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가 도끼눈을 뜬 채 다람을 쳐다봤다. 다시금 제게 관심이 쏠리자, 다람은 초롱초롱한 눈을 반짝였다.
“으브븝, 븝읍으븝?”
“야. 너 예전에 처먹었다던 지도. 어쨌냐? 팔았어?”
“브읍으읍으! 웁, 븟븝!”
“입 닥치고. 고개만 움직여. 팔았어, 안 팔았어?”
살벌한 눈빛과 함께. 입을 틀어막은 손에 살짝 힘을 가하자 다람의 안색이 점차 창백해졌다. 고독한이 진심이라는 걸 자각한 다람은 재빨리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직 안 팔았다는 뜻이었다.
“그럼 그렇지. 직접 레이드 짤 정도로 사회적인 새끼도 아니고, 남한테 푼돈 받고 잡템 팔 새끼도 아니지. 계속 갖고 있을 줄 알았다.”
“뭐야, 형. 지도 갖고 있어?”
짜증 가득했던 크라이그의 표정이 밝아짐과 동시에 리디안도 반가운 소식에 눈을 빛냈다. 솔직히 ‘죽사막’은 공략이 완벽했는데도, 다들 어이없게 죽어나갔던, 골치 아픈 곳이었다. 지도가 생겨난 덕분에 사람들이 고생할 일이 없어졌으니 마땅히 기뻐해야 했다.
고독한은 그제야 다람을 해방했다. 아가리 봉인이 풀리자마자 다람은 참았던 말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지도! 지도! 지도! 그거 나한테 하나 있어! 그때, 언제더라? 새벽에 대장군이 레이드 갈 사람 없다고 나 섭외한 적 있거든? 그때 심심해서 할 것도 없었고. 잠도 안 오고 그랬단 말이야? 핑푸가 돈 줄 테니까 제발 와 달라 그래서 갔는데, 지도가 나한테 떨어진 거야! 아이템 그냥 나온 대로 먹기로 했는데, 지도가 나한테 떨어지니까 핑푸가 개빡쳤지! 자기 딴에는 태양 길드 놈들이 많으니까 설마 나한테 떨어지겠어? 싶었나 봐. 그때 핑푸가 혹시 지도 팔 생각 없냐고 그랬는데, 내가 나중에 레이드 갈 거라고 구라 치고 안 팔았지! 잘했지? 잘했지? 그때 핑푸 억지로 처웃으면서 나한테 캐스팅 비용까지 준 거 생각하면…….”
“됐고. 내놔. 돈 줄 테니까, 지금 나한테 팔아.”
단도직입적인 요구에 다람은 어린아이처럼 무구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거렸다.
“응? 지도 갖고 싶어?”
“급해.”
“급해?”
천천히 끔뻑거리던 다람의 표정으로 짓궂은 웃음이 그려졌다. 얼굴 가득 만연한 웃음을 머금은 다람은 스윽 시선을 돌려 리디안을 쳐다봤다. 그와 눈이 마주친 리디안은 반사적으로 어깨를 떨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럼 지도 줄 테니까 지능 스탯 한 번만……. 억!”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독한이 다람의 뒤통수를 거세게 후려쳤다. 큰 충격에 앞으로 쏠린 다람은 그대로 고꾸라져 흙바닥에 처박혔다. 아프다고 찡찡거리는 다람을 향해, 고독한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 새X가 진짜 미쳤나. 여기서는 세인트 MP 통이 네 놈 생명 통인 거 모르고 하는 소리냐?”
“아? 음?”
바보처럼 탄성을 내뱉은 다람은 그러네? 하며 못마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MP 기본 수치는 정신력 스탯에 비례하니 당연했다. 그럼에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불퉁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렸다.
“아, 진짜 보고 싶은데. 국산 신축 진짜 진짜 보고 싶은데. 내 필드 한 큐에 풀리는지 실험해 보고 싶은데. 리디안 님이 딱인데. 해줄 사람 없는데……. 악!”
