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11
111
* * * *
···예순을 훌쩍 넘긴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성미가 급했다.
후대에 그를 표현할 때 교황보다는 폭군에 어울리는 인물이라 써내리는 이유에는 그 성미 또한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 율리우스 2세에게 이 기다림은 너무 길었다.
더 이상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가는 제 안에 있는 활화산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찾아갔다.
땅에서 20미터 떨어진, 지상 7층 높이로 솟은 작업대.
미켈란젤로는 거기서 몸을 뒤로 젖힌 채, 길이 41미터, 폭 13미터, 높이 22미터.
550제곱미터의 총 750평에 이르는 천장화에 300명이 넘는 인물을 혼자서 프레스코 화법으로 새겨넣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더 그려야 작품이 완성되나.”
재촉이었다.
척추는 활처럼 휘었고, 관절염과 근육 경련이 자신을 괴롭히고, 원래도 안 좋았던 소화기능은 말할 것도 없고, 하루에 잠은 2시간은 자나 싶고, 얼굴에 떨어지는 안료 탓에 눈병까지 얻은 미켈란젤로는 한참의 침묵 끝에 대답했다.
눈에는 회반죽과 안료, 코와 입에는 석회 가루가 들어가 말썽이었으나 발음만은 정확했다.
“Quando Potro.”
콴도 포트로.
미켈란젤로의 입버릇이었다.
언젠가는 된다.
그의 이 말은 여러가지 뜻으로 해석된다.
언젠가는 끝나겠죠, 제가 작업을 끝내는 때에 끝나겠죠, 끝날 때 끝난다, 언젠가는 된다···어떤 의미로 해석해도 미켈란젤로 못지 않게 불과 같은 성미를 가진 율리우스 2세에게는 시원찮은 말이었을 것이다.
교황은 미켈란젤로의 대답을 듣자마자 눈을 뒤집으며 분노했다. 그의 화를 눌러참는 대신 지팡이를 휘두르는걸 택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 역시 그와 같은 불이었다.
그날 밤.
미켈란젤로는 짐을 싸서 피렌체로 떠나버렸다.
평소 교황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태워죽여도 시원찮을 돌발행동이었다. 그러나 율리우스는 참았다. 인내했다. 머리끝까지 솟아오른 화를 누르고 또 눌렀다.
그 이유는 하나.
미켈란젤로가 대체 불가능한 천재였기 때문이었다.
* * * *
양선구에게 언제든지 찾아와도 좋다는 답변을 보낸 강석은 설여진을 배웅하기 위해 7층 엘리베이터 앞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는 카페 시스티나가 위치한 8층을 찍고, 7층으로 곧장 내려왔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작약갤러리의 관장 설여진은 김윤서와 함께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갈게요.”
“안녕히가세요.”
설여진이 사근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강석씨.”
“예?”
“새로운 면모, 귀여웠어요.”
“···예?”
뭐가 귀여웠다는 거지. 강석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자 설여진이 몰라서 더 귀엽다는 듯 살포시 보조개 패인 웃음을 지었다.
“작품에 대한 자신감은 넘치면서, 자기를 따르는 추종자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면모···랄까? 강석씨의 그 유명한 작품들이 걸린 이 개인 갤러리는 커리어가 안 될거라고 생각하는 점이랄까. 뭔가 모순적인 귀여움이 있던데요.”
“예?”
설여진의 말에 강석이 금시초문이라는 얼굴을 했다. 설여진은 웃으며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에서 손가락을 뗐다.
“그럼 다음에 봐요.”
“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사라지는 걸 바라보며 강석이 뭔 소린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조동범이 강석을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아. 뭔가 설여진 관장님이 착각을 하는 것 같아서요.”
“네? 무엇을요?”
조동범이 묻자 강석이 등을 돌려 작품에게로 걸어가며 말했다.
“큐레이터랑, 도슨트, 그리고 갤러리스트의 차이가 뭘까요.”
질문이었다.
