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소리가 완벽하게 차단되는 귀마개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쉴 새 없이 떠드는 다람을 바라보며, 리디안은 그런 생각을 했다.
다람은 기본적으로 말이 많았다. 그리고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지 못했다. 마인드맵인가 싶을 정도로. 말을 하는 도중에도 또 다른 뭔가가 떠오르면 바로 가지를 뻗어버린다.
뭐, 이런 타입의 사람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 말이 정말 더럽게 많구나,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말이 너무 많아서 상대방도 함께 삼천포로 빠진다는 점이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지극히 싫어할 만한 타입이었지만 고독한과 김팔라는 그런 다람이 익숙해, 크게 개입하지 않았다. 그저 중간에 어휴, 하는 한숨이나 수위 높은 욕설을 추임새로 넣는 것 말고는 말이다.
신기하게도 크라이그는 다람의 사담에 끝까지 휘말리지 않았다. 이야기가 샐 때마다 크라이그는 다람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적정선에서 뚝 잘랐다.
마지못해 답변을 뱉은 다람이 다시 삼천포로 빠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휘말리지 않는 건 참 대단한 일이었다.
리디안이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볼 때, 김팔라가 근처에서 쑥덕거렸다.
“저 독한 새끼. 집중력 봐. 다람 형한테 절대 안 넘어가네.”
그사이, 헛소리하다 또 한 번 멱살을 잡힌 다람이 켁켁거리며 바동거렸다.
“악, 목. 목목! 목 아파! 그만 잡아당겨!”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고.”
“아, 아이템 빌려 달라고? 빌려주는 건 어렵지 않지. 근데 누가 쓰는 거야? 너네 길드에 다템 한 명뿐이지 않나? ONE 길드에 인드라 있지? 흠, 인드라면 신용 확실하지. 먹튀할 애는 아니니까 합격. 저렙 템이라도 나한테는 보물이란 말이야. 아, 안 그래도 인드라 님이 나 보고 싶다고 메시지 보냈었는데. 잘됐다. 이 기회에 만나서 주면 딱이네. 근데 너네 길드 다템은 어떤 사람? 아이디 하츠, 라고 했나? 전쟁 이벤트 때 꽤 자주 본 것 같은데? 실력도 나쁘지 않았고. 여기서도 잘함?”
“형. 그럼 직접 도와줄 생각은 없어?”
잔잔한 목소리에서 옅은 분노가 느껴졌다. 리디안은 경련하는 크라이그의 입매를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쯤 되니, 길드를 이적한 이유가 다람 때문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으음? 아, 레이드? 레이드… 음, 글쎄. 나는 레이드 별로 안 땡기는데? 완전 재미없잖아. 공략대로 기계처럼 도는 게 무슨 재미야. 돌발 상황 팍팍 튀어나오는 스릴이 있어야지. 안 그래? 아, 여기서는 좀 다른가? 변수 많다고 했지? 스릴 넘쳐? 근데 나 할 수 있을까? 내가 몸 쓰는 건 쥐약이잖아. 누가 나 업고 뛰어 주면 안 돼? 나 죽는 건 별로 안 내켜. 아, 맞다! 너 죽었다고 했지?!”
다람의 목소리가 커짐과 동시에 드물게도 크라이그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리디안은 주춤 물러나는 크라이그의 모습에 휘둥그레 눈 떴다.
“그러고 보니 윤재, 죽었다고 그랬지?”
“아이고, 감사합니다~!”
고독한과 김팔라. 그리고 다람이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 세 사람은 킬킬거리며 웃고 있었다. 리디안은 짜증스러운 크라이그의 표정을 보며 갸웃했다. 혼자만 이해 못 하는 상황에 친절하게도 김팔라가 다가와 웃으며 설명했다.
“윤재 저놈, 저거. 자기는 절대 안 죽을 자신 있다고 호언장담했거든요. 자기 죽으면 1억씩 준다고 내기도 했어요.”
