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63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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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삶을 들여다보려면 두 권의 전기가 필수적이다.
하나는 1550년에 초판이 나오고 1568년에 개정증보판이 출판된 바사리의 [가장 위대한 화가, 조각가, 건축가의 생애]이고, 또 하나는 1553년에 출판된 아스카니오 콘디비의 [미켈란젤로의 생애]이다.
둘 다 미켈란젤로가 사망하기 이전에 나온 전기라는 점에서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약간의 차이점이 있긴 하다.
바사리의 전기는 미켈란젤로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13세기 말부터 16세기까지 150여 명의 전기를 묶어 방대한 책을 내었고, 콘디비는 미켈란젤로의 전기만을 다루었다는 점이 일단 첫번째다.
그리고 바사리와 콘디비는 둘 다 미켈란젤로와 가까운 관계였지만 콘디비가 조금 더 미켈란젤로의 의중을 반영하여 썼다는 점이 두번째다.
어찌되었든 이 전기는 상당히 오래된 고전적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미켈란젤로의 생애] 같은 경우에는 스승인 미켈란젤로의 이야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신화 하나를 만들어냈다고 사학자들에게 비판을 함에도 불구하고···앞서 말했듯 미켈란젤로의 삶을 들여다보려면 두 권의 전기가 필수적이다.
그와 가까웠고 실제로 옆에서 보았던 이의 이야기는 상당히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켈란젤로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소묘라거나 자료들을 죽기 전에 죄다 불태워버렸기 때문에 특히 그러하다.
이래서, 기록이 중요한 거다.
* * * *
짙푸른 하늘.
녹음이 진 벤치에서 공민석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그의 손에는 양선구가 반강제로 쥐어줬던 명함이 들려있었다.
두꺼운 질감이 짧게 자른 손톱끝에 걸려왔다.
– ‘자네.’
– ‘······아, 안보여. 비켜. 아, 네?’
– ‘예술 평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남?’
예술 평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공민석은 양선구가 명함을 주기전 건네왔던 말을 떠올렸다. 사실 생각해본 적이 없다.
– ‘자네. 내가 볼 때는 꽤 재능이 있어 보여. 생각이 나면 연락이나 주게.’
그러나 이제 생각을 해보아야만 할 것 같았다.
– ‘평소 후학 양성에 히, 힘을 쓰신다고 들었는데···이, 이것도 그런 겁니까?’
– ‘···허? 나에 대해 꽤 잘 알고 있어? 으음. 그렇지만 그건 주로 한치 앞을 못 보는 청소년들 위주고, 이렇게 스스로 앞길을 개척해야 하는 어른에게 말을 거는 것 자체는 내 손에 꼽네만.’
양선구는 그렇게 말하며 공민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팔을 들어 올렸다. 품이 넓은 소매 자락이 산들바람처럼 흔들렸다. 시야가 가려진다 싶은 순간, 양선구는 공민석의 어깨를 툭툭 가볍게 두들겼다.
– ‘자네의 재능이 보여서 한 말이야.’
재능.
어릴 때 백일장이나 미술 시간에 학교 선생님과 반친구들한테나 들었던 말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소리였다. 재능이 보인다. 공민석이 명함을 퉁퉁, 튕겼다.
이미 잃어버렸을 때를 대비해 사진도 찍어놓았건만 공민석은 퉁퉁 튕기다가도 명함이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표정으로 명함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옆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도 줄 진짜 말도 안 되게 기네.”
“관람시간을 줄이면 아쉽고, 안 줄이자니 줄이 길어지고···여기 관리하는 사람들도 고민이 길겠다.”
“아닐걸? 요즘 사람들이 여기 기다리느라 한국관이랑 국제전 주변 돌아다닌다고 좋아 죽잖아. 지금 줄길이만 따지면 본전시보다 여기가 더 긴 것 같던데···”
“그러니까 사람들 몰렸을 때 다른데 다니다 나중에 오자니까.”
