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73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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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빈 강의실을 울렸다.
강석이 백색 사원, 화이트템플 왓 롱 쿤에 을 대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뒤로부터 20여 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강석과 양선구, 그리고 아난다와 팬딘은 한국대학교가 세계불교학술대회를 위해 준비해준 강의실 중 하나에 들어가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있는 상황.
넷은 어색하게 정면을 바라보며 준비해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걸 우려하여 봉은사, 정확하게는 주지 법경 스님이 마련해준 장소였다.
– ‘오늘 이 강의실에서는 따로 일정이 없을 예정이니 편하게 이야기하다 가시지요. 차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법경 스님의 하회탈 같은 표정으로도 숨기지 못하는 어딘가 지치고 슬픈 얼굴로 물러서던 걸 떠올린 강석이 숨을 한 번 길게 내쉰 뒤 앞을 바라봤다.
따뜻한 녹차를 내려다보는 아난다와 팬딘의 얼굴에는 말 그대로 얼떨떨함이 가득했다. 볼에는 약간의 홍조가 올라온 것이 을 대여해준다는 소식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싫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 강석이 녹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제가 대여를 하고 싶어도 실제로 이 태국 왓 롱 쿤의 안치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절차가 있을 거고, 옮기는 중에 의 손상이 발생하면 안되니까요.”
“(당연한 말씀입니다.)”
“당연한 말씀.”
“그렇지만, 그렇다고 다른 걸 못하는 건 아니죠. 그래서 계약에 관한 이야기부터 빠르게 진행하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요.”
강석의 말을 팬딘으로부터 전해 들은 아난다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도대체 이 사람은 뭐가 이렇게 빠른가. 성격이 느긋느긋한 아난다로서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강단 있고, 결단력 있게 행동할까.
아난다가 강석을 놀라운 기적을 바라보듯 쳐다봤다. 솔직히 자신들을 뭘 믿고 이렇게 해주냐는 뜻이었다.
이윽고 아난다가 걱정스럽다는 듯 강석과 양선구를 번갈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무엇을 믿고 내어주시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관계자라는 것은 어떻게 믿으며 왓 롱 쿤에 실제로 방문해보시지도 않았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그곳이 가장 잘 어울릴 거라 확신하시는 것이며······애초에 왓 롱 쿤에 대여를 해주신다고 했는데···대여라는 것이 저런 가치를 쉽게 평할 수 없는 상을 무얼 믿고 저희에게 맡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를 믿으십니까?)”
흠.
강석이 아난다의 말에 콧등을 긁적였다.
옆에서는 아난다의 말이 맞다는 듯 양선구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외국의 작자들은 서울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들이었다. 외국에서 몸소 살아봤던 1세대 조각가 양선구는 제가 직접 당해보고서야 알았지만, 강석은 뭣 하러 매를 일찍 맞으려 하는가. 양선구가 차라리 대여가 아니라 판매를 하라는 듯 강석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둘의 걱정스러운 눈빛에도 흔들림 없는 눈빛을 취하던 강석이 입을 열었다.
“관계자가 아니라면 대여를 하기 전에 발각될 것이고, 태국을 믿고 왓 롱 쿤을 믿어서
을 무작정 대여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곳에 있는 게 가장 아름다울 것 같으니, 그곳에 두겠다는 겁니다.”
강석은 앞으로도 작품을 많이 만들 터였다.
그러나 그것들을 모두 제 작업실에 끼고 살 수는 없었다.
그러니 어차피 끼고 살 수 없을 거, 어울리는 곳에 놓겠다는 마음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저희한테 파시는 건 어떻습니까.)”
“차라리 우리한테 팔아라.”
아난다와 팬딘의 말은, 양선구와 일맥상통한 말이었다. 대가가 얼마가 되었든 지불하겠다는 그 눈빛에 강석이 그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왜 작품들을 판매하지 않고 대여하는가.
그건 점차 점차 시야가 넓어지면서 제 작품과 남의 작품들이 비교되기 시작해서였다.
비교를 하면 할수록.
결론은 하나였다.
“제가 굳이 대여로 하는 이유는, 의 온당한 가치를 지불할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 작품은 비싸야만 했다.
강석의 뇌리로, 어느 매체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품 10가지’ 중 하나로 자신의 벽화 와 함께 등재되어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에 관한 정보가 스쳐 지나갔다.
프랑스 정부와 함께 루브르 박물관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경매를 하여 사고팔 수는 없지만, 의 가치를 측정한다면 최소 한화 약 2조 3,000억 원 원에서 40조 원 내외라고 발표했다던가.
일부 혹자들은 순 가치만 따져볼 때 경매 시작가는 약 1조 1140억원 정도는 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1조 1140억.
