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
1. 어릴 적 내 꿈은 조각가였다
01
어릴 적 내 꿈은 조각가였다.
거창한 계기는 없다. 초등학교 수업시간. 빨랫비누를 가져와 조각도로 작품을 만들어보는 미술 수업. 그게 나를 매료시켰을 뿐이었다.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네모난 사각형 안에서 보석을 발굴하듯, 나는 조각도에 이끌려 손을 움직였다.
완성된 것은 감히 초등학생 눈으로 보기에도 매우 좋았다. 이 아름다운 것으로 세상을 채우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그때부터 나는 아름다운 것을 발굴하는 조각가가 되고 싶었다.
* * * *
“솔직히 말씀드리면 미대 진학을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어렵게 말을 끝맺었다. 12월 중순, 매서운 한파가 텅 빈 실기실 창틈을 뚫고 불어오고 있었다.
“선생님. 전국에 있는 정규 미대만 106곳입니다. ···그중에 석이가 갈 곳이 하나도 없습니까?”
아버지의 질문에 내 귀가 붉게 달아올랐다. 추위보다는, 부끄러워서였다.
미술, 그것도 다른 전공에 비해서 경쟁률이 낮다는 조소를 시작한 지도 올해로 4년째. 실력이 늘어도 모자랄 판에 이런 소리나 듣게 하는 내가 한심해서였다.
“아버님. 아버님도 한때 미술을 전공하셔서 잘 아시겠지만, 미대는 그냥 출발점입니다. 사회가 진짜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매년 미대 전공자만 6천 명을 사회로 쏟아냅니다. 경쟁률이 장난이 아닌 거죠. 그래서 실제로 4년 동안 주구장창 미대 다녀놓고 미술 안 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
선생님은 한차례 숨을 멈추시더니, 무거운 주제를 꺼내 들었다.
“···아버님. 이제 2학기 끝나면 석이도 고삼이 되는데, 솔직히 미대가 돈이 좀···많이 들지 않습니까. 요즘은 입시 막바지부터 한 달에 오백이 우습게 나간다고 하더군요.”
예술은 돈이 든다.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아마 선생님께서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가정형편이 좋지 않음을 알아서일 터였다.
내가 알아듣는 소리를 아버지가 못 알아들으실 리가. 힐긋,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이 굉장히 슬퍼 보였다.
“···돈 때문에 꿈을 접으란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냉정하게 들리실 수 있겠지만···, 그 큰돈을 들여 전국에 널린 미대 중 하나에 보내는 건, 안 보내느니만 못한 게 요즘 현실입니다.”
“······.”
무릎을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화가 치밀었다. 짜증이 일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슬프게 만드는 내 재능이 쪽팔렸다.
“아버님. 고민되실 거 압니다. 하지만 석이 미래를 생각해서 다시 생각해보심이 어떨까요.”
“···미래요.”
“예. 당장만 생각하면 미대 합격이야, 돈만 들인다면 가능할 겁니다. 석이야 워낙에 열심히 하는 녀석이니, 수능 끝나고 정시 준비 들어가면 쭉쭉 늘겠죠. 석이도 저희 청화(菁華) 예고에 합격한 인재이지 않습니까.”
선생님 말에서 한국 제일의 예술 고등학교라 불리는 청화 예고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추가합격으로 겨우 턱걸이 입학을 한 나로서는 입맛이 씁쓸했다.
“그런데 다년간 지켜본 저로서는 석이가 지금처럼 열심히만 하면 기교는 갖출 수 있을 것 같지만…,”
선생님은 그 이후에 말을 잇지 못하셨다. 뒤에 이어질 말들은 뻔했다.
지금처럼 열심히만 하면 기교는 갖출 수 있을 것 같지만, 재능은 노력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강석에겐 재능이 없다. 미대를 보내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찾는 게 나을 거다.
그러나 선생님은 끝내 그 말들을 내뱉지 못하셨다. 선생님은 한동안 안타깝다는 눈초리로 나를 가만 바라보시더니, 말을 돌렸다.
“아버님. 말이 길어졌는데 어쨌든 이번에 상담이 있기 전에 석이 성적표를 보니까, 석이가 내신을 괜찮게 챙긴 편이더라고요. 평소에 독서도 많이 한 편인데다, 교내 활동도 열심히 해서 학생부도 탄탄하고요. ···어떻게 들리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고삼 때부터 석이는 방과후 레슨 시간을 빼고 그 시간에 수능 준비를 하는게···좋을 것 같습니다.”
