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7
6화. 갈증 (1)
유리의 시험 상대로 나선 흑검병.
그가 유리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부절검은 도대체 저런 놈을 왜 추천한 거지?’
지금껏 자신이 상대해 온 시험 응시자들은 모두 천재 혹은 수재라 칭해지는 이들뿐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녀석을 보아라.
‘검을 쥐어 보기는 했던 거냐?’
기본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쓰레기.
그게 흑검병이 유리를 보고 내린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생각은 갑작스럽게 치솟은 검은 형체를 마주하며 씻은 듯 사라졌다.
아니,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었다.
‘저게… 뭐지?’
연기, 혹은 불꽃처럼 화르륵- 피어오른 검은 형체.
초승달처럼 곡선을 그린 검은 눈구멍과 사악하게 찢어지는 커다란 입.
‘화신’이라는 지고한 경지를 처음 접한 흑검병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게 무엇인지 판단하지 못했다.
‘괴… 물?’
그저 ‘괴물’이라 칭할 뿐.
그리고 괴물의 움푹 파인 눈구멍을 응시한 순간, 끔찍한 살의가 밀려들었다.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괴물의 살의가 언어가 되어 흑검병의 뇌에 직접 꽂혔다.
그것은 끔찍한 고통을 유발했다.
하지만 진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살의의 농도가 점점 더 짙어져 갔다.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
아무리 흑검병단의 말단이라고는 하나 그 역시 지옥 같은 단련을 거쳐 온 이.
그로 인해 몇 번이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으며 살기 따위는 가벼이 이겨 낼 수 있는 정신력을 지니게 됐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의 살의는 달랐다
이건 이겨 내고 버텨 낼 수 있다는 개념의 것이 아니었다.
-죽어! 죽어어어엇!
반복되는 살의가 영혼에 닿았다.
덜덜덜-.
흑검병의 육신이 주인의 의지를 무시하고 사시나무처럼 바들거리기 시작했다.
딱딱딱-.
빠르게 부딪히는 그의 치아.
항거할 수 없는 공포 앞에 육신은 마비가 되고 사고는 하얗게 물들었다.
곧 그의 뇌리를 가득 채운 것은 한 가지 생각뿐.
‘죽는다… 난 죽을 거야… 죽는다아아아!’
털그럭-.
삶의 의지를 잃은 흑검병의 손에서 그대로 검이 떨어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리고 검은 괴물.
놈의 찢어진 입이 크게 벌어졌다.
크캬캬캬-!
괴물은 웃음을 토해 내는 것처럼 입을 쩍 벌리더니, 크게 팽창해 흑검병을 덮쳐들었다.
“저, 저?!”
“꺄아아악!”
하늘을 가린 검은 괴물의 기세는 포악했고, 그 앞에 놓인 넋 나간 흑검병은 너무도 무기력해 보였다.
때문에 사람들은 흑검병이 괴물에게 산 채로 잡아먹히리라, 그리 예상했다.
하지만 그 순간.
사아악-.
어디선가 불어온 살랑 바람.
그리고 연이어진 거센 돌풍.
퐈아아아항-.
“으악?!”
“뭐, 뭐여!”
강한 바람은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했고, 풍압에 고개를 돌리는 이들마저 발생했다.
그때 고개를 돌리지 않은 이들은 진기한 볼거리를 구경할 수 있었다.
바로 시원하게 불어온 새하얀 바람이 검은 괴물을 휘감는 장면이었다.
솨아아악-.
-크르를!
검은 괴물은 새하얀 바람에 갇혀 발버둥 쳤다.
옭아매는 흰 바람.
속박을 끊으려는 검은 괴물.
그건 마치 검은 짐승을 잡아먹으려는 새하얀 이무기를 보는 듯싶었다.
치열한 흑과 백의 싸움, 그 끝은 허무했다.
퐝-.
새하얀 바람이 가하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검은 괴물이 터져 버린 것이다.
그 결과, 검은 괴물은 한 줄기 연기로 화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상황에 모두가 반응조차 못 하고 있을 때.
털썩-.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흑검병이 그대로 눈을 감고 쓰러졌다.
그리고 쓰러진 흑검병 앞에 서 있는 요한.
누구도 그가 어떻게, 언제 그 자리로 움직였는지 아는 이는 없었다.
