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6
5화. 탈피 (5)
유리는 요한의 검을 빼앗듯 받아 들고 광장으로 나아갔다.
갑작스럽게 진행된 상황에 여기저기서 의혹성이 터져 나왔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거래는 또 무슨 소리고?”
“그러니까 유리가 시험을 치른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요한과 유리의 관계.
유리가 요람의 시험을 치를 자격이 있냐는 등.
여러 가지 의문점이 당혹스러운 웅성거림 속에 혼잡스럽게 섞여들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당혹스러운 것은 이번 무대를 준비한 아이언스 가문이었다.
“…저 아이는 누구더냐?”
잔뜩 굳은 아쉬라프의 물음에 가신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기 바빴다.
비록 변방의 영지래도 급격히 세력을 확장한 아이언스였기에 영지민의 수만 해도 2만 명에 육박했다.
아무리 행정을 담당하는 가신들이라고는 하나 모든 영지민을 알 턱이 있겠는가.
그렇게 서로 눈치만 보던 중,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 가신이 앞으로 나섰다.
“아마 받아들인 난민 중 하나일 듯싶습니다. 오늘이 가기 전에 알아내어 보고 올리겠습니다.”
“그리하라.”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쉬라프의 굳은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을 위해 의도적으로 준비한 무대였다.
한데 군터에게 쏠렸어야 할 관심이 요한 때문에 다른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지금도 봐라.
“명인이란 사람이 우리 공자님을 보러 온 게 아니었나?”
“그러게? 공자님이 아니라 저 녀석을 보러 온 건가?”
벌써부터 요한이 군터가 아닌 평민 소년을 선택한 것에 입을 놀려 대고 있지 않은가.
“흠…….”
불편한 심기를 낮은 신음으로 흘려보낸 아쉬라프.
그의 시선이 요한에게 닿았다.
‘요한 레드너.’
그는 어째서 제 아들을 놔두고 저런 평범한 소년에게 관심을 주고 있는 것일까?
‘당신은 대체… 저 아이의 무얼 본 것입니까?’
피어오르는 의문을 떨쳐 낼 수 없었기에 아쉬라프의 시선은 요한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한편, 그런 아버지의 옆에 선 군터도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누구지?’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외모.
아니, 오히려 왜소한 체구 때문에 더 어려 보였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유리를 관찰하던 군터의 얼굴에 실망이 깃들었다.
‘단련을 한 몸은 아닌데?’
허름한 옷 사이로 도드라진 육체만 보아도 단련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잘 봐줘야 또래 아이들보다 균형이 잡혀 있는 몸이랄까?
그런데도 명인이란 이는 저 소년을 위해 일생에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용패를 사용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선택.
그리고 그런 의문은 흑검병들도 똑같이 떠올리고 있었다.
“흠…….”
흑검 8조장의 시선이 광장의 중앙에서 어깨를 풀고 있는 유리를 바라보았다.
‘이해할 수가 없군. 저런 소년을 위해 부절검이 용패를 썼다고?’
자신의 주인이 인정한 몇 안 되는 강자.
그런 이가 점찍은 인재라기에 내심 기대감이 생겼건만.
‘어째서 저 녀석이지?’
정작 요한의 추천을 받은 소년은 8조장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육체의 발달.
걸음걸이.
내뱉는 호흡.
그 어느 것 하나, 단련과 훈련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마나의 흔적조차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공인 7단에 오른 자신의 실력이라면 공인 8~9단급의 실력자가 작정하고 숨긴 것이 아닌 이상 마나의 잔향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 녀석이 그 정도일 리는 없을 테고.’
그렇다면 저 소년이 마체술의 근간인 마나를 조금도 쌓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단언컨대, 지난 50년간 요람의 자격 시험을 거쳐 간 수만 명의 인재 중 마체술을 익히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부절검도 이를 모르지는 않을 터.’
그럼에도 용패를 사용했다는 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요한이 보았다는 거다.
‘그게 무엇인지는 이제부터 확인해 보면 되겠지.’
8조장이 고갯짓했다.
“시작해라.”
조장의 명령에 군터를 상대했던 조원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시험에 응하는 자는 앞으로 나서라.”
그러자 되돌아온 뚱한 목소리.
“이미 나왔습니다만?”
“…이름을 밝혀라.”
“유리 홀랜드.”
긴장감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모습에 흑검 조원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은 흑검 조원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위대한 검의 주인이 정한 율법에 따라, 흑검 8조 5인의 입회하에 요람의 자격 시험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시험 방식은 일수 교환으로 끝낸다. 준비가 끝나면 언제든지 들어오도록.”
방식은 군터의 시험과 다르지 않았고, 공표를 마친 흑검 조원은 검을 뽑고 대기했다.
