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64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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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자신이 아주 못생긴 사실을 잘 안다. 내 얼굴 생김새 때문에 겁먹는 사람까지 있다.❞
– Complete Poems and Selected Letters of Michelangelo,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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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잘생기긴 했다······.”
대한민국 기준 새벽 2시.
야식으로 떡볶이를 시켜서 먹고 있던 진세현이 컴퓨터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녀의 컴퓨터 화면에서는 갑작스럽게 켜진 강석의 실시간 스트리밍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푸른 조명이 인상적인 곳은 지나가는 사람마다 패딩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냉동고 같은 곳인 듯 했다.
[강석ㅎㅇㅎㅇ] [너무 오랜만이다] [영상 업데이트 속도 좀 올려줘라ㅠㅠㅠㅠ] [무료 BGM이나 후시녹음 하나 없는 이 악독한 무음 스트리밍 방송을 나는 왜 끊지를 못하나] [잘생겨서?] [Kangseok! I went to the Venice Biennale and came all the way here. Nice to meet you!] [근데 저기 어디임?] [일단 런던이라고, 강석이 마이크 끄기 전에 말했어요.] [Who wants to interpret it? Can’t you speak in English?] [압도적 비주얼] [얼굴이 인기의 개연성임]채팅은 느리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게 올라가고 있었다. 새벽 2시에 켜졌는데도 스트리밍 실시간 시청자 수는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곧 2만명 넘겠네.’
진세현은 채팅창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다시 영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얼굴이 인기의 개연성이라고 했던가. 동의한다. 패딩을 입은 사람들하고 인사를 나누는 강석을 바라보며 진세현이 입을 살짝 벌렸다.
떡볶이가 젓가락에 꼬치 꿰듯이 딸려가 진세현의 입으로 사라졌다.
“그땐 왜 저렇게 잘생겼던 걸 몰랐을까?”
진세현이 옆을 돌아봤다.
“그치, 혜연아.”
박혜연이 심드렁한 얼굴로 머리를 꼬았다. 그녀의 손에는 [강석의 인체소묘집]이 들려있었다. 미술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언제나 인물은 중요했고, 그런 의미에서 강석이 집필한 인체소묘집은 배울점이 많은 책이었다.
괜히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는 게 아니지.
이 책으로만 얼마를 벌었을까. 박혜연이 책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진세현. 청화예고를 다니기 전부터 자신과 오랜 친구였던 진세현이 기다리고 있으니 답을 하라는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걔 원래 고등학교 때도 잘생겼어. 앞머리로 다 가리고 다녔는데도 턱이 완전 빗살무늬토기였잖아.”
“그랬나?”
진세현이 완전히 유명 인플루언서가 되어버린 강석을 화면 너머에서 멍하니 바라봤다.
“아니. 저 얼굴로 어떻게 인기가 없었지?”
학창시절만큼 외모에 대한 호감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시기가 없는 법인데. 그렇다고 쟤 와이셔츠가 누런 색깔이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머릿결도 좋았고 비듬이라거나 떡진 흔적도 없었다. 눈도 좋아서 안경도 안썼지, 교복도 하얀색이었지, 운동화나 실내화도 안 빤 티가 난 적도 없었다. 깔끔한 차림. 그거 하나는 확실히 기억났다.
깔끔한 교복차림에 준수한 성적, 그리고 저 연예인보다 피부관리를 잘한 것 같은 도자기 피부에 부드러운 생김새, 그리고 그렇지 못한 태도.
‘예고에서 실기 하나 못한다고 인기없을 타입이 아닌데···’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혼자 다니던 강석과 친해지고 싶었다. 사귀는 건 꿈도 안 꾼다. 저 드래곤이 알을 깨고 나오기 전에 친구 포지션이라도 차지했어야 하는 건데. 아. 아. 아. 대학교에 넘쳐나는 동물의 왕국을 몸소 느끼고 있는 진세현은 괴로움에 몸부림 쳤다.
저 얼굴을 보고 있으니 대학교 캠퍼스에 있던 선배후배동기들이 죄다 오징어로 보였다. 그러나 안 볼 수도 없었다.
“불교동아리? 걔네들은 가끔 강석하고 연락한다며. 아! 나도 조소 전공을 했어야 하는데···! 아니. 진짜 내가 왜 말을 안 걸었지?”
