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434
434화
【헤임달】
“진짜 죽은 거 맞아?”
해치웠나, 라고 마법의 주문을 중얼거린 이터널리스트가 침묵한 파프니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곤 피 흘리는 딱딱한 검은 비늘을 있는 힘껏 발로 차보았다. 둔탁한 타격음이 느껴졌지만 상대에게선 반응이 없었다.
괜스레 겁먹어 식은땀을 줄줄 흘리던 이터널리스트의 표정이 아이처럼 환해졌다.
“해치웠다!”
원시적인 확인 사살 끝에 또다시 벅찬 환호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미동 없던 파프니르의 신체가 돌연 번쩍 빛나기 시작했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광경에 또 한 번 소란이 일었다.
“포, 폭발하는 건 아니겠죠?”
누군가 불안하게 읊조렸다. 불안은 크게 번졌고, 모두가 두려워하며 하나둘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빛은 더 발광해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반사적으로 눈을 가린 리디안이 다시 확인한 건, 파프니르의 몸 위로 떠 오른 붉은 보석이었다.
하지만 보석이라기엔 성게처럼 삐죽삐죽했다. 또 주위로도 불길한 검은 연기를 잔상처럼 일렁였다.
괴상하게 생긴 것이 보란 듯이 허공에 둥둥 떠 있으니 곳곳이 술렁거렸다.
“뭐야? 기분 나쁘게 생겼어.”
“저게 혹시 핵 아니에요?”
우문 속에서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핵. 시스템의 힘을 얻은 헤임달이 새로 만들어 낸 중심부. 그리고 플레이어들이 파괴해야 하는 것이다.
그 순간, 파프니르의 죽음으로 붕 떠 있던 분위기가 척 가라앉았다. 당황하는 군중 속에서 크라이그가 제일 먼저 반응했다.
“일도양단……!”
백색의 반달 검기가 붉은 보석을 강타하기 직전이었다. 파프니르의 침묵에 절규하던 헤임달이 부랴부랴 손을 뻗어 저지했다.
핵은 더 높이 떠올랐고, 크라이그의 검기는 텅 빈 허공을 질주하다 소멸해버렸다. 욕설을 삼킨 크라이그가 서둘러 외쳤다.
“원거리!”
매지션, 레인져, 아쳐들이 서둘러 조준했다.
그러나 핵은 이미 한계점을 벗어난 상태였다. 간신히 군나르의 검기가 닿았으나, 유의미한 타격은 없었다.
오히려 핵 주변으로 의아한 문구가 떠올랐다.
[관리자 모드가 실행 중입니다.]상공으로 높이 떠오른 핵은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영롱한 빛을 반짝였다. 간발의 차이로 핵을 지켜낸 헤임달은 송골송골 땀 맺힌 이마를 훔치며 준비한 장치를 시동했다.
“어? 방금 꿈틀거리지 않았어요?”
한편, 파프니르 옆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오던 인드라가 별안간 펄쩍 뛰었다. 대단히 섬뜩한 발언에 모두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조금 전만 해도 잠잠하던 파프니르의 몸이 정말로 미세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뭐야. 설마 부활하는 거야?”
플레이어들에게 있어 보스 몬스터의 부활이야 그리 낯설지 않았지만, 상대는 ‘노르드 월드의 광룡, 파프니르’. 그리고 지금은 생존을 건 진짜 전투 중이었다.
재수 없는 걱정이 번지자 군중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파프니르를 사망케 한 시구르드마저 아연실색해 헤임달을 쳐다봤다.
우왕좌왕, 당황스러운 이방인들을 한껏 비웃은 헤임달이 신중히 시스템을 조작했다.
몇 번의 느릿한 손짓 끝에, 떠올라 있던 붉은 핵이 아래로 쑤욱- 떨어져 파프니르의 몸에 깃들었다.
침묵했던 광룡의 몸은 작게 경련하며 수시로 스파크를 튀겼다. 잠시 후, 파프니르의 머리 위로 푸른색 로딩 게이지가 떠올랐다.
[관리자가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 중입니다.] [대상 : 파프니르] [손상된 데이터를 수정합니다.] [수정 : 1 %] [수정 : 2 %] [수정 : 3 %]…….
불길한 안내창이 연속으로 떴다.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이런, 미친!”
성난 이노센트가 다급히 뛰어갔다. 파프니르를 향해 힘껏 주먹을 내질렀지만, 소용없었다.
파프니르의 몸은 이미 투명한 막에 감싸져 있었고, 이노센트의 공격을 가볍게 튕겨냈다.