또다시 얻어맞은 다람은 빽 소리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크라이그와 김팔라가 그런 다람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고, 리디안은 보통 또라이가 아니라는 걸 확신하곤 슬그머니 뒷걸음질 쳤다.
그 와중에도 고독한은 다람을 향한 쌍욕을 멈추지 않았다.
“야이, 미친 새X야. 분위기 파악 못 하냐? 또 한 번 스탯 입에 올리면 입 찢어버린다?”
금방이라도 다람의 입술을 뜯어버릴 것처럼 아주 살벌한 경고였다. 그것도 표정 변화 없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위협하니 더 진심으로 다가왔다.
그나마 가장 정상적인 사고방식인 듯한데,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쥐 잡듯이 다람을 두들겨 패는 모습을 본 리디안은 약간의 공포를 느꼈다.
그 광경을 익숙하게 지켜보던 김팔라는 그럴 줄 알았다며 소리 나게 혀를 찼다.
“하여튼 매를 벌어요, 벌어.”
“아, 진짜.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드네.”
“그래도 급하긴 급했나 보다? 네가 다람 형한테 물어볼 정도면.”
“…죽마저 템 이름에 생각나는 게, 저 또라이밖에 없었어요.”
“하긴. 아이템 종류별로 모으는 미친놈이 어디 흔하냐? 저것도 저장 강박증? 뭐, 그런 건가?”
김팔라도 질렸다는 시선으로 다람을 쳐다봤다. 살벌한 협박에 좀 조용해진 다람이 모기만 한 목소리로 투덜거리는 사이, 고독한은 한숨과 함께 걱정하지 말라며 말했다.
“지도랑 아이템은 내가 뺏어서라도 줄게. 레이드 참여도 일단 다 하는 거로.”
“고마워요, 형. 역시 형밖에 믿을 사람이 없네요.”
“뭣하면 지금 바로 줄까? 길드 성까지 가야겠지만.”
“일단 길마 형한테 상황부터 전달하고요. 아마 내일이라도 당장 리트라이할 수도 있으니까 미리 준비나 해두세요. 일정 나오는 대로 공략 정리해서 최대한 저녁 안으로 전달 드릴게요.”
크라이그와 고독한이 훈훈하게 정리를 하는 사이, 바닥에 누워 생떼 부리던 다람이 은근슬쩍 리디안이 있는 방향으로 데굴데굴 굴러왔다.
리디안은 그런 괴이한 행동을 어이없어하며 쳐다봤다. 그에 벌떡 일어난 다람은 고독한의 눈치를 살피다가 부자연스럽게 리디안 옆에 서서, 조용히 물었다.
“근데 진짜 스탯 바꿔 볼 의향 없어요? 처음엔 내키지 않아서 그렇지, 한번 해보면 신세계를 경험할걸요? 어차피 스카디 때문에 힐도 넉넉할 텐데. 이참에 디버프 마스터까지 해보는 게 어떠실?”
푸슛, 귀에서 피가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리디안은 다람의 집착에 파르르 눈가를 떨었다. 근처에 있던 김팔라가 그를 목격하고 혀를 찼다.
그럼에도 다람은 끈질기게 리디안에게 스탯 변경을 제안했고, 리디안은 듣다 지쳐 영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걸 권유하시려면 최소한 스탯 조정 물약 두 개 정도는 확보하고 말씀하셔야 하는 거 아닐까요?”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기대감에 가득 차 있던 다람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아? 그게 문제였구나? 그래, 보험! 보험이 있어야 하는 거구나? 오, 그럼 물약 구해 오면 해주실 거? 내가 전 재산 털어서라도 물약 구해 오겠음! 그럼 진짜, 진짜로 해주는 거죠?”
방방 뛰는 다람의 모습에 리디안은 마지못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탯 재조정 물약은 연금술사가 제조할 수 있는 희귀 아이템으로, 재료 준비가 까다로워 구하기 힘든 것이다.
