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5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5화>
미래를 열람하다(2)
나는 한창 식사에 열중하는 귀족들을 지켜보았다. 그 중심에는 동방의 요리를 보고 감탄하는 게일 공작이 있었다.
모네는 그런 내 모습이 그저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하기야 평소에는 가문을 살리겠다고 동분서주하더니 막상 좋은 기회를 눈앞에 두고 가만히 있으니 이상하게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30분 후면 알게 될 거다.”
“……30분 후요?”
묘하게 구체적인 시간에 모네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그런 모네의 궁금증에 답해 주기보다는 주요 인물들의 상황을 살폈다.
게일 공작, 그리고 테드릭 이튼.
마지막으로 바이안 데올릭.
게일 공작은 자신의 앞에 놓인 요리를 기분 좋게 식사하고 있었고, 나머지 둘은 친분이 있는 귀족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평범한 연회의 풍경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지금 이 광경이 곧 다가올 폭풍의 전조임을.
그리고 그 폭풍은, 정확히 30분 후 연회장에 불어닥쳤다.
“공작님이 쓰러지셨다!”
“군의관! 군의관을 데려와!”
웃음소리가 들려오던 연회장이 단번에 소란스러워지며 아비규환이 되었다.
그 아비규환의 중심에는 잠이 든 것처럼 쓰러진 게일 공작의 모습이 보였다.
연회장과 조금 떨어진 이곳까지 혼란이 전해질 정도가 되자 하인들도 저마다 당황한 얼굴로 자신들이 모시는 귀족들을 향해 달려갔다.
더 이상 연회를 진행할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도, 도련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게일 공작 각하가…….”
“괜찮아, 모네.”
나는 취사장의 일을 돕기 위해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모네에게 건넸다.
“뒷일을 부탁할게. 나는 잠시 만나러 갈 사람이 있거든.”
“……도련님.”
모네는 이상할 정도로 침착한 내 모습이 뭔가를 느낀 것 같았다.
내가 말한 대로 정말 일이 터졌으니 그럴 만도 하지.
“후우.”
모네는 뭔가 할 말이 많은 것처럼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혹시 나중에라도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궁금한 게 많을 터인데도 굳이 묻지 않는 모네에게 나는 씩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면 일이 잘 풀리길 기도라도 해 줘.”
“네?”
그녀는 내 말이 장난처럼 들린 모양이었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설정상 모네는 기적과 같은 행운을 보유한 인물.
그런 모네가 기도한다면 떡고물이라도 하나 더 떨어질지도 몰랐다.
* * *
“이건 모함이다! 나는 게일 공작 각하를 독살하려 한 적이 없단 말이다!”
테드릭 이튼이 감옥 안에서 목청을 높여 소리쳤지만, 고요한 침묵만이 그를 반겼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이란 말인가.’
눈앞이 깜깜하고 전신에 식은땀이 흘렀다.
다른 것도 아닌, 총사령관인 게일 공작의 암살범으로 몰리게 될 줄이야.
‘대체 왜 킨젤이…….’
설마 킨젤이 게일 공작의 음식에 독을 타고, 자신을 모함할 줄은 몰랐다.
모두 자신이 시켜서 한 일이라니!
맹세코 그런 생각을 한 적조차 없었다.
‘설마, 데올릭 경의 사주인가?’
본래 킨젤은 데올릭가의 하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튼가의 하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바로 바이안 데올릭의 추천에 의해서.
‘공작 각하가 쓰러지고 가장 먼저 움직인 것도 데올릭 경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정황이 그가 벌인 일이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왜…….’
머릿속이 복잡했다.
바이안이 정말 범인이라면 어째서 그가 이런 짓을 벌인 것인가.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이튼 경.”
“……!”
생각에 잠겨 있던 테드릭은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식사라고? 아직 그럴 시간이 아닌 것 같은데.’
의아한 마음으로 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의외의 인물이 서 있었다.
흑발에 푸른 눈, 제법 반듯한 외모를 한 남성.
“클레이…… 반하르트 경인가?”
“제 이름을 기억해 주시다니 영광이군요.”
싱긋 웃으면서 음식이 담긴 식판을 들고 오는 인물은 바로 클레이 반하르트였다.
그에 대해선 테드릭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저 몰락한 가문을 살리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 백작가의 자제.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몰락했다고 해도 백작가의 자제인 그가 이런 잡일을 하는 건 이상했다.
달그락.
“이튼 경, 저는 경의 결백을 믿습니다.”
클레이는 음식이 담긴 식판을 옥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예상치 못한 말이 뒤이어지자 테드릭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물론입니다.”
“입 발린 소리라도 고마운 말이로군.”
“이튼 경.”
클레이는 재차 테드릭을 불렀다.
어두운 천막 안, 차가운 철창이 늘어선 감옥을 응시하는 클레이의 푸른 눈이 선명하게 빛났다.
“제가 제안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제안?”
“예.”
고요한 푸른 눈에 이튼 경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수상한 말이다. 하지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신뢰가 느껴졌다.
“듣고서 판단해도 되겠나?”
“얼마든지요.”
“그럼…… 말해 보게.”
긴장 어린 테드릭의 반응에, 클레이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미 그것은 승낙의 말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 * *
“다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주어 고맙네.”
게일 공작이 쓰러진 현재, 그를 대신하여 군을 통솔하는 건 아트람 후작이었다.
그는 귀족과 기사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곁에는 바이안 데올릭이 서 있었다.
“다행히도 공작 각하를 음독한 흉수는 데올릭 경의 노력으로 금방 잡을 수 있었네만, 아직 모든 게 밝혀진 건 아니지.”