더욱이,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대미지는 그대로 반사되어 이노센트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엉뚱한 이펙트와 함께 이노센트가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300 아래로 떨어진 HP에 세인트들이 놀라 회복을 복창했고, 간부들은 망연자실한 눈으로 헤임달 올려다봤다.
헤임달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어쩔 수 없지 않으냐. 새로운 힘을 보관하기에 저 정도의 그릇이 없는데. 그래서 너희들이 오기 전 미리 저 아이에게 망자의 저주를 걸었다. 혹시라도 너희들에게 죽게 될 경우, 저주가 발동해 살아나게끔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파프니르를 침식시켰다는 뜻……?”
“그렇다. 덕분에 번거롭게 또 핵을 심어야 하지만… 그래봤자 내겐 시간 싸움. 그 시간조차 내겐 한없이 가벼우니…….”
박회장은 절망했다.
헤임달의 새로운 힘, ‘핵’만 파괴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파프니르는 그걸 담은 그릇이니, 그릇을 깨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간신히 열어낸 상자 안에서 상자가 또 나온 셈이었다.
길드 마스터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허무하게 허공을 쳐다봤다.
기운 빠진 그들의 모습에 만족스럽게 웃은 헤임달은 여유롭게 전황을 살폈다.
파프니르를 침묵하게 만든 시구르드는 힘을 잃고 지쳐 있었다. 귀찮은 브륀힐드는 저 뒤에서 몬스터들을 상대하느라 바쁘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군나르도 더 이상 뭘 하려 하는 기색이 없었고, 강글로트나 강글라티 또한 낮의 세계라는 제약에 걸려 무능한 상태였다.
저 멀리 잔챙이 같아 보이는 이방인들은 망자의 저주에 휩쓸려 아웅다웅 다투고 있으니, 이제 리디안이라는 변수만 잘 처리하면 진정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자. 이제 마지막까지 발악해 봐라.”
씩 웃은 헤임달은 나머지 몬스터들을 소환했다.
혼돈이 가득한 땅 위로, 이번엔 이름난 보스 몬스터들이 대거 등장했다. 헤임달은 경악하는 이방인들의 비명을 아주 즐겁게 감상했다.
“아렐이랑 로빈 떴다!”
“세시 방향 엘로나, 벨로나!”
플레이어들에겐 익히 아는 얼굴들이 사방팔방에서 출몰했다.
고목나무 왕, 뿔 거미 족장, 거짓말쟁이 레빈 등.
12월의 침공전에서 마주친 보스 몬스터들이 음울한 기운을 뽐내며 사위를 압박해 왔다.
“전투 길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즉시 지원하세요!”
다급한 상황에 신사가 급히 사람들을 퍼트렸다.
망자의 저주가 발동된 인원을 마크하는 다크 템플러를 남긴 채, 하이 랭커들이 쏜살같이 달려 나가 후방을 도왔다.
“저는 나쵸 님 쪽으로 갈게요!”
리디안은 가장 힘들어 보이는 일곱 시 방향, 나쵸와 럭키가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헤임달은 진작 리디안을 노리고 있었다.
“꼭두각시 노릇은 충분히 했으니, 그만 퇴장하거라.”
싸늘하게 읊조린 헤임달은 가까운 병력을 리디안에게 돌렸다. 그 직후 지형 공격으로 리디안의 발길을 묶어버렸다.
“리디안 님! 이쪽으로!”
송곳처럼 무작위로 솟는 돌기둥에 리디안이 지그재그로 빙빙 돌던 때, 페페가 리디안의 팔을 붙잡아 이끌었다.
어떻게든 리디안 만은 사수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따라온 이모탈과 보리알은 뒤에서 리디안의 HP를 꽉꽉 채워 보조했다.
그 뒤로 마제스티를 선두로 크라이그 레온, 백검, 이노센트, 신사가 리디안의 주변을 에워싸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상대했다.
“나도 돕겠다!”
간신히 기운을 차린 시구르드도 호위에 합류했다. 아직 오른눈이 리디안의 수중에 있기에, 강글로트도 서둘러 리디안의 뒤를 뒤쫓았다.
덕분에 헤임달의 시야를 피해 멀리 도망쳤고, 나쵸가 있는 일곱 시 전선도 도울 수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끌고 온 대인원 덕분에 주변의 몬스터 정리가 빠르게 끝났지만, 다른 곳은 아직도 까마득했다.
“브륀힐드! 브륀힐드는 어디에 있지?”
“지금 저쪽에서 작열 사막 보스 몹 상대 중이에요.”
