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429
429화
파프니르의 성난 울부짖음 속에서 헤임달은 초조하게 시스템을 탐색했다.
그로선 아직 이해하기 힘든 언어투성이지만 일부 기능의 실행법은 대강 깨우쳤다. 다만 복합적인 명령이 복잡해 헤임달은 여러 번의 ‘오류’를 경험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헤임달은 타 구역의 몬스터를 강제 소환하는 것에 성공했다.
“어? 헬하임 사이비단이다!”
“저것들, NPC 아니야? 갑자기 왜?”
“몹이다! 디버프 걸고 있어요! 여기 세인트 지원 좀요!”
대형 가디언 틈에서 다가온 몬스터는 붉은 태양 교단의 신도들이었다. 등장 당시만 해도 그것들이 NPC인 줄 알고 방심하던 플레이어들은 뜬금없는 디버프 세례에 허우적댔다.
음침하게 나타난 신도들은 주로 혼란과 봉인을 걸어, 가디언을 상대로 승승장구하던 판도를 뒤집었다.
헤임달은 그 상황을 관찰하며 무작위로 몬스터를 소환해댔다.
노르드 월드의 전 맵을 아우르는 다양한 등장에 후방 지원대는 물론, 파프니르와 가까이 있던 플레이어들도 불어나는 몬스터들에 바짝 긴장했다.
“다템들은 절대 튕겨 나가지 말고, 제자리에서 디스펠 필드 유지하세요!”
“여유 되는 탱커분들! 다템 보호하세요!”
“위로 날지만 않으면 돼요! 그리고 꼬리랑 발 조심…….”
아군과 적군의 수를 대조한 간부들이 침착하게 지휘했다. 일반 몬스터들이야, 기본 공략대로만 상대하면 어려울 필요가 없다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다소 주눅이 든 지원자들을 위해, 신사가 몇 명의 매지션을 후방으로 보냈다.
파프니르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힘들었던 불꽃심장은 후방에서 그 막강한 화력을 뽐냈다. 더군다나 불꽃심장은 일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스펙 높기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가 보여주는 화려한 대미지, 깔끔해져 가는 주변의 모습에 두려웠던 분위기도 차츰 흐려져 갔다.
간부들이 매지션 지원으로 수습했다고 안심하던 찰나였다.
헬하임 지역의 보스 몬스터인 ‘타락의 사제’가 나타나고 말았다. 그간 일반 몬스터만 등장하던 무언의 규칙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신전 보스다!”
“세인트 지원!”
타락의 사제 공략에는 높은 지능 스탯의 세인트가 필요하다. 하지만 세인트는 인력난이 심했고, 지능으로 세팅한 세인트는 더욱 귀했다.
그러잖아도 붉은 태양 교단의 사제들로 세인트가 각지로 분산된 상태였다. 누군가를 빼고 싶어도, 마땅한 선택지가 없어 간부들이 잠시 당황했다.
그 사이에도 후방의 지원자들은 고레벨 보스 몬스터에게 휩쓸려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무나 두 분 가세요! 제가 버티고 있을게요!”
시구르드와 군나르의 소환으로 대기 상태였던 리디안이 외쳤다. 찰나의 침묵 후 괴자, 이트가 바로 반응해 돌아섰다.
두 사람 정도면 후방은 아주 든든할 것이다. 간부들은 안도하며 리디안을 향해 눈짓했다. 눈인사한 리디안은 스카디를 쥔 채 본격적으로 전투에 투입했다.
“15초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위급할 땐 제 역량대로 회복할게요.”
다행히 파프니르 쪽은 아직 위급하지 않았다.
리디안의 제안에 메인 힐을 맡고 있던 이모탈, 캐티스, 보리알, 하이로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소환 때문에 이트만큼 자주 힐을 하진 못해도, 스카디 힐이 있다면 위급 상황 시 언제든 빠른 대응이 가능했다.
회복 스펠 복창을 시작한 리디안은 다크 템플러들이 억척같이 디스펠 필드를 유지하는 것에 안도했다. 무엇보다 소환된 시구르드와 군나르가 마찰 없이 분전하고 있다는 것도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계속 신경 쓰는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찔끔한 리디안이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아이러니하게도. 헤임달은 시구르드와 군나르의 소환 방식에 관해 정말로 모르고 있는 듯했다.
전투에 큰 변수가 된 헬라의 개입과 등장 때문인지. 헤임달은 헬라에게 더 신경 쓰고 있었다.
실제로 헤임달은 황금을 치우기 위해 끊임없이 강글로트와 강글라티를 공격했다. 그리고 은연중에 두 집사를 해치우면 시구르드와 군나르까지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유독 강글로트, 강글라티 쪽으로 몰리는 몬스터 군단에 리디안은 불안해졌다.
그 둘도 바보는 아니라 재량껏 피하고 있으나, 헤임달의 소환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차라리 파프니르라도 빨리 처리되면 좋으련만.
