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78)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78화
개와 늑대 (3)
“크흠. 이, 이거면 되냐?”
검은색 고양이 귀와 꼬리를 붙인 하은이 오진을 향해 다가왔다.
평소 고양이 같은 인상의 외모와 쏙 어울리는 장신구(?)에 오진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어, 어때? 괜찮냐?”
꽤나 부끄러웠는지 뺨이 붉게 달아오른 채로 살짝 포즈를 취해 보이는 하은.
엉덩이를 쏙 내민 채 대롱거리는 고양이 꼬리가 오진의 심금을 울렸다.
오진은 솔직한 감상을 입에 담았다.
“나이 서른 넘게 처먹고 할 일은 아닌 것 같… 커헉!”
눈부신 속도로 휘둘러진 하은의 주먹이 오진의 명치를 후려쳤다.
“나, 나도 쓰고 싶어서 쓴 게 아니거든?!”
하은은 씩씩 성을 내며 사납게 오진을 노려봤다.
오진과 연인이 된 이후 애정 표현에 꽤나 과감해진 그녀도 이런 매니악한 플레이에는 내성이 없었다.
“근데 생각보다 꽤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네요. 마력을 흘려 넣으면 조금씩 움직임도 줄 수 있고요.”
갈색 강아지 귀와 꼬리를 착용한 이사벨라가 집 돌아온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귓가에 속삭였던 ‘멍멍’이라는 울음소리가 떠올라 괜히 뺨이 달아올랐다.
‘나중에 몇 개 가지고 가야지.’
굳은 결심을 아로새기며 이사벨라 쪽을 돌아봤다.
“그나저나 진짜 검은색으로 하지 않아도 괜찮겠어?”
“예. 털의 색깔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면 평민 계급쯤 되는 갈색 갈기 부족으로도 위장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하긴.
부자들이 서민들의 삶을 잘 이해하지 못하듯, 무조건 높은 계급이라고 해서 많은 걸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갈색이 좀 더 귀엽지 않나요?”
이사벨라가 눈웃음을 지으며 바짝 몸을 붙였다.
요령이 좋은 이사벨라답게 그새 모형을 다루는 방법을 익힌 건지 진짜 수인이 된 것처럼 귀를 쫑긋거리며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였다.
폭신한 개 꼬리가 오진의 허벅지를 간질였다.
크흠.
오진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이사벨라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꺄르르 웃는 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베가는….”
[…본녀에게 맞는 사이즈는 없더구나.]베가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삐쭉 입술을 내밀었다.
당연하지만, 손바닥만 한 크기에 불과한 베가가 쓸 수 있는 모형은 없었다.
쓸 수 있다고 해도 수인족이라 우길 수도 없을 거고.
“그럼 베가는 내 안주머니에 숨어 있어.”
[그래도 되는 게냐?]“답답하면 잠깐 성소에 돌아가 있어도 되고.”
[크흠! 어찌 본녀가 아이를 두고 홀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잽싸게 오진의 재킷 안주머니에 쏙 들어가 몸을 숨긴 베가.
빼꼼하게 얼굴만을 내민 그녀는 탑승감(?)이 꽤나 마음에 든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리아크는….”
오진은 늑대 모습으로 다시 몸을 바꾼 리아크를 바라보며 눈을 찌푸렸다.
애초에 수인족인 리아크는 따로 분장이 필요 없었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은빛 털이 문제였다.
“어떻게 할래? 그냥 그대로 갈 거야?”
“…….”
굳게 입을 다문 채 고민을 이어가던 리아크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가능하다면 염색을 하지.”
“염색, 재료 있어.”
백무강이 다시 부스럭부스럭 벽장을 뒤지더니 검은색 염색약을 가져왔다.
“대신, 몸 형태 못 바꿔.”
리아크에게 들은바, 수인족들은 3가지 형태로 몸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지금 리아크처럼 아예 짐승의 모습으로 있는 것과 귀와 꼬리만 달린 인간의 모습으로 있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늑대인간처럼 반인반수의 형태로 있는 것.
그중 체력 소모가 가장 극심한 것이 반인반수의 형태.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전투 때에만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평소에는 짐승의 모습이나 인간의 모습으로 주로 있다고 하는데, 인간의 모습으로 있는 쪽이 여러모로 편리하기 때문에 대부분 인간의 모습을 취했다.
“수인족. 몸 바꾸면 털 다시 자라. 염색 사라져.”
“알고 있다.”
리아크는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털색에 따라 계급이 나뉘는 사회라서 그런지 예전부터 염색으로 색을 바꾸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 같다.
‘그럼 털색을 바꾸는 것만으로 귀족도 평민도, 천민도 될 수 있는 건가?’
굉장히 허술해 보이는 시스템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인간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카푸어라는 게 왜 있겠는가.
분수에 맞지 않는 비싼 외제 차를 끌며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를 높아 보이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던가.
물론 외제 차를 몰고 다니는 것보다 털을 염색하는 게 훨씬 간편하긴 하지만, 그만큼 쉽게 들킬 우려가 있었다.
‘모습 한번 바꿔보라고 하면 끝이니까.’
어쨌든.
은색 털인 채로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염색하는 편이 나으리라.
“염색, 도와줄게. 나 잘해.”
검은색 염색약을 물에 푼 백무강이 리아크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냅다 염색약이 든 통을 들이부으려는 듯 통을 기울였다.