한국인들이었다.
이탈리아 한복판에서 한국인들이 와글거리는 풍경을 공민석이 낯설게 바라봤다. 처음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개막할 때만 해도 상상도 못해본 광경이었다.
공민석이 사람들이 질려하면서도 걸어가는 곳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사람들처럼 다른 곳은 그저 그런데 유독 한국관만 사람들이 개미굴처럼 들끓었다.
‘다 강석님의 을 보러 온 사람들이지.’
교황이 삼일 내내 찾다 못해 추기경 예하들이 지금도 당번을 서듯 오는 풍경이 신기해 일시적으로 쏠린 느낌이었다.
마치 예전에 한국에서 탕후루가 유행했던 것과 같은 풍경이랄까. 들어 보니 한국인들 사이에서 강석의 과 관련한 챌린지가 유행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무리 챌린지가 유행해도 그렇지, 이탈리아 여행온 한국인들이라면 다들 이곳에 들렀다 가다니···이곳이 비엔날레가 맞는지 근본적인 의심이 들었다.
‘요즘 비엔날레는 다 죽어가는 추세라고 했는데···’
벌써 몇년전에 외국에서는 비엔날레가 끝나가는 추세인데 언제까지 한국만 비엔날레 비엔날레거릴 거냐면서 불만을 토로하던 큐레이터 친구가 생각났다.
정말 죽어가는 추세였다면 이건 거의 부활 수준의 심폐소생술이었다.
‘부활 수준이 아니지.’
강석님은 사람들이 어려워 멀리하게 되는 미술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강석의 을 본 사람들은, 미술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간 사람처럼 굴었다. 몇몇 사람들이 꼭 한국관 다른 작품들도 구경을 하다 돌아가는 게 그 증거였다.
‘곧 키오스크가 놓는다고 했었지?’
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 긴 지금.
키오스크로 대기 예약을 걸고 연락을 받을 수단이 생기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여유롭게 다른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게 될 터였다.
실제로 지금 비엔날레 본전시보다 한국관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여론도 있었다. 실제로는 본전시보다 많을 순 없겠지만 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뜻이었다.
강석의 작품 하나가 불러온 낙수효과였다.
실제로 이런 기류를 눈치챈 한국관 작가들은 강석이 없음에도 강석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여태까지는 일부 작가들이 강석을 두고 고졸 출신이라거나, 인맥으로 쌓아올린 거품이라거나, 기술만 있고 작품이 너무 단순하다고 뭐라뭐라 악의적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면 요즘은 강석은 거의 성역이었다.
– ‘강석은 진짜야.’
– ‘···솔직히 강석 작가님이랑은 정말 언제 한 번 술 한 번 마시고 싶다. 만나이가 어떻게 되셨지?’
– ‘진짜 솔직히 작품 판매제의 받아본 사람들은 강석 작가님 까지 말자. 지금 이 시점에 원래 판매 제의 받기도 어려운 거 알지?’
그들이 주고 받던 내용을 떠올린 공민석이 입을 꼼질꼼질 움직였다. 명함을 쓰다듬으며 바람이 불어오는 걸 느끼던 공민석은 생각했다.
예술 평론은 모르겠고, 다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 사람들에게 강석의 작품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고 싶다고. 단순한 작품이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이게 관심이라면···’
공민석은 명함을 퉁, 튕겼다.
···곧 연락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 * * *
“석아!”
얼음을 재차 내리치려던 강석이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가 들린 곳은 아까 양선구가 서있던 곳보다 조금 뒤였다.
살짝 고개를 내미니 작업 중인 사람을 왜 방해하냐는 브리즈 우드와 잭 카터의 표정에도 굴하지 않고, 무언가를 들어 올리는 양선구가 보였다.
‘뭐지?’
저게 뭔가 의문이 드는 순간.
깨달음은 빠르게 찾아왔다.