요한은 마치 전설 속 마법처럼 홀연히 나타났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한 가지를 깨달았다.
흑검병이 괴물에게 잡아먹히려는 순간.
하얀 바람을 일으켜 흑검병을 구해 낸 게 바로 요한 레드너임을 말이다.
‘명인이 괴물을 쫓아 버렸어!’
‘저분이 흑검병을 구했구나!’
유리가 시험에 응한 순간부터 흑검병이 쓰러지기까지.
그 과정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너무도 충격적인 일의 향연이었기에 구경꾼들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숨 막히는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유리의 무릎이 꺾였다.
앞으로 무너지는 소년의 육신.
퍼슥-.
유리는 상체가 고꾸라지려는 찰나, 검을 땅에 박아 넣으며 가까스로 몸을 지탱했다.
그는 정면의 요한을 향해 피식 웃음을 날렸다.
“영감이 끼어드는 거는… 반칙 아닌가?”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이를 듣지 못한 이는 없었다.
이에 요한이 낄낄거리며 답했다.
“그렇다고 애꿎은 송장을 치울 수는 없잖느냐? 내 책임이라며?”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래서… 결과는?”
“그거야 저놈들이 알려 주겠지.”
요한이 턱짓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흑검병들을 가리켰다.
그들의 대화에 구경꾼들의 시선도 자연스레 흑검병에게 모여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에는 흑검병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에 대한 궁금증이 가득했다.
쏟아지는 수백 쌍의 시선 속에, 잠시 침묵하던 흑검 8조장이 입을 열었다.
“기준… 판단 불가.”
판단 불가.
요람의 시험관으로서 내린 결론치고는 무책임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 ‘그것’을 보았다면 그 누구도 8조장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리라.
잠시 유리를 응시하던 8조장이 자신의 평가를 공표했다.
“등외 특(特).”
8조장의 평가 이후 흑검 단원의 평가가 이어졌다.
“기준 판단 불가, 등외 특.”
“기준 판단 불가, 등외 특.”
“기준 판단 불가, 등외 특.”
기절한 흑검 단원을 제외한 모두가 흑검 8조장과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아마 기절한 흑검 단원이 깨어 있었다고 해도 그들과 똑같은 평가를 했을 것이다.
의견을 종합해 흑검 8조의 조장이 결론을 내렸다.
“종합 기준 특… 합격.”
판단을 내린 흑검병은 품에서 용패를 꺼내 들었다.
시험 전 요한이 내던졌던 것과 똑같은 검은색 용패.
이를 꺼낸 흑검 8조장의 눈에 감회가 서렸다.
‘내 손으로 이걸 건네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군.’
요람의 시험관으로 나서는 흑검조에게는 다양한 용패가 지급된다.
그간 무수히 많은 용패가 흑검조장의 손을 거쳐 합격자들에게 전해졌지만, 8조장이 흑룡패를 꺼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지막으로 흑룡패가 발급된 게 재작년이라고 하였던가?’
그간 수없이 많은 이들이 용의 요람을 거쳤지만, 그중에서 흑룡패를 손에 쥔 이는 단 아홉 명.
‘아홉 번째 흑룡패주 이후 한동안 흑룡패의 주인이 나오지 않을 거라 여겼건만.’
한데 불과 2년 만에 새로운 흑룡패의 주인이 탄생한 것이다.
‘열 번째 흑룡패주라.’
모든 명인이 흑룡패주인 것은 아니나 흑룡패를 받고 명인이 되지 못한 이는 최근에 패를 받은 두 사람뿐.
물론 그 둘도 언젠가는 명인의 반열에 오를 것이란 게 요람의 분석이었다.
다시 말해 흑룡패는 미래의 명인을 보증하는 상징과도 같았다.
흑검 8조장이 절도 있게 흑룡패를 내밀었다.
“흑룡패주가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유리는 8조장이 내민 흑룡패를 무덤덤하게 받아 들었다.
그리고 흑룡패를 요한을 향해 냅다 집어 던졌다.
턱-.
흑룡패가 떨어진 곳은 요한의 의족 근처.
그 일련의 상황에 지켜 보고 있던 이들 모두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반면 유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물었다.
“…영감, 나 합격했다는데?”
“나도 들었다.”
