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438
438화
오래 지나지 않아 헤임달의 공격이 느슨해졌다. 보리알이 회복을 이어받자마자, 리디안은 가장 체력 소모가 컸던 시구르드를 먼저 해제했다.
한편, 슬슬 다른 공격을 해보려 했던 헤임달은 갑작스럽게 사라진 시구르드의 모습에 의문을 가졌다.
헤임달은 아직도 시구르드와 군나르의 소환이 술트르와 관계되어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흠… 헬라가 돌아간 것과 관계가 있나?”
무엇보다 핵과 동기화 중엔 주변을 읽을 수 없다.
그래서 헤임달은 헬라와 강글로트, 강글라티가 사라진 진짜 이유도 모를뿐더러, 리디안이 들고 있는 단도를 그저 ‘되돌리는 검’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저걸 들고 있는 걸 보니, 또 뭔가를 할 생각인가 보군.”
조소하던 헤임달이 방심한 덕분에 플레이어들에겐 기회가 생겼다. 1초라도 서두르기 위해 신사가 뒤돌아 손짓했다.
작전대로 매지션인 시우, 테세우스, 맥스비, 네오가 수속성 공격 스펠을 차례대로 시전했다. 지면에서 생성된 눈보라가 소용돌이치며 일시적으로 흐릿한 안개를 흩뿌려지자 헤임달은 표정을 구겼다.
연이어 자잘한 수속성 마법이 날아들자 또다시 조소했다. 별 타격도 없는 걸 쏘아댄다며 혀를 차던 때였다.
뿌연 안개를 헤치며 크라이그가 불쑥 튀어나왔다.
눈을 번뜩인 채,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검은 머리 이방인의 모습은 헤임달을 당황케 했다.
순간적으로 놀라 뒷걸음질 쳤으나 헤임달은 이내 픽 웃었다. 바짝 붙는 크라이그를 보고 나니 이방인들이 무슨 속셈인지 알 것 같았다.
그 알량함에 잠시 생각이 바뀌었다.
“나도 새로 얻은 힘을 즐길 기회는 있어야지?”
대답 없을 상대임에도, 헤임달은 그리 묻곤 오른손을 까닥였다.
붉은 바람이 모여들자, 백은의 롱 소드가 손아귀에서 생겨났다.
절망스럽게도, 핑크푸크의 예상이 맞는 듯했다.
무기를 소환한 헤임달은 가벼운 막대기를 휘두르는 것처럼 검을 손쉽게 돌려 잡았다. 그러곤 이제 막 가까워진 크라이그의 레바테인을 간단하게 막아냈다.
챙, 부딪힌 검날에서 상당한 완력이 느껴졌다.
용케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 공격한 건 좋은데. 생각보다 빠른 헤임달의 반응 속도와 힘 있는 검술은 크라이그의 눈매를 잠시 찌푸리게 했다.
심지어 헤임달은 팔만 거뜬히 휘두를 뿐, 두 다리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낭패한 이노센트가 재빨리 뛰어나가 크라이그를 거들었다.
근접 직업인 바바리안과의 협공으로 크라이그는 검술류로 전환해 동선을 나눴다. 좌우에서 파고드는 압박에도 헤임달은 빠른 손짓으로 이노센트와 크라이그의 접근을 방어했다.
그러다 운 좋게 틈을 파고든 이노센트가 몸을 숙여 복부를 가격하려던 찰나, 헤임달은 간단하게 돌아 회피했고, 다시 휘리릭 돌아 세로 모양의 검기를 날렸다.
백색 충격파는 관통 없이 이노센트를 멀리까지 날려 보냈다.
덩달아 휩쓸린 크라이그는 공중제비로 피했고 착지한 순간 재빨리 검기류로 전환했다. 그리고 사용할 수 있는 검기 스킬을 연속으로 시전했다.
“일섬신월, 일도양단.”
빠르게 날아간 두 개의 검기가 합쳐져 섬광을 발했다.
엑스자로 커진 검기가 덮쳐오자, 헤임달은 잠시 찌푸리다 백은의 롱 소드를 크게 휘둘렀다.
가볍게 상쇄된 검기에 헤임달이 만족스럽게 웃은 찰나였다.
기다렸다는 듯 풍월주, 마제스티, 레온, 박회장, 포푸리가 연이어 달려왔다.
그들이 단체 협공으로 헤임달의 사방을 공략하는 동안, 후방에선 원거리 플레이어들이 헤임달의 사각지대를 노렸다.
그러나 헤임달은 그들의 스펠과 스킬마저도 간단히 막아냈다.
애당초 플레이어들의 스펠, 스킬의 다양성을 활용하려 했던 신사는 타격은커녕 제대로 맞히지도 못하는 모습에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개사기네. 몬스터가 아니라서 그렇다고 공략 패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라고 하기엔 파워 밸런스가 맞질 않으니, 대인전은 뭘 해도 소용이 없고…….”
회복으로 바쁜 세인트들을 대신해 파파가 대신 푸념했다. 헤임달은 그런 절망적인 반응을 즐기다 가벼운 비웃음을 흘렸다.
