼요?”
“…….”
“에이 거, 안 되면 마는 거지 뭘 그렇게 째려봅니까? 쪼잔하긴.”
잠깐 실랑이를 벌이다가 흑검병들이 미리 준비한 배낭을 잽싸게 집어 들고 총총걸음으로 나아가는 단 한 명.
등 뒤로 배낭을 멘 유리가 곧장 문 앞에 서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소리쳤다.
“아저씨, 여기 문 열어요, 문!”
“…….”
“뭐 하냐! 손님 받아라!”
텅텅텅-!
발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히 울리는 가운데.
수백 쌍의 눈이 동글동글한 검은 뒤통수에 닿아 떨어질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