조동범은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짧게 축약하자면···큐레이터는 전시를 기획하는 분들이고, 도슨트는 작품을 설명하는 분들이고, 갤러리스트는 큐레이터처럼 전시를 기획하면서도 갤러리에 있는 작품 판매에 관여할 수 있는 분들이 아니겠습니까?”
강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말하면 그거다.
“그렇다면 그들이 자신의 경력을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란 뭘까요.”
“네? 그거야···큐레이터라면 유명한 전시를 기획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움직여서 잘 성공시키고 운영하는 것이겠고, 도슨트라면 작품을 잘 설명하여 VIP들의 관람을 높여 지명도를 높이는 것이겠고, 갤러리스트라면 전시를 잘 기획하면서도 작품 판매실적이 높이는 것이···아닐까요?”
“그러니까요.”
강석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갤러리에 지원한 사람들을 되짚어보며 말했다.
“전 그들에게 그런 걸 맡길 생각이 없거든요.”
“···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조동범이 눈을 깜빡였다. 그와 동시에 강석이 고개를 돌렸다. 자연스럽게 강석의 적갈색 눈동자가 조동범과 눈을 마주쳤다.
“전 그들에게 전시기획을 맡기지도, 작품 설명을 맡기지도, 판매를 맡기지도 않을 건데요.”
왜 내 갤러리에서 일하는 게 그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는 거지?
일해봤자 운이 좋다, 부럽다, 정도의 이야기밖에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작품이 망가지지 않게 보수작업은 다 해놓고 갈 것이고, 경호는 경호업체에게 위탁할 것이다. 그들은 여기에서 카운터를 봐주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을 하게 될 터.
분명 근무조건에도 그런 내용을 적었는데···적지 않았던가? 강석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으음. 스승님. 그래도 그들은 요즘 만나기 어렵다는 강석과의 인연, 인맥을 쌓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들이 거기서 일했다는 경력을 보고 스승님과의 인연을 기대하고 고용하거나 콜을 하는 경우가 많아질 수도 있고요.”
“전 이곳에 자주 오지 않을 텐데요.”
강석은 이곳에서 안주하지 않을 터였다.
성북동 저택이나 유리공방에 자주가겠지, 갤러리의 모든 공간이 찬다면 여기서 작업을 할 수도 없을 텐데 와서 무얼 한단 말인가.
“음. 그 옆에서 들어보니까 조소나 공예를 부전공하거나 복수전공하신 분들이 많이 지원을 했다고 하잖아요. 오픈 전이나 오픈 후에 매일 공짜로 볼 수 있으니까 도움이 되서 그런 게 아닐까요?”
강석이 그 말에 가장 어이가 없다는 듯 헛숨을 들이켰다. 허. 강석이 아까도 들이킨 헛숨의 속뜻은 그것이었다. 어처구니 없다.
한 번은 도움이 될거다.
아니, 제 작품이라면 적어도 스무 번, 아니 마흔 번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솔직히 백 번 봐도 도움이 될 거다.
하지만···강석이 속에 있던 말을 내뱉었다.
“일하는 중에는 볼 수도 없을 텐데요.”
강석의 갤러리가 인기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사람이 미어터질 것이다.
8층에 위치한 시스티나 카페만 해도 줄서서 입장을 해야 하는 상황. 강석이 오픈한 갤러리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터.
차라리 갤러리를 오픈 시간에 맞춰서 오픈런을 한 다음, 끝날 때까지 그앞에서 만족할때까지 드로잉을 하는 게 나을 것이다.
오픈 전에 잠깐, 클로즈 후에 잠깐, 그렇게 보는 시간보다 오픈부터 마감까지 계속 보는 게 더 길텐데 무슨 공부를 하겠다고 지원을 한단 말인가.
돈을 벌면서 공부하려고 했다고 치면, 근무조건에 얼마를 버는지도 적지 않았으니 앞뒤가 맞지 않았다.
강석은 아주 예전, 전생의 기억을 더듬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려진 가 사람들에게 공개되었을 때.
그곳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미술가들은 공부를 하겠다고 종이를 들고 시스티나 성당 문이 닳도록 찾아댔다.