미술대학 말고 인문대학에 들어갈 준비를 하란 소리였다.
그게 오늘 학부모상담의 결론이었다.
.
.
.
모두가 레슨을 받을 시간.
학부모 상담을 끝낸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트럭에 올라탔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가족들과 한 번 더 상의를 해보라는 선생님의 배려 덕분이었다. 트럭 문을 열자 [석이 가구점]이라는 글씨가 가려졌다.
찰칵.
먼 거리에서 달려오셨었는지 트럭 안에는 아직 따뜻한 기운이 가득했다. 한파가 몰아치는 이 날씨에는 어울리지 않는 따뜻함이었다.
“좀 춥지?”
실기실보다 훨씬 따뜻한 것 같은데 아버지는 급하게 히터를 틀며, 나를 돌아봤다. 어째서인지 울컥하고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의연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괜찮아요.”
“···집으로 바로 갈까?”
“네.”
“그래.”
아버지는 별다른 말 없이 트럭에 시동을 거셨다. 천천히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 아직도 불이 켜져 있는 실기관이 보였다. 바쁜 아버지와 쌓인 이야기가 많았으나,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한참을 적막 속에서 내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창문 너머만 보고 있었다. 번화가로 나아가자 도로에는 학원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내 눈에는 미술학원들만 보였다.
– ‘아빠, 얼른요!’
문득 중학교 1학년 때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미술학원을 처음으로 가보는 날이었다. 조각도로 빨랫비누만 매만지다가 본격적으로 미술을 배울 생각에 신이 잔뜩 났었지.
추억과 함께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미술학원들과 화방을 바라보며 나는 안 떨어지는 입을 억지로 열어젖혔다.
“아버지.”
“음.”
“···서점에 들렀다 가요.”
“서점? 서점은 왜?”
“문제집을 사려고요.”
미술 재료들을 사려고 차곡차곡 모아놓았던 용돈이 생각났다. 이제는 문제집을 사야 할 돈이었다.
“···석아.”
“들렸다 가요.”
미술대학과 인문대학의 수능 등급컷은 다르다. 인서울을 하려면 지금부터 해도 시간이 빠듯했다. 나는 창문에서 멀어지는 화방을 응시하며 다짐하듯 내뱉었다.
“부탁드릴게요.”
“···그래. 그러자꾸나.”
아버지는 핸들을 돌리셨다.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자, 드디어 미술학원과 화방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살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선생님께서는 가족들과 한 번 더 입시 문제에 대해 상의를 해보라 하셨지만,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고생했다는 인사를 건넨 후 방으로 조용히 들어가셨다.
그 모습에 어머니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채셨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따라 방으로 사라지셨지. 그게 약 3시간 전이었다.
방음도 제대로 안 되는 집안은 오늘따라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날 뿐, 조용했다. 공부하기에는 좋은 환경이었다.
ㅡ 기출 문제 분석이 샘 개인적으로는 수능 준비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출 문제 분석···
지금 시각은 오후 11시 30분. 여동생이 학원차를 타고 돌아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다.
‘조금만 더 보고 가져다 놔야지.’
여동생의 노트북을 허락 없이 사용한 게 들키면 난리가 날 터. 마음이 급해지는 그때.
“석아.”
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
“예!”
“나와봐라.”
“···왜요?”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아버지는 식탁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지? 이미 소주 한 병은 비워져있는 게, 아들이 수능강의를 듣는 동안 아버지는 그 소리를 안주 삼아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으셨던 것 같다.
“그래. 기분은 좀 괜찮니.”
얼마나 오랫동안 아버지가 여기에 있었던 걸까. 나는 울컥해서 소리쳤다.
“저는 괜찮다니까요.”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는 손짓했다.
“···석아. 앉아봐라.”
이제보니 아버지 맞은편엔 빈 소주잔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아버지와 세트인 어머니를 찾았다. 꽉 닫힌 안방 문이 보였다. 어머니는 저기 계신 게 분명했다.
“······.”
“앉으래도.”
마지못해 맞은편에 앉아 소주잔을 바라봤다. 어색했다. 이게 왜 여기 있지. 설마 하는 생각을 하는데, 아버지는 내가 앉자 반이 넘게 비워진 소주병을 들어 올렸다.
“술이나 한 잔 하자.”
“···무슨 고등학생이 술을 마셔요.”
“괜찮으니 한 잔 해.”
아버지는 대답도 듣지 않고 소주를 부었다. 소주잔에 소주가 반절 넘게 채워지자 알코올 소독 냄새가 코를 찌르고 들어왔다.
