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10
10화
“아아. 전 진짜 구제 불능이에요. 나 같은 건 그냥 죽어야 했어…….”
마을로 돌아온 리디안 일행은 그 길로 곧장 주점에 모였다. 술도 먹지 않았는데, 우래귀는 음료에 취하기라도 한 건지, 뜬금없이 자기혐오에 빠지고 말았다.
우울해진 우래귀를 달래 주는 일도 상당한 고역이었다. 캐니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개선하고자 자신들을 도와준 랭커 크라이그 이야기를 꺼냈다.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우래귀는 냉큼 눈물을 닦으며 존경심 가득한 눈을 반짝였다.
“그분, 진짜 멋있었어요. 엄청 유명하신 분이죠? 게임 할 땐 별 느낌 없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랭커가 도와주니까 되게 신기하네요.”
우래귀가 걸려든 것에 흡족하게 웃은 캐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엣헴, 헛기침했다.
레벨은 낮아도 나름 골수 폐인. 그간 주워들은 쓸데없는 잡 지식을 자랑할 시간이었다.
“제가 레벨은 낮아도 주워들은 건 많아서요. 그분. 전체 랭킹 6위인가 7위인 하이 랭커인 건 아시죠? 그 유명한 ‘이상성욕자’ 길드 출신이에요. 레기온으로 이적하면서 랭킹이 쫙쫙 올랐죠. 대인전에서도 컨 좋기로 유명했고요. 랭킹 오르고 나서는 1위인 레온한테 비벼도 막상막하일 만큼 컨은 진짜 좋죠.”
“이상성욕자?”
이제 겨우 게임 4개월 차인 헤른은 해괴한 단어에 눈썹을 찌푸렸다. 이상성욕자라니, 변태스럽네.
그 중얼거림에 리디안은 아― 하며 그 길드를 떠올렸다.
노르드 월드의 길드는 크게 두 개로 분류된다. 바로 전투 길드와 친목 길드다.
서버에 열 개밖에 허용되지 않는 전투 길드와는 달리 친목 길드는 창설 제한이 없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친목 길드가 더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그중에서도 네임드 플레이어로 구성되고, 특이한 콘셉트를 가진 길드를 플레이어들이 편의상 특수 길드라 부르곤 했다.
이상성욕자 길드가 바로 그 특수 길드에 속했다. 소수의 랭커들로 이루어진 게 특징인데, 저마다 개성이 뚜렷했다.
“길마가 ‘다람’이라는 다크 템플러 하이 랭컨데, 정신력 찍어서 MP 수치 늘릴 생각 안 하고, 인트 찍어서 디버프 지속 시간 늘리는 사이코예요. 거기 가입한 사람들도 대부분 정상 스탯은 아니죠. 다 같이 스탯 실험하는 분위기? 대충 그런 길드라 이상성욕자래요. 뭐, 그거 아니어도 그 길드 사람들 대인전 컨 좋은 건 유명하죠.”
그에 헤른의 표정이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노르드 월드에서 플레이어의 스탯은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뜻했다.
스탯은 기본적으로 힘, 지능, 민첩, 체력, 정신력으로 나뉘며, 직업에 따라 스탯의 성장 구도도 판이하다.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열다섯 개나 되는 만큼 스탯의 성장은 다채로우며, 그만큼 자율성도 컸다.
평균적으로 힘과 지능, 민첩은 공격력 수치에. 체력은 HP 최대치와 HP 회복력, 정신력은 MP 최대 수치와 MP 회복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갓 생성한 1레벨의 캐릭터는 스탯 당 5씩의 기본 스탯을 부여받으며, 레벨 업을 할 때마다 1개의 스탯을 선택해 올릴 수 있다.
현재 화두에 오른 인물은 ‘다크 템플러’라는 마법사 계열의 디버프 담당 직업을 가진 이였다.
그러나 정통 마법사가 아닌, 플레이어나 몬스터의 움직임을 훼방하는 보조 계열이라 지능 스탯보다는 보통 정신력 스탯을 찍어 MP 최대치를 늘리는 게 정석이었다.
그러니 헤른으로선 ‘다람’이라는 다템 플레이어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다템이 지능을? 뭐 하러요? 아, 장판 시간 증가시키려고요? 근데 그래도 그사이에 딜러가 다 때려잡을 텐데? PVP는 빠른 처리가 관건이잖아요. 시간 짧아도 그냥 연달아서 장판 깔고 말지. 다템 디벞 스펠도 많고 소모량도 많아서 MP도 빠듯할 건데. 뭐 굳이 지능 스탯을…….”