그 때.
미술가들은 일반인에게 공개된 하나 오래 보겠다고 성당에서 일하는 성직자가 되려고 하진 않았다.
그들은 그 대신, 제 작품을 모사해서 교보재로 돌려댔다.
그게 올바른 길이었다.
조소나 공예 전공이라면 모작은 모작대로, 제 작품은 작품대로 만들 생각을 해야지, 왜···거기까지 생각한 강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왜 나를 추종한다는 자들은 이렇게 실속이 없는지.’
전생에도 미켈란젤로를 따르는 자들은 많았다. 그러나 제 무덤도 그렇고, 따르는 자에 비하여 따라오는 자가 없었다. 만족할만한 후계자가 없다는 뜻이었다.
조동범도 강석의 말에서 속뜻을 눈치채고 눈알을 굴렸다. 왜 도슨트를 한다고 했을 때, 그거 할 시간에 드로잉이나 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아서였다.
강석은 잠깐 한숨을 잠깐 내쉬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후대가 이어받기를 바랄 시간에 작품을 하나라도 더 만들자. 강석은 제대로 따라오지도 못할 주제에 강석파라고 하면서 제 작품 기법을 따라하는 것들에 관심을 줄 시간 따위 없었다.
“조사장님.”
“네. 스승님.”
“200장. 잊지 마세요.”
“···네! 반드시 이뤄내겠습니다.”
“좋아요.”
한숨을 삼킨 강석이 걸음을 내디디며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지원사유에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느니, 전시기획 어쩌고, 판매실적 어쩌고, 이해를 돕겠다, 잘 설명하겠다,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같은 말들을 적어놓은 사람들은 모두 서류작업에서 거르세요.”
“···저, 전부요?”
“예. 그런 사람들은 제 갤러리에 필요없습니다.”
필요없다.
자신이 원하는 건, 그런 일반적인 갤러리가 아니었다.
전시를 기획할 필요가 없다.
기획이 필요한 완성도로 제작할 게 아니니까.
이해를 할 필요도, 설명을 잘할 필요도 없다.
보는 순간 이해가 되게 만들 것이니까.
제 작품을 보고 공부를 할 필요도 없다.
공부를 할 시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만든 갤러리가 아니니까.
고로,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 곳에 지원할 필요도 없다. 부가적인 이득없이 순수하게 일해줄 노동력을 구하는 것 뿐이었다.
“필요한 건 인성입니다.”
이 갤러리에는 친절하게 웃으며 인사해줄 사람만 있으면 된다. 강석이 작업대 앞까지 도달한 상태에서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굳게 닫힌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는 설여진 관장이 뇌리에서 스쳐지나갔다.
‘뭐···굳이 정정해줄 필요는 없지.’
관심을 끊은 강석이 작업대 위에 유리를 붙잡았다.
작업하기에도 바쁜 시간이었다.
* * * *
2월 4일, 입춘(立春).
이십사절기의 첫 번째.
봄의 시작.
졸업식을 일주일을 앞둔 시점.
오늘도 세상에는 수많은 소식들이 범람했다.
끔찍한 소식들도, 신기한 소식들도, 그리고 일부는 기뻐하고, 일부는 싫어할 소식들도 가리지 않고 전파를 타고 퍼져나가는 어제와 같은 하루.
[한국의 미켈란젤로가 설치한 보겠다고 서울 남산 백산 호텔 연일 ‘만석’ 행진 중] [특종! 소더비와 크리스티, 공식 SNS로 한국의 미켈란젤로 강석 언급···!] [백산 호텔의 왕좌, 누구 손에 떨어지나···! 산강그룹 경영권 다툼에 백산 호텔이라는 새로운 열쇠!] [강석 특집⑲ 약관의 나이, 자수성가로 이룬 성북동 단독주택에 이어 서울 8층짜리 건물까지!] [백산 호텔로 인한 산강그룹 주가 수직상승···! 초대 박은수 회장이 언급한 문화의 힘!] [강석의 성공 스토리에 입시미술 덩달아 웃음꽃···?] [청화예술고등학교 졸업식에 강석 나타나나?]수많은 소식들과 함께 강석과 연관한 소식들이 연일 포털사이트에 올라가는 것도 어제와 같았다. 강석의 과 함께 도심 속 호텔 온천인 백산이 만석 행보를 이어가며 세상은 그의 작품에 더욱 더 이목을 집중했다.
