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208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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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속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실행합니다.❞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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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일요일, 가을의 시작.
여름이 끝이 나고 가을로 장이 넘어갔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사계절에서 가을을 없애버리겠다는 듯 차가웠다. 겨울 아침 얼어버린 호숫물을 뿌려댄 것 같은 찬바람이 커튼을 치지 않은 창문 사이로 들어왔다.
강채영이 부르르 몸을 떠는가 싶더니 눈을 번쩍 떴다.
여름 이불은 침대 저 멀리에 떨어져 있고, 온수 매트를 꺼내놓지 않은 매트리스는 울소재임에도 돌덩이처럼 차가웠다.
“으으으······.”
이제 겨울이네. 겨울이야. 엄마한테 솜이불 꺼내달라고 해야지. 강채영이 매트리스 주변을 더듬는가 싶더니 담요를 꺼내 들었다. 애벌레처럼 몸을 두른 강채영은 멍하니 침대 위에 앉아있다가 10여 분이 지나서야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일요일이네. 일요일. 강채영이 핸드폰 액정에 적힌 날짜를 확인하며 본능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어느새 핸드폰은 뉴스 탭으로 이동한 채였다.
강채영은 부스스한 머리를 긁으며 방을 나섰다.
차가운 공기 사이로 따뜻한 열기가 2층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바지락 칼국수 특유의 향을 맡으며 강채영이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뉴스 많네······”
강채영의 눈동자가 핸드폰 액정을 훑었다.
[21세기의 헬레니즘, 완벽한 근육에 대한 찬미···! ] [마이애미에 등장한 새로운 관광명소 “마레 갤러리”] [미술가 평론전 | 프레스코와 ]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에 이어 마레 갤러리까지 연전연승! 왜 세계는 강석에게 응답하는가···?] [마이애미 시장과 조각가 강석의 친분 과시] [마이애미 시장 제이든 그린우드 “강석과는 깊은 친분 있어, 그와 토스카나와 피에트라산타 이야기 많이 나누어···”]8월에 이어 9월에도 강석과 관련한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강채영이 읽고 있는 게 예술부문이라지만, 예술부문에서도 다룰 주제는 많을 텐데 대한민국은 그렇다 쳐도 이탈리아와 미국 플로리다주까지 오빠 얘기만 다루니 기분이 묘했다.
강채영은 영어, 이탈리아어, 한국어, 다양한 문장을 슥슥 읽어내리며 계단을 내려가 부엌으로 향했다. 인기척에 애호박을 썰고 있던 백명희가 몸을 돌렸다.
“깼니?”
“안녕히 주무셨어요·········아빠는?”
“응. 오늘 아침 일찍 배송해주기로 한 거 있다고 나갔어.”
“바지락 칼국수 못 먹고 갔어?”
“아빠는 아보카도 명란 비빔밥 먹고 갔으니까 걱정 말고 앉으시죠, 우리 딸.”
“·········우음.”
강채영이 자리에 앉아 숟가락과 젓가락 세팅을 하며 핸드폰을 마저 내렸다.
[특집⑫ 빛의 예술가, 강석이 만들어낸 작품들] [이탈리아 국민들 “강석, 그에게선 이탈리안이 보인다.”] [와 단 두 작품이 걸린 갤러리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 [인터뷰 | 마레 갤러리 관장 시모레 카사니의 눈으로 바라본 강석 “그의 그림자엔 미카엘이 보인다.”] [마레 갤러리 이색풍경···?! 리턴 르네상스, 모사화를 하는 예술가들!]진짜 온통 강석 얘기였다.
강채영의 눈동자가 떨떠름해졌다.
“아니 무슨 죄다 엄마 아들 얘기밖에 없어?”
백명희가 무슨 소린가, 칼국수를 떠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강채영의 눈동자가 핸드폰에 꽂혀있었다. 아. 또 지 오빠 뉴스 보는 구나. 백명희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국자를 움직였다.
“얘는? 네 오빠가 보통 성공했니.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주목받지, 대한민국에선 씨엘로 갤러리로 대박 터트리고 마이애미에선 마레 갤러리로 대박 터트리고. 한국에서 주목할 만도 하지.”
바지락 칼국수로 꽉 채워진 그릇을 내려놓던 백명희가 웃으며 손뼉을 쳐댔다.
오빠가 귀국하는 날에는 무조건 파티겠구나. 강채영이 고개를 내저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때. 백명희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몸을 돌렸다. 손에는 이제 막 냉장고에서 꺼낸 김치가 들려있었다.
“채영이 너, 최율묵 원장님 기억하지?”