“그러니까 특이한 거죠. 근데 그게 또 대인전에서 그렇게 재미가 있대요. 다람 장판에 한 번 걸리면 저항력 때문에 세인트 ‘신성한 축복’으로도 잘 안 풀리거든요. 그럼 거의 2~3분 넘는 시간 동안 다람한테 완드로 겁나 처맞으면서 조롱당하는 거죠. 그러다 다람 팀한테 바로 KO.”
“와……. 완전 능욕 플레이다.”
“헐. 진짜요? 안 풀려요?”
놀란 헤른의 표정이 리디안을 향했다. 리디안은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상으로 지능 스탯 많이 찍은 다템이 건 스펠은 잘 안 풀리는 게 맞아. 지능 스탯은 마법 공격력, 디버프 지속 시간에 영향 있으니까. 지능 주력 직업인 매지션이 쓴 마법에 맞으면 화염이나 빙결 상태가 되곤 하잖아? 근데 거기에 세인트가 신축 써도, 잘 안 풀리는 거랑 똑같아. 뭐, 매지션 스펠에 붙은 상태 이상은 5초도 안 가서 별 의미 없지만. 반대로 세인트 인트가 높으면 신축 몇 번으로도 잘 풀려.”
“에엑! 누가 세인트를 인트 찍어요? 차라리 올 체력 찍는 게 낫겠다.”
“그쵸. 미치지 않고서야. 운영자도 인트 다템이 나올 줄은 몰랐을걸요? 그래서 PVP 때 다람한테 걸리면 좀 거시기하죠. 거기 길원 중에 아쳐도 있는데. 그 아쳐는 힘 아쳐예요. 활 한 대 맞으면 피가 그냥 훅 까인대요. 평균 대미지가 크리티컬 비슷하게 들어간다나?”
캐니의 속닥임에 아쳐인 헤른은 입을 쩍 벌렸다.
힘 아쳐라니……. 물론 플레이어로서 생각해 본 적 있었다. 시도하려던 사람들도 꽤 있었고. 하지만 민첩 스탯에 비해 효율이 낮다는 공략 글에 쳐다보지도 안 보던 건데……. 그걸 해낸 사람이 있을 줄이야.
잠시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도 해볼까?” 침 흘리는 헤른의 중얼거림에 캐니는 검지를 세워 가로저었다.
“어후, 반대. 비추합니다. 유니크 상급 템으로 명중률이랑 체력 세팅 오지게 안 하면 의미 없대요. 민첩이 딸려서 미스가 엄청 뜬대요. 그래서 템으로 명중률 보정해야 된다나? 근데 쓸 만한 옵션은 유니크 이상부터 붙고, 현질로 추가 옵션까지 띄워야 하니까, 지금은 무리죠.”
“아~ 그래도 고레벨 찍고 템 여유 생기면 시도해 볼 만하네요. 스탯 재조정 물약인가? 그거 먹고. 그리고 아이템이야 사면 되니까.”
“맞아요. 자금 넉넉하면 재미로는 해볼 만하죠. 그래도 저렙 땐 정석대로 가는 게 최고예요. 어딜 가나 게임은 뭐다?”
“운빨 템빨?”
헤른과 캐니는 제법 죽이 잘 맞는지 낄낄거리며 떠들었다. 그러고 보니 캐니도 이십 대 초반이라 그랬지?
함께 웃던 리디안은 그새 풀이 죽은 우래귀를 다시 위로했다.
“우래귀 님. 너무 기운 빠져 있지 마세요.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그리고 다들 무사하잖아요.”
생글거리는 리디안의 표정에 우래귀는 또 그렁그렁 눈물을 모았다. “역시 리디안 님은 천사세요.”라며 커다란 덩치로 낯부끄러운 말을 잘도 내뱉었다.
다음엔 더 잘하겠다고, 눈물의 다짐을 하는 우래귀를 보며 리디안은 쿡쿡 웃었다. 자신보다 다섯 살 정도는 더 나이 많아 보이는 남자가 귀여워 보이긴 처음이었다.
[편지가 도착했습니다.]짧은 알림 음과 함께 눈앞에 메시지 창이 깜빡였다. 리디안은 갸웃하며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편지? 보통 친구 사이가 아닌 사람들과 소통하는 연락 방법이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시스템의 아이콘을 눌러 내용을 보자마자 리디안은 작은 비명을 질렀다. 기쁨의 환호였다.
자기들끼리 떠들던 헤른과 캐니도 놀라 눈을 깜빡였다.
“어떡해! 페페 님이다!”
몹시 고조된 목소리에 캐니가 갸웃했다. 아는 단어가 나왔기 때문이다.
“페페? 설마 그 세인트요? 리디안 님이랑 아는 사이셨어요?”