낄낄 웃는 김팔라의 말에 리디안은 황당한 웃음을 터트렸다. 안 죽을 자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 것도 어이가 없는데. 내기로 건 돈이 두당 1억인 것도 어이없었다.
다시 보니 크라이그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아오…….”
크라이그는 못마땅한 얼굴로 구시렁거리며 세 사람에게 골드를 건넸다. 리디안은 평소 소유 골드가 3억 이상이라는 점에서 또 한 번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서, 형. 도와줄 거야, 말 거야? 우리 급해.”
3억을 털려 퉁명스러운 크라이그의 물음에도 다람은 실실 웃으며 새침하게 굴었다.
“왜? 내가 도와줬으면 좋겠어? 내 도움이 필요해? 뭐,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줘야지. 누구 부탁인데. 우리 집 나간 막내가 이렇게 찾아와서 부탁하는데. 들어줘야겠지? 제발 해달라고 그윽하게 부탁하는 얼굴을 보니까 내가 막 흔들리잖아. 그치, 환아?”
“아니, 난 그냥 제안한 거지, 그렇게까지 구걸한 적은 없는데. 이상하게 쳐다본 적도 없고.”
“내가 거절하면 아쉽겠지? 그치, 아쉬울 거야. 어디 가서 나 같은 다템 찾기가 쉬운 일도 아닌데. 안 그래? 죽마저도 나 아니면 구할 곳 없을걸? 이거 진짜 유니크해서 나 같은 사람 아니면 안 가지고 있을 거란 말이지? 나만큼 진지한 다템이 어디 있겠어? 다들 스위칭해서 스펠 극대화할 생각은 안 하고 편할 대로 대충 무난한 아이템에 의지하려고 하잖아. 진짜 게임의 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라니까? 스펠 제대로 쓰려면 맞는 아이템도 제대로 들고 다녀야 하는 게 맞지. 안 그래? 그런 의미에서 내가 진짜 아이템 하나는…….”
크라이그는 고개를 젖히고 아악, 소리 질렀다. 진심으로 분노한 듯했다. 처음 보는 모습이라 리디안은 땀을 흘리며 당황했다. 그러나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해, 동정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아, 됐으니까. 그냥 아이템만 내놔.”
지친 크라이그가 그리 말했지만, 다람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끔뻑거리다 갸웃했다.
“왜? 싫은데? 내가 직접 갈 건데? 나도 레이드 해보고 싶어졌는데? 거기서 내 현란한 스위칭 필드 실력을…….”
보다 못한 고독한이 난입했다. 고독한은 주절주절 떠드는 다람의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커다란 손아귀에 목소리를 봉인 당한 다람은 팔다리를 바동대며 읍읍, 알 수 없는 신음만 흘렸다.
비로소 조용해지자 리디안은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
“나이스, 아가리 봉인.”
김팔라가 엄지를 척 세웠고, 고독한은 나직한 한숨을 뱉었다.
“이 새X 계속 입 털면 얘기 진전이 안 될 것 같아서.”
고독한은 여전히 읍읍 거리는 다람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다람은 고독한보다 체격이 작아 그를 이길 힘이 없었다. 거의 대롱대롱 붙잡혀 있는 꼴이었다.
크라이그는 그런 고독한을 향해 잘했다고 칭찬했다. 강제 봉인된 다람 대신 이번에는 고독한이 생산성 높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몇 명이나 필요한데?”
“다른 사람들은요?”
“일단 복치랑 밀내랑 키쓰도 레이드는 관심 있어 해. 아, 키쓰는 너 나간 후에 들어온 애야. 근데 공략은 다 땄어?”
“거의 80% 정도는요.”
“기존이랑 많이 다르다면서? 우리도 굳이 죽어가면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은데.”
“아직 확인 못 한 패턴이 몇 개 있긴 한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아니면 지하 도시 청소 팀으로 도와주셔도 되고요.”
