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03)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03화
사기꾼의 승리법 (5)
꾸르륵.
여름철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듯.
흐물흐물 늘어진 피부.
살점과 근육이 뒤섞이며 눈 깜짝할 사이에 얼굴을 바꾼다.
이윽고.
초 단위로 변하던 얼굴이 한 청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곱슬기 있는 머리칼.
온화하면서도 어딘가 퇴폐적인 느낌이 드는 눈매.
독을 품은 사과 같은 남자.
“…뇌, 랑?”
“오랜만은 아니고, 잠깐만이라고 하긴 좀 길고.”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가 천우성을 향했다.
“여튼. 잘 지냈어 꼬맹이?”
“누가… 꼬맹이라는 겁니까.”
“너지 새끼야. 여기 다른 사람이 누구 있다고.”
피식.
오진은 짧게 실소하며 천우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통로에 낮은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진다.
“꼬맹이라고 불릴 나이는 아닌데요.”
천우성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몸을 일으켰다.
흑사자에게 베인 옆구리에서 계속해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싸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이를 처먹었다고 어른이라 부르는 건 아니지.”
오진은 허리춤에서 쇠막대기를 꺼냈다.
철컥!
마력을 불어넣자 손전등만 했던 크기의 쇠막대기가 창의 형태로 변했다.
“모두 다… 당신이 꾸민 짓입니까?”
“글쎄?”
움켜쥔 창을 빙글빙글 돌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
천우성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흑성회를 건드리고 무사할 거라 생각합니까?”
“무사하지 못하겠지.”
그러니까.
“다 짓밟아 줄게.”
다시는 설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하.”
천우성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흑성회를 다 짓밟아 주겠다고?
그것도 5성에 불과한 각성자 혼자서?
“운 좋게 북극성의 선택을 받았다고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군요.”
천우성이 날카롭게 오진을 쏘아봤다.
“당신은… 흑성회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넌 아냐?”
“예?”
“넌 나 아냐고 새끼야.”
“…….”
오진의 눈에 맺힌 푸른 귀화가 일렁였다.
“직녀성의 각성….”
“그런 거 말고.”
푸흐흐흐!
어깨를 들썩인다.
“내가 누군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가 뭘 가지고 있고 뭘 할 수 있는지.”
아직 흑성회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건 아니다.
모르는 부분이 더 많겠지.
하지만.
그건 그들도 마찬가지다.
“모르지?”
“…….”
침묵하는 천우성 바라보며 오진은 고요히 웃었다.
“아까 흑성회를 건드리고 무사할 수 있을 거냐고 했던가.”
그렇다면.
“너흰━ 날 건드리고 무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파지지직!!
어둠을 밝히며 푸른 뇌전이 타올랐다.
“…하.”
천우성은 같잖다는 눈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고작 5성에 불과한 각성자가….”
그의 눈에 질척한 증오가 타올랐다.
비단 오진 하나만을 향한 증오가 아닌.
각성자 전체를 향한 증오.
“어디서 그렇게 건방을 떠는 겁니까!!”
슈슈슈슈슉!!
올빼미가 날개를 활짝 펴듯.
천우성의 등 뒤에 거대한 검은 날개가 펼쳐졌다.
-콰아아앙!!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검은 깃털이 오진을 향해 쏟아졌다.
“건방인지 아닌지는 직접 확인해 보면 되겠지.”
오진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창을 들어 올렸다.
훙훙훙훙!!
창을 빠른 속도로 회전시키며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푸른 뇌전이 장벽처럼 앞으로 가로막았다.
-카가가가가강!!!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쇳소리.
“소용없습니다!!!”
천우성이 사납게 양팔을 교차했다.
-콰아아앙!!!
우수수 쏟아지던 검은 깃털이 일제히 폭발했다.
아샤드 칸이 사용했던 것과 같은 기술.
“크윽!”
주르르륵.
오진의 몸이 뒤로 밀렸다.
강렬한 충격에 창을 움켜쥔 손바닥이 찢어졌다.
“고작 이 정도로!”
천우성이 옆으로 손을 뻗었다.
검은 깃털이 뭉치며 검의 형상으로 변했다.
날 길이만 족히 2미터가 넘는 기형적으로 긴 검.
“그 건방을 떤 겁니까?!”
후웅! 후웅!
검은 날개가 펄럭이며 천우성의 몸이 살짝 떠올렸다.
공중에 떠오른 천우성이 사납게 검을 내질렀다.
-카앙! 캉!
창을 들어 검격을 막았다.
쿠웅!
수십 톤 트럭에 치인 듯한 충격.