디스펠 필드에 묶여 꼼짝없이 허수아비가 됐는데도, 용의 HP 게이지는 까마득했다.
어림잡아 이제 겨우 20% 정도나 깎였을까? 어쩐지 깎일수록 더 날뛰는 듯해 딜러들도 혀를 내두르는 와중이었다.
* * *
“시구르드, 다시 올라가요!”
시구르드는 용의 등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시구르드가 올라가 활약하는 것만으로도 파프니르의 하체 움직임을 막을 수 있기에, 플레이어들은 자진해 길을 텄다.
방해물 하나 없는 널찍한 길을 질주한 시구르드는 땅에 이어진 꼬리로 훌쩍 뛰어올라 비늘 위를 달렸다. 영웅은 내딛는 걸음마다 검을 휘둘러 돌풍 섞인 공격을 가했다.
몇몇이 그 현란한 움직임에 눈이 멀어 공격을 잊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파프니르의 HP 게이지가 크게 줄지 않아 걱정하던 때. 날개 언저리까지 달려 나간 시구르드의 검풍에 드디어 외피가 갈라졌다.
활짝 벌어져 붉은 피가 솟기 시작하자 아래에서 환호가 쏟아져나왔다. 동시에 큰 변화 없던 HP 게이지도 흔들리며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눈에 띄는 변화는 플레이어들의 사기를 드높였다. 더욱 괴로워하는 파프니르의 울부짖음에 헤임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작게 혀를 찬 헤임달의 손가락이 다급해졌다.
얼마 안 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헤임달이 허공을 경쾌하게 내려쳤다.
그 직후, 파프니르 공략팀과 후방 지원팀 사이로 하얀빛의 기둥이 솟구쳤다.
지면 위로 선명하게 보이는 하얀 마법진에 플레이어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또 소환이다!”
마법진의 숫자는 하나. 그러나 분위기를 보아 최소 보스 등급이었다.
그에 모두가 긴장해 안개 자욱한 지면을 힐끔거렸다.
뿌연 안개가 바람에 날려 사라진 뒤 모습을 드러낸 건, 발키리 브륀힐드였다.
휘날리는 은발. 눈이 부신 황금색 갑옷. 땅에 박힌 검을 두 손으로 잡은 반듯한 자세. 그 인물을 확인한 플레이어들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침식당한 브륀힐드라니.
다들 침공전 당시, 알프하임에서 그녀의 강함을 몸으로 겪었기에 당황했다.
그러나 브륀힐드의 등장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브, 브륀힐드!”
한참 파프니르의 등 위에서 검을 휘두르던 시구르드의 눈이 커졌다. 브륀힐드의 등장을 눈치챈 시구르드는 재빨리 뛰어내려 구역을 이탈했다.
놀란 박회장이 그를 불러 세웠지만 어림도 없었다.
시구르드는 비로소 마주한 연인을 향해 미친 사람처럼 달려갔다.
군나르 역시 그녀에게 반응했다. 묵묵히 나이트들과 함께 검기를 날리던 군나르도 브륀힐드를 인식하자마자 삐걱대며 멈췄다.
그러다 바들바들 손을 떨더니 아예 몸을 돌려 브륀힐드를 향해 내달렸다. 빛의 속도나 다름없어 플레이어들이 불러 세울 틈도 없었다.
마치 누가 먼저 다가가느냐로 경쟁하듯, 시구르드와 군나르는 질주하다 부딪히더니 별안간 검을 맞댔다.
“네놈! 감히 누구에게 다가가려 하는 것이냐!”
분노한 시구르드의 일갈에도 군나르는 말없이 가라앉은 눈으로 상대를 마주했다.
갑작스럽게 대치한 두 사람의 모습에 박회장은 이마를 짓눌렀다.
“X됐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탄식에 리디안은 반사적으로 헤임달을 쳐다봤다.
이 타이밍에 브륀힐드를 불러내다니. 시구르드와 군나르의 관계를 아는 헤임달이 역으로 이용한 게 분명하다.
“침식된 브륀힐드라… 든든한 아군인 줄로만 알았는데, 양날의 검이었군요.”
다람과 인드라, 사이의 옆에서 대신 맞아주던 아퀴나스가 시구르드, 군나르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인드라는 곤란하게 됐다면서 파프니르와 맞선 아군의 상황을 곁눈질했다.
시구르드와 군나르가 빠진 만큼, 전세는 크게 기울었다. 쿨타임 없이 무한으로 공격할 수 있던 두 존재가 빠지니, 파프니르의 기세가 살아난 것이다.
둘에 비하면 이방인들의 공격은 간지러운 수준이었으므로, 파프니르는 날개를 이용해 달라붙은 플레이어들을 떨쳐냈다.
“어쩌죠? 저대로라면 저 둘이 싸워서 시간만 낭비될 것 같은데.”