“누구. 그 오빠 다니던 학원 원장선생님? 가끔 내장탕이랑 국밥 먹여 보내시던···”
“그래에! 그 조소 학원 원장님. 엄마가 저번에 청대 갔다가 최율묵 원장님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세상에, 청대에 조소 학원이 열 개가 늘었다더라.”
“하나도 아니고 열 개?”
강채영이 놀랐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 치열한 청대 오르막길에 학원이 그렇게나 많이 생겼단 말이야? 강채영이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거 뻥 아니야?”
“얘는···무슨 말을. 하여튼 그렇게 대한민국 엄마들이 아주 조소를 시켜야 한다고 요즘 난리도 아니라잖아. 채영아. 콜라 말고 보리차 먹어. 보리차. 엄마가 다 끓여놨더니 콜라를 아침부터···그러다 이 다 썩는다?”
“제로콜라야.”
“제로는 안 썩니?”
“···칼국수 맛있다. 근데 오빠 대학교 안 갔잖아. 갑자기 왜 입시학원이 흥해?”
“·········으음? 글쎄? 그래도 요즘 기세 보면 흥하고도 남긴 하겠다. 그리고 저번에 석이랑 통화하는데 해외에서 석이만 전문적으로 따라다니는 파파라치들도 생겼다더라.”
“파파리치이?”
강석은 작업에 들어가면 그 자리에서 13시간도 꿈쩍 않는 사람인데 하루 온종일 따라다녀도 한 컷도 찍기 힘들지 않나?
“사진 구하기가 힘들어서 의외로 인기가 많대. 조회수가 보장된다더라.”
·········잠깐 피가 섞인 혈족과 관련한 칭찬에 이맛살이 찌푸려지려고 했으나, 팬카페 매니저로서 이성이 돌아왔다.
‘객관적으로 솔직히 인기가 많을 상(相)이긴 하지.’
일단 자수성가에다 스무살.
아빠랑 엄마의 장점들만 쏙쏙 빼닮아서 외국 연예인 바로 옆에 사진이 게시되어도 꿇리지 않는 외모에 흰 피부에 조금 특이한 적갈색 눈동자.
그리고 유학이력이 없음에도 독특해서 매력적인 이탈리아어와 이탈리안 억양이 섞인 영어 발음.
수상이력과 공식적인 판매이력이 전무(全無)함에도 작품만 만들었다 하면 주목을 받아대니 그런 좋은 기삿거리가 없긴 하지.
또 평소에 워낙 연애부터 시작해서 작업 외에 다른 것에는 관심도 없어서, 그러다 뭐 하나라도 건지면 대박도 그런 대박이 없긴 할 거다.
생각해보면 파파라치하기에 그렇게 좋은 인물이 없을 거다.
유명인은 진짜 피곤하게 사는구나. 귀국하면 고양이나 그려달라고 하려고 했던 강채영이 입을 다물었다. 이쯤 되면 이제 한정판 브러쉬를 훔쳐간 것도 더 이상 들먹이지 말아야 할 것 같았다.
불쌍한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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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었습니다.”
“그래에.”
“물에만 담가놔요. 내가 설거지할게.”
“···그래 주면 고맙지요. 근데 지금 올라가게? 과일 먹고 올라가지?”
“아니 다꾸 재료들만 가지고 내려오려고.”
“아아. 그러렴.”
백명희가 찻물을 끓이기 위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강채영이 신이 나서 올라갔다. 항상 나눔이나 장터에 올라온 걸 줍줍하거나 다있소에서 구매한 것들이나 낙서로 주먹구구 채우던 다꾸도 이젠 안녕이다.
이번에 돈을 모아 장만한 것들을 떠올리며 강채영이 신이 나서 문을 열어젖혔다. 바지락 칼국수를 먹었더니 속이 든든했다.
휘파람을 부르며 저가 좋아하는 거실에서 다이어리 꾸미기를 할 재료들을 소신껏 챙겨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강채영의 고개가 기울었다. 으응? 강채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엄마아! 혹시 내 가위 가져갔어?”
“가위?”
“엄청 세공 화려하고! 작고! 내 재단용 가위가 없어! 혹시 봤어?”
“잘 찾아봐! 엄마가 지 방 들어가면 기겁하면서···”
1층에서 들려오는 백명희의 중얼거림을 뒤로하고 강채영이 온 방을 뒤졌다. 없다. 없다. 여기도 없어. 여기도? 여기도 없잖아. 어딨어. 어딨어. 없어. 없다!
주변을 더듬거리던 강채영은 확신했다. 없어졌다. 낚싯줄도 막 자르고 원단도 막 자를 정도로 날이 잘 선, 최고급 재단용 가위가 사라졌다.
내 한정판 에디션.
강채영이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우리집에 이런 집을 할 사람은 한 명밖에 없지.
