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02
102
* * * *
미켈란젤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결단코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우선 미켈란젤로는 친우인 그라나치에게 연락을 취했다. 어렸을 적 그에게 벽화를 처음으로 가르쳐주었던 사람이었다.
미켈란젤로는 그라나리체에 금화 20두카토(3.5g에 달하는 순도 98%의 금화), 현재 가치로 따지자면 약 540만원을 선금으로 제시하며 로마로 와서 자신을 도와줄 벽화가를 주선해달라고 했다.
시스티나 천장화를 작업할 조수들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이 소식에 화가 일곱 명이 불이 나게 로마로 달려왔다. 모두가 젊은 벽화가들이었다.
바사리는 이 일화에 대해 기록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그들에게 습작부터 해보도록 했다. 그러나 그가 원했던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으므로, 어느 날 아침···그는 그 습작을 모두 땅바닥에 내팽개쳐버렸다. 그리고 예배당에 처박힌 채 문도 열어주지 않았고 집으로 찾아와도 만나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이 피해자인 만큼 돌아갈 여비를 달라고 청했지만 너무 시간을 끌게 되자, 모두 불쾌해하면서 피렌체로 되돌아갔다.”
그의 높은 눈높이, 고집스럽고 냉랭한 태도는 사람들을 뛰쳐나가게 만들었다. 오직 그라나치만이 한동안 더 남아 일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날로부터 몇 주 뒤.
미켈란젤로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이 작업에서 다른 사람의 협력을 바랐던 것이 잘못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켈란젤로가 프레스코 기법과 비결을 완벽하게 익혀내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며칠이었다.
벽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려했던 것이 무색하게 불과 며칠 만에 미켈란젤로는 누구보다 뛰어난 벽화 전문가가 되어있었다.
···그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 * * *
“제가 하겠습니다. 도슨트.”
유리공방은 어쩌고?
엄중한 맹세를 선언하듯 자신을 바라보는 조동범을 향해 강석이 떨떠름한 시선을 던졌다.
조동범 같이 제 작품을 잘 아는 이가 도슨트에 지원해준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었지만, 전시관이 4개 정도 생길 예정인 이 소규모 갤러리는 그 크기가 무색하게 사람들이 미어터질 게 분명했다.
당장 8층만 봐도 알만하지 않은가.
지금도 계속해서 8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스치듯 응시한 강석이 매달려오듯 시선을 보내는 조동범을 재차 바라봤다.
그런 바쁜 일정에 조동범이 유리공방은 운영하는 것은 둘째치고, 제가 내준 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나 있을까.
그리고 자신은 이렇게 유리 작업과 관련해서 든든한 지원군인 조동범을 포기할 수 있을까.
무언가를 시작하면 완벽하게 해내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강석이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조동범을 응시하는 그때.
강석의 핸드폰이 울렸다.
폭죽처럼 터지는 진동음에 강석이 고개를 내렸다.
문화예술부의 류수헌 서기관이었다.
“어, 잠깐만요.”
잘할 수 있다고 눈빛 발사를 하는 조동범에게서 슬쩍 물러난 강석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얼핏 보인 핸드폰 상단에는 문자와 코코아톡이 어느새 잔뜩 쌓여있었다.
‘···언제 이렇게 연락이 쌓였었지.’
전화를 끝내는대로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강석이 핸드폰을 제 귓가에 가져갔다.
“예. 서기관님. 무슨 일이세요?”
[아! 작가님. 아니, 제가 어제 3일 연속 야근을 하다가 이제 연락을 봤는데 도슨트랑 갤러리스트를 구하신다고 해서요. 아니, 벌써 리모델링 공사가 끝난 겁니까?]그 사람들 그렇게 일처리가 빨랐었어요? 류수헌이 분명하게 한을 품은 것 같은 목소리로 흘리듯 물었다.
야근을 향한 원망과 지난 과거를 향한 증오가 피어오르는 류수헌의 목소리에 강석은 재빨리 부정했다.