그 그림에 새겨진 역사와 위명과 특별함과 루브르를 방문하는 연간 1,000만명의 방문객들 대부분이 를 보기 위해 방문한다는 이유.
그 모든 것이 그 작품의 가치를 올리는 것이었다. 강석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웃음이 아니었다. 불편함이었다.
자신을 빵가루를 뒤집어쓴 자라 놀리던 이보다 제 작품의 가치가 낮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값에 팔지 못할 거면 팔 이유가 없었고, 그러니 대여나 전시권 형태나 입장권 정산 같은 형태로 빌려주는 것이었다.
어차피 가치가 오를 작품을 저점에 매도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지금 당장 강석이 돈이 궁한 것도 아니었고, 돈으로 무얼 급하게 해야 할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강석은 도저히 저보다 못한 작품보다 밑으로 팔 수 없었다. 그의 배꼽 밑에 숨어있는 능구렁이 노인네 미켈란젤로는 눈에 흙이 들어와도 그런 일을 허락하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그냥 대여를 해주는 것뿐입니다.”
강석의 미소가 편안하게 호선을 그렸다.
많은 생략이 있긴 했지만, 자신이 심사숙고하여 을 왓 롱 쿤에 대여해주기로 정한 것은 맞으니 대여를 받으란 뜻이었다.
속뜻을 모르는 아난다로서는 강석이 그저 커다래 보였다.
아난다가 속한 나라. 온 국민 95%가 불교를 믿고, 남자들은 일생에 한 번은 승려가 된다는 태국은 대승 불교와 달리 상좌부 불교였다.
상좌부 불교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가능한 한 충실히 지키려고 노력하는 교리였다. 대승불교와 달리 자인 아라한과 부처님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고 믿으며 석가모니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는 교리가 바로 성좌부 불교였다.
그리고 성좌부 불교에서 가장 첫째로 지키려고 하는 말씀은 ‘마음의 집착을 없애고 번뇌를 소멸’시키라는 것이었다.
아난다가 크게 감동하여 강석을 바라봤다.
저 한 치의 추악함도 없는 편안한 미소를 보아라.
수많은 승려들도 탐욕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는 을 그저 왓 롱 쿤에 가장 어울린다는 이유로, 잘 알지도 못하는 낯선 나라에 대여를 해주겠다는 드넓은 마음을 보아라.
믿음에서 인과 연이 시작된다는 것을 실천하듯 의심 한 터럭 없이 신뢰하는 저 눈빛을 보아라.
붓다가 이곳에 있구나.
아난다가 눈을 감고 합장했다.
이곳엔 도 없고 쏟아지는 빛도 없건만, 눈을 감았는데도 세상이 환한 느낌이었다.
아난다.
제 이름은, 석가모니(고타마 붓다)의 십대제자 중 한 명이자 동시에 석가모니의 사촌 동생이었던 아난다(아난, 산스크리티어로 환희)에서 따온 것이었다.
태어나기를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말레이시아 추정 자산 56억 달러(한화로 약 7조 3,360억 원)의 대부호와 태국 왕실 가문 출신 부인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나, 풍요롭게 살다 불교에 귀의한 아난다는 지금 이 순간 결심했다.
백색 사원 왓 롱 쿤의 최고 승려, 사원의 수도원장이 되는 그날. 제 천명이라 여기고 을 지키리라.
그리고 언제든지 을 조각한 강석님이 볼 수 있게 제가 외면해왔던 제 권리와 부귀도 서슴치 않게 이용하리라.
‘그리고 만약···’
아난다의 눈동자가 잘 벼린 칼처럼 첨예(尖銳)하게 빛났다.
만약, 이 지난날 태국에서 일어났던 불미스러운 일들과 같은 고초를 겪을 것 같으면 칼을 빼들어 지키리라.
30여년 동안 제 부귀를 포기하고 불교에 귀의해 욕심을 내려놓고 살던 한 명의 승려, 아난다가 제 속에 벼린 날은 심는 순간이었다.
그런 변화에 강석의 한쪽 눈썹이 치켜 섰다.
‘뭔가······다른 느낌인데.’
그리고 양선구와 팬딘 역시 아난다에게서 순간적으로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원래의 작은 이로 돌아온 아난다가 합장하며 웃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시주. 그렇다면 계약을 진행해보도록 합시다. 제가 무엇부터 하면 되겠습니까?)”
대장부병혜검(大丈夫秉慧劒)
반야봉혜금강염(般若鋒兮金剛?)
대장부, 지혜의 칼을 잡았으니
반야의 칼날이요, 금강의 불꽃이로다!
