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7)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7화
낙원(樂園) (4)
“와아, 실물로 보니까 훨씬 더 잘생기셨어요!”
“대박! 같이 사진 찍어도 돼요?”
오진에게 다가온 두 여인은 잔뜩 흥분에 찬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으음.”
오진은 난처한 표정으로 침음을 삼켰다.
‘돌아다니다 보면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렇게 적극적으로 달라붙을 줄은 예상 못 했다.
‘적당히 돌려보낼까.’
괜히 오래 엮이고 싶지는 않았다.
“…두 분 커피 사러 오신 거 아닙니까?”
귀찮다는 티를 팍팍 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짜증나게 굴지 마시고 그만 꺼지시죠.”
좋아.
이 정도로 확실하게 말했는데 못 알아 처먹지는 않겠지?
“바, 방금 들었어? 우리 보고 꺼지래!!”
“꺄악!! 찐! 찐이야!!”
엥?
“오빠?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미, 미쳤나 봐 진짜! 너무 좋아…!”
그거 미친 거 맞아.
‘뭐지?’
얘들 반응이 왜 이래?
“오빠 사인 한 번 해주시면 안 돼요?”
“…….”
사인이라니 시벌.
권오진 인생 많이 폈네.
‘뭐, 사인 정도야.’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 해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자들이 내민 펜을 받아쥐었다.
근데 왜 펜만 주는 거냐.
“어디에?”
“여기요, 여기!”
한 여인이 입고 있던 코트를 살짝 젖히며 티셔츠를 가리켰다.
쇄골 근처인지라 자칫 실수하면 가슴에 닿을 수도 있는 위치였다.
‘아니.’
진짜 미친 건가?
‘여기가 뭐 클럽이야?’
카페 카운터 앞에서 뭐 하자는 짓이란 말인가.
표정 관리에 있어서는 남부럽지 않은 실력을 지닌 오진조차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빨리요오~”
“히히, 이러고 있는 거 부끄러워요 오빠~”
부끄러우면 하질 마 이것들아.
“…하아.”
쯧.
혀를 차며 펜을 들어 올렸다.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차피 사인만 해주면 끝 아닌가.
‘후딱 끝내자.’
오랜만에 하은과의 외출이다.
더 이상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티셔츠 위에 사인을 하기 위해 펜을 움직였을 때.
“━너희 뭐냐?”
붉은 머리칼의 맹수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으, 응?”
“누구세요?”
오진에게 달라붙어 있던 두 여인이 움찔 몸을 떨며 물었다.
타오르는 듯한 살기.
일반인이 견디기 어려운 맹렬한 살기가 그녀들의 본능을 자극했다.
“누구긴 이 씨발 것들아.”
하은이 손을 뻗어 오진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툭!
거칠게 목덜미를 잡아당겨 머리를 끌어안았다.
“얘 여자친군데?”
씨익.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어…?”
“여, 여자친구?”
두 여인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하은을 위아래로 살폈다.
170이 넘는 훤칠한 키와 흠잡을 곳 없는 라인.
세계적인 장인이 공들여 조각한 듯한 이목구비와 잡티 하나 보이지 않는 뽀얀 피부.
“…으.”
외모에는 나름 자신 있던 둘이었지만, 하은과 비빌 수 있는 구석이라고는 눈 두 개에 코 하나라는 것 정도밖엔 없었다.
압도적인 패배감.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곤 하지만 애초에 외모를 믿고 들이댄 그녀들에게 있어서 하은의 존재는 말 그대로 외통수 그 자체였다.
“뭐, 뭐래? 별꼴이야 진짜.”
“그냥 사인만 받으려 했던 거거든요?”
여포 앞에선 잡졸 마냥 눈치를 살피던 두 여인은 이내 슬금슬금 몸을 돌려 도망치듯 카페를 나갔다.
“헹. 별 같잖은 년들이 어딜 나대?”
하은은 착, 팔짱을 낀 채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우읍, 읍!”
“아, 쏘리.”
끌어안고 있던 오진의 머리를 놨다.
“하아. 누나 진짜….”
“왜, 뭐.”
“아냐. 잘했다고.”
한숨을 내쉬던 오진이 픽 웃었다.
뭐 애들을 두들겨 팬 것도 아니고 저쪽이 알아서 꼬리를 말고 도망쳤으니 이보다 좋은 해결책은 없었다.
“그것보다 인기 진짜 존나 많네.”
“그러게 말야. 앞으로 좀 골 아파지겠어.”
이렇게 될 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얼굴이 팔리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뭐, 어쩔 수 없지.’
떠오르는 게 있으면 가라앉는 게 있는 법.
‘북극성의 사도’라는 강력한 무기를 마음껏 휘두르기 위해선 이 정도 귀찮음은 감수할 만했다.
“…괜히 좋다고 따라가지 마라?”
하은이 가늘게 눈을 뜨며 그를 노려봤다.
“다른 여자랑 만나는 건 관심 없어.”
“엥? 지, 진짜? 왜… 그러는데?”
하은이 살짝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물었다.
“돈 드니까.”
“씨발.”
한결같은 새끼.
나지막한 욕설이 들려왔다.
“하아… 뭐, 그래. 아무한테나 헬렐레하는 것보단 그게 낫다 그래.”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오진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럼 빨랑빨랑 다음 장소로 갑시다!”
“커피는?”
“됐어.”
여기서 더 개기다가 또 비슷한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사람 없는 곳으로 가자.”
“어디 가게?”
“음….”
잠시 고민을 이어가던 송하은이 딱! 손가락을 튕겼다.
“노래방! 노래방 가자!!”
“흐흐. 오키.”
노래방이라면 눈이 안 보이는 그녀도 충분히 놀 수 있었다.