떡볶이를 먹으면서도 억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진세현이 카메라 속에서도 빛나는 외모를 바라보며 복숭아주스를 꿀꺽꿀꺽 삼켰다.
카메라 마사지를 받아서 그런가 오랜만에 본 얼굴은 더욱더 잘생겨진 것 같았다.
“불교 동아리가 아니고 불상제작 동아리. 그리고 너 내 앞에서만 이러지. 막상 돗자리 깔아주면 말도 못 걸었을 거잖아.”
진세현이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었다. 앞에서 할말 다하고 사는 박혜연과 달리 진세현은 왕소심이였으니까.
“······.”
“그리고 강석한테 말을 못 건 이유는 그거 하나만 있는 게 아니잖아. 김동휘. 그 시끄러운 놈이 강석한테 말 거는 거 보고 가만 있었겠니?”
김동휘.
그 광대가 치솟은 웃음소리가 떠오르는 것 같아 박혜연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박혜연이 못 볼 걸 보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묘한 각도로 화면이 드러났다.
강석이 패딩을 입은 누군가와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박혜연의 눈썹이 묘하게 움직였다.
“혜연아. 왜?”
떡볶이를 후루룩 거의 마시다시피해 오동통하게 양쪽 뺨이 가득찬 진세현이 박혜연을 바라보았다.
박혜연이 몸을 기울였다. 조금 앳되보이는 초콜릿을 녹여만든 피부의 소년이 화면 구석에서 보였다. 어린아이의 눈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무료한 눈. 저 생김새. 어디서 본 것 같은데···박혜연이 미간을 좁히며 화면으로 다가갔다.
“혜연아. 왜. 아는 사람이야?”
“아니. 어디서 본 것 같아서···어디지?”
“그래? 유명한 사람인가? 내가 검색해볼까?”
진세현이 핸드폰을 손을 뻗는 걸 바라보며 박혜연이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기억이 날듯말듯한 느낌. 박혜연이 최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였다.
화면 안으로 기존의 검은 패딩이 아닌 하얀색 롱패딩을 입은 노인이 들어왔다. 허. 박혜연이 하얀 모자를 쓴 하얀 머리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혼자만 순백색을 차려입고 등장하는 노인에게로 화면 속 사람들의 시선이 잠깐 닿았다가 사라졌다. 신선한 걸 바라보았다가 금방 흥미를 잃는 모습이었다. 화면에 잡힌 사람들은 죄다 노인에게 느긋하게 인사를 건네었다.
“···대체 무슨 상황이야?”
하얀 롱패딩. 현 교황 첼레스티노 6세를 보고도 꿈쩍 않는 사람들이라니. 저 복장을 보고도 저 사람이 누군지 모르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진짠가? 지금 교황이 강석의 스트리밍 방송에 모습을 드러낸 것 같은데 맞음? 꿈인가? 나 꿈꾸고 있음?] [교황이다.] [여기서 교황이 왜 나와?] [He’s the Pope. OMG] [그것보다 교황이 왔는데 사람들 태도가 하나같이ㅋㅋㅋㅋㅋㅋ뭐 생김새 보니까 종교가 다를 것 같긴한데······] [(₩50,000) 저기 어려보이는 사람은 지금 확인해보니까 아슈라네요. 사우디 왕자. 아슈라 빈 무하 빈 사르만 알 사우드.] [??????]도대체 저기가 어디길래 교황이랑 사우디 왕자가 나와? 박혜연이 놀라기도 전에 진세현의 호들갑이 들려왔다.
“저 앳되보이는 사람 아슈라 왕자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아들! 이거 봐봐. 맞지? 맞지?”
“어어. 맞는데······”
“강석 진짜 말도 안되게 유명해졌다. 그럼 지금 사우디 왕자랑 교황이랑 지금 저렇게 인사하는 거야? 와 미쳤다. 저기 어딘데 강석이 간 거지? 런던에 왜 교황이랑 사우디 왕자가 있어? 다른 사람들도 유명한 사람들인가?”
진세현이 복숭아주스를 벌컥 들이키며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이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겠다고 강석의 팬카페 가입창을 띄웠다.
가입자 수가 며칠 사이에 크게 늘어있었다. 교황 성하가 비엔날레에 방문한 이후에 급격하게 늘어난 것으로 보였다.