언제든지 올 테면 와 보라는 듯,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런 흑검 조원을 보며 유리도 요한의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륵-.
은색과 흑색이 물결치는 듯한 검신이 검집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요한의 검은 흑검 조원의 검처럼 폭이 좁은 도(刀)였다.
일직선으로 쭉 뻗어 나간 도신의 끝이 살짝 휘어 있다는 것 정도가 차별점이랄까?
고대 동방의 후예들이 중앙 대륙에 정착하며 전파되었다는 칼의 양식이었다.
그리고 대충 보기에도 요한의 검은 충분히 보검이라 부를 물건이었다.
그런 물건을 손에 쥔 유리의 감상은 간단했다.
“무겁네.”
검의 무게는 물론이거니와 마음의 무게 또한 무겁기 그지없었다.
유리가 느끼는 무게의 정체는 두려움.
‘사람을 향해 날붙이를 겨눠 보는 게… 얼마 만이지?’
유리는 저주를 자각한 이후로 검을 잡지 않았다.
뾰족한 날붙이를 쥐게 된다면 또 괴물을 불러내게 될 것만 같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저주에 집어삼켜질 것만 같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살아 보고자 자연스럽게 검을 멀리한 것이다.
그 시간이 무려 7년여.
오랜만에 다시금 검을 쥐니 처음으로 괴물을 불러냈던 그날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손에 쥐었던 식칼의 감촉.
[으아아아아악!]찢어지는 듯 귓가에 울리는 비명.
[촤악-]망막을 물들이는 붉은 액체.
선명하게 떠오른 기억의 편린에 유리의 동공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검을 쥔 손에 힘을 준 유리가 흑검병을 향해 입을 열었다.
“경고하는데.”
“……?”
“전 힘 조절 같은 거 못 합니다. 알아서 살아남으세요.”
유리의 장난 같은 경고에 그를 마주한 흑검병의 미간이 크게 일그러졌다.
그의 눈에 어이없음이 깃들었다.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는 듯한 흑검병의 태도에 유리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난 경고했다. 누구 하나 죽어 나가도 내 잘못 아니라고.’
그리 스스로를 합리화한 유리가 검집을 내동댕이치고 양손으로 검을 들었다.
그러자 크게 휘청이는 검 끝.
검의 무게도 버티지 못하고 버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이에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쯧, 검도 제대로 못 들잖아?”
“저래서 어찌 요람의 시험을 통과할까?”
사람들의 수군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유리는 길게 호흡을 내뱉었다.
새액- 새액-.
길게 반복되는 호흡 속에 유리의 정신이 검으로 집중됐고, 주변의 소음이 사라졌다.
세상에 오로지 자신과 한 자루의 검만 남은 듯한 기분.
동시에 급속도로 확장되는 감각.
주변의 모든 것이 뇌 속으로 직접 투사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뒤쪽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행동 등등.
반경 몇 미터 안의 모든 것이 세세하게 읽혀 들었고, 세상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이 정도로는 안 돼.’
평소였다면 이쯤에서 멈췄을 것이다.
그동안은 이 정도만으로도 여러 난관을 헤쳐 가기엔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자신이 상대할 사람은 그 유명한 흑검병이었다.
발만 담그는 정도로는 안 된다.
머리끝까지 담가야 한다.
‘가자!’
결심을 굳힌 유리가 바짝 정신의 날을 세웠다.
그와 동시에 유리는 자신의 정신이 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큭!’
무려 7년 만에 다시 느끼는 감각.
곧이어 육신이 물에 잠긴 듯한, 두둥실 떠오르는 부유감이 느껴지며 소름이 돋아 올랐다.
‘끔찍하네, 진짜!’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맨몸으로 표류하는 기분.
이 끔찍한 감각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아 유리는 검을 잡으려 하지 않았었다.
끊임없이 표류하다 정체성마저 잊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정신 차려!’
유리는 정신을 다잡았다.
이건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온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가 되었을까?
-크르르…….
유리의 의식 한쪽에서 짐승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놈이… 온다!’
-크르르륵!
또다시 울린 짐승의 소리와 함께 무아(無我)의 망망대해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유리를 향해 다가왔다.
마치 거대한 고래가 수면 아래서 덮쳐드는 것처럼.
촤아아악!
급격하게 몸집을 키워 낸 검은 형상이 대해를 표류하고 있는 유리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현실 속 유리에게도 변화가 생겨났다.
“뭐지? 좀 어두워진 거 같지 않아?”
“그러게? 소나기라도 오려나?”
조금 전과 비교해 확연히 어두워진 주변.
그것이 시작이었다.
츠륵-.
유리의 발밑, 그림자가 꿀렁거렸다.
처음에는 미약한 변화였으나 그림자가 유리의 육신을 타고 오르기 시작하며 모든 게 급변했다.