마치 아난다는 문수보살의 지혜의 검, 반야의 검이라도 뽑은 검사의 얼굴로 물었다.
강석에게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자가 한 명 생기는 순간이었다.
* * * *
정신없었던 이주일이었다.
강석이 암막 커튼 사이로 창문이 열려있었는지 불어오는 햇빛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무거운 커튼마저 슬쩍슬쩍 밀어버리는 가을바람과 햇빛 너머로 푸르른 창공이 보였다. 높다란 하늘. 가을이 완연한 날이었다.
깜빡거리는 눈가를 슬쩍 찌푸리며 핸드폰을 켜니 벌써 9월 22일이었다. 금요일. 보통의 고삼이라면 지금쯤 학교에서 수능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겠지만, 강석은 청화예고에 이미 출석인정 활동서를 제출해놓은 상태였다.
성북동으로 이사 오면서 새로 맞춘 널따란 침대에 볼을 비빈 강석이 눈을 깜빡였다.
평화롭다.
마치 적막이 감도는 바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이었다. 목이 말랐다. 강석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지난 이 주일간 무슨 일이 있었는가. 강석이 기억을 더듬었다.
우선 계약서 조항이 조율되었다.
봉은사 법경 스님과 1세대 조각가 양선구 선생님에게 자문을 구해, 불교 교리 내에서도 그리고 조각품 양식으로서도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하고 법적으로도 독소 조항에 대한 여부를 꼼꼼히 확인하여 계약을 체결한 것이 얼마 전이었다.
대여는 칠 년으로 이어졌으나···본격적인 계약에 관한 이행, 그러니까 이동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하게 정해진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계약이 이뤄지기 전까지 작품이 어디에 걸릴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 또한 이루어져야만 했다. 그 남는 시간 동안 한국대학교에 을 둘 수도 없어서였다.
그리하여 세계불교학술대회가 일어나는 동안, 매일같이 비어있는 강의실에서는 일시 전시권을 두고 한국 사찰끼리 피 튀기는 설전을 치러야만 했다.
강석은 그걸 지켜봐야만 했고.
‘뭐, 결국 승자는 봉은사가 되었지만.’
하회탈 같은 웃음 속에 예리한 톱날이 있어 사람들을 썰어버리듯 이곳저곳을 찔러대고 쓱싹쓱싹 거리니 결국 승자는 봉은사였다.
애초에 봉은사가 강남 도심 한복판에 있어 강석이 찾아다니기도 수월했고, 전시권에 대해서도 가장 통 크게 질러 가장 마음에 들기도 했다.
그것이 벌써 일주일 전.
강석의 은 벌써 봉은사에 일시적으로 안치가 끝난 상황이었다.
천년 사찰 봉은사는 그 오랫동안 강남에서 살아남은 실력을 보여주듯 화려한 바이럴로 의 일시 전시에 대해 홍보를 해댔고, 일주일 전에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봉은사를 향한 전국의 시주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참이었다.
‘엄청났지.’
며칠 전에 찾아갔다가 봉은사의 주지스님부터 동자스님할 것 없이 다 같이 뛰쳐나와 합장하며 강석을 반기는 광경은 잊을 수가 없었다.
박력이 엄청났어. 강석이 부스스한 머리를 정돈하며 상반신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자 책상이 보였다. 책상에는 수많은 책자들이나 편지가 쌓여있었다.
대부분이 의뢰제안서였다.
봉은사의 이 안치되면서 전국 사찰에서부터 쏟아지는 의뢰제안서와 봉은사를 통해 정해지는 시주에 정신없었던 것도 이제 정리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강석 개인을 향한 시주가 쏟아지는 통에 우스갯소리로 봉은사 내부에서는 강석을 위한 봉헌탑을 짓는다거나, 법명이라도 지어드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제대로 된 불상이 사찰에 주는 혜택이 대단하단 뜻이었다. 이렇게 엄청난 줄은 몰랐는데. 불상 한 번 제작했다고 일어난 파란이 이전과는 격차가 달랐다. 물론 라이브 스트리밍도 효과가 있었겠지만, 역시 종교는 스케일이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끄으으으!”
기지개를 켠 강석이 주변을 돌아봤다.
방이 넓었다.
전생을 자각하고 이제야 겨우 9개월이 지나가는 시점. 많은 것이 변화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만족할 순 없었다. 강석이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한 손으로 마른 세수를 했다.
돌을 만지느라 작년 이맘때쯤에 비해서 손이 많이 거칠어진 채였다. 메마른 옥수수가루를 손에 분칠할 것 같은 묘한 감각을 얼굴로 전달되는 그 순간.