아트람 후작이 바이안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하여 데올릭 경에게 이 일에 대한 조사를 끝까지 맡기려고 하네.”
그의 말을 끝남과 동시에 바이안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데올릭 경이라면…….”
“애초에 킨젤을 바로 붙잡고 자백을 받아 낸 것도 데올릭 경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지.”
아트람 후작의 말에 대부분의 귀족과 기사들은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이미 사건을 처리하고 진행해 온 게 바이안 데올릭이었을뿐더러, 백작가의 자제인 그를 상대로 트집을 잡을 간 큰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저는 반대합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한다면.
“……누구?”
“지금 누가 반대한다고 한 것 같은데?”
갑작스러운 누군가의 한마디에 웅성거리던 주변이 단번에 조용해졌다.
이미 바이안이 이번 사건을 맡는 건 결정된 사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것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자가 나온 것이다.
“저건…… 반하르트 경이잖아?”
어떤 기사의 목소리를 들은 바이안의 눈이 살짝 떨렸다.
그의 시야 끝에는 평온한 얼굴로 손을 높이 들고 있는 클레이의 모습이 보였다.
‘클레이 반하르트, 무슨 짓을 하는 거냐.’
한심하고 멍청한 녀석.
뒤늦게 가문을 살리려고 발버둥 치는 무능한 놈.
그것이 바이안이 생각하는 클레이였다.
“반하르트 경, 지금 반대한다고 한 것 같은데…….”
아트람 후작으로선 이제 다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일에 끼어드는 클레이가 영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만약 여기서 별다른 이유 없이 반박한 것이라면 앞으로 클레이의 군 생활은 고단해질 확률이 높았다.
“예, 후작 각하. 저는 이번 일을 바이안 데올릭 경이 맡는 것이 부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있습니다.”
당당한 클레이의 말에 주변이 크게 술렁였다.
아트람 후작은 술렁이는 주변을 급히 조용히 시킨 후 입을 열었다.
“그 이유를 말해 보게.”
“다른 하인들을 통해 조사해 본 결과, 본래 킨젤은 데올릭가, 그것도 데올릭 경의 직속 하인이었다고 합니다.”
“뭐, 뭐라고! 그게 정말인가?”
“정말입니다. 증인도 몇이나 있고, 뭣보다 바로 곁에 데올릭 경이 가장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망설임 없는 클레이의 말에 재차 주변이 시끄러워졌고, 이번에는 아트람 후작도 쉽게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보다 먼저 옆에 서 있는 바이안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을 뿐이다.
“저 말이 사실인가, 데올릭 경?”
“…….”
바이안은 그 말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이 중에서 가장 놀란 건 바로 그였으니까.
‘그걸 어떻게 안 거냐, 클레이 반하르트.’
킨젤이 본래 데올릭가의 하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귀족은 당연히 없었다. 하인이 일자리를 옮겨 다닌다고 해서 관심을 가지는 귀족은 없었으니까.
하인들이라면 알 수도 있지만, 당연히 하인들의 입단속을 해 둔 상태였다.
대체 누가 그 사실을 발설한 건지 바이안은 짐작되지 않았다.
당황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클레이는 내심 미소 지었다.
‘바이안 데올릭.’
지금까지 놈은 자신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클레이 반하르트라는 존재가 무슨 짓을 해도 계획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 클레이는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멍청이에 불과했으니까.
‘바이안, 너는 옛날부터 그랬지.’
선량한 가면 아래로 자신을 깔아 보던 놈이 이제야 자신을 보았다.
처음으로 클레이를 ‘적’으로 인지하고 노려보고 있었다.
‘자신이 깔보는 상대에게는 한없이 인내심이 없어져.’
얼마 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바이안을 상대로 싸움을 걸다니.
어린 시절부터 클레이는 바이안에게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어떤 걸로 대결해도 패배는 클레이의 몫이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당했냐, 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바이안은 갑자기 떠오른 짜증나는 기억에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너는 언제나 나를 성가시게 만들지, 클레이 반하르트.’
클레이는 언제나 바이안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바이안은 그런 클레이를 싫어했다. 쉽사리 승부를 포기하지 않는 그 벌레 같은 놈을 혐오했다.
그리고 그건, 클레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라, 바이안.’
클레이 역시 바이안을 똑바로 직시했다.
이번만큼은 자신이 이긴다. 여태 받아온 괄시와 굴욕을 모조리 되갚아 주리라.
“확인 결과, 반하르트 경의 말은 사실로 밝혀졌다.”
잠시 후, 클레이 말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돌아온 아트람 후작이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사실이라고?”
“정말로 킨젤이라는 하인이 데올릭가의 하인이었다는 건가?”
설마 클레이의 말이 진짜라고는 생각도 못했는지 좌중은 경악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연히 바이안의 얼굴은 더더욱 딱딱하게 굳어졌다.
‘얼굴이 따가울 정도네.’
주변에서 힐끗힐끗 바라보는 귀족들의 시선은 그렇다 쳐도 바이안의 시선이 정말 매서웠다.
만약 눈빛에 물리력이 있었다면 이미 클레이의 얼굴은 난도질됐을 게 분명했다.
“미안하게 됐군, 데올릭 경. 아무래도 자네도 조사를 받아야 할 것 같네.”
“……괜찮습니다.”
그렇게 답하는 바이안의 얼굴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절박함은 보이지 않았다.
계획에 조금 차질이 생겼지만, 크게 문제는 없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놈은 여전히 클레이를 얕보고 있었다.
클레이를 적으로 인식했음에도, 녀석의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과연 그럴까?’
클레이는 속으로 웃었다.
바이안에게 줄 선물은 이제부터가 진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