강석이 만든 작품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끌어들이는 마력 같은 게 있다는 소식이 매일같이 기업 총수들에게 보고되었다.
백산 호텔의 박선우가 쏘아올린 화려한 만석 행렬이 한국 경영자들의 심미안을 만족시킨 것이었다. 그들은 당장에 강석의 연락처를 알아오라며 밑에 있는 사람들을 채근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석은 거대한 태풍의 중심부에서 핸드폰을 꺼놓은 채, 고요를 즐기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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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강석이 사다리에 몸을 기댄 채, 중얼거렸다.
방금 의 두번째작, 설치가 끝난 참이었다.
갤러리 네번째 공간 리모델링 공사가 끝난 것은 나흘전 쯤. 그리고 작품이 완성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반나절 전이었다.
아직 첫번째와 세번째, 그리고 네번째 작품은 시작조차 못하고 있었지만···하나라도 끝낸 것이 어딘가.
검게 페인트가 칠해진 공간에 사다리의 중간 턱에 걸터앉은 강석은, 와 연결된 와이어가 잘 되어있는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심장을 중심으로 뼈대, 피부, 그리고 옷까지 유리로 된 사중겹 유리조각상은 천장으로부터 내려온 와이어에 샹들리에처럼 매달려있었다.
이쯤이면 된 것 같은데···살펴보던 강석이 사다리를 내려왔다. 강석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작품을 살폈다.
얼핏보면 유리로 만든 건지 대리석으로 만든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우윳빛으로 된 피부는, 광택이 흘러내렸다. 마치 특수처리한 무광 컬러유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깊은 눈매가 인상적인 우수에 찬 노인이 중세 귀족이나 입을 것 같은 옷을 입은 채, 지팡이를 딛고 허공에 선 모습은 지혜롭고 신사적이었다.
강석은 고요히 작품을 살펴보다가 버튼을 조작했다.
끼익.
끼익.
엄청난 무게에 유리조각상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어있는 와이어가 천천히 내려왔다. 허공에 있던 카노프스는 계속해서, 계속해서, 내려왔다. 까 내려올 때마다 조명에 반사되어 그의 피부를 덮은 유리들이 반짝거렸다.
겉으로 보기엔 매끈하나 다이아몬드처럼 어느 면으로 보아도 반짝거려, 꼭 보석으로 만든 옷과 피부가 인상적인 유리 조각상이었다.
유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옷의 주름과 피부의 주름에 질감이 현실적인 가 겨우 바닥과 160cm 정도의 높이차이만을 남겼을 때.
강석은 버튼 조작을 멈추었다.
끼익, 텅, 거대한 공명음을 뿌리며 가 허공에서 멈춰섰다.
검은 페인트로 뒤덮인 사면에서 홀로 고고하게 하얀 피부 위에 황금빛 옷을 입은 노인, 를 강석이 마음에 든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에 이어 두번째 공중 설치 작품인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지 달관한 것 같은 낮은 목소리. 강석이 뒤를 돌았다. 그곳에는 한복을 입고서 신선마냥 흰 수염을 쓸어내리는 양선구가 서있었다.
“선생님.”
“오랜만이군.”
“예.”
“···그나저나 아름다운 작품이야. 작품의 이름이 뭔가.”
양선구가 천천히 걸어오며 고개를 젖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하늘에 살짝 떠있는 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젖혀야만 했다.
“노인이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진짜 자네의 근육 표현은 말이 안되는군.”
섬세했다.
양선구가 지척에 다가가 작품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을 흘렸다. 노인 특유의 자글자글한 피부가 섬세하게 표현이 되어있었다. 당장이라도 손가락을 집어 올리면 피부가 껌마냥 늘어질 것 같은 섬세한 표현력이었다.