“아뇨. 아직 멀었죠. 그게 아니고요. 아무래도 제가 또 작업에 들어갈 것 같아서요. 작업에 들어가면 집중하질 못할테니까 미리 연락 돌려보는 거죠, 뭐. 하하.”
[아···그렇게 된 거군요.]쪼옥, 빨대로 안 봐도 알만한 뭔가를 깊게 빨아마신 류수헌이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뒤이어 말했다.
[그래도 막히는 것 없이 쭉쭉 진행되는 것 같네요. 다행입니다.]“예. 이게 다 서기관님이 건축허가에 도움을 주신 덕분이죠. 주셨던 내용들 보고 사무소장님도 엄청 놀라시던데요?”
[···아하하! 아! 제가 도움이 되었다니 정말 좋네요. 그렇군요. 그래서 도슨트나 갤러리스트 구하는 일은 어떻게 되고 있으십니까?]“이제 막 보냈는데요. 천천히 기다려야죠.”
조동범에게서 멀리 떨어지며 강석이 대답했다.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소개 시켜달라고 하기 위함이었다.
“처음에는 네분 정도 모시려고 하거든요. 여유있게 뽑을 수도 있으니 근처에 좋은 분 있으시면 그냥 마구 추천해주세요. 진짜 아무나 괜찮습니다.”
[그래도 혹시 바라시는 점 같은 게 있을까요? 뭐 학력이라거나, 연봉 같은 기준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뭐. 연봉은 조율이야 하면 되는 거고 학력도 상관없고, 일단 판매 계획도 없어서 친절하시고 성실하신 분이면 될 것 같은데요. 그래도 제가 인수인계를 한다거나 일을 가르칠 입장은 안되니까 경력직 분이 편할 것 같네요. 아, 또 고용주가 어리다고 뭔가 불편해하실 것 같은 분도 싫긴 하고요. 그리고 또···”
강석은 진짜 아무나 괜찮다는 것 치고는 보석을 감정하듯 이런저런 조건들을 붙이기 시작했다. 재능보다는 인성과 성실함을 주된 바탕으로 어필했지만, 그렇다고 강석이 사람을 고르는 일에 있어서 까다롭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의 추가적인 주문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추임새를 넣던 류수헌은 말이 없어져만 갔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요. 진짜 아무나 상관없어요.”
[······음. 그렇군요. 음, 그래도 정확하게 바라시는 점이 있어서 좋네요. 강작가님이 말씀하신 조건에 부합하시는 분이 주변에 있다면···네, 있다면 연락드리겠습니다.]“예.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빨리 찾을 수도 있겠다.
강석이 밝은 얼굴로 통화를 끝내며 갤러리를 돌아봤다.
하얀 공간.
네 구역으로 나누어진 갤러리.
저 구역 중 가장 끝에 있는 네번째 구역에 설치될를 준비하는 동안, 해야 하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과 가 도착하면 네 구역으로 나눠놓은 것 중에 어디다 넣을지 정해서 설치해놓는 것.
그리고 여기 7층 갤러리 이름을 뭘로 할 것인지 정하는 것.
어쩌면 갤러리에서 일해줄 직원분들을 정하기 전에 먼저해야할 것들이기도 했다. 전자는 어차피 구역들이 다 비어져있겠다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었지만, 후자에는 고민이 필요했다.
이런저런 이름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며 강석이 끊어진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아까 얼핏 보았던 알림들이 떠올라서였다.
강석은 엄지의 밑바닥으로 핸드폰을 쓸었다.
그러자 알람들이 쏟아져내려왔다.