낯선 냄새.
아버지에게서 처음 보는 낯선 표정.
자리가 불편했다.
아버지는 소주병을 내려놓더니 이미 채워진 자신의 잔을 내 쪽으로 가져다 댔다.
“짠.”
챙, 하고 유리잔이 서로 맞부딪혔다. 어색하게 잔을 들어 올린 내 팔이 허공을 서성이는 동안, 아버지는 소주잔을 단번에 비우셨다. 아버지를 따라 내 팔도 어색하게 움직였다.
쓰다.
그런데 달다.
그게 소주의 첫인상이었다.
이런 맛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기분. 고개를 숙인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려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아들···아빠가 재능이 없어서 미안해.”
아버지의 묵직한 사과가 내 머리를 짓눌렀다. 눈이 매웠다. 소주는 매운 건가. 불현듯 어릴 적, 석공이었던 할아버지를 따라 미술을 시작했다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좋은 재능을 물려줬어야 하는데 내가 미안하다.”
“···전, 괜찮다니까요.”
숨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의 것도 내 것도 아닌 숨소리. 어머니가 방안에서 조용히 우시는 소리였다.
“아들.”
아까부터 목구멍을 턱턱 막히게 하던 답답함이 몰려왔다. 재능이 없는 나 때문에 온 가족이 슬퍼하고 있다. 그게 화가 났다. 그게 너무 미안했다.
“···그래도 계속하고 싶으면,”
“전 괜찮다고 했잖아요!”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실수했다. 하지만 조절이 되지 않는다. 감정이 들끓는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섰다. 통제되질 않았다.
“저는! ···저는 이 길로도 행복해질 자신 있어요.”
미술이 아니어도 돼요.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을 삼켰다. 등을 돌리고 빠르게 걸어갔다. 바깥 공기가 필요했다.
쾅! 문을 박차고 집을 나갔다. 탁탁. 교통비를 아껴보겠다고 산 자전거를 마구잡이로 끌고 내려갔다.
그리고 내달렸다. 그냥 무작정 밟았다. 분한 만큼 밟아댔다.
훽훽 지나치는 풍경 속에서 열심히 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으아아아!”
사실 허세였다.
그만두고 싶지 않다. 난 미술이 좋았고, 조각이 좋았다.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에서 행복해할 자신이 없었다.
눈이 따가웠다. 땀인지 뭔지가 눈앞을 가렸다. 눈앞이 잘 안 보였다. 그래도 계속해서 밟았다. 그냥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정신없이 내달리는 그때.
-야옹!
삼색 고양이가 수풀 속에서 튀어나왔다.
“악!”
쿠당탕탕! 급하게 꺾은 핸들에 자전거가 뒤집어졌다. 쓸려나간 몸은 공원 자전거길 옆 비탈길로 떨어졌다. 자전거와 엉켜 온몸이 아팠다.
어느새 몸은 땅에 등을 대고 누운 채였다.
“하아···하아!”
쉬지않고 계속 자전거를 밟아대서인지 숨이 벅차올랐다. 마음이 천천히 차분해졌다. 흐릿했던 시야에 초점이 잡히면서 달이 보였다. 꽉 찬 보름달은 아름다웠다.
‘예쁘다.’
저것도 누가 조각한 걸까.
-야옹!
누가 들으면 쪽팔릴 생각을 하는 와중 고양이 울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까 수풀에서 튀어나온 삼색 고양이가 분명했다.
갑작스레 기시감이 찾아왔다. 이 울음소리를 어디서 또 들어본 것 같은데···.
생각이 찾아옴과 동시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넘어질 때 머리를 부딪혔던가. 수백 개의 송곳이 머리를 찌르는 느낌이 온몸을 덮쳐왔다.
“···윽!”
시야가 어지러웠다. 두통은 계속해서 심각해져 갔다. 아파. 겪어본 적 없는 고통이었다.
움직이지 않는 팔을 억지로 들어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나 왜 이러지. 거기까지 사고하는 순간, 눈앞이 암전했다.
.
.
.
“허억, 허억!”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 밤중을 달리고 있었다. 새벽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후하후하, 숨이 가빴다. 야옹,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 이 고양이 울음소리였다. 마주쳤던 삼색 고양이와 한치에 오차도 없는 울음소리. 그런데···내가 이런 곳을 달린 적이 있던가?
주변을 돌아보려고 해도,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 뭐지?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기분이었다.
