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79)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79화
자매 (3)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등골을 타고 퍼진 질척한 불쾌감이 전신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아가씨가 타신 전용기의 신호가 한국에 도착하기 직전 갑작스럽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전파 오류라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으셨다는 건….
실종.
이사벨라를 태운 비행기가 돌연 증발한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는 의미였다.
“한국에 도착하기 직전이라는 게 어느 정도죠?”
-마지막으로 신호가 확인된 장소는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곧 스마트폰이 진동하며 로베르토에게 사진 한 장이 날아왔다.
마지막으로 신호가 확인된 곳은 서해 근처.
착륙까지 기껏해야 십여 분 남짓밖에 남지 않은 위치였다.
‘그런데 돌연 사라져 버렸다고?’
오진은 입술을 짓씹으며 스마트폰을 다시 귀에 댔다.
“이상한 마력 파동은 없었습니까?”
-예, 저도 공중에서 균열이 열린 게 아닐까 싶어 한국 협회 측에 확인해 봤습니다만… 특별한 마력 파동이 감지되지는 않았습니다.
균열도 아니라면 멀쩡히 날아가던 비행기가 사라질 이유가 뭐란 말인가.
-일단 한국 측 해안 경비대의 협력을 구해서 마지막으로 신호가 잡힌 곳 위주로 조사해 보겠습니다.
“저도 바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서해 앞바다에서 사라졌다고 해도 사람이 헤엄쳐서 갈 수 있는 거리는 절대 아니었지만, 오진은 이미 인간의 규격을 아득히 벗어난 초인이었다.
수력 친화 스킬까지 있으니 장시간 바다를 헤엄치는 것도 문제없었다.
“제길.”
끈적하게 달라붙는 불길한 예감에 절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초조한 표정으로 공항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스르르륵.
뱀이 바닥을 기어 다니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몇 번을 들어 익숙해진 독특한 발걸음 소리.
오진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시아?”
“오랜만이에요, 오진 님.”
카시아는 발끝까지 내려오는 검은 드레스를 살짝 들어 올리며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
“여긴 무슨 일이야?”
“하아. 당연히 못난 제 동생 때문이죠.”
“……!”
오진은 다급히 발을 박차며 카시아의 앞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거칠게 붙잡으며 다그치듯 외쳤다.
“이사벨라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거야?!”
“읏… 조, 조금 진정하세요.”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이사벨라가 탄 비행기가 돌연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는데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벨라의 위치라면 제가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후우.”
오진은 카시아의 대답을 들은 후에야 살짝 안도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문들이 해결된 건 아니었다.
우선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장 큰 의문은.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이사벨라의 실종 소식을 전해 받자마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타나다니.
우연이라고 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공교로운 타이밍 아닌가.
“그거야….”
카시아의 시선이 오진에게 향했다.
아니, 정확히는 오진의 발아래 드리워진 그림자에.
스륵, 스르르륵.
카시아가 가볍게 손짓하자 오진의 그림자 속에서 검은 뱀 한 마리가 꾸불꾸불 기어 나왔다.
“오진 님 몰래 ‘뱀’을 한 마리 붙여두고 있었거든요.”
오진의 그림자 속에서 기어 나온 검은 뱀 한 마리가 카시아의 몸을 타고 올라왔다.
‘뭐야 저건.’
언제부터 붙어 있었던 거야?
오진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카시아를 바라봤다.
“그건 대체….”
“일종의 사역마 같은 거예요.”
“아니, 그건 알겠는데. 대체 언제부터 그게 내 그림자 속에 들어가 있었던 거야?”
“후훗. 글쎄요?”
카시아는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가냘픈 어깨를 으쓱였다.
저 표정을 보니 꽤 전부터 붙어 다녔던 것 같은데.
“…설마 이제까지 그걸로 날 계속 감시하고 있던 거야?”
“어머, 감시라뇨? 그런 듣기 흉흉한 표현은 삼가주실래요?”
“이게 감시가 아니면 뭔데.”
“으음… 사랑?”
사랑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오진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어쨌든.
카시아가 마치 짜 맞춘 듯한 타이밍처럼 도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잘 알겠다.
“그럼 이 ‘뱀’이 이사벨라한테도 붙어 있는 거야?”
“맞아요.”
“지금 벨라는 어디 있는데?”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카시아는 손을 들어 북쪽을 가리켰다.
“전에 천주룡을 사냥하신 곳 있죠?”
“평양?”
인천으로 오던 전용기가 뜬금없이 왜 평양으로 갔단 말인가.
‘그리고 지금 평양은….’
사람 하나 살지 않는 유령 도시였다.
“누군가 전용기를 납치해서 그쪽으로 날아갔어요.”
“…대체 누가?”
이사벨라는 11성을 목전에 둔 각성자였다.
오진만 하더라도 ‘개천’을 사용하지 않으면 상대할 수 없는 강자인데 누가 감히 그녀가 타고 있는 전용기를 납치해 평양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잠시 말끝을 흐리던 카시아가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사벨라에게 심어둔 ‘뱀’으로 보고 있던 게 아니었어?”
“거리가 멀어질수록 사역마랑 공유할 수 있는 감각도 적어지거든요.”
“…그래?”
뭔가.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일단 빨리 벨라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해요.”
맞물리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불쾌한 위화감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없이 카시아가 오진의 팔을 잡아끌었다.