소환 패턴과 관계된 추측을 설명하자, 고독한과 김팔라는 이해했다며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흠. 확실히 청소 팀이 덜 위험하긴 하겠네. 근데 사냥에 우리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우리 스탯이 기본적으로 순정이 아니잖아.”
“그렇죠. 그게 좀 문제죠.”
“나랑 다람이는 네가 제일 잘 알고. 복치는 최근에 민첩 바바리안으로 바꿨는데. 안타깝게도 개똥망 스탯이라 아무것도 못 하고 있어. 키쓰는 체력 올인 서모너라 그냥 허수아비 노릇만 할 거고. 그나마 팔라랑 밀내가 쓸모 있을 것 같다. 밀내는 진작 정신 차리고 순정으로 바꿨거든.”
크라이그는 곧장 김팔라를 쳐다봤다. 보통 체력에 올인하는 팔라딘의 정석 스탯 트리와는 달리. 김팔라는 누군가의 제안에 혹해 힘만 다 때려 박은 팔라딘이었다.
“형. 아직도 힘 스탯? 할 만한가 보네요?”
“야, 나 때문에 힘 팔라 트렌트 된 거 모르냐.”
“대미지 좀 나와요?”
“세팅만 잘 맞추면 대충 일반 랭커급은 돼.”
“오……. 그럼 나쁘지 않네요. 복치는 물약 먹여서 순정 스탯으로 돌리면 되죠.”
“그게 나으려나? 하긴, 복치가 그나마 컨이 좋으니까. 복치가 정상으로 가는 게 도움 되겠네.”
고개를 끄덕이는 고독한과는 달리 붙잡혀 있는 다람은 충혈된 눈으로 발악했다. 그 귀한 물약을 개복치 따위에게 쓸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고독한과 크라이그는 그런 다람을 한 번 흘겨보곤 가볍게 무시했다. 다람은 서러움에 읍읍거리며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그럼 키쓰 빼고 합류할까? 아니면 키쓰만 지하 도시로 돌리든지.”
“흠. 그것도 좋겠네요. 지하 도시 몹이 많으니까 몸빵만 해도 좋죠. 근데 어차피 죽사막 돌아야 해서요. 차라리 죽사막부터 합류하는 게 어때요?”
“죽사막? 거기 패턴 힘들다며.”
“뛰는 게 좀 힘들지. 패턴 자체는 쉬워요.”
“그래? 거기 중독 특화 맵이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비격수들은 어때? 든든해?”
그에 크라이그가 휙 고개 돌려 리디안을 바라봤다. 조용히 서있던 리디안에게로 고독한과 김팔라의 시선이 닿았다.
“저기 리디안 님이 스카디 힐러라서요.”
“어? 그래?”
“헐, 대박. 스카디 떴다더니 이분한테 바로 갔어?”
고독한, 김팔라. 두 사람은 큰 관심을 보였다. 다람 또한 부릅뜬 눈으로 더 광분했다. 읍읍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 걸 보니, 할 말도 많은 듯했다. 리디안은 집중된 시선이 민망하여 붉어진 고개를 숙였다.
“오, 그럼 죽을 일은 없겠다. 지하 도시도 그냥 보스 레이드 팀으로 참여하죠? 스카디면 든든하잖아요.”
신이 난 김팔라의 말에 고독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점점 더 부담스러워지는 것 같다고, 리디안이 땀을 뻘뻘 흘리는 사이, 김팔라는 돌연 생겨난 의문에 고개를 기울였다.
“근데 죽사막은 지도 작업 때문에 가는 거지? 지도면 작열 사막에서도 나오지 않나? 작열이 더 작업하기 쉽잖아.”
고독한이 바로 부정했다.
“아니야. 거긴 드롭률이 너무 낮아. 거의 안 나온다고 보면 돼. 차라리 좀 힘들어도 죽사막을 도는 게 더 낫……. 어, 잠깐.”
고독한은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곤 제 밑에서 바동거리는 다람을 쳐다봤다.
“이 새X, 옛날에 죽사막 가서 지도 먹은 적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