“이 정도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한다. 피차 서로 시간 낭비할 것도 없으니…….”
여흥을 끝낸 헤임달이 리디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게 선택받은 이방인이여. 고마웠다.”
헤임달은 감정 없이 웃었고 리디안은 섬뜩함을 느끼며 주춤거렸다. 그 순간, 리디안의 머리 위로 빛줄기가 번쩍였다.
그를 본 아퀴나스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그의 직감으론 썬더 스톰이 분명했다.
“숭고한 방패!”
외침과 동시에 투명한 방패 아이콘이 리디안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떨어진 썬더 스톰이 리디안에게 직격하는 듯했다. 그러나 대미지는 스킬 효과에 따라 아퀴나스에게 향했다.
아퀴나스가 대미지를 흡수하며 버티자 세인트들이 다급히 회복 스펠을 복창했다.
리디안은 죽지 않았다.
“저런…….”
헤임달은 리디안과 아퀴나스를 고약하다는 시선으로 쳐다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디까지 버틸지 궁금해진 헤임달이 거침없이 직격탄을 쏘아댔다.
또다시 연속으로 내리치는 벼락 세례에 리디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퀴나스의 HP는 최저점과 최고점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했다.
“여신의 영역!”
급한 대로 페페가 영역을 전개했다. 영역 효과를 받은 덕분에 아퀴나스의 상태는 조금이나마 여유로워졌다.
리디안도 자신 때문에 아퀴나스가 죽을 순 없다며, 좀 더 빠른 속도로 여신의 손길을 외워댔다.
헤임달의 경이로운 시전 속도에 세인트들이 신음을 흘릴 때, 당황하던 딜러들이 재빨리 헤임달에게 달려들었다.
떼거지로 덤벼드는 모양새에 공격을 저지받은 헤임달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러나 새파래진 이방인들의 안색은 그를 즐겁게 했다.
그 거만함에 열받은 이노센트가 높이 뛰어올라 단숨에 헤임달의 뒤를 잡았다. 그러곤 아슬아슬하게 그의 잿빛 옷깃을 잡아채는 데 성공했다.
헤임달은 잠시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이노센트를 걷어차 치워버렸다.
그를 목격한 박회장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일단 찌를 수만 있게! 어차피 스펠, 스킬 소용없으니 육탄전으로 갑시다!”
마법이나 무기에 의한 공격에는 자유로울지언정. 직접 몸을 써야 하는 일에는 서툴 거라고. 그리 짐작한 박회장이 먼저 검을 버리고 돌진했다.
뒤이어 다른 딜러들이 준비하려 할 때, 리디안을 지키던 버베나가 소환수를 반으로 나눠 헤임달에게 가까이 붙였다.
투명하긴 해도 세 마리가 겹치듯 모여 있으니 시야가 깨끗하지 않았다.
헤임달은 걸리적거리는 소환수들의 등장에 잔뜩 인상을 썼다. 그것들을 치우기도 전에 크라이그, 마제스티, 풍월주, 레온이 귀찮게 자꾸 달라붙으려 하니 헤임달도 슬슬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헤임달은 쉽게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차라리……!”
뒷걸음질 친 헤임달의 손으로 푸른빛의 거대한 구체가 생성됐다. 꽤 광범위하게 타격할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마법을 시전하기도 전에 등 뒤로 살기가 느껴졌다. 황급히 피한 헤임달이 목격한 건 군나르였다. 대검으로 아무것도 없는 지면을 내려친 군나르가 헤임달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서 시체 흉내나 내고 있겠지, 했건만.”
또 다른 불청객의 등장에 헤임달의 짜증이 치솟았다.
헤임달의 입장에서 군나르는 별것 아닌 존재였다. 그래도 괘씸한 건 사실이라, 헤임달은 노골적으로 군나르를 노렸다.
그 손끝이 매끄럽게 움직이자, 대검을 휘두르던 군나르의 주변으로 전격 띠가 둘렸다.
매지션의 스펠 중 하나인 ‘체인 라이트닝’과 아주 흡사했다.
“안 돼! 군나르!”
몬스터들과 망자의 저주를 받은 이방인들을 막고 있던 오딘의 등 뒤에서 다급한 외침이 울렸다. 원주민들과 함께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던 브륀힐드였다.
크나큰 죄를 저질렀으나 브륀힐드에게 있어 군나르는 충직한 신하, 그리고 생명의 은인이었다.
금방이라도 뛰쳐나가려는 브륀힐드를 아렐과 로빈이 간신히 잡아 세웠다.
동시에 리디안이 군나르의 소환을 해제했다.
군나르의 몸에 전격 사슬이 달라붙기 직전이었다. 지쳐 무릎 꿇은 군나르의 몸은 순식간에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대상을 잃은 체인 라이트닝은 서서히 빛을 잃고 그대로 소멸했다. 감쪽같이 사라진 광경에 헤임달은 반사적으로 리디안을 쳐다봤다.
HP : 2407 / MP : 1230]
이제는 꽤 익숙해진 플레이어 정보창. 한참을 이상하게 쳐다보던 헤임달의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상당량 줄어있던 리디안의 MP는 다른 이방인들보다 빠른 속도로 차오르고 있었다.