박혜연도 조금 더 자세히 상황을 알아보고자 진세현의 핸드폰 화면으로 고개를 살짝 내렸다.
그 순간.
컴퓨터 화면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마이크 켜졌다!] [24시간 스터디 카페에 있다가 급하게 줄 이어폰 꽂음. 순발력 미쳤다 나] [거기 어디예요?] [어차피 강석 화면 안 봄. 물어봐도 소용없음] [(₩10,000) 화면 좀 봐줘 ㅠㅠㅠ]외국어와 한국어가 뒤섞여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갔다. 박혜연과 진세현도 화면을 바라봤다.
어느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죄다 화면에서 사라졌다. 정확하게는 카메라 옆이나 뒤에 있는 자리에 앉은 것 같았다.
그리고 나무상자를 쌓아올린 것 같은 텅 빈 무대 위로 누군가 걸어나왔다. 펭귄 같은 움직임이었다. 박혜연을 그 사람을 쉽게 알아봤다.
“브리즈 우드······”
“브리즈 우드? 그게 누군데? 혜연이 너는 누군지 알아?”
브리즈 우드.
소더비의 회장이었다.
ㅡ 반갑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강석의 실시간 스트리밍을 보고 있을 분들도 반갑습니다. 저녁 식사는 맛있게 준비하고 있으신가요?
런던은 서머타임 시차로 인해 오후 6시 정도였지. 새벽 2시에 떡볶이를 먹고 있던 진세현과 박혜연이 어설프게 웃었다.
ㅡ 뭐.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 그러셨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하. 어찌되었든 오늘 이렇게 소더비의 특별한 경매에 찾아와주신 걸 감사합니다.
소더비의 특별한 경매.
영국 런던의 소더비 경매장이라는 소리에 채팅창이 다시 한 번 시끄러워졌다.
ㅡ 오늘의 경매 주제는 특별합니다. 오늘 경매로 올라오는 물건은 단 하나. 요즘 떠오르고 있는 작가, 우리 소더비에서 주목하고 있던 젊은 신예 강석의 다음 작품 의뢰권입니다. 이 특별한 경매로의 초대를 흔쾌히 응해주신 귀빈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 경매가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방송되는 걸 허락해주신 것 또한 감사드리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진세현과 박혜연이 또 멀리 가버린 제 고등학교 동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메꿀 수 없는 재능의 격차가 저기에 있었다.
* * * *
염진석 스테파노 추기경은 준비된 의자에 앉아있는 교황을 바라보며 진땀을 뺐다. 교황 성하 근처에 앉아있는 얼굴 하나하나가 묵직했다.
브리즈 우드와 교환하듯 무대로 올라가는 잭 카터를 바라보며 염진석 스테파노 추기경이 천천히 흰자위로 주변을 살폈다.
– ‘(교황 성하께서 이 소더비의 경매를 입찰자로 방문해주시니 영광일 따름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날에 많은 분들이 함께하셨어야 하는데···아무래도 미디어 노출을 꺼리시는 분들이 있으셔서, 인원이 적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교황을 이곳으로 안내할 때 소더비의 직원 하나가 사족을 붙였다. 원래는 사람들이 더 올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러운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인원이 대폭 축소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격이 떨어지는 경매에 허울만 좋게 VVIP라 이름 붙이고 초대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까, 지레 사족을 붙이는 느낌이었다.
‘그러지 않았어도 될 것 같은데?’
이 거대한 대형 창고부터 각 인원별로 준비된 롱패딩. 그리고 롱패딩을 입고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만 봐도 이 경매의 돈단위가 남다를 것이라는 게 느껴졌다.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일단 제일 오른쪽 끝부터···사우디 왕자인 아슈라 빈 무하 빈 사르만 알 사우드, 인도의 브라만 계급으로 스캔들로 유명한 수집가 미스타르 레가 자, 중국의 대부호이자 사업가 동휘호, 그리고 요즘 미국 월가의 큰손이라고 불리우는 시드 프리먼까지. 두어명은 누군지 모르겠지만 저들 역시도 본인은 미처 모르는 부자일 게 분명했다.
‘확실히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을 열어놓는다 하니까···대부분이 미디어 노출에 익숙한 형제님들만 모인 느낌이네.’