저 검은 물체를 잊을 리가. 카메라였다. 카메라를 삼각대에 연결한 채, 양선구가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강석이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양선구가 먼저 제안했다.
“석아! 이번 것도 녹화를 하건 방송을 하건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아.”
양선구의 의도를 단 번에 이해한 강석이 짧게 탄성을 내질렀다. 기록이었다.
이렇게 거대한 얼음을 다룰 일도, 그리고 다른 작품과 달리 세상에 남지 않을 게 자명한 얼음 작품이니만큼 촬영을 해야 하는 거 아니겠냐는 뜻이었다.
확실히 지금 촬영을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경매장에서 시연할 때에는 하나같이 쟁쟁한 인물들이 지켜보는 중일 텐데 그들에게 허락도 없이 스트리밍 방송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스트리밍 방송을 하기는 아쉬운데.’
강석이 연작과 을 스티리밍 하지 않고 녹화만 한 이유가 뭔가. 스트리밍을 해도 되는 것이 있고, 녹화로 해야만 하는 것이 있어서였다.
이유는 단 하나.
녹화를 하는 이유는 관람자가 누가 되었든 그가 내가 제작한 영상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직접 관람한 뒤에 놀랐으면 좋겠어서였다.
미리 보지 않아야 더 극대화되는 감동도 있는 법이었으니까. 예고편은 기대감을 승격시키기도 하지만, 과한 스포일러는 기대감이나 봐야 한다는 사명감을 없애버리기도 하는 법이었다.
현재 비엔날레의 이나 씨엘로 갤러리의 연작에 대한 영상이 채널에 올라가지 않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그래서 그것들은 충분히 사람들이 관람을 한 이후에 녹화 영상을 올릴 계획이었다. 풀영상과 편집영상을 같이 올리게 되겠지.
여태까지는 그와 같이 판단 기준이 명확했다.
양선구가 어떻겠냐는 표정으로 카메라 삼각대를 들어올리는 걸 보며 강석의 눈빛이 깊어졌다.
하지만 얼음은 기존처럼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는 않았다.
얼음이라는 유한한 재료를 가지고 마법과 같이 빠른 속도로 작업하는 현장감을 살리려면 스트리밍 즉, 실시간 방송이 더 매력적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경매자에 참여하는 의뢰자의 흥분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깜짝 시연쇼를 할 계획이었기에 얼음이란 소재 자체가 숨겨져 있는 게 좋았다. 그들이 경매장에 참여하기 전에 얼음을 빠르게 다듬는 장면을 보아서는 그 경악과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어쩐다.’
강석이 짧은 시간동안 뇌에 몰아치는 정보들을 처리하며 골몰했다.
그리고 짧은 시간동안 굵직한 고민을 끝낸 강석의 입은 얼마가지 않아 열렸다. 강석의 눈동자는 양선구가 아니라 브리즈 우드와 잭 카터를 향해 있었다.
“(혹시 부탁 하나만 더 들어주실 수 있으세요?)”
경매까지 사흘이 남은 시점이었다.
* * * *
경매 당일.
대형 냉동 창고로 가는 길목. 브리즈 우드와 잭 카터는 멍하니 벽을 기대고 섰다. 그들의 눈은 몽롱하게 풀려 있었다.
“(오늘인가?)”
“(네. 오늘입니다. 오늘이면 강석의 그 마술쇼를 다시 볼 수 있어요.)”
“(우린 행운아야. 남들은 그걸 한 번밖에 못 볼 테지만 우리는 두 번이나 보는 셈이니까.)”
“(네. 행운아가 따로 없네요.)”
평소라면 브리즈 우드의 말에 태클을 걸었을 잭 카터 역시 조용히 동의했다. 그들이 떠올리고 있는 것은 사흘 전, 강석이 보여줬던 얼음 조각쇼였다.
