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65
165
* * * *
어마어마한 거인이 있네.
여기 우리는 그의 눈에 들지도 않네.
···
이마로 하늘을 편평하게 다지듯이
지상에서 그는 온 산을 발로 다지네.
– 미켈란젤로가 카라라 산을 돌아다니면서 지었던 시의 일부 –
* * * *
[·········CG아니야?] [이게 가능하다고?] [강석은 여태까지 리얼 라이브 스트리밍만 해왔음] [깜짝카메라 이런 거 아닌가······?] [우리 강석 오빠 실력이면 저런 것도 가능하거든요!] [맞아!] [아 이래서 빠가 까를 만들지······] [솔직히 뭐 믿어져야 믿짘ㅋㅋㅋㅋㅋㅋ]처음에는 대다수가 현실을 부정했다.
워낙 세상의 기술력이 발달했기도 하고, 현실적으로도 말이 안되어서였다.
이곳에 모인 사람 중 5분의 1은 조각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이었다. 얼음조각이란 경우에 따라서는 어떻게 보면 대리석 조각보다도 대중하고 가까웠기에 그들은 채팅창에 침이 튀길 것 같은 기세로 키보드를 두들겼다.
[저게 얼마나 많이 안 되는 상황인지 설명을 해드리자면······] [아이스카빙 대회에서 수상경력이 있는 자격증 취득자입니다. 얼음 조각은···] [일단 제가 아는 것을 설명드리면······] [아마 이건 강석작가님의 이벤트 조작으로 생각되는 게···]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바를 줄줄이 늘어놓았다.
올라가는 속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어떤 이들은 슈퍼챗 기능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본인 의견을 피력했다.
선지자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채팅창을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화면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강석의 신비로운 조각술 때문이었다.
얼음덩어리를 망치로 두들기고 끌로 표면을 긁고 물을 뿌린 꼬치로 표면을 빠르게 가다듬고 소금을 뿌려 유지시킨다. 일반적인 얼음 조각을 할 때와 같은 행위인데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했다.
또 한번 스친 곳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내려갔다. 보통 소금을 뿌리지 않고 몇 번이나 묘사 과정을 반복하여 만드는 얼음 조각하고는 결이 달랐다.
애초에 빙등축제나 실내얼음광장에서 볼법한 얼음들은 얼음을 벽돌쌓듯이 쌓아놓고 그걸 다듬는 행위라, 이렇게 얼음 속에서 선이 그어지는 예술들은 유래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치 그가 발을 굴릴 때마다 산이 무너지고 빙하가 깨어지듯, 작품에서 불필요한 부분이 떨어져나갔다. 떨어져나간 부분은 파사삭 아름답게 깨졌다.
손 움직임 하나 하나 몸을 돌리는 순간 순간이 아름다웠다. 조각을 하는 이 모든 순간이 마치 행위예술처럼 받아들여졌다.
“············”
“··················”
실시간 스트리밍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놓칠세라 눈 깜빡임 한 번도 아쉬워하며 화면에 집중했다.
어느새 얼음은 투명함을 잃고 백색의 하얀 아름드리 나무를 닮아 있었다. 강석은 이제 원처럼 꽉 찬 나뭇잎 부분은 천장과 연결해놓은 안전장치에 기대어, 밟고 있었다. 얼음을 밟으며 한발 한발 이동할 때마다 그가 손에 쥔 끌과 망치의 만남으로 나뭇잎 조각들이 새겨졌다.
얼음이란 성벽에 새겨지는 부조 같은 느낌이었다.
투명함과 하얀색을 자유자재로 표현해 조명과 맞닿은 얼음이 바다 표면처럼 반짝였다. 아름다운 나무였다. 실존한다면 누구나 정원에 이 나무를 심고 싶을 정도로···유려했다.
또한 하나하나 새긴 나뭇잎 조각들은 사이에는 여백이 없어 하얀 대륙이 핀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로 빼곡했다.
그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화면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그리고 화면 안에 있던 이들도 탄성을 내질렀다.
[기사 떴네요. 영국 런던에 사우디 왕세자의 아들, 아슈라 빈 무하 빈 사르만 알 사우드가 한국인 화가와 관련한 비공개 초대경매에 참여하려고 머물고 있었다고요. 경매 날짜도 런던 기준 당일 맞고, 저기 아슈라가 있는 것으로 보아 진짜인 듯 싶습니다.] [아슈라 왕자가 네 친구냐. 아슈라가라니?] [강석은 한국인 화가가 아니라 한국인 조각가입니다.] [외국에서는 강석을 화가로 치나보죠.]그래서 대다수가 채팅창에 갑작스럽게 붙은 시비도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 스트리밍 채팅방에 매니저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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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장이라는 이름의 대형 냉동창고.
차가운 온기.
휘날리는 인공적인 얼음싸락.
