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410
410화
본래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면 더 기쁘기 마련이다. 약한 체력에 쉽게 지쳐 핼쑥했던 대장군의 얼굴이 급격히 밝아졌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같아요. 트레뷰셋 공격 한 번에 겨우 10%밖에 안 닳았잖아요. 원거리 플레이어 공격에는 더 찔끔찔끔 닳았고. 그거 생각하면 일회성인 게 밸런스에 맞죠. 정상적으로 처리하면 엄청 오래 걸릴 테니까.”
방긋 웃은 대장군이 힐끔 거인을 쳐다봤다. 지금 플레이어들은 거인의 ‘비정상적’인 도움을 받아 발리스타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뭐, 없는 것보단 낫네요.”
이전 진행에서 거인의 실패로, 신뢰를 버린 풍월주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발리스타 하나 제거 성공입니다.”
기쁨의 환호 속에서 거인이 다시 중앙으로 돌아왔다. 네 번의 공격으로 모두 사라진 마력을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그 위풍당당한 걸음에 간부들이 뒤돌아 몰래 웃었다.
“그런데 성문은 공격 못 하는 거예요?”
성문에 관한 이야기는 간부들에게만 따로 흘린 터라, 순수한 나쵸의 질문에 거인이 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같이 돕고 싶은데. 난 성문에 접근 못 해. 모드구드가 다가오지도, 건들지도 못하게 막아놨으니까.”
나쵸처럼 내심 궁금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플레이어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성문까지 공격 가능했으면 정말 완벽한 아군이었을 텐데. 플레이어로선 아쉬운 일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살던 ‘집’에 접근할 수도 없다니. 이 또한 안타까운 일이었다.
마음 따듯한 플레이어들이 위로하자 거인은 부끄럽게 웃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앉아서 가만히 있으면 마력이 더 빨리 회복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정말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수리공은 언제 나오려나?”
“성문 피가 더 닳아야 나올 것 같아요.”
“투석기, 망치. 둘 다 사용 가능해요!”
“거인은 아직 준비 안 됐어요!”
“그럼 망치는 대기! 고독한 님이 왼쪽 성벽 위 몬스터! 스타일리쉬 님이 오른쪽 발리스타 공격하세요!”
거인의 마력 회복이 더뎌, 이번 기회에도 오른쪽 발리스타 공격은 스타일리쉬 혼자였다.
스타일리쉬가 발리스타의 피를 깎아낼 동안. 고독한은 더 정교해진 조준 실력으로 성벽 위 몬스터들은 시원스럽게 쓸어버렸다.
거인의 마력이 완전히 회복된 건 이다음 트레뷰셋이 충전된 직후였다.
하나 남은 발리스타의 피는 40%. 다행스럽게도 발리스타엔 회복 기능이 없어 스타일리쉬가 깎아놓은 그대로였다.
쿵쿵 걷는 거인의 뒤에서 스타일리쉬가 신속히 달려와 실실 웃었다.
“어차피 거인 님 공격, 네 번이면 원킬일 테니. 저는 잡몹이나 잡을게요.”
“어? 워… 원킬? 잡… 뭐? 그게 무슨 뜻이야?”
“아차. 음. 그게 우리 말로…… 아니다, 그냥 발리스타 계속 치시면 돼요!”
“그래? 일단 알았어.”
스타일리쉬와 거인은 사이좋게 합의하며 웃었다.
자신감이 붙은 거인의 공격으로 비로소 마지막 발리스타가 파괴됐다. 동시에 이어진 스타일리쉬, 고독한의 보조에 성문 앞 근거리 딜러들의 부담도 줄었다.
“발리스타 모두 처리 완료했습니다. 이제부턴 정확한 명중률이 필요 없으므로, 트레뷰셋 조작자 교체합니다. 고독한 님, 스타일리쉬 님은 본진으로 귀환하시고 다음 충전부턴 레기온의 헤른 님. 그리고 ANG 길드 노릇노릇 님이 맡아주시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거인 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쉬셔도 될 것 같습니다.”
헤른과 함께 호명된 이는 ANG 길드의 77레벨 레인저였다.
헤른처럼 급격히 성장한 인물이지만,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신사가 콕 집어 두 사람을 호명한 건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름이 언급된 두 사람은 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제 성벽 위 몬스터 학살은 두 사람에게 맡기면 될 일이었다.
“망치 계속 패스해요? 발리스타 없어서 이제 써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직 아닙니다. 망치 체력이 낮아서 몹 공격에 금방 녹아요. 일단 포탑 점거부터 하겠습니다.”
임무를 마친 거인이 느긋하게 쉬는 동안. 처음 작전대로 포탑 공략팀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이전 레이드 때와 마찬가지로, 소환진에 올라설 사람은 백검이다. 그를 위해 집결한 세인트, 바드들도 버프에 공을 들였다.