얼음덩어리가 지상으로 낙화해 피어나는 얼음꽃 사이에서 칼갈이로 만들어지는 얼음눈보라, 그리고 그 사이에서 피어나던 수많은 작품들.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연습이라고는 볼 수 없는 환상적인 쇼였다.
그걸 셋이서만 봤다는 게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양선구가 왜 카메라를 들고 난리를 쳤는지는 그 쇼를 보고 나서야 이해했다.
그런 엄청난 기술을 촬영이나 영상으로 기록하지 않는 것은 범죄였다.
“(어서 경매가 시작했으면 좋겠군.)”
브리즈 우드가 손뼉을 짝짝 쳤다. 큰 돈 들여서 연 경매에 가격보다도 그 시연쇼가 다시 보고 싶다는 뜻이었다.
평소에 잭 카터였다면 그러고도 한 회사를 이끌어나가는 회장이라 할 수 있냐, 잔소리를 했겠지만 이번에는 잭 카터도 침묵했다. 그도 브리즈 우드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었다.
잭 카터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밝지 않은 곳에서 푸르게 이어지던 강석의 망치질이 떠올랐다. 아름다웠지. 칼을 갈고, 망치로 때려부수고, 쿵쿵 소리과 울려퍼지고 추워 죽겠는데 아름다웠다. 가장 남성적인 미술 행위에서 가장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느끼다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잭 카터가 오늘 밤에 다시 보게 될 그 풍경을 떠올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대기시켜놓은 직원들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뭐지. 짧은 의문을 갖기도 전에 차분함 속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직원들 뒤로, 한 명의 남성이 걸어오고 있었다.
오래된 종이가 떠오르는 피부색에 금색에 가까운 호박색 눈동자. 조화로운 이목구비. 윤기가 가득한 물결치는 곱슬머리. 나른한 눈매. 부드럽지만 어딘가 능글맞아 보이는 미소가 인상적인 젊은 인도인.
미스타프 레가 자, 그였다.
“(이야. 오랜만이야. 카터.)”
브라만 계급에 절여진 미스타프 레가 자는 친절해보이면서도 상류층 문화에 절여져 있었다. 잭 카터는 부드럽게 고개를 숙였다. 결코 깊이 숙이지도, 그렇고 가볍게 대하지도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미스타프.)”
“(이거 장소도 바뀌고, 내용도 바뀌고, 이번 경매에는 이슈가 많아?)”
미스타프 레가 자가 초대장을 흔들었다. 잭 카터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마지막 변동사항 때문에 원래도 소수로 진행될 예정이었던 경매장의 인원수가 조금 더 줄어들게 되었지만 상관 없었다.
“(후회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잭 카터의 확신에 찬 눈동자를 보며 미스타프 레가 자가 그래야 할 거라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방송에 노출되는 건 동의했지만 그래도 많이 노출하지는 말라고. 우리 부모님께서 내 꼬락서니를 보고 날 인도에 가둘 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내가 돈 쓰는 거 좋아하잖아? 미스타프 레가 자가 뒷말을 잭 카터에게 속닥이듯 말하며 직원들의 안내와 함께 대형창고로 향했다.
“(미스타프. 패딩을.)”
“(······패딩? 이 날씨에?)”
롱패딩을 넘겨받는 미스타프 레가 자의 눈이 흔들렸다. 스트리밍 방송을 켠다고 동의를 받더니, 이번에는 4월의 런던 한복판에서 롱패딩까지 건네준다고?
이거 내 예상 이상의 일이 일어나나 본데?
미스타프 레가 자가 입술을 삐뚜름하게 올렸다.
그가 지나쳤다.
잭 카터가 고개를 들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미스타프 레가 자가 멀어지는 발소리와 함께 헬리콥터 소리와 거대한 자동차음,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경매장에 올 인물들이 길목으로 다가오는 소리였다.
잭 카터가 자리에 남은 직원들에게 말했다.
“(위치로.)”
오늘밤.
경매가 열린다.
164. 나는 내 자신이 아주 못생긴 사실을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