쩌저적, 쩍, 무언가가 터져나가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쾅쾅 바닥에 떨어져 피어나는 얼음꽃.
얼음과 바위의 거인이 난동을 피우는 것 같은 모습에, 제일 오른쪽에 있던 아슈라 왕자가 입매를 꿈틀거렸다. 그의 손발은 냉동창고에 있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땀에 차있었다. 아슈라 왕자가 발바닥을 꿈틀거렸다. 간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웃음을 참으며 생각했다.
‘이거지. 이거라고.’
잠깐의 지루함을 견딘 보람이 있었다.
– ‘(예술을 사랑하시는 아슈라 왕자님이시기에 꼭 모시고 싶습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소더비의 주인장. 브리즈 우드는 보기 드문 진지한 어조로 자신에게 그렇게 의견을 전해왔었다. 아슈라는 그때만 해도 심드렁했다.
그는 예술을 사랑했지만 사랑하는 만큼 눈이 저 자신이 질릴 정도로 높아져만 갔다. 어떠한 아름다움을 알아버리면 제 눈은 그보다 더한 아름다움을 본능적으로 찾게 되었다.
돈은 아무리 예술에 퍼부어도 사라지지 않고, 높아진 눈높이로 사들인 작품들은 제 갈증을 쉽게 해결해주지 않았다.
아름다움.
이건 정말 어려운 논제였다.
아슈라가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옆에 있는 미스타프처럼 수준 높은 예술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아름다운 여인을 말할 때 우리가 말하는 그 아름다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고미술품으로 빠져갔다. 직관적인 아름다움은 그곳에 있으니까. 화려한 건축물. 화려한 색감. 화려한 이목구비. 화려한 구도. 화려한 묘사실력. 화려한, 화려한, 화려한!
아슈라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사랑했고···이 시대는 그런 단순한 아름다움에 질려가고 있었다. 아슈라는 갈급증에 시달리는 환자처럼 아름다움을 찾아다녔다.
미스타프 레가 자는 그저 수집가라는 직업명이 마음에 들어서 고미술품을 사들였지만, 아슈라 본인은 미스타프보다 돈이 많음에도 그보다도 절박하게 고미술품을 사들였다.
아슈라 왕자에게는 어떻게 보면 어릴 때부터 함께해 온 정신병 같은 갈급증을 해결할 수 있는 존재들이 고미술품이었다. 나라 각국별로 아름다운 정원도 사들이고, 미술관도 사들이고, 작가도 사들이고, 작품도 사들이고, 아름다운 작가도 사들였다.
그럼에도 아슈라 왕자는 어린 나이에 사막의 고열에 시달리듯 메말라갔다. 어쩔 때는 시린 추위에 시달리고, 어쩔 때는 너무 더워 짜증이 나고, 또 어떨 때는 이 드넓은 세상에 저 하나 채우는 미술품 하나 없나 짜증이 일었다.
유일하게 이 눈이 아무리 높아져도 처음과 같이 마음에 드는 르네상스 시대 3대 거장의 작품들은 국가가 내놓지를 않았다. يَا قِرد(원숭이같은 놈들).
아슈라 왕자의 눈동자가 깊어졌다.
원래라면 안 왔을 거다. 몇달 전에 접촉해왔을 때 아슈라 왕자는 안 가는 쪽으로 확실히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바꾼 건, 그 르네상스 거장들 작품들을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던 교황이 3일 연속으로 강석의 을 보러 갔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였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아슈라 왕자는 그 길로 전용기에 탑승해 영국으로 날아왔다. 다행히 영국 놈들은 그 역사에 걸맞게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아슈라 왕자는 그것들을 눈요기하며 며칠을 기다렸다.
중간에 장소를 변경하거나, 실시간 방송을 틀겠다 선언하는 건 아슈라 왕자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제가 전용기를 타고 왔을 때 세상이 그를 주목했을 테니까. 물론 짜증은 났었지만 지금 이 순간 짜증도 날아갔다.
‘아름다워.’
어째서인지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속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어째서일까.
우상숭배하지 말라던 신의 교리를 받들면서도 아름다움에 굴복해 조각을 하던 것이 미켈란젤로여서 그런 걸까.
아아.
이 얼마나 모순적인 아름다움이란 말인가.
아슈라 왕자가 깊은 눈동자로 나무 밑동에 기대어 자고 있는 노인을 조각하고 있는 강석을 바라보았다.
‘노인이라······’
저보다 나이가 많은 강석을 바라보는 아슈라 왕자의 눈빛은 어른이 아이를 보듯 푸근하게 풀어져 있었다. 귀엽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노인을 저리 잘 조각할 수 있다니, 평소에 사람을 충분히 살피는 아이인 것 같았다.
‘사람에 대한 정이 많은가 보구나.’
으음. 아슈라 왕자가 턱을 괴었다. 저 강석이라는 인간을 통째로 납치해서 전용 비행기에 탑승하고 싶었다. 언제 지루해했는지가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로 아슈라 왕자는 신이 나있었다. 저 자가 있으면 제 갈급증도 해결이 될 터였다.