[안녕하세요. 배지민이예요. 오늘 날씨가 겨울치고는 맑아, 그때가 딱 생각나는데···강석씨는 저를 기억하실 지 모르겠네요. 예전에 을 그릴 때 제가 작업실을 안내해드렸었는데···기억하실까요? 기억을 못하셔도 괜찮아요. 제가 연락을 드린 이유는 고두한 선생님께서 강석씨가 곧 갤러리를 오픈할 예정이라는 얘기를 해주셨기 때문이에요. 사람을 구한다고 들었어요. 저는···] [석아. 자리가 몇개나 있는 건감. 꽤 지원하고 싶은 친구들이 많이 있는 것 같은데 다 소개를 시켜줘도 되려남?] [석이씨. 저 설여진이에요. 결국 갤러리 직원을 구하는 건데 처음에는 아예 완전고용하면 이래저래 신경쓸것도 많을 테니까 우리쪽 직원들하고 교류협력을 하는 건 어떨까 해서요.] [석아! 오랜만. 나 지훈이형이야. 기억하지? 고두한 선생님 작업실에 봤잖냐. 그, 갤러리 오픈하기로 했다며? 나도 거기 지원해도 되냐? 일단 내가 사학과 복수전공이긴 하거든?] [안녕하십니까. 반정헌입니다. 갤러리 근무 지원하고 싶습니다. 연락부탁드립니다.] [석아. 잘 들어갔냐. 혹시 거기에 연령제한 같은 거 있냐?]대부분은 생각치도 못했던 지원응시와 관련된 연락이었다.
‘이거 잘하면 갤러리에 이름도 정하기 전에 사람부터 뽑게 생겼는데···?’
강석이 연락들을 훑으면서 입꼬리를 씰룩였다.
핸드폰으로 온 연락을 일일이 확인하며 강석이 앞으로의 면접계획을 세우는 사이.
전화 통화가 끝나는 걸 보고 다가왔던 조동범이 강석의 표정을 보고 미세한 변화를 눈치챘다. 이거 뺏긴다. 마치 제가 탐나던 먹잇감을 코앞에서 놓칠 위기에 처한 맹수처럼 조동범이 콧김을 뿜었다.
“스, 스승님! 저 정말 도슨트일 잘할 수 있습니다! 듣고 계시죠? 스승님. 들리시죠?”
“듣고 있어요. 근데 조사장님.”
“네, 네?”
“오늘 제가 드렸던 과제는 다 끝난 거죠?”
드로잉북에 그려진 모란 하루에 100번 따라그리기.
강석이 조동범에게 내준 과제였다.
강석의 물음에 조동범이 입술을 말아삼킨 뒤 조용히 눈을 내렸다.
“얼마나 잘 그리셨는지는 조금 있다 확인하는 걸로 하고 일단, 저 좀 도와주실래요?”
조동범이 냉큼 고개를 들었다.
뭐든 도와드리겠다는 얼굴이었다.
강석이 조용히 포대를 가리켰다.
이것저것 할 게 많고 머리가 복잡할 때는 작업을 하는 게 최고였다.
“저걸 좀 옮기려고요.”
작업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 * * *
쿠웅.
낮은 진동과 함께 마대를 내려놓은 조동범이 머리를 쓸어넘겼다. 조동범의 앞에는 유리찌꺼기가 잔뜩 들어있는 마대가 세 개가 놓여져 있었다. 강석의 요청이었다.
조동범이 숨을 내쉬며 옆을 돌아봤다.
“후우.”
공사를 하고 있는 네 번째 공간과 가장 먼 첫 번째 공간은, 방금 조동범이 내려놓은 마대와 강석이 가져다놓은 작업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얀 공간에 작업물만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 오묘한 공간에 강석은 작업대에 올려놓은 그라인더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동범이 그라인더를 사랑스러운 여인들을 바라보는 눈으로 쓰는 강석을 보고 흠칫, 몸을 굳혔다.
언제 그라인더를 저렇게 많이 구하신거지. 조동범이 모르는 사이. 강석의 그라인더들은 무지막지하게 증식을 한 상태였다.
작업대 위에 올려진 그라인더만 대충 세어봐도 본체만 스무개는 넘는 것 같았고, 그라인더의 날은 그 두배가 넘어보였다.