자기의 얼굴이 신문에 대자로 박혀도 신경도 안 쓸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저들은 미디어에 노출되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카메라 한 대만 자신을 찍는 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는 눈초리였다.
‘죄다 발 아래에 다이아몬드로 된 방석을 깔고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부자 형제님들의 모임이군.’
중간 중간 위치한 산강그룹의 박선우 대표나, 봉은사의 법경스님, 그리고 강석과 함께 하던 양선구라는 작가는 아무래도 강석이 초청한 인물들일 테고···뻑뻑해져 오는 흰자를 굴려 염진석 스테파노 추기경이 한쪽을 응시했다.
‘저 형제님은 근데 대체 누가 초청한 거지···?’
패딩을 펼쳐 안에 입은 벨벳 정장을 드러내고 있는 콧수염의 중년인. 같은 런던에 위치한 옥션하우스의 또 다른 양대산맥. 큰형님 소더비에 밟혀사는 크리스티의 회장, 왓슨 베이커였다.
왓슨 베이커는 보기만 해도 속이 쓰리다는 얼굴로 무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형제님을 데려오기를 잘했습니다. 강석의 얼굴을 보니 기분이 조금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교황이 기분 좋은 낯으로 속삭였다. 강석의 얼굴을 봐서 얼굴이 핀 사람이 누군지 모를 정도로, 웃음이 만개한 얼굴이었다.
염진석 스테파노 추기경이 교황에게로 몸을 숙였다.
“(춥진 않으십니까?)”
ㅡ ·········그럼 본격적인 경매에 들어가기 앞서···,
“(네. 따뜻합니다. 좋은 패딩이네요. 이번에 선물받은 패딩은 좀 난해한 감이 있었는데 편안해요.)”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왜 이런 아이스 대형창고에서 경매를 진행하는 걸까? 염진석 스테파노 추기경이 시린 코끝을 슬쩍 쓸었다. 허리를 펴면서 마이크를 잡고 말하던 잭 카터와 눈이 마주쳤다. 염진석 스테파노는 집중하지 않고 있었던 게 들킬까 서둘러 시선을 내리려는데 잭 카터가 그의 속내를 읽은 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ㅡ …지금부터 강석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들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석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시간?
염진석 스테파노 추기경과 교황 첼레스티노 6세가 서로를 바라봤다.
그 천재를 설명할 시간이 딱히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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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타프 레가 자가 강석에 대해서 설명하는 시간을 가진다면서 카메라에 마이크를 끄는가 싶더니, 무언가를 끌고 오는 직원들을 나른한 눈으로 쳐다봤다.
‘강석이라·········’
천천히 무대로 걸어가는 강석이란 이름의 소년을 미스타프 레가 자가 응시했다. 인도에 박혀있던 그로썬 근래에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인물이었다.
강석의 의뢰권 어쩌고 하는 경매라는 건 기억하고 있었지만 굳이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인도를 잠깐 나오는 핑계거리에 적당하다 싶어서 나왔을 뿐이니까. 미스타프 레가 자가 손톱 밑을 튕겼다.
“(미스터 자. 이렇게 만나뵙게 되는 군요.)”
“(만나서 반갑다.)”
막간을 이용해 말을 걸어오는 이들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시드 프리먼과 동휘호의 곁에서 멀어져 이쪽으로 오는 두 치를 바라보며 미스타프 레가 자가 고개를 기울였다.
“(누구?)”
“(아, 저는···!)”
“(나부터 설명하겠다. 나는···)”
미스타프 레가 자가 한숨을 삼켰다. 인맥은 충분한데. 나른한 눈 속에 지루함을 감춘 미스타프가 턱을 괴었다. 그때였다.
쿠웅!
나무상자로 쌓아올린 무대에 어렵게 올라가는 물체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미스타프 레가 자와 그에게 말을 걸러온 두명의 인물도 정면을 바라보는 상황이 되었다.
얼음이었다.
거대한 성벽과 같이 커다란 얼음.
지루한 눈으로 거의 의자에 늘어져있던 아슈라 왕자가 몸을 일으킨 것도 그때였다.
‘호오.’
저렇게 커다란 얼음에 작업대를 두른 강석이라는 작가가 앞에 있으니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었다.