뭐, 마음먹고 구하려고 한다면 구할 수야 있겠지만. 이곳에 갇힌 이후, 스탯의 중요함을 깨우친 플레이어들 때문에 완제품이나 재료 등은 거의 다 털려 지금은 웬만해서는 구경도 하기 힘든 아이템이었다.
그걸 구해올 확률도 낮았거니와, 설령 구해온다고 하더라도 리디안으로서는 정상 스탯으로 돌아갈 보험이 마련되는 셈이니까, 정말 귀찮지 않은 이상 실험에 가담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솔직히 조금 궁금하기도 했고.
“진짜? 진짜, 진짜요? 해줄 거예요?”
“네, 네에……. 제가 정상 스탯으로 돌아갈 여유분만 있다면요. 저도 무작정 스탯 바꿀 수는 없잖아요.”
“오! 나이스! 리디안 님 굿! 아니, 근데 그냥 지능 스탯으로 쭉 밀고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저 여기서 스탯 바꾸면 MP가 최소 2천 넘게 줄어드는데요?”
“아이템 빨로 3천이면 넉넉하지 않나? 스카디로 회복력 100% 고정에 MP 감소 효과까지 있는데?”
“…음. 여기서 필드 경험해 보시면 MP 보유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실 거예요.”
리디안은 다람의 MP 2500을 힐끗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의도한 건지, HP도 2500에 맞춰져 있었다. 아니면 아직 세팅 전이라 그런 건가?
어쨌든, 필드에서 스펠을 외우다 보면 호되게 당할 건 분명했다. 리디안은 당황할 다람의 모습을 떠올리며 속으로 몰래 웃었다.
“뭐야, 너 또 개소리했어?”
크라이그와 얘기를 끝낸 고독한은 리디안 옆에 붙어있는 다람을 보자마자 눈을 번뜩였다. 다람은 모른 척 고개를 돌렸고, 리디안은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그럼, 형. 다시 연락할게요.”
“그래. 밤에 다시 보든가 하자.”
“반가웠어요, 리디안 님~ 나중에 다시 자리 만들어요~”
리디안이 마음에 든 김팔라가 정답게 손을 흔들었다. 고독한도 정신없던 분위기에 미안하다며 꾸벅 고개 숙였다.
다람은 그 뒤에서 음흉한 미소를 지은 채 두 팔을 파닥거렸다. 눈치 빠른 크라이그가 둘 사이에 뭔가 있었음을 짐작했지만, 일단은 모른 척했다.
* * *
이상성욕자와 헤어진 두 사람은 바로 귀환 스킬을 사용해 길드 아지트로 이동했다.
순식간에 고요해진 분위기에 리디안은 휴, 하고 안도했다. 아직도 다람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정말 정신없었지. 1분도 버티기 힘든데 고독한과 김팔라는 어떻게 그런 다람과 잘 지내는 건지 신기했고. 크라이그도 어떻게 저런 사람이랑 막역한 형, 동생 사이로 지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일단 길마 형한테 연락은 했는데…….”
순식간에 메시지를 날린 크라이그가 스윽 리디안을 바라봤다. 빤한 시선이 오랫동안 닿자, 리디안은 괜스레 뜨끔하여 반사적으로 웃었다. 그에 더욱더 미묘한 시선이 닿았다.
“혹시 다람 형이랑 무슨 얘기 했어요?”
“네? 아… 별일은 아니고…….”
이유 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시선에 크라이그의 미간이 더 좁혀졌다. 묵직한 압박이 느껴졌다. 리디안은 마지못해 실토했다.
“…물약 구해오면 실험 해주겠다는 것 정도?”
크라이그는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또라이의 집념으로 보건대, 분명 구해 오고도 남을 테니까. 뭐, 해주는 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다만. 그사이 다람에게 시달릴 리디안이 조금은 불쌍해졌다.
“후회할 텐데.”
“네?”
“아녜요. 그래서 어땠어요?”
“아. 다, 다람 님이요?”
“네.”
“…아, 음. 그게 참… 재미있는 분이셨어요.”