염색약이 폭포수처럼 리아크의 머리 위로 쏟아지기 직전, 가까스로 이사벨라가 백무강의 팔을 붙잡았다.
“자, 잠깐만요!”
“웅? 왜 구래?”
“제, 제가 할게요.”
이사벨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백무강의 손에 들린 염료 통을 빼앗았다.
“나 잘하는데….”
백무강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밖으로 나가요 리아크 씨. 제가 도와드릴게요.”
“…부탁하마 거머리 여자.”
“거머리라 부르지 마세요.”
“그럼 지렁이라 부르면 되나?”
“어머, 백무강 님한테 다시 맡길까요? 자신 있어 보이시던데.”
“크흠. 빨리 밖으로 나가지.”
염색약을 뒤집어쓰긴 싫었는지 리아크가 다급히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이사벨라가 리아크를 뒤따라 밖으로 나갔다.
오진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문 쪽을 바라보고 있는 백무강에게 다가갔다.
“어르신.”
“응?”
“혹시 호루스를 만나는 데 협력해 주실 수 있습니까?”
처음에는 생각했던 이미지와 너무 달라 당황했지만.
막상 얘기를 나눠보니 백무강은 마경의 생태에 대해 꽤나 빠삭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백무강이 협력해 준다면 마경의 왕과 접촉하는 게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안 돼.”
돌아온 대답은 칼 같은 거절.
백무강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나, 보물 찾으러 가야 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이기에 이토록 백무강이 얽매여 있을까.
“찾고 계신 보물이 무엇입니까?”
“보물은 보물이야.”
아까와 똑같은 대답이었다.
“소중한 거니까, 꼭 찾아야 해.”
백무강은 아이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단서는 있으십니까?”
“나쁜 놈이 보물 훔쳐 갔어, 나쁜 놈 찾아야 해.”
“…나쁜 놈이라면.”
“나쁜 놈은 나쁜 놈이야.”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어쨌든 짧은 대화를 통해 알아낸 건 하나.
누군가 백무강의 보물을 훔쳐 갔고, 백무강은 그의 뒤를 쫓고 있다는 것.
이 머나먼 마경 땅에서.
5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홀로.
“…….”
보물의 정체가 뭔지 궁금해졌지만, 백무강의 상태를 보니 제대로 된 답을 얻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럼 감사했습니다, 어르신.”
백무강의 협력을 얻지 못한 건 아쉬운 일이지만.
덕분에 ‘칸’ 왕국에 대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뒤는 자신이 직접 알아내는 게 빠르리라.
“음? 벌써 가는 거야?”
“예. 숲을 빠져나오면서 시간이 많이 지체됐거든요.”
“헤헤. 만나서 반가웠어.”
백무강이 순박한 웃음을 흘리며 손을 내밀었다.
오진은 주름진 손을 마주 잡았다.
해골처럼 깡마른 손이었지만, 어딘가 강한 힘이 느껴졌다.
“할부지는 그 보물인가 찾으러 가는 거야?”
옆에 있던 하은이 물었다.
“응! 보물찾기할 거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
별빛이 반짝이듯 환한 그의 미소에 뭔가를 느낀 걸까.
하은은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그를 응원했다.
“고마워! 꼭 찾을게!”
백무강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 참, 나침반 가지고 있지?”
“아, 예.”
“그거 따라오면 나 찾을 수 있어. 물어볼 거 또 있으면 찾아와.”
“알겠습니다.”
오진은 백무강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검은색으로 털을 염색한 리아크가 있었다.
“저 이상한 인간은 같이 안 가는 거냐?”
“따로 할 일이 있다고 하더라고.”
오진은 리아크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여기서 칸 왕국까지는 어느 정도 걸려?”
“반나절이면 갈 수 있다. 따라와라.”
리아크가 몸을 돌려 휘적휘적 앞으로 걸어갔다.
오진 일행은 리아크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할부지가 찾는다는 보물, 대체 뭘까?”
“글쎄?”
“으음.”
하은은 눈을 좁힌 채 영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좀 충격적이긴 하네요. 생각했던 이미지랑은 너무 달라서….”
천권성 백무강이 치매 걸린 노인일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
[데네브가 말을 아꼈던 이유를 알겠더구나. 그 아이는 남의 시선을 과하게 신경 쓰는 편이니.]베가가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 사도인데 너무한 거 아냐? 할부지가 뭐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말은 아껴도 여러모로 도와주고 있을 것이니라. 알렌을 시켜 마경에 심부름까지 보내지 않았더냐?]하긴.
만약 백무강을 호적에서 파버린 자식처럼 생각했다면 굳이 알렌을 시켜 필요한 물건들을 마경까지 보내줄 필요가 없었다.
“하여간 그 꼬맹이도 성격 이상하다니깐. 어차피 도와줄 거면 좀 팍팍 도와주지.”
하은은 홀로 마경에서 생활하며 몇 년간 보물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백무강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는지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진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하은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어쨌든 지금은 우리 일이나 집중하자.”
“아, 응. 그래야지.”
오진 일행은 리아크의 뒤를 따라 다시 수풀이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갔다.
숲이라고 해도 ‘마해의 숲’을 헤쳐 나왔을 때처럼 온갖 마수들이 습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긴장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오진은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해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조금씩 숲을 지나고 있을 때.
“오빠아아아아!”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
“…….”
오진 일행은 말없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비명이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발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