다른 녀석들보다는 내가 제일 절실할 테니 내가 가져도 되지 않을까. 아슈라 왕자가 본인 주의의 자기 합리화를 시작했다.
아슈라 왕자가 팔걸이를 툭툭 쳤다.
지금 당장 이 냉동고와 저 작품, 그리고 저 조각가를 세트묶음으로 사버리고 싶었지만 아직 경매는 시작도 안했다.
‘괜찮아.’
진정해라, 아슈라.
돈이 없다면 그 돈이 모자라지 않았는지 의심해라. 만고의 불변과 같은 이야기대로 이 예술을 조금만 더 감상하다가 질러도 늦지 않을 것이다. 르네상스 3대 거장의 작품 말고는 아슈라 본인이 사지 못한 것은 없었다.
아슈라 왕자가 마음과는 전혀 달라보이는 여유로운 낯으로 강석을 바라보았다.
강석은 그런 아슈라 왕자의 이글거리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를 숙이고 마지막 작업에 몰두했다. 그리고 노인의 신발이 완성되었을 때였다.
강석이 천천히 얼음 조각에서 떨어져나왔다.
조각이 되는 과정이 단 한 번도 지루하지 않았으니, 얼마나의 시간이 걸렸는가 역시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완성되었느냐가 중요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성공적이었다.
허공에 하얀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듯 차오른 불투명한 백색의 나뭇잎. 그리고 거대한 하얀 나뭇잎을 받들고 있는 단단한 나무의 몸통. 그리고 나무 밑동 부분에 기대어 잠을 청하고 있는 초로의 노인.
한 편의 동화를 보는 것 같은 장면이었다.
이 투박한 얼음으로 이렇게 순식간에 저렇게 주름살까지 표현하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싶은 의심보다도 먼저 아름다운 이 작품을 어떻게 보관할까, 에 대한 고민이 모두의 머릿속에서 피어올랐다.
얼음을 빚어 만든 비현실적인 조각은 순식간에 만들어냈다고는 믿기 힘든 맛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이것이 결국은 녹아내릴 얼음이라는 게. 가지고 싶다. 인간의 본능적인 탐욕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비단 냉동 창고 안에 있던 사람들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얼음이라니 너무 아쉽다.] [ㅠㅠㅠㅠㅠ저거 어떻게 보관 못하나?] [강원도에 있는 그 얼음 광장은 365일 유지되고 있지 않나? 실내 온도 조절이라던가 그런 것만 하면 충분히 유지 가능할 것 같은데?] [거기 1년 내내 개장 맞음?] [외국 호텔 같은데 가보면 입구에 얼음으로 조각들 조형되어 잇고 그러던데···유지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스트리밍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도 슈퍼챗을 쏠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다급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스트리밍을 시청하던 시청자들, 그리고 경매장에 초대장을 받고 참석한 이들 전부가 얼음 조각을 어떻게 보관해야 할 지 고민하는 그때였다.
강석의 무던하다 못해 무감장하여 차가운 얼굴이 브리즈 우드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얼굴 속, 적갈색 눈동자가 이 냉동 창고 안에서 유일한 뜨거운 것이라는 듯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브리즈 우드를 질책하는 것 같은 시선에 사람들이 의아함을 내비쳤다.
채팅창 뿐만이 아니었다.
지켜보고 있던 인물들이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교황 성하. 어쩐지 강석 작가님의 얼굴이 짜증이 서린 것 같지 않습니까?)”
“대표님. 석이 군의 얼굴이 평소보다 조금 거친 것 같지 않습니까?”
몇몇이 의문을 드러내는 그때.
강석이 입을 열었다.
“(이제 진행하시죠.)”
“(······우우. 아쉬워서 그러죠. 카메라에는 잘 남았겠죠?)”
브리즈 우드가 동조를 구하듯 잭 카터와 양선구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연습용 조각이 어떻게 되었는지 같이 보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본인들도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브리즈 우드에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브리즈 우드와 그들의 눈빛 교환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몇몇이 감상에서 깨어나 의문을 구하는 찰나.
브리즈 우드가 한숨을 푹푹 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어느 한 곳을 바라보았다.
멀리있던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등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강석도 다시 조각 쪽으로 몸을 돌렸다.
완성을 즐길 새도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변화였다.
[뭐지?] [·········제발 강석아, 설명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도 좀 알자]작은 소란이 일었다.
그리고 그 소란 속에서 처음으로 이변을 눈치챈 것은 중국의 대부호이자 사업가, 동휘호였다.
···덥다.
아까보다 더워졌다?
동휘호가 눈썹을 치켜 올리는 순간.
겨울에 여름이 덮쳐오듯 빠르게 온도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166. 천재는 끊임없는 인내의 성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