잠시 후. 만반의 준비를 마친 백검이 용감하게 올라섰다. 공성탑 소환 진행이 시작되자, 성벽 위 몬스터들이 눈을 부라리며 공격해왔다.
“여신의 영역!”
이번에 달라진 점은 리디안의 합세였다.
아까는 발리스타의 공격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성문 앞에 남았지만, 발리스타가 완전히 제거된 데다, 공성탑 소환으로 성문 쪽 공격이 줄어들 지금 스카디 힐러가 둘이나 중앙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이트와 메인 세인트들이 남아, 오른쪽 성벽의 몬스터 공격을 방어. 리디안이 포탑 점거 팀에 합류해 영역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우와. 진짜 대박이다.”
여신의 영역 효과가 이어지니 백검은 천하무적이었다.
40%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안정적인 HP에 응급실 출신 세인트들이 연속으로 감탄했다.
말로만 듣던 신스펠을 이제야 체감했다며 반짝거리기 시작한 그들의 레벨 업 욕구에 리디안은 약간의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꼈다.
“여신의 손길.”
영역이 끝나자 리디안이 바로 회복 모드에 돌입했다. 빗발치는 공격에도, 완벽한 회복에 백검의 HP는 100%의 꽉 찬 숫자를 오랫동안 유지했다.
이전 공성탑 소환에서 새하얗게 질려 있던 세인트들은 지나치게 안정적인 흐름에 헤벌쭉 웃기 바빴다.
역시 스카디 힐은 최고였다.
“포탑 사라진 자리에 그만큼 몹들이 더 나와서 개떡 같을 뻔했는데. 스카디 힐 있으니까 어렵지 않네요.”
숭고한 방패를 쓸 일이 없게 되자, 적혈구가 껄껄 웃으며 기뻐했다. 그리고 마침내, 백검이 180초 방어에 성공했다.
[공성탑을 소환합니다.]“됐다! 올라가세요!”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일반 플레이어들이 서둘러 움직였다.
그 중엔 레기온의 자토와 노네임, 파라다이스의 채이도 있었다. 채이의 경우, 원래는 성문을 공격해야 했다.
하지만 더 의미 있는 도움을 주고 싶다는 길드 마스터 군황의 의견에 동조해 자원했다.
겁먹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채이는 대기업의 서모너 살인마와 함께 소환수를 조종했다. 흉포하게 달려 나간 소환수들은 포탑 위로 올라가 해골 병사들을 덮쳤다.
포탑 위는 금세 텅 비어 플레이어들의 차지가 됐다. 심지어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아 불탔어야 할 공성탑도 건재했다.
“밑에서 보조할 테니 천천히 자리 잡으세요!”
핑크푸크가 스나이핑 샷을 날리며 외쳤다.
그와 함께 있던 군황도 침착하게 차크람을 던지며 스킬을 병행했다. 워낙 명성이 있는 사람이라 속도만 느릴 뿐, 공격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정확했다.
그 든든한 지원을 믿고 자토가 용감하게 전진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왼쪽 성벽은 아군으로 가득 찼다. 몬스터가 꾸준히 리젠됐지만, 나타나는 순간 ‘순삭’이었다.
성벽을 점거한 플레이어들은 일반 몬스터들의 스탯이 일반 상태보다 낮은 것에 또 한 번 감사했다.
“왼쪽 성벽 점거 완료!”
통쾌한 결과와 함께 원거리 플레이어들이 중앙으로 돌아왔다. 이젠 오른쪽을 점령할 차례였다.
“관우 님, 준비!”
이번엔 백검 대신 관우가 올라섰다. 두 번이나 소환진에 서 시달려 힘들다는 백검의 뜻을 존중한 것이다.
당연히 상황은 조금 전과 같았다. 리디안의 영역, 스카디 힐이 함께할뿐더러. 관우는 백검보다 버프와 회복 스킬 사용에 더 능숙했다.
방어 성공은 시간문제였다.
[공성탑을 소환합니다.]비로소 마지막 공성탑까지 점거됐다.
왼쪽처럼 플레이어로 가득한 성벽 위 상황에 신사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성문 앞은 이제 몬스터의 공격에서 완벽하게 안전해졌다.
“나머지 인원은 모두 성문 앞으로 집결. 탱커 다섯 분은 바로 망치 이동 부탁드립니다.”
드디어 공성 망치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반갑게 달려간 다섯 명의 탱커가 서둘러 망치의 이동을 시작했다.
“망치 이동 중입니다! 몹 공격받지 않게, 신경 써 주세요!”
연약한 망치의 체력을 걱정한 신사가 좌우 성벽을 향해 요청했다.
물론, 요청할 것도 없었다.
공성 망치가 적정 범위에 들어오자, 해골 병사와 거인 노예들이 발악했지만. 성벽은 이제 아군의 영역이었다.
몹들이 공격을 시도하기도 전에 성벽 곳곳에 포진한 탱커들에게 붙들리기 일쑤였다.