웃고 있는 리디안의 입가가 파들파들 떨렸다. 크라이그는 핼쑥해진 리디안의 얼굴을 보며 실소했다. 참 신빙성 없었다.
“얼굴에 다 티 나요. 괜찮으니까 욕해도 돼요.”
리디안은 그저 힘없는 미소만 흘렸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 참기로 했다.
“아무튼, 그럼 이제 끝난 거죠?”
다시 한번 안도하는 리디안의 물음에 크라이그가 리디안을 빤히 쳐다봤다.
“이제 페페 님 만나러 가려고요?”
마치 나와서는 안 되는 단어가 언급된 것처럼 리디안은 화들짝 놀라 어깨를 떨었다. 그러곤 슬그머니 시선을 회피했다.
“아, 네……. 뭐, 일단 약속도 했고. 아직 다섯 시 전이고…….”
“나도 같이 가면 안 돼요?”
“네? 가, 갑자기요?”
“네.”
당당하다 못해 뻔뻔한 크라이그의 표정에 리디안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러나, 싶으면서도 리디안은 허둥지둥 당황해 말을 더듬으며 답했다.
“…어. 저, 그… 페페 님한테 얘기를 해야 하는 부분인데. 제가,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어쩔 줄 모르는 리디안과는 달리 크라이그는 되레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그냥 미안하다는 의미로 밥 먹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면 내가 끼면 안 되는, 개인적인 자리인가?”
개인적인. 그 말에 리디안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저리 말하니 갑작스레 자기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페페도 분명 그런 의도는 아니었을 텐데 리디안은 창피함에 고개 들지 못하고 고개만 도리도리 저었다.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저는 그냥……. 아니, 그냥 바로 말씀드려 볼게요…….”
변명하는 게 더 추해 보여, 결국 백기를 들었다. 그러자 상대방에게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리디안은 눈을 찡그렸다. 설마, 또……! 아니나, 다를까. 살짝 고개 들어보니 크라이그가 재미있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쿡쿡 웃고 있었다.
“장난이에요.”
“…아, 진짜.”
안도하는 리디안을 향해 쓰게 웃은 크라이그는 한숨과 함께 돌아섰다.
“일단 나가죠. 길마 형도 근처 주점에 있다고 하니까. 잠깐 만나고 가요.”
“아, 네네!”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길드 성 로비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길드 관련 시스템이 다 밀집되어 있고, 창고나 편지 등의 일부 편의 시설이 붙어있으니 당연했다. 길드 성 로비는 ‘탐섬’이나 광장 버금가는 플레이어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역시나 크라이그가 워낙 눈에 띄는 탓에,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리디안도 이제는 유명인이 되어있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언급됐다.
“와. 쟤가 스카디 힐러야?”
“죽사막에서 자템 먹었다던데. 진짜 개 축캐 아님?”
“그래서 레기온에서 쟤 겁나 밀어주고 있는 듯.”
듣기 불편한 말이 들리고, 뒤통수가 따갑다는 생각에 그저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데. 입구 근처가 좀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근처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출입문에 다닥다닥 모여 앞다투어 나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요?”
“글쎄요.”
어쨌든 일단 나가는 길목이었기에. 크라이그와 리디안은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점점 몰려드는 인파를 뚫고, 길드 성 바깥으로 나간 순간, 리디안은 그리 멀지 않은 게이트 앞의 복잡한 풍경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로 두어 시간 전, ONE과 레기온이 그랬던 것처럼, 게이트 앞으로 널브러진 플레이어들이 즐비했다. 하나둘씩 깨어나 상대방을 향해 욕설을 내뱉는 모습이 아주 가관이었다.
리디안은 멀리서도 대충 알아볼 수 있는 몇몇 인물들을 목격하곤 인상을 찌푸렸다. 크라이그는 그럴 줄 알았다며 시큰둥하게 중얼거렸다.
“흠. 태양 애들 세 시에 죽사막 갔다더니, 바로 전멸했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