“이거···정말···음?”
원을 돌듯 작품을 살펴보던 양선구가 동공을 좁혔다. 양선구가 몸을 움직이며 빛이 닿은 공간이 컷팅된 보석처럼 반짝거려서였다.
대리석 역시 종류에 따라 빛을 반사하고, 투과하고, 빛을 머금기까지하는 녀석이었지만···수십년을 돌과 부대껴온 인생. 양선구는 놓치지 않았다. 순간적인 그 반짝거림은 대리석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종류였다.
지금까지 대리석인줄로만 알고 있던 것이 대리석이 아니라니. 양선구가 헛숨을 들이키며 작품을 돌아봤다.
“이거 대체 뭘로 만든 건감? 응? 무슨 돌로 만든 게야?”
생각해보니 돌이라면, 강석이 자신을 거치지 않고 구한 것도 이상했다. 이런 거대한 돌을 어디서 구한 것인지···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강석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양선구를 불렀다.
“선생님.”
“음? 으응?”
양선구가 시선을 돌리자 강석은 어느새 입구 앞이었다. 언제 저기까지 간 건감. 양선구는 자연스럽게 강석에게로 걸어갔다.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돌로 만들었길래 저렇게 보석마냥 반짝거려. 설마 저게 다 보석은 아니겠지? 아니 근데 자갈로는 저렇게 빛반사가 확실할 수가 없고, 보석이라고 하기엔 커팅이 너무 부드럽고, 아니 그렇다고 인조 크리스탈이나 레진은···설마 레진인가?”
“아뇨. 유리로 만들었습니다.”
“유리? 유리라고? 유리로 저렇게 섬세한 조형이 된단 말인감? 응?”
강석은 그저 미소지은 채, 다가오는 양선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양선구의 발걸음이 강석의 근처까지 온 순간. 강석은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 광과민성 증후군 같은 건 없으시죠?”
“···으음? 그게 뭔가. 그런 증후군도 있나.”
없다는 소리였다.
강석은 스위치 위에 올려놓은 검지에 힘을 주었다.
터엉, 커다란 소리와 함께 모든 조명이 꺼졌다.
어둠에 잠긴 상황에 양선구가 눈을 크게 뜨고 강석이 있던 곳을 바라봤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였다.
그러나 기다림은 짧지 않았다.
강석은 말을 하는 대신, 두번째 스위치를 눌렀다.
딸깍.
울리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하얀 광채가 떠올랐다. 조명이 있어야 하는 곳치고는 상당히 낮은 곳이었다. 그리고 양선구는 그 빛이 어디서 오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였다.
가 있던 곳이었다.
깨달음이 오는 순간.
의 안에서 발한 빛은 점점 크기를 늘려갔다. 그와 동시에 카노프스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광인을 드러냈다. 노인은 오팔색, 하얀색, 황금색을 차례대로 겹겹이 띠를 두르듯 광원을 일으켰다.
고고하게 지팡이로 허공을 딛고 선 는 마치 밤 속에서 작은 태양마냥 커다란 광원을 일으켰다.
마치 눈앞에서 지상 가까이에 뜬 별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양선구는 몰려오는 감동에 심장이 아플 지경이었다. 노화로 약해진 눈이 빛이 시리다 말하는데도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어둠 속에서 빛으로 된 인간을 만나는 것은 정말이지 아름다운 일이었다.
양선구가 단순히 조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시선을 빼앗긴 찰나.
의 빛이 7층에 모든 조명을 때려박은 것처럼 환하게 빛을 뿜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검은 페인트에 박혀있던 유리 알갱이들이 로부터 오는 빛을 반사했다.
“아···아아.”
양선구가 어둠을 물들이는 하얀 빛무리와 그 속에서 왕처럼 고고하게 커다란 광원을 품고 서있는 를 바라보았다.
이것은 마치, 성운(星雲) 속에 서있는 것과 같았다.
112. 아름다운 인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