걱정 가득한 시구르드의 물음에 리디안이 근처를 가리켰다.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던 시구르드는 홀린 듯 브륀힐드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리디안은 앗, 당황하며 서둘러 그 뒤를 쫓았다. 곧 하려는 일에 두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브륀힐드!”
때마침 ‘모래의 군주’를 굴복시킨 참이었다.
브륀힐드는 적군 사이를 가로지르며 달려오는 시구르드를 기쁘게 맞이했다. 커다란 검기로 주변을 간단히 정리한 후, 두 사람은 따듯한 포옹을 나눴다.
“저기… 시구르드 님, 브륀힐드 님.”
연인의 재회는 참 보기 좋은 그림이지만, 우선 급한 불부터 꺼야 했기에 리디안이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까처럼, 브륀힐드 님을 되돌린 방법으로 다른 존재들도 되돌려 보는 건 어떨까요?”
헤임달을 피해, 머리 여럿이 모인 곳에서 리디안이 작은 목소리로 제안했다. 플레이어 측은 휘둥그레 눈 떴고 시구르드는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아무리 일시적이라 해도, 낮의 존재들이 대거 밤의 세계로 귀속되는 일이다. 힘의 균형이 무너지는 일이야. 오딘 님이 절대 허락하지 않으실 거다.”
브륀힐드 역시, 자신이 현재 밤의 세계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언짢다며 강글로트를 노려봤다.
갑작스러운 적대 분위기에 리디안이 서둘러 질문했다.
“귀속되더라도, 어디까지나 소속에 불과하잖아요. 오딘을 신뢰하는 마음이나 충성심은 그대로 아닌가요?”
“당연하지 않으냐. 헬라의 휘하에 놓였지만, 내가 따르는 건 주신, 오딘뿐이다.”
약간은 불쾌한 듯한 대꾸에도 리디안은 크게 안도했다.
“다행이네요. 그럼 오딘 님도 이해할 거예요. 브륀힐드 님을 되돌렸던 그때처럼요. 게다가 저희에게도 이 방법밖엔 없어요. 헤임달은 이상한 방어막 때문에 우리가 공격할 수 없는 상태고, 자칫하면 파프니르가 또 되살아나요. 그럼 정말 못 이겨요.”
“그래서?”
“오딘의 힘은 이 세계 주민들의 신뢰에서 비롯된다고 들었어요. 맞죠?”
브륀힐드와 시구르드가 서로를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짧게 탄성했다. 리디안을 뒤따라온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중 고개를 끄덕이던 신사가 손을 들어 의문을 제기했다.
“주민들을 침식에서 되돌려 오딘이 힘을 되찾는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될까요? 이 맵에서 구할 수 있는 주민은 얼마 되지 않을 텐데?”
중요한 질문이었다. 리디안은 대답 대신 강글로트를 쳐다봤다. 기대대로 강글로트가 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물론, 부드러운 말투는 아니었다.
“온전한 힘을 행사할 순 없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없는 것보단 나을 것 같습니다.”
역시 헬라의 권속다웠다. 브륀힐드가 살기를 내비치는데도, 강글로트는 가차 없었다. 순식간에 싸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리디안이 재빨리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음…! 그래서 말인데요, 시구르드 님과 브륀힐드 님. 두 분이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이미 경험이 있으므로 시구르드가 흔쾌히 승낙했다. 브륀힐드는 강글로트를 향한 살기 어린 눈을 갈무리하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비중 있는 인물들의 동의를 얻은 리디안은 뒤돌아 길드 사람들을 바라봤다.
“다른 분들은 주변 몹들 정리를 도와주시면 될 것 같아요.”
재빠르게 이해한 사람들이 수긍하는 한편, 크라이그가 미간을 좁혔다.
“설마 또, 직접 찌르려고요?”
“가능하면 그러려고요. 아직 시구르드 님의 힘이 필요한 상황이니까…….”
차분히 생각한 리디안이 힐끔 시구르드를 살폈다.
조금 전 파프니르를 향한 일격으로 상당한 체력을 소비했지만, 단순히 검을 휘두르며 상대를 제압하는 신체 능력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었다.
하지만 크라이그나 마제스티, 이노센트는 또 직접 접근해야 하는 리디안을 걱정했다.
“그거 그냥 나한테 줘요. 시구르드나 군나르 없이, 내가 형들이랑 어떻게든 해볼 테니.”
한참 전, 위험천만했던 곡예를 떠올린 크라이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 마음에 옅게 웃던 리디안이 곰곰이 생각하다 눈을 반짝였다.
“아! 그럼 크라이그 님. 만약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