부르려는 노래의 가사를 통째로 외워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빨리 빨리!”
캬하하!
하은이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팔을 잡아끌었다.
그렇게 그녀와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밖에 나왔을 때.
“…벌써 해가 졌네.”
12월의 밤은 빠르다.
“슬슬 돌아갈까?”
“조금만 더 돌아….”
“나 내일 아침에 일 있어서 일찍 자야 해.”
“……그래?”
긴 침묵 이후.
하은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엉.”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 눈 온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하늘에 눈송이가 떨어져 내렸다.
“헤에. 어쩐지 머리에 막 차가운 게 떨어지는 것 같더니.”
하은이 끌어안은 오진의 팔에 힘을 더하며 배시시 웃었다.
저벅, 저벅.
눈송이가 흩날리는 한적한 길가에 나지막한 발소리만이 울렸다.
“…….”
“…….”
침묵이 길게 이어졌지만, 어색하지는 않았다.
그저━ 이 순간이.
지금 이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짓씹은 입술에 아릿한 통증이 달린다.
“오지나.”
“응?”
“돈… 얼마나 모았어?”
조심스럽게.
눈길 위를 걷듯 살며시 입을 열었다.
“다 모았어.”
“…다, 다 모았다고? 100억을?”
“응.”
“…….”
하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머지않아 모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설마 벌써 100억을 모두 모았을 줄이야.
“어, 엄청 빨리 벌었네.”
아무리 북극성의 사도라고 해도 말이 안 되는 속도.
“운이 좀 좋았거든. 이제까지 모아둔 돈도 좀 있었고.”
“그, 그래…?”
꾸욱.
움켜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손톱이 살점을 파고들었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가 몸서리치도록 차갑다.
“이제 그럼… 이렇게 지낼 날도 진짜 얼마 안 남았네.”
“응. 그렇지 뭐.”
“…….”
날카롭게 잘라내는 듯한 대답.
심장이 도려내진 듯.
가슴이 아프다.
“정말… 낙원에 갈 거야?”
돌아올 대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묻는다.
“갈 거야. 이제까지 그걸 위해서 돈을 모은 거니까.”
“…….”
아프다.
너무 아프고, 아파서.
어딘가 망가져 버릴 것만 같다.
“가지….”
마.
날 두고 떠나지 마.
입 밖으로 새어 나오려는 그 말을, 억지로 짓누른다.
“엉?”
“아, 아냐! 아무것도. 헤헤.”
“아니, 뭔데.”
“시끄러 짜식아!”
툭! 툭!
괜히 성을 내며 어깨를 쳤다.
“…….”
다시 침묵.
“나… 잊으면 안 된다?”
쥐어짜듯 말했다.
“…내가 누날 왜 잊어.”
그 대답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12월의 밤하늘은 한 점의 별빛조차 없이 어두웠다.
그녀의 눈앞에 드리워진 어둠처럼.
* * *
다음 날.
“난 은행에 볼 일이 좀 있어서 나갈게.”
이른 아침 오진이 밖으로 나갔다.
“하아.”
홀로 남은 하은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들어 뉴스를 틀었다.
[당일 열리는 12월 용산 경매에는 평소 이상의 관심이 쏠리….]껐다.
“…가보기나 할까.”
침대에 앉아 고민을 이어가던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경매에 나오는 다른 물건은 관심 없었다.
그녀가 관심을 가지는 물건은 딱 하나.
‘용마안.’
용의 저주를 비롯한 각종 저주를 해주(解呪)하는 힘을 지닌 6성급 성유물.
“…….”
그녀의 잿빛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용마안만 있다면.
어쩌면.
어쩌면 천주룡의 저주도━
“하, 하하.”
허망한 웃음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용마안은 6성급 이상 용족형 괴수에게 극히 드물게 얻을 수 있는 성유물.
워낙 나오지 않는 성유물이다 보니 1년에 한 개가 출품될까 말까 할 정도로 그 물량이 적었다.
못해도 60~70억은 넘어갈 텐데 전 재산을 다 합쳐도 3억이 조금 넘는 그녀가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그래도… 그래도 어쩌면.’
바짝 입술이 타들어 간다.
‘희망’이라는 달콤한 속삭임이 그녀를 이끈다.
‘오늘따라 경쟁자가 아무도 없을 수 있잖아.’
가능성이 없는 얘긴 아니다.
용마안의 경우 그런 적이 없긴 했지만, 다른 성유물의 경우 6성급이라 해도 값싸게 팔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 그래! 요즘 저주에 걸린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실제 저주를 사용하는 괴수는 많지 않다.
특히 ‘용의 저주’와 같은 특수한 저주를 사용한 건 이제까지 천주룡 바르바토스 외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애초에 아무도 저주를 ‘해주’할 이유 자체가 없다면.
용마안을 헐값에 살 수도 있지 않을까?
“…….”
꿀꺽.
마른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어 부정적인 생각으로 희망을 억눌러 보지만.
한번 퍼지기 시작한 ‘희망’은 그 어떤 독보다도 빠르게 정신을 잠식했다.
“그래, 가자, 가! 밑져야 본전이지 뭐!”
하은은 힘차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쩌면.
둘도 없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활기가 차올랐다.
‘저주만 풀린다면.’
━그와 함께 ‘낙원’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상을 하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후딱 씻고 출발해보자고!”
욕실로 들어가 찬물을 끼얹었다.
몸서리칠 만큼 차가운 물이 어째서인지 더없이 따듯하게 느껴졌다.
달칵.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지팡이로 바닥을 짚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탁, 탁, 탁!
지팡이가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흥겹게 느껴졌다.
‘그래, 운만 좋으면 충분히 살 수 있어!’
카드와 신분증을 움켜쥔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