지이이잉.
지이이이잉.
진동이 울렸다.
한 번은 문자였고, 뒤이어 울리는 진동은 전화였다.
핸드폰을 켜자 알람이 떠있었다.
[작가님! 오랜만입니다. 저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과 류수헌 서기관입니다. 드디어 용신랜드 폐건물의 대수선 공사가 완료되어 이렇게 연락을···]류수헌 서기관한테서 온 코코아톡이었다.
언제쯤 완성되나 싶었는데 드디어 되었나.
강석이 눈을 빛냈다.
잠이 싹 사라져가는 느낌이었다.
그와 동시에 코코아톡 알림 아래로 지이잉, 울려대는 전화의 발신자가 눈에 들어왔다. [진도욱 관장님]. 블룸 미술관의 진도욱 관장이었다.
“여보세요?”
ㅡ ···작가님!
“아, 관장님. 오랜만이네요.”
지나치게 밝고 그러나 동시에 긴장한 것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나? 아직 정산 날은 아닐 텐데? 의문으로 인해서 미간이 좁혀지는 순간. 강석의 엉덩이가 무심코 TV 리모컨의 전원을 눌렀다.
삑, 소리와 함께 TV가 켜졌다.
ㅡ ···강석 조각가의 나이가 아직 한국 나이로 열아홉밖에 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이건 정말 대한민국 미술계 역사에서도 이례적인 일이 아닌가요?
ㅡ 네. 맞습니다. 일각에서는 강석 조각가가 한국을 무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하는 날이 머지않았을 것이라 평하기도 하는데요.
ㅡ 머지않았을 것이 뭡니까. 사실 강석 조각가는 제가 볼 때 그냥 지금 해외로 나가도 되는 거 아닌가요?
민망스럽게도, 강석의 관한 이야기가 뉴스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것 참. 강석이 콧등을 긁적였다.
설마 내가 찾아서 듣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그런 생각이 머리 한쪽을 비집고 들어왔다. 엉덩이를 슬쩍 들어 리모컨을 찾는 사이. TV 소리를 뚫고 진도욱의 목소리가 휴대폰 스피커를 타고 넘어왔다.
ㅡ 아, 그···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어떻게 시간이 되어서 산강그룹 이사진이 조각상을 보게 되었는데···그 강석 작가님에게 꼭 의뢰를 하고 싶은 조각상이 있다고 하셔서요. 그···어떻게 만남이라도 한 번 가져보는 건 어떨까 하여서 이렇게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하하.
중간 중간 멈춰지는 것이 TV 소리가 그쪽에도 슬쩍슬쩍 들리는 모양이었다. 이거 민망하군.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잠시. 방금 자신의 귀에 들린 단어를 다시 재조합한 강석이 눈을 크게 떴다.
산강그룹?
그 산강그룹?
청화예술고등학교를 교립하고, 블룸미술관을 건립한, 그리고 산강의료원을 창립한 그 산강그룹?
산강그룹.
그룹계열사 16곳을 보유하고 현재 시가총액 약 664조 8000억 원에 달하는 기업으로부터 러브콜이 왔단 소리에 강석이 눈을 깜빡였다.
ㅡ 그, 작가님?
“·········아.”
TV 화면에서는 계속해서 강석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ㅡ 하하, 아무래도 이게 한국 내수시장과 해외 미술 시장은 시각이 다르다 보니 이런 말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강석 조각가의 여태까지 행보는 국내에서만 돌았고, 아트페어라거나 경매 시장 등을 통해 해외로 나가는 일이 없었거든요. 아무래도 강석 조각가가 일반적인 예술가들과 다르게 판매보다는 대여, 전시권 판매 등 이형적인 거래방식을 선호하고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ㅡ 그렇군요. 이것 참 빨리 해외에 알려지면 좋을 텐데요.
ㅡ 그렇죠? 안 그래도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강석 조각가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르네상스 쇼핑몰 8층에 작업했던 를 기억하십니까?
ㅡ 그럼요! 전설의 시작, 아닙니까!
ㅡ 맞습니다. 그 르네상스 쇼핑몰 8층이 드디어 오랜 리모델링을 끝내고 카페 명을 시스티나로 바꿔서 개관한다고 합니다. 현재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다수에 강석이 그린 프레스코, 를 보고 인증하겠다는 해외 셀럽들의 게시글들이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ㅡ 네? 그렇게 되면···?
ㅡ 네. 맞습니다. 이제 강석의 세계 데···
아아.
강석의 입꼬리가 씰룩, 움직였다.
느껴졌다.
자신을 세계로 이끌 순풍(順風)이 태풍마냥 사방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74. 나에게 말해 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