거기에 정체를 모를 막대기와 유리공방에서 불과 함께 쓰일 것 같은 쏘시개와 막대들이 줄줄이 늘어져 있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용도 모를 와이어에 펜치에 드릴에 대체 뭘 할 생각이신건지···’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굉장히 섬뜩한 광경이었다.
고문 작업대도 아니고···조동범이 하얀 공간에 늘어진 살벌한 도구들을 바라보며 긴장감에 침을 한 번 꿀떡 삼키는 순간.
강석이 그라인더 하나를 들고 뒤를 돌아봤다.
“헉!”
“···조사장님?”
강석이 무슨 일 있냐는 눈동자로 조동범을 바라봤다. 조동범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시선을 피하며 조동범이 어렵사리 질문했다.
“저···이것들로 대체 뭘 만드실 생각인건지···여기에는 가마도 없고 그런데요.”
유리로 조형물을 만들거나 유리를 성형하는 일에 가마는 필수였다. 녹여야 제가 원하는 형태로 만들테니까. 근데 아무리 봐도 강석은 녹일 생각이 없어보였다.
강석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가마없이 해보려고요.”
그리고는 작업대 앞에 높은 의자에 앉아서 목장갑을 낀 채, 유리 하나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목장갑의 감각이 조금 불편한지 미간을 세모꼴로 접힌 강석은, 유리를 저 위에 조명에 빗대어 빛을 투영해보며 입꼬리를 씰룩였다.
투명한 유리조각 안으로 빛이 투영되고 있었다.
“아름답지 않나요?”
빛감을 향한 물음이었다.
항상 자신보다 많은 것을 보는 강석의 눈을 부럽게 쳐다본 조동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석이 바라보는 세상은 제가 바라보는 세상보다 훨씬 휘황찬란할 게 분명했다.
프시케와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봤을 때 눈이 개안하는 감각을 떠올린 조동범이 그립다는 얼굴을 했다. 다시 보고 싶었다. 그러나 절찬리에 예매되고 있는 작품은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오픈부터 마감까지 전부 예약매진이었다.
‘역시 도슨트를 해야해. 그러면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잖아.’
사람이 많던 적던 일이 힘들던 어쩌던 매일 오픈 전과 마감 후에는 저 혼자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 꿈의 직장을 향한 희망의 불씨를 살짝 피어올리는 그때.
어느새 유리조각을 내려놓은 강석이 와이어를 잡고 휘었다.
소리없이 휘어진 것은 얼핏 보기에는 뭔지 모르겠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석은 얇고 긴 와이어를 휘고 또 휘고 또 휘었다. 몇 번의 구부러짐은 금방 형태를 찾아갔다.
마치 어린시절.
전지 위에 어린아이를 눕혀놓고 크레파스로 그 외곽의 선을 따라그린 것마냥 인간의 외곽선을 따놓은 것 같은 형태였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어린아이를 눕혀놓고 따라그렸던 것은 두껍고 뭉툭했다면 강석의 것은 인간의 외곽선을 포토샵으로 따와서 현실에 가져다놓은 것처럼 섬세하다는 것 정도.
강석은 그렇게 완벽하게 와이어만으로 인간을 표현해놓고는 영 불만스럽다는 얼굴로 그것을 훑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더 나은 형태가 그려지고 있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스타일임에도 그는 앞으로 어떻게 이걸 해야할지 스스로를 피드백해갔다.
‘저기는 좀 더 굽히고···여기에 와이어가 몇 번 더 감기면 오히려 두꺼워질 것 같은데 그걸 고려하면 처음엔 일부러 좀 더 기형적으로···’
냉랭하게 높은 눈높이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성격은, 남들뿐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마치 처음에 유리를 다뤄본 그때처럼.
강석은 완벽에 가까운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계산하기 시작했다. 눈빛은 먹잇감을 바라보는 것처럼 형형해져갔다.
완벽한 작품을 원하는 그 눈빛은, 여직 굶주린 자의 것이었다.
103. 조동범은 모란을 그리다 말고 고개를 들어 강석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