그제야 헤임달은 높은 MP 보유량과 술트르, 헬라. 시구르드, 군나르와의 관계를 이해했다.
“그 증표… 네게 날개를 달아줬다고 생각은 했다만. 설마 그렇게 연관이 될 줄이야…….”
이대로 뒀다간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불편함을 느낀 헤임달이 눈을 번뜩이며 달려 나갔다.
마법 스펠을 이용하면 편리하겠지만… 아이템이 된 물건을 회수하려면 직접 손을 대고 명령어를 뱉어야 했다.
오딘과 이방인들은 모르는, ‘오른눈’을 양도할 방법이기도 했다.
“일단 그 귀부터 뜯어주마.”
섬뜩한 살기에 리디안이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에 마제스티, 레온, 이노센트, 풍월주가 따라붙어 견제했다.
그사이 앞지른 크라이그가 재빨리 리디안의 옆에 붙었다. 두 사람이 시선을 교환하는 동안, 아퀴나스가 두 사람의 앞에 서, 가림막 역할을 했다.
“잡아요!”
어떻게든 잡아 멈춰 세워야 한다는 박회장의 고함에 레온이 황급히 검을 던져버리곤 손을 뻗었다.
앞에서 단검을 돌리며 달려드는 풍월주 때문에 진로를 방해받은 헤임달이 덜컥거리며 멈췄다.
손짓으로 간신히 풍월주를 옆으로 치웠나 했더니, 이번에는 버베나의 소환수 세 마리가 지그재그로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 틈에 낀 마제스티와 이노센트가 두 팔을 잡으려 들었고 뒤에선 레온이 옷깃을 낚아챘다.
“귀찮은 것들.”
잠시 멈춘 헤임달이 왼발을 크게 굴렀다.
쾅, 울린 소리에 땅이 크게 흔들리며 플레이어들의 중심을 흔들었다.
헤임달은 귀신같은 속도로 레온의 손을 쳐냈고 마제스티와 이노센트의 손목을 잡아 휙 내동댕이쳤다.
그 직후에 다가온 풍월주는 검을 휘둘러 날려버렸다.
뒤이어 박회장도 달려왔지만, 그 역시 손짓 한 번에 바닥을 굴러다녔다.
조무래기들을 잠시 치운 헤임달이 척척 걸어왔다.
점점 가까워지자 이번엔 크라이그가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도약해 세차게 내려치는 레바테인의 힘에도 헤임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헤임달은 힐끔 크라이그의 어깨 너머를 바라봤다.
아퀴나스의 뒤로 약해 보이는 비격수들이 한 무더기였다. 제대로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제 뒤로 널브러진 이방인이 다인 듯했다.
그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원주민들도 힘이 다해 오딘 옆에서 숨만 쉬고 있으니… 피식 웃은 헤임달은 완력을 이용해 그대로 밀고 나갔다.
힘에 밀린 크라이그의 걸음이 꼬인 순간, 헤임달은 일부러 방향을 틀어 고의로 크라이그를 반대로 돌려 버렸다.
순식간에 위치가 바뀐 상황에 크라이그가 대응하려 발을 뻗었다.
하지만 맞닿은 헤임달의 롱 소드에 빛이 뭉쳤고 그대로 폭발해버렸다.
크라이그는 폭발과 함께 튕겨 나갔다. 드디어 홀가분해진 헤임달은 그대로 리디안이 있는 곳으로 돌진했다.
대기하고 있던 아퀴나스가 방패를 들어 올려 헤임달을 막아섰다.
하지만 헤임달에겐 가소로울 뿐이었다. 몇 초밖에 버티지 못한 아퀴나스마저 결국 내던져졌다.
헤임달은 비격수들은 조롱하듯 천천히 다가왔다.
리디안은 마른침을 삼켰다.
“예상은 했지만… 애초에 맞선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네요.”
허무하게 순응하면서도 페페는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뒤로는 잔뜩 긴장한 리디안이 있었고 주변으론 다른 세인트들이 울타리처럼 진을 친 상태였다. 파파와 다람은 일부러 세인트들의 앞에서 첫 번째 방패를 자처했다.
예상대로 파파와 다람은 각각 오른쪽, 왼쪽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또다시 성큼 다가온 헤임달은 코앞에 진을 친 세인트들을 향해 코웃음 친 뒤 팔을 휘저었다.
거센 풍압이 일었고 리디안은 제 뒤로 차례차례 굴러가는 세인트들의 모습에 식은땀을 흘렸다.
어느새 헤임달은 더 가까워졌고 리디안은 서둘러 인벤토리를 열어 손을 움직였다.
몇 초가 지나 머리 위로 짙은 그림자가 기울어졌다.
“잔재주는 사양이다.”
불쾌한 음성에 시선을 올리는 순간, 헤임달의 손이 불쑥 튀어나와 목을 움켜쥐었다.
거센 악력에 목 졸린 리디안이 놀라 두 손으로 헤임달의 팔을 붙들었다. 짧게 켁켁거리며 발버둥 쳐보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리디안은 순간적으로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공포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