“························강서어어어어억!”
* * * *
한국의 가을이 생각나는 높다란 푸른 하늘을 잠시 바라보던 강석이 귀를 팠다. 누가 내 욕을 하는지 귀가 간지러웠다. 뭐. 하든 말든. 강석이 귀를 파던 손길을 내려 캐리어를 마저 끌었다.
공항을 나서는 강석의 발걸음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강석은 푸른 하늘을 바라보다가 사람들의 옷차림을 바라보았다.
대부분 통풍이 잘 되는 듯 하나 얇고 긴 옷을 입고 있었다. 선글라스는 물론이고 모자, 그리고 햇볕을 가릴만한 것들을 챙겨입은 차림새들이 눈에 보였다. 열에 넷은 팔목에 대충 얇은 카디건 하나씩 건 채로 걸어가고 있었다.
바다 짠내 묻은 바람은 온데간데없고, 가을답지 않은 후덥지근한 열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사람들 곁에서 새로운 세상에 왔다는 걸 새삼스레 느끼며 강석이 걸음을 내디뎠다. 그때였다. 저 멀리 누가 봐도 화려하게 이목을 끌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잠깐 잠깐 터지는 플래시. 돌아보는 사람들. 그리고 시선이 집중되든 말든 한 곳만을 맹렬히 응시하는 어린아이와 그런 소년 곁을 보좌하는 사내들.
강석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 순간.
소년이 강석을 똑바로 응시하며 손을 흔들었다.
“(강석! 나의 친구여!)”
초콜릿을 녹여 만든 땅의 색을 가진 소년이 강석을 향해 반가운 웃음을 띠고 있었다.
“아슈라···”
아슈라 빈 무하 빈 사르만 알 사우드.
44개의 미술관을 소유하고, 사우디아라비의 가장 귀한 예술품을 제집으로 끌고 가버리는 자유로운 이단아.
왕세자의 아들이 그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강석은 아슈라 왕자가 여기까지 마중을 나왔다는 것에 놀라며 다가갔다.
“(왔구나! 안 오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아슈라 왕자의 영어에 그 앞까지 다가간 강석이 괜한 걱정을 했단 투로 말했다.
“(내가 약속을 안 지킬 일은 없습니다.)”
이탈리아 억양이 살짝 섞인 영어에 친우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제일 친한 친구는 그런 것에 의심하지 않는 법이지. 아슈라 왕자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 갈까?)”
아슈라 왕자가 턱 끝을 움직였다. 그의 수행원들이 일사천리로 길을 냈다. 마치 무리를 거느린 사자처럼 아슈라 왕자는 여유롭게 그 길의 중간에 섰다.
웃음이 잔뜩 밴 얼굴과 기대가 서린 눈동자.
강석은 그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저번날 만났을 때의 대화가 뇌리를 스치는 것 같았다.
– ‘(아. 기왕이면 나뭇잎은 굉장히 얇고 둥글한 것들이 좋고, 그 근처로는 건물들이 높다랗게 솟은 사원 같은 게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뭇잎의 색깔은···아, 차라리 나무 종류를 말씀드리죠. 잠깐 핸드폰 좀 가지고 그리로 가도 됩니까?)’
– ‘(으응?)’
– ‘(여기 보시면 아, 여기 있네요. 이런 나무처럼···)’
나무를 구해달라 했지.
사시사철 푸르른 나뭇잎을 유지하는 청귤빛 나무를 요청했었다. 그런 나무 한 그루를 아슈라 왕자만 드나들 수 있는 곳에 놓고, 자신에게 나무의 소유권을 양도해준다면 아슈라 왕자의 소원을 들어준다 했다.
아마 그 작품을 당장 작업하러 가자고 하는 것 같았다.
강석은 애타는 그 마음을 모른척하기는 싫었으나, 당장은 어려웠다.
“(짐만 놓고 가도 되겠습니까?)”
“(음?)”
아슈라 왕자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니까 짐을 놓으러 가자고 한 건데?)”
“(···아.)”
데려다 주겠다고 한 건가. 강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막 오랜 비행을 끝마친 터라 데려다 준다면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강석은 아슈라 왕자를 따라 차를 타고 움직였다. 그러다 불현듯 예약해놓은 호텔 이름이나 주소도 말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 지금 어딜 가는 거지?
강석이 잠깐 침묵하다가 옆에서 신이 나서 떠들고 있는 아슈라 왕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소년의 눈빛이 반짝반짝이는 것을 바라보며 강석이 조용히 물었다.
“(지금 어딜 가고 있는 겁니까?)”
그리고 아슈라 왕자는 답했다.
“(너희 집.)”
·····················?
209. 시내에 위치한 번듯한 집이면 매우 영예롭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