– ‘…지금부터 강석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들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설명하는 시간.
그건 강석의 얼음 조각쇼라도 보여주겠다는 뜻인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이크를 잡은 강석의 뒤로 사다리가 설치되었다.
강석이 쏠린 시선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담담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의뢰를 하시려면 제가 어떤 작품을 만드시는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그럼 재밌게 관람해주시길 바랍니다.)”
미스타프 레가 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마치고 사다리를 바로 올라타는 강석의 등을 쳐다보았다. 군더더기 없고 망설임이 없다. 별다른 미사어구가 없는 것으로 보아 실력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흥미가 좀 동하는 것 같기도 하고. 미스타프 레가 자가 재밌는 장면만 보여준다면 돈을 써주겠다며 강석을 응원할 때였다.
옆에 앉아있던 이름모를 몇몇 얼굴에 흥분과 기대가 번져가는 것이 보였다. 호오. 나랑 아슈라 왕자 말고는 저 작가에 대해서 다들 아는 게 있나? 미스타프 레가 자가 고개를 빼었다.
강석이 사다리에 오르는 동안.
소더비의 고미술품 전문 유명스페셜리스트 잭 카터와 회장 브리즈 우드도 황홀한 것을 바라보듯 강석을 바라보고 있는 것 또한 미스타프의 눈에 선명하게 잡혔다.
‘이 무슨 재밌는 광경이란 말인가?’
저 아이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미스타프 레가 자가 이제는 조금 기대가 된다는 눈빛으로 강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강석이 거대한 얼음 덩어리 위에 올라갔다. 그는 땅의 맥을 보듯 얼음위를 손으로 쓸며 바라보았다.
자세의 구조 상 기사처럼 한쪽 무릎을 얼음에 대고 있었으나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보다 더 높은 곳에 있어서인지 특유의 표정 때문인지 결코 정중해보이지 않았다.
순종보다는 반역.
충성보다는 군림.
오만한 시선이 얼음을 훑었다.
어째서인지 경국지색을 바라보듯 저 얼굴에 홀려있다는 걸 미스타프가 깨닫기도 전에 강석이 망치를 빼어 들었다. 그리고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어느 한 곳을 내리쳤다.
‘저걸로 될까?’
저 얼음덩어리를 저 작은 망치로 조각하겠다고. 아슈라 왕자가 어느 세월에 저걸로 조각하겠냐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스타프도 그 말에 동의했다. 저걸로 어느 세월에? 동했던 흥미가 가라앉으려고 하기도 전.
쩌저저적,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투명한 얼음 속에 둥근 선 하나가 귀퉁이에 그어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신의 손이 얼음 안에 하얀 분필로 어떤 선을 그어버리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푸르고 회색의 투명한 얼음 안에 새겨진 하얀 선을 바라보며 어여쁘다, 생각함과 동시에 얼음의 귀퉁이가 떨어져내렸다.
쿵!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나무상자 귀퉁이에 충격이 박히며 얼음꽃이 피어나듯 얼음덩어리가 깨어져나갔다. 허. 미스타프가 입을 벌렸다. 무어라 하기도 전에 강석은 북을 두드리듯 신명나게 얼음덩어리를 내리쳤다.
마치 어딜 내리치면 어떻게 갈라질지 안다는 듯 망설임이 없었다.
쾌도난마.
그야말로 속전속결의 신명나는 춤사위였다.
하얀 선이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그어지며 수개의 얼음꽃이 무대 위에 피어올랐다. 쿵. 쩌저적, 쾅! 쩌저저적, 뇌를 뒤흔들듯 울리는 소리가 텅 빈 아이스 냉동창고에 벽에 부딪혀 진동을 울렸다.
신의 발걸음 소리인가 신이 검을 휘두르는 소리인가, 신의 손이 움직이는 소리인가.
점점 진동이 커지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얼음 속에서 울창한 나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강석이 끌을 칼갈듯이 문대자 얼음에 나뭇잎이 피어나듯 백탁이 끼는 걸 사람들이 멍하니 바라봤다.
빠른 정도가 아니었다.
라이브 스트리밍 채팅창이 폭주하듯 치솟기 시작했다.
이곳에.
새로운 역사가 쓰이고 있었다.
165. 어마어마한 거인이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