“네, 네! 헉. 근데 이거 답장 어떻게 하는 거야?”
“아, 길마님. 그거 편지. 길드 성에 있는 우편 센터에서 직접 보내야 해요.”
헤른의 설명에 리디안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도 늦었고 내일 답장을 해도 괜찮겠지만, 반가움에 마음이 급했다.
“죄송한데, 저 먼저 가볼게요! 헤른, 내일 사냥터 정해지면 이따 나한테 알려 줘!”
묘하게 들뜬 모습이었다. 처음 보는 신난 표정과 높은 목소리 톤에 다들 갸웃했다. 대체 왜 그러느냐는 물음에도 리디안은 바람처럼 주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신속히 길드 성을 향해 달려갔다.
“와, 밤인데도 사람이 많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길드 연합의 조사에 의하면 대강 5~6천여 명이 이 세계에 갇힌 것으로 알려졌다.
10개뿐인 전투 길드와 그 외, 대규모 친목 길드와 기타 소규모 길드 등의 인원만 해도 3천여 명에 가까웠으니 불가능한 숫자는 아니었다.
어쩌면―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노르드 월드에는 소규모 길드 및 길드 없이 활동하는 플레이어들이 훨씬 많았으니까.
미드가르드 도시는 모든 플레이어의 주요 거점이기 때문에 거의 한창때의 저녁에 현실의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소란스러운 거리의 모습을 보며 리디안은 새삼 신기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게임에 접속했다가 봉변을 당한 게… 사실, 아직도 잘 믿어지지 않았다.
“아, 저긴가 보다.”
복작거리는 광장을 지나 길드 성에 들어선 리디안은 구석진 곳에서 그럴듯한 NPC들을 발견했다. 데스크 상단에는 편지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저런 게 있다는 걸 이제 알았다니. 몇 번 와봤음에도 처음 보는 데스크가 어이없기도 했다.
물론, 게임 시절에는 그냥 음성 인식으로 바로 편지를 보냈으니, 새로 생겨난 방식이 은근 귀찮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 이 또한 이것저것 생겨난 변수 중 하나였다.
“음……. 근데 어떻게 하는 거지?”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서 직접 손 글씨로 편지 쓰는 사람들이 보였다. 대강 지켜보니 창구에서 편지지를 받아오는 모양이었다. 리디안은 심호흡하며 제게 온 편지를 다시 확인했다.
리디안 님, 안녕하세요 저 페페예요.
친구 목록이 몽땅 사라져서 연락드릴 방법을 못 찾다가… 오늘에서야 편지 기능을 알게 되었네요.
리디안 님이 전이됐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편지 남겨요. 확인하시면 꼭 답장 주세요.
―페페
마지막 이름을 중얼거린 리디안의 입이 귀까지 올라갔다.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었다.
“아, 어떻게 해. 너무 좋아. 아니, 좋으면 안 되는 일이긴 한데. 그래도… 페페 님도 이곳에 계셨다니. 역시 복귀하신 거였어!”
싱글벙글 웃은 리디안은 쪼르르 창구로 달려갔다. 인형처럼 생긴 여자 NPC가 방긋 웃어 보였다. 그간 느꼈지만 감정 없는 인형 같아 조금 꺼림칙하기도 했다. 인형을 주제로 한 어느 공포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사실 저놈들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거 아냐? 엉뚱한 생각을 하던 리디안은 애써 표정을 가다듬어 물었다.
“저기, 편지를 쓰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어서 오세요. 편지를 보내시려면 이곳 중앙에 내용을, 상단에 수신인, 하단에 발신인을 적어 제게 주세요. 수수료는 1만 골드입니다.”
인공적인 미소가 방긋 빛났다. 종이 한 장에 1만 골드라니, 정말 비싸다. 속으로 씨근거리며 리디안이 별수 없이 양피지를 받으려는 찰나였다.
“저, 리디안 님……?”
조심스럽고도 낯선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 돌린 리디안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 어? 리디안은 바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굉장히 친숙한 아이디가 눈앞에 보였다.
플레이어 정보
이름 : 페페 / 길드 : 응급실(M)
레벨 : 77 / 직업 : 세인트 / 보조 직업 : 세공사
HP : 3000 / MP : 4650
“페, 페페 님?!”
리디안의 눈앞에 서 있는 이는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 중에서도 가장 구하기 힘든, 대제사장의 축복 시리즈를 주렁주렁 몸에 걸친 훤칠한 남자였다.
리디안의 눈이 커다랗게 변한 것처럼 그 역시 놀란 눈으로 리디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진짜, 리디안 님? 그런데, 왜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