“이렇게 되면 영감의 기준에서도 통과인 건가?”
“그런 셈이겠지?”
“그럼 이제 그쪽이 약속을 지킬 차례야. 만약 나한테 한 얘기가 전부 거짓이라면…….”
쿨럭-.
잠시 이야기를 멈칫한 유리의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피로 붉게 물든 입술을 훔친 유리.
그는 매서운 눈으로 요한을 노려보았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무려 명인을 향한 협박.
그것을 끝으로 악착같이 정신력으로 버텨 내던 유리의 눈앞이 캄캄하게 물들었다.
동시에 그의 육신이 물에 젖은 인형처럼 바닥에 널브러졌다.
털썩-.
그때까지도 좌중은 여전히 놀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다만 한 사람.
요한만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거, 쬐깐한 놈이 성질은.”
기절한 유리를 바라보는 요한의 눈빛은 너무도 즐거워 보였다.
* * *
‘으음…….’
기절했던 유리의 서서히 의식이 돌아왔다.
그때, 가장 처음 깨어난 감각은 청각이었다.
타닥- 타닥-.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
곧이어 고기가 익어 가는 냄새가 콧속으로 파고들며 후각을 자극했다.
오랜만에 맡아 보는 고기 내음에 번쩍 눈을 뜬 유리.
‘…여긴?’
연신 눈을 끔뻑이며 흐릿한 시야를 정리했다.
주홍색의 모닥불 빛 사이로 익숙한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누워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내… 동굴?’
그가 깨어난 곳은 다름 아닌 지난 반년간 지낸 은신처였다.
아이언스 영지 외곽의 절벽에 자리한 동굴.
일반인은 쉽사리 찾기도 힘든, 혹은 찾았다고 해도 함부로 발을 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위험한 곳에 자리한 보금자리였다.
다만 문제는 지금까지 유리가 은신처를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누군가에게 말해 준 적도 없고 말이다.
‘내가… 여길 어떻게?’
분명 제 발로 걸어온 기억은 없었다.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유리의 뇌리로 기절 전의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흑검병과 요람의 시험.
그리고 부절검 요한 레드너와의 거래.
이를 상기한 유리는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쿨럭!”
갑작스럽게 상체를 일으킨 탓에 기침을 토해 낸 유리.
그가 가슴을 부여잡고 있을 때, 귓속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역시 어린 게 팔팔하니 좋구나. 나였다면 한 아흐레는 앓아누웠을 텐데.”
“쿨럭!”
한 번 더 기침을 토해 낸 유리는 몸 상태를 확인했다.
‘무리한 것치고는 나쁘지 않아. 아니, 이상할 정도로 좋아.’
근래 들어 이 정도로 몸이 좋았던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을 느낀 유리는 시선을 틀었다.
타닥 타닥-.
타오르는 모닥불과 그 근처에 앉은 불청객.
유리가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영감… 여긴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네놈 따라다니다가 알았지.”
“대체 언제부터?”
“네가 골목에서 애먼 놈들을 쥐 잡듯 잡고 있을 때부터?”
그 말인즉슨 전날 더츠 일행과 시비가 붙었을 때부터 자신을 따라다녔다는 소리였다.
유리가 어이없다는 듯 시선을 보냈지만, 요한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뭔 생각으로 집을 이딴 위험천만한 곳에다가 만든 거냐?”
“영감 같은 엄한 사람이랑 엮이고 싶지 않아서 그랬는데?”
“짜식아, 그만 틱틱거려라. 기절한 네놈 업고 여기까지 데려온 것도 나이니.”
“…….”
유리의 입이 꾹 다물어지자 요한이 손짓했다.
“깼으면 와서 이거나 들어라.”
요한은 유리를 향해 토끼였던 것으로 보이는 고기구이를 내밀었다.
안 그래도 극심한 허기를 느끼고 있던 유리.
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잽싸게 고기를 받아 들고는 허겁지겁 해치워 나가자 요한도 제 몫의 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곧 절벽 안 동굴에 장작 타는 소리와 두 사람이 고기 뜯는 소리만이 울렸다.
그렇게 순식간에 제 몫의 고기를 해치운 유리.
그가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닦으며 물었다.
“영감, 우리 계산할 거 있지 않아?”
질문을 던진 유리의 눈동자가 고요하게 빛을 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