“어?!”
“저, 저?!”
유리의 육신을 타고 오른 그림자가 수직으로 솟구치며 크기를 부풀렸다.
0.01초.
찰나의 순간, 검은 기운이 집채만 하게 부풀었기에 일반인의 눈에는 그것이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크르륵-.
검은 그림자 속에 두 개의 구멍이 생겨났다.
마치 눈처럼 생겨난 두 개의 구멍은 주변을 돌아보며 초승달처럼 휘어졌고.
크크크-.
입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구멍마저 생기며 양옆으로 길게 찢어졌다.
캬캬캬-.
소리가 없음에도 소리로 느껴지는 사악한 미소였다.
“저, 저!”
“헉?!”
귀신, 악마, 혹은 악령과도 같은 모습에 사람들은 기겁했다.
“저, 저게 뭐야! 귀, 귀신?!”
“괴, 괴물이다!”
“악마야, 악마가 나타났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경악성.
공포에 질린 이들이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놀란 것은 유리가 만들어 낸 검은 형상이 무엇인지 깨달은 이들이었다.
‘저, 저건?!’
‘말도 안 된다!’
흑검 8조장과 아쉬라프 아이언스.
축적된 경험을 통해 각각 공인 7단에 오른 강자들은 유리의 머리 위의 형상이 무엇인지 보자마자 깨달을 수 있었다.
‘악마? 악마 따위가 아니다!’
유리의 머리 위로 떠오른 저 검은 형상은 그런 저급한 단어로 표현될 것이 아니었다.
무의 길을 걷는 이에게는 꿈이자 하나의 지향점이 되는 목표.
흑검 8조장과 아쉬라프가 동시에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토해 냈다.
“화, 화신?!”
“화신?!”
화신(化身).
혹은 「초월적 형상」, 「이데아」, 「심상 구현」, 「아바타」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경지.
또한, 불리는 명칭만큼 그 형태마저 가지각색이었다.
누군가는 한 자루의 검의 형태로.
누군가에는 거대한 짐승의 형태로.
또 어떤 이에게는 아름다운 꽃으로.
화신은 딱히 정해진 형태가 없었고 이에 대해 알려진 바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쉬라프와 흑검 8조장이 화신을 알아보고 이토록 놀라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화신에 대해 알려진 정론.
바로 저 화신의 유무가 공인 9단과 명인을 가르는 기준이었으니까.
실제로 화신을 펼칠 수 있는 존재는 명인이라 불리는 이들뿐이었다.
‘터무니없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게… 이런 게 가능할 리가……!’
평생을 수련한 천재도 화신의 단계를 넘지 못하고 공인 9단에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마나조차 쌓지 않은 평범한 소년이 명인의 전유물이라는 화신을 펼친다?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아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를 부정하기에는 그들의 앞에서 나타난 저것은 분명 화신이 맞았다.
너무도 명백한 증거.
자신들이 알고 있는 상식과 눈앞에서 벌어진 현실의 괴리감에 그들은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다가 깨달을 수 있었다.
어째서 자신들은 저 소년의 특별함을 알아보지 못했는지.
또한, 어째서 요한이 귀한 용패를 써 가면서까지 저 소년을 요람의 시험에 응하도록 만들었는지.
‘그는 알아보았던 거구나!’
요한 역시 명인의 반열에 오른 자.
같은 화신의 경지에 오른 존재였기에, 그는 알아본 것이리라.
유리 홀랜드란 소년이 무엇을 품고 있는지 말이다.
한편, 유리가 구현한 화신을 지켜보는 요한의 입매가 뒤틀렸다.
“크크크, 프흐흐흐!”
흥분, 기쁨, 만족, 즐거움, 환희, 희열.
몰아치는 감정의 폭풍 속에 뒤섞인 한 줄기 광기(狂氣).
“드디어…….”
간혹, 아니, 매우 희박한 확률로 상식 밖의 재능을 타고나는 존재들이 있다.
일반적인 존재가 수십, 수백 번을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부조리의 극치와도 같은 재능.
남들이 평생을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경지를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돌연변이들.
그 대표적인 예가 세계의 지배자인 검주 루크 라이더였다.
인세에 다시는 나오지 않을 천부적인 재능.
이에 세상 모두가 확신했다.
검주와 같은 재능을 지닌 이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있었다.
머나먼 대륙의 변방에, 검주와 동급의 재능을 지닌 괴물이.
“괴물 새끼가…….”
요한의 눈이 번들거리고, 입이 좌우로 길게 찢어지며 흉포한 미소를 드러냈다.
“사람 탈을 벗어던졌구나!”
요한의 그 중얼거림을 기점으로.
크캬캬캬-.
유리가 만들어 낸 검은 괴물이 흑검병에게 덮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