발을 딛고 있는 통로 바닥이 움푹 파이며 몸이 무릎까지 땅에 박혔다.
“고작! 고작! 고작!!”
콰앙! 콰광! 쾅!
공중에 떠오른 천우성이 양손으로 검을 움켜쥔 채 연달아 검을 내리쳤다.
검이 아니라 무슨 망치를 휘두르듯 자세.
“크윽!”
오진의 입에서 한 줄기 핏물이 흘러내렸다.
팔을 타고 전해진 막대한 충격에 내부가 진탕됐다.
“흐읍!”
짧게 숨을 들이쉬며 뇌전을 두 다리에 집중시켰다.
‘폭뢰!’
콰아아앙!
무릎까지 땅에 박혀 있던 다리가 빠져나오며 뒤로 튕기듯 거리를 벌렸다.
-카가가각!
천우성의 검이 바닥을 뚫고 깊게 박혔다.
“후우.”
거리를 벌린 오진은 가늘게 눈을 뜬 채 천우성을 살폈다.
‘그런 상처를 입고도 이런 힘이라니.’
과연.
왕의 대리인이라 불리는 천우성의 실력은 기대했던 대로였다.
‘그래도 9성인 건 아니야.’
천우성이 고위 각성자라 불리는 탈 인간급 괴물이었다면 애초에 이우혁에게 저런 상처를 입었을 리도 없었겠지.
‘8성 중에서도 상위… 아니 저 정도면 최상위급인가.’
아마 실력으로만 따지면 이우혁과 비슷하거나 살짝 아래 정도일 것이다.
‘딱 좋네.’
나름 긴장했던 박건우와의 전투가 너무 허망하게 끝나는 바람에 강자와의 전투에 목말라 있던 참이다.
“익시드.”
파지지지지직!!
푸른 뇌전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하, 그래도 숨겨둔 수 정도는 있다 이겁니까?”
천우성이 차갑게 웃으며 검을 들어 올렸다.
“과연 그 숨겨둔 수라는 게.”
내리친다.
“얼마나 대단한지 보자고요!!”
슈슈슈슈슈슉!!
검이 휘둘러지는 방향을 따라 검은 깃털이 뭉쳐 쏘아졌다.
마치 검기를 발사하는 듯한 모습.
-타앙! 타앙!
오진은 뒤로 발을 박차며 양팔을 넓게 펼쳤다.
와이어 슈터가 불을 뿜으며 와이어가 그물처럼 펼쳐져 통로를 막았다.
-카가가강!
와이어에 막힌 검은 깃털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깟 와이어 줄 따위로 막을 생각입니까!!”
천우성이 조소를 흘렸다.
날개를 활짝 펼치며 날아오르더니 그물처럼 얽힌 와이어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서걱!
검날이 복잡하게 얽힌 와이어를 반쯤 잘라냈을 때.
‘뇌염(雷炎).’
화르르륵!
뇌전으로 이루어진 푸른 불꽃이 와이어를 타고 천우성의 검을 휘감았다.
“크으으으윽!”
검은 타고 흘러든 뇌전에 천우성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검을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제길!”
다급히 검을 손에서 놓으며 날개를 펼쳐 뒤로 물러났다.
-타다다닥!
창을 쥔 오진이 통로 벽을 질주하며 그를 쫓았다.
콰앙!
거칠게 발을 박차고 천우성의 목덜미 향해 내리쳤다.
-카아아아아앙!!!
그림으로 그린 듯한 깔끔한 일격이었지만.
목덜미를 향하던 창은 순식간에 옆에서 튀어나온 검은 날개에 가로막혔다.
튕겨 나가는 창.
‘폭뢰.’
오진은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반발력을 거부하지 않고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튕겨 나간 창을 바닥에 내려찍은 채, 공중에서 빙글 몸을 돌리며 왼 다리를 뒤로 젖혔다.
노리는 건 천우성의 옆구리에 길게 그어진 검상(劍傷).
그곳을 전력으로 걷어찬다!
-뻐억!
“커헉!”
날개에 보호되지 않은 곳을 정통으로 맞은 천우성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쿵! 주르르륵!
꼴사납게 뒤로 튕겨 나가며 바닥을 구른다.
“크으으으.”
옆구리의 상처를 부여잡으며 다급히 몸을 일으키려 할 때.
‘창뢰, 폭뢰.’
땅에 박아 넣은 창을 뽑아 올리며 전방으로 내질렀다.
뒤섞인 창뢰와 폭뢰가 부채꼴 모형으로 뻗어 나가며 쓰러진 천우성을 노렸다.
-콰아아앙!
통로를 뒤흔드는 굉음.