“알았어.”
그녀의 말마따나 지금은 다른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진짜 이사벨라가 누군가에게 납치당한 거라면, 그녀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일분일초라도 빨리 이사벨라를 찾아내야 했다.
“제 손을 쭉 잡고 계세요. 그림자를 넘어서 이동할 거예요.”
“그림자를 넘어서 이동한다고?”
“예. 몇 번 보셨잖아요?”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듯 슥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 말인가.
‘그게 서울에서 평양까지의 거리도 이동할 수 있는 거였나.’
오진이 놀랍다는 듯 카시아를 바라봤다.
카시아는 오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짧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저라도 그렇게 먼 거리를 한 번에 이동할 수는 없어요. 중간중간 나왔다가 다시 들어갈 거예요.”
“알았어.”
어쨌든, 직접 두 발로 뛰어가는 것보다는 그편이 훨씬 빠르리라.
“손, 놓지 마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카시아의 손을 잡았다.
조금만 세게 힘을 주면 부러져 버릴 것처럼 가냘픈 손.
뱀자리의 여왕이라는 흉악한 이명과는 맞지 않는 손이었다.
“…음?”
그녀의 손을 움켜쥔 오진의 눈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손을 타고 전해지는 카시아의 마력은 지극히 불안정한 상태라는 게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와 격전을 치르고 내상을 입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 이건 입은 것‘처럼’이 아니라 진짜 내상을 입은 건데.’
그것도 당장에라도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치명적인 내상을.
“읏….”
오진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는지 성흔의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카시아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그녀는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숨기려는 듯 자연스럽게 오진에게서 몸을 돌리며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이 정도 내상이면 서 있는 것만으로 힘들 텐데.’
‘흑막’을 사용해 카시아 몰래 마력을 흘려 넣어 그녀의 내부를 살펴보니 엉망진창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마력 회로가 뒤틀려 있었다.
대체 여기 오기 전에 누구와 싸웠기에 이토록 내부가 망가져 있단 말인가.
스르륵, 스륵.
의문을 입에 담을 틈도 없이, 검은 그림자가 오진의 전신을 뒤덮었다.
마치 우주 공간에 들어간 것처럼 몸이 부유하는 감각과 함께 눈을 뜨니,
“…여긴.”
이름 모를 숲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아, 하아. 앞으로 세 번 정도만 더 이동하면 돼요.”
“…괜찮아?”
“후훗. 절 걱정해 주시는 건가요?”
카시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자연스럽게 능청을 떨었지만.
지금 그녀의 몸 상태가 어떤지 알고 있는 오진의 입장에선 능청스러운 미소 아래 숨겨진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이 훤히 보였다.
“카시아. 묻고 싶은 게….”
“시간이 없어요. 빨리 가지 않으면 벨라가 다칠 거예요.”
카시아는 오진의 말을 자르며 다음번 ‘이동’을 준비했다.
검은 그림자가 둘의 몸을 휘감으며 다시 몸이 우주 속에 부유하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렇게 3번의 이동 후.
오진의 눈앞에 추락해 있는 비행기의 모습이 보였다.
“하아, 하아, 하아!”
“잠깐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거친 숨을 헐떡이고 있는 카시아를 뒤로한 채 오진은 다급히 비행기로 다가갔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박살 난 비행기의 내부 안에는 이사벨라와 함께 탄 승무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혹시 그중 이사벨라의 시체도 섞여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밀려왔지만.
“…후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널브러진 승무원들의 시체 속에서 이사벨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진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널브러진 승무원들의 시체를 살폈다.
‘콜그란데 가문의 사람들인가.’
비행기 자체가 일반 항공사의 것이 아닌 콜그란데 가문 소유의 비행기니 그럴 가능성이 컸다.
널브러진 시체들을 조금 더 살펴보니, 한 가지 더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비행기가 추락해서 죽은 게 아니야.’
여기 있는 시체 모두 비행기가 추락하기 전에 이미 다른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상태였다.
‘…아마 이사벨라를 납치한 놈이겠지.’
대충 주변 상황을 살핀 오진은 몸을 돌렸다.
“이사벨라는 어디 있어?”
“후우. 잠시만요.”
숨을 고른 카시아가 추락한 비행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낡은 폐건물을 가리켰다.
“저기서 벨라의 기척이 느껴지고 있어요.”
오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성흔의 마력을 일으켰다.
전신을 사납게 타오르는 뇌전으로 감싼 후, 조심스럽게 폐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의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이사벨라…!”
기절한 채 검은색 그림자 같은 것에 묶여 있는 이사벨라의 모습.
오진은 다급히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하며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상처는… 없어.’
머리와 옷이 조금 헝클어져 있지만, 다행히 상처를 입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진은 창을 움켜쥔 채 조심스럽게 이사벨라의 주변을 살폈다.
이사벨라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를 묶고 있는 검은색 그림자의 정체가 뭔지 알 수 있었다.
“…뱀?”
그림자로 이뤄진 검은색 뱀.
‘이건….’
그래.
마치 카시아가 만들어낸 ‘뱀’과 똑같은━
“움직이지 마세요, 오진 님.”
그때.
서늘한 감각과 함께 목덜미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닿았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카시아의 모습이 보였다.
“…카시아?”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시면, 벨라의 목숨은 없답니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