“와… 이젠 투석기 안 써도 되겠다.”
오른쪽 성벽이 점거되기 전까지, 트레뷰셋을 사용했던 헤른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 말대로 트레뷰셋은 이제 병풍 신세나 다름없었다.
“망치 도착! 길 비켜주세요!”
모두가 고대하던 공성 망치의 등장이었다.
왕처럼 모셔져 온 망치가 성문 앞에서 단단히 고정됐다. 곳곳에서 울리는 환호와 함께, 망치의 공격이 시작됐다.
아무 방해 없는, 아주 여유로운 동작에 성문의 HP는 바람 빠지듯 훅훅 줄었다.
그간 성문 앞에서 묵묵히 성문을 공격하던 근거리 딜러들이 안도했다.
이토록 열심히 공격해 겨우겨우 10%를 깎았는데, 망치는 오자마자 눈 깜짝할 새에 맹렬한 기세로 10%를 깎았다.
근거리 딜러 입장에선 조금 힘 빠지는 장면이었지만, 곧 다가올 전환에 모두가 눈을 빛내며 응원했다.
그리고 70%대에 이르렀다.
우워어어―
보스, 모드구드의 포효가 울렸다. 그에 상태 이상 저항력이 낮은 세인트들이 재빨리 신성한 축복을 돌렸다. 상태 이상 디버프에 면역되어 버티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시전하는 타이밍이 제각각이라. 완벽하게 맞물리지 않아 이상적인 효과는 없었다. 그냥 한 명이라도 더 멀쩡한 세인트가 남는 것에 의의를 둘 뿐이었다.
“위에 걱정하지 말고 신축하세요!”
모드구드의 기나긴 소음 이후. 상태 이상 혼란과 봉인이 플레이어를 덮쳤다. 이를 대비해 진작 상태 이상 저항력으로 무장한 딜러들이 성벽 위에서 자신 있게 웃었다.
뒤이어 깡깡 울리는 마찰음과 함께 중앙 포탑 위로 느낌표가 떴다.
모두가 싫어하는 수리공의 등장이었다. 수리공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어 오른쪽 성벽으로 향했다. 성문 수리는 어느 쪽에서나 가능한 모양이었다.
“감히 수리를 하려고 해? 어림도 없지.”
자토가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탱커가 움직이기도 전에 매지션, 아쳐, 레인저의 공격이 동시에 수리공에게 날아들었다.
공성 망치만큼이나 연약한 수리공은 군황의 마지막 타격을 받고 비틀비틀 쓰러졌다.
성벽 쪽으론 고개도 내밀지 못한 상태에서, 수리공은 변변한 활약도 못 한 채 사라졌다.
그 와중에도 성문 앞 공성 망치는 홀로 열심히 일했다. 참 열심히도 움직이는 모습에 근거리 플레이어들이 한 발짝 물러난 상태였다.
덕분에 넓은 공간을 혼자 차지한 망치는 코뿔소처럼 쿵쿵, 열심히 성문에 머리를 박았다.
그토록 견고하던 성문은 이제 30%였다. 발리스타가 일찍 처리되지 않았다면 도달하기 어려운 수치였다.
“정상적으로라면 이 정도 HP에 수리공 한 열 번은 등장했겠죠?”
“마지막 레이드라고, 치트키가 주어졌네요.”
“와. 거인 만세.”
무섭도록 빠른 망치의 공격에 성문이 결국, 함락됐다.
[성문이 파괴되었습니다.]쾌감이 가득한 알림에 이어, 성벽 위로 리젠되던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동시에 건재하던 공성탑이 소멸하며 성벽 위에 올라가 있던 플레이어들이 강제로 이동됐다.
순식간에 땅 위에 서게 된 플레이어들이 커다래진 눈으로 당황했다.
그 직후, 부우― 나팔이 한 번. 몇 초 뒤에 연속으로 지속해서 울렸다.
불안감을 자극하는 낮은 소리는 물론. 텅 비어 투명했던 성문 위치가 일그러지기 시작하자 신사가 서둘러 손짓했다.
“다들 중앙으로 모이세요!”
뭐가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라. 리디안은 스카디를 꼭 쥔 채 잔뜩 경계했다. 자연스러운 흐름 대로라면 저 안에서 모드구드가 나타날 것이다.
“어……!”
성문이 있던 자리로 푸른 빛이 모여들더니 거세게 일렁였다. 익숙한 게이트의 출현에 플레이어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어. 저 안으로 들어가는 건가?”
“뭐야. 그럼 발리스타 괜히 잡은 거?”
웅성웅성하던 찰나. 푸르렀던 게이트가 별안간 붉게 물들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름 끼치도록 선명한 핏빛 색감에 리디안이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 순간. 커다란 포효와 함께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걸어 나온 건 새하얀 털에 원숭이의 얼굴을 가진 거인, ‘모드구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