“아아악!!”
천우성은 피를 뿌리며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등 뒤에 돋아난 검은 날개를 제외한 전신이 핏물에 젖었다.
“하아, 하아!”
헐떡이는 숨결.
천우성은 까득 이를 갈며 옆구리의 상처를 손으로 덮었다.
멀쩡한 상태에서 싸웠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밀리지 않았겠지만, 상처를 입은 탓에 제대로 싸우기 어려웠다.
천우성은 상처를 부여잡은 채 날카로운 눈으로 오진을 쏘아봤다.
“…영웅이니 뭐니 떠들어도 결국 본성은 남을 속이고 이용하기만 할 줄 아는 사기꾼이었군요.”
비틀비틀.
휘청이며 몸을 일으킨다.
“뭐… 알고 있었습니다. 각성자라는 족속들이 다 당신 같다는 걸.”
건방지고, 오만하며.
무례하다.
“남을 능멸하고… 약탈할 줄 할 줄밖에 모르는 쓰레기들.”
천우성은 증오에 가득 찬 눈으로 오진을 노려봤다.
“…….”
오진은 굳게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천우성을 바라봤다.
“그래… 바뀌지 않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절대.”
까득.
천우성이 사납게 이를 갈았다.
9년 전의 기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도, 도망치렴 우성아!
흩날리는 재와 먼지.
절규와 비명이 가득한 그 지옥 속에서 자신을 향해 다급히 손짓을 보내는 어머니의 모습.
그때 어머니를 잔혹하게 죽였던 건 괴수가 아니었다.
-푸하하핫!! 이야~ 이거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인데?
-크흐흐 왜? 억울하냐? 그러게 너희도 성좌의 선택을 받았어야지.
별을 깨달은 자.
성좌의 선택을 받았다는 초월자들은 괴수가 아닌 힘없는 비각성자들을 향해 무기를 겨눴다.
약자들을 지키기는커녕 초월적인 힘을 마음껏 휘두르며 짓밟고 능멸했다.
그래.
그 모습이야말로 각성자란 족속들의 본 모습.
바뀌지 않는 본성이었다.
“당신 같은 사람들만 아니었어도… 제 어머니는… 지금쯤!”
천우성의 뺨을 타고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뒤늦게 천도윤의 도움으로 올빼미자리의 성흔을 부여받긴 했지만.
그때는 이미 모든 것을 잃은 뒤였다.
“당신이…! 당신이 지킬 존재조차 사라진 자의 절망을 알고 있습니까!!”
남은 건 아득한 증오뿐.
자신을 이렇게 만든 각성자들을 향한 증오만이 그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예?”
오진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천우성을 응시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
“왜? 내가 네 구구절절한 사정을 들어주면서 어이구 씨이발 그렇게 슬픈 사연이 있었다니…! 이 지랄하면서 눈물이라도 흘려줄까?”
그가 각성자들에게 어머니를 잃었건, 아버지를 잃었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래. 뭐 말 나온 김에 나도 하나 물어보자.”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렇게 각성자를 증오한다는 놈이 이번에 비각성자들은 왜 죽인 거냐?”
“그건….”
흠칫.
천우성의 어깨가 떨렸다.
“대, 대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고?”
“…….”
“푸흐흐! 내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는데 말이야.”
끔찍한 비명과 절규.
자신의 아이를 부여잡은 채, 부모를 부여잡은 채, 연인을 부여잡은 채.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
“네 어머니를 죽였다는 각성자들이랑 너랑 뭐가 다른 거냐?”
“다, 다릅니다!”
“그러니까 뭐가.”
천우성은 거칠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습니다.”
협회를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센터를 건설할 수 있다.
공권력을 이용해 민간인을 건드린 각성자들을 싹 다 심판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을 지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어쩔 수 없는━.
“찡얼거리지 좀 마 애새끼야.”
저벅, 저벅.
오진은 천우성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뭐 이렇게 혓바닥이 길어?”
파르르 몸을 떨고 있는 천우성을 노려봤다.
“널 나무라려는 게 아니야. 각성자를 향한 복수? 맘대로 해. 테러를 일으켜서 협회장을 끌어내리는 거? 충분히 할 수 있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건 자신이나 천우성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근데 말이야.”
천우성의 머리칼을 움켜쥔다.
“어쨌건 남을 짓밟았다면.”
주먹을 들어 올린다.
파지지직!!
푸른 뇌전이 사납게 타오른다.
“적어도 같잖은 신념으로 포장하진 말았어야지.”
빠악!!
푸른 뇌전에 휩싸인 주먹이 천우성의 뺨을 거칠게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