···자각몽인가?
눈 안으로 땀이 들어와 따끔거렸다. 나의 의지와는 달리 걸음이 천천히 느려지고 있었다.
저 멀리 보름달을 등진 성당이 검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성당 앞에 도착했다.
깊은 어둠 속에서 나는 성당 문을 열어젖혔다. 기름칠이 잘된 나무문이 육중하게 움직였다. 습하게 들어오는 나무냄새를 따라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내부의 모습이 달빛에 드러났다.
본능적으로 여기가 어딘지 알 것 같았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이다!’
세계 가톨릭의 중심지.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대성당이었다. 나는 성당 안을 제집마냥 거침없이 걸어댔다. 이상하다. 가본 적도 없는데 내부구조를 내가 왜 이렇게 잘 알지?
그나저나 이렇게 막 걸어도 되는 건가. 의문이 쌓여갔다. 그때 내 입에서 갑자기 불만스런 투정이 터져 나왔다.
“뭐? 로마? 롬바르디아?”
익숙하지 않은 언어였다. 아니. 익숙한 언어였다. 피렌체 방언. 이제는 이탈리아 표준어의 근간이 된 언어이기도 했다.
갑자기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가 떠올랐다. 오늘 낮에 내가 만든 작품을 보고 비평가들이 지껄이던 말들이 떠올라서였다.
비평가들은 이 대작을 보고서도 위대한 이 몸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했다. 아니지. 이름을 꺼내기는커녕, 이 놀라운 작품이 로마나 롬바르디아, 피렌체가 아닌 다른 곳 출신의 천재 예술가가 만든 게 분명하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망치와 끌을 품에서 꺼내 들었다. 심장이 긴장으로 두근거렸다.
지금은 르네상스 시대. 그 어떤 미술가도 교회의 성직자들을 위한 작품에는 서명할 수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내가 만든 작품 위로 기어 올라갔다.
알려줘야지.
눈이 없는 것들을 위해 예수를 품에 안은 마리아의 가슴띠에 준비해온 구절을 사정없이 새겨넣었다.
[MICHEL. AGELVS. BONAROTVS. FLORENT. FACIEBAT]나는 어둠 속에서 가슴띠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소리 내 읽었다.
“피렌체 사람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이것을 만들었다.”
역사에 새겨진 이름.
르네상스 시대에 미술가들에게 감히 ‘신’이라 추앙받은 조각가.
미켈란젤로 디 루도비코 부오나로티 시모니.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건 자각몽이 아니다.
나였다.
‘내가···!’
갑자기 지식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400년 이상을 뛰어넘은 방대한 서사와 기억이 내 몸에 쏟아지고 있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아픔 속에서 강석의 동공이 빠르게 움직였다. 뜨겁다. 격통 속에서 쏟아지는 기억들은 내게 없던 감각을 일깨웠다.
나에게 없었던 세포가 생겨나는 느낌이었다.
“커억!”
참았던 숨이 터졌다.
검은색이었던 세상이 하얗게 돌아왔다.
“···생!”
뭐?
“학생, 괜찮아?”
아주머니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롱패딩을 걸친 아주머니의 뒤로 보름달이 보였다. 아까 본 그 보름달이었다.
빛처럼 쏟아지는 기억들 사이에서 보름달만이 선명하게 시야에 잡혔다.
심장은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학생, 학생, 나를 부르는 아주머니의 목소리도. 나를 원처럼 둘러싸고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팔꿈치부터 팔목. 손목에서 엄지와 중지로 이어지는 근육이 당겨지는 게 느껴졌다.
다르다.
“하하···하하하···!”
모든게 달라졌다.
* * * *
방황을 거치고 집에 귀가한 것은 새벽 4시가 다 되어서였다.
“아버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얼굴이 벌게진 아버지가 나를 보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붉어진 아버지의 눈시울. 헝클어진 머리. 아버지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불렀다.
“···석아.”
그리고 여동생과 어머니가 안방에서 뛰쳐나왔다.
“석아!”
“오빠!”
둘다 눈두덩과 콧등이 붓고 붉은 게 집안이 한바탕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나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사실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학부모 상담이 끝난 다음부터 꾹 참고 있었던 말이었다. 아까는 그렇게 내뱉고 싶어도 가시가 걸린 것처럼 나오지 않던 말이 쉽게 툭, 하고 튀어 나갔다.
“저 그냥 조각 계속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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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생(前生)은 미켈란젤로였다.
2. 내 전생이 미켈란젤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