“그래서 소환을 해제하자고요?”
“잠깐 해제하고 브륀힐드부터 치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걸 시구르드가 이해하겠어요? 제대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인데. 우리가 자기 연인을 처리한 걸 알면…….”
“침식됐잖아요. 그 정도는 이해하지 않을까요?”
“글쎄요. 브륀힐드 잡아봤자 헤임달이 또 비슷한 수준으로 소환할 것 같은데…….”
“뭐가 됐든 우리한테 시구르드, 군나르가 있는 한 브륀힐드보다 난감한 상대는 없을 겁니다.”
난데없는 브륀힐드의 등장에 간부들이 시끄러워졌다.
여차하면 시구르드와 군나르를 해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당황하던 리디안은 간부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며 헤임달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곤 나름대로 곰곰이 생각했다.
만약, 저 둘의 소환을 해제하게 되면 헤임달이 눈치챌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헤임달은 술트르를 가진 자신을 집중적으로 노릴 것이고, 최악의 경우 소환 불가의 상황에 이르게 될 수 있다.
“소환은 헬라의 능력. 헬라가 우리와의 협조 약속을 이행하는 한 다시 부를 수 있겠지만…… 어?”
헬라. 문득, 그녀의 능력을 상기한 리디안이 술트르를 떠올렸다.
“아……!”
“왜 그러세요, 리디안 님?”
“페페 님! 저 잠깐 쌍둥이 집사한테 다녀올게요!”
페페를 비롯한 세인트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쌍둥이 집사는 강글로트와 강글라티를 뜻하는 플레이어들의 임시 호칭이었다.
“갑자기요? 아직 디스펠 필드 때문에 잠깐 빠지는 거야 괜찮은데, 주변에 몹이…….”
힐끗 주변을 곁눈질한 하이로가 의아하게 말했다.
헤임달의 무분별한 소환 때문에 탱커들의 경계선 이후론 온갖 일반 몬스터가 활개를 치는 중이었다.
다급해진 리디안은 자신이 떠올린 생각을 세인트들에게 전달했다. 대강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세인트들이 동시에 눈을 홉떴다.
“오, 그런 거라면……!”
“여기 탱커랑 지원 좀요!”
에밀리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뜸 신사를 불렀다.
갑작스러운 변수에 머리 아파 찌푸리고 있던 신사도 리디안의 의견을 듣더니 곧장 수긍했다.
그 후, 바로 호위 조가 편성됐다. 지체할 것도 없이 리디안은 백검, 페페와 함께 몬스터 소굴을 횡단했다.
“강글로트 님! 강글라티 님!”
몇 번의 아슬아슬한 상황을 지나치고 나서야, 황금을 지키고 있는 두 집사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중간에 헤임달이 공격해올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헤임달은 브륀힐드의 등장 이후로 기세등등해져 거만하게 관망하고 있었다.
물론, 중간에 리디안의 이동을 잠깐 수상하게 바라보긴 했다.
“뭐죠? 당신이 움직이면 안 될 텐데?”
강글로티는 위험천만하게 자신들을 찾아온 리디안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그 부정적인 시선에도 리디안은 활짝 웃었다.
“혹시, 잠시 헬라 님을 불러줄 수 있을까요?”
두 집사의 입장에서 그 요청은 참으로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헬라와 오딘의 협약에 있어 아주 중요한 존재들.
두 사람은 탐탁지 않게 끄덕이곤 동시에 눈을 감았다.
몇 초 되지 않아 두 사람의 눈이 번쩍 뜨였다.
붉은 안광이 선명한 그들의 눈빛에 리디안이 안도하는 순간.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귀찮게. 왜 나를 부른 거니?”
“헬라 님! 혹시 이 칼……!”
작게 기대한 리디안은 술트르를 꺼내 살짝 보였다.
“혹시 이 칼로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요?”
“뭐어?”
“예를 들면 브륀힐드를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이요!”
난데없는 질문에도 헬라는 동요 없이 리디안을 응시했다. 그러곤 픽 웃었다.
반짝이는 리디안의 눈동자는 무언의 확신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헬라는 쉽게 요구를 들어주기 싫었다.
왜냐하면 그 끝에 오딘과의 대화. 불편한 협조가 있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진작 두 집사를 통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헬라는 일부러 브륀힐드가 있는 곳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브륀힐드 때문이라면 시구르드와 군나르를 돌려보내면 되지 않겠니?”
“안 돼요. 저 두 사람이 빠지면 저희의 상황이 힘들어져요.”
“그래서?”
“브륀힐드를 잠깐이라도 멀쩡한 상태로 돌려놓고 싶어요.”
“흐음. 넌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애매모호한 되물음에 리디안이 멈칫했다. 그러나 리디안은 자신의 추측을 믿었다.
“이 칼의 능력. 그리고 오딘 님과 헬라 님의 힘이 함께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