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78)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78화
자매 (2)
[나의 아이야!]신전에 들어가자마자 베가(본체 버전)이 순식간에 날아와 덮치듯 오진을 끌어안았다.
그녀는 무슨 공항 검문소 직원처럼 오진의 전신을 더듬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모, 몸은 좀 어떠느냐? 어디 아픈 곳은 없느냐?]“괜찮아.”
오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뇌전을 일으켰다.
푸른 스파크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자유롭게 형태를 바꾸며 허공을 부유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마력 운용에 베가의 입에서 안도에 찬 한숨이 흘러나왔다.
“베가 너야말로 좀 어때? 제약은 다 풀렸어?”
[아직은 좀 남아 있느니라. 그래도 다음 주 정도면 현신할 수 있을 것 같구나.]“다행이네.”
오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리아크는?”
“여기다, 애송이.”
신전 지하로 통하는 계단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오는 리아크.
방금 전까지 수련을 하고 있었던 걸까, 몸을 뒤덮은 은빛 털이 물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듯 푹 젖어 있었다.
“검은 별의 성좌와 싸웠다지?”
“어. 그렇게 됐다.”
“허, 이제 하다 하다 성좌를 상대로 이길 줄이야….”
리아크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오진은 실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천마랑도 싸워 이겨야 하는데 성좌쯤이야.”
“뭐…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군.”
리아크는 오진의 왼쪽 가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검은 별의 성좌는 먹어 치워 버린 거냐? 네놈이 가진 ‘흑천’으로.”
“그건….”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오진은 이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미 자신이 흑천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들킨 이상 더 이상 숨길 건 없었다.
“크르릉.”
리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는 오진을 날카롭게 노려봤다.
노려본다고 해도 딱히 적의가 담긴 시선이 아닌, 어딘가 혼란스러워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베가야 자신과 연인이 되면서 서로의 마음을 터놓을 기회가 많았다고는 하나 리아크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실제 정체가 들킨 이후로는 리아크와의 사이가 꽤 서먹서먹해진 것도 사실.
“…그래, 알았다.”
복잡한 표정으로 몸을 돌리는 리아크.
“난 아직 수련이 끝나지 않아서 이만 자리를 비우도록 하지.”
“리아….”
신전 지하실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리아크를 붙잡으려던 오진은 이내 씁쓸한 표정으로 들어 올린 팔을 내렸다.
그 이유가 뭐가 됐든, 그와의 사이가 이렇게 서먹서먹해진 건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었다.
리아크가 자신을 피한다는 이유로 뭐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베가 또한 둘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애송이.”
“응?”
“…나, 나중에 같이 대련이나 하지.”
크흠.
어색한 헛기침을 흘리며 시선을 피하는 리아크.
오진의 입가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졌다.
서먹서먹했던 분위기가 일순 눈 녹듯 사라진 기분이었다.
“새끼, 부끄러워하기는.”
“누, 누가 부끄러워했다는 거냐!”
리아크가 사납게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오진은 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리아크에게 다가가 가볍게 등을 두드렸다.
“그래, 나중에 한 번 붙어보자고. 이번에는 성소에서 싸워도 내가 이길걸?”
“흥. 5초도 못 버티고 나자빠졌던 애송이 주제에 건방지기 짝이 없군.”
“야야, 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인데 그러냐?”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으스대듯 입꼬리를 올리는 리아크.
오진의 눈썹이 높이 올라갔다.
뭔가 친한 친구에게 ‘너 게임 존나 못하잖아’라는 말을 들은 기분이랄까.
평소 어지간한 도발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던 오진의 호승심이 불처럼 끓어올랐다.
“그럼 지금 붙어볼까?”
“흥, 됐다.”
“뭐야, 쫄리냐?”
“뭐라?”
사납게 서로를 노려보는 오진과 리아크.
[둘 다 그만하거라.]베가가 못 말리겠다는 듯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하아. 정말 사내놈들은 어찌 이리 나이를 먹어도 한결같이 아이 같단 말이냐.]한숨을 내쉬며 쯧쯧 혀를 차는 베가.
오진과 리아크는 뒤늦게 수치심이 밀려왔는지 서로의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연신 흘렸다.
‘끄응.’
밀려오는 현자 타임에 오진은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이제까지 동성 친구가 없이 자라서 그런가, 뭔가 생소한 기분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도.
“나, 나는 이만 들어가 보겠다, 애송이!”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오진은 신전 지하실로 내려가는 리아크를 뒷모습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후우. 사내놈들의 우정이란 참으로 단순하구나.]“뭐, 그것밖에 장점이 없으니까.”
오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베가에게 다가갔다.
품속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 베가에게 내밀었다.
“베가 혹시 이 종이에 그려진 사람, 누군지 알아?”
[으음?]고개를 갸웃거리며 백발의 사내가 그려진 종이를 받아든 베가.
베가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황금빛 눈동자로 오진을 응시했다.
[이, 이자를 어디서 본 게냐?]“왜 그래?”
[어디서 봤는지 묻지 않았느냐!]다그치듯 외치는 베가.
그녀의 눈빛에서 전해지는 선명한 공포와 불안에 오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대체 저 백발의 남자가 누구기에 베가가 이토록 경기를 일으키는 걸까.
“이신혁의 기억 속에서 봤어.”
[그렇다면… 직접 본 건 아니로구나.]하아.
안도에 찬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베가.
“누군데 그래?”
잠시 망설이던 베가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자의 이름은 뫼비우스. 뱀주인자리의 성좌이자, 최초로 ‘율법’을 어기고 지구에 현신한 성좌이니라.]최초로 율법을 어긴 성좌.
규율을 깨고, 비틀어 부숴버린 존재.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줘.”
[알겠느니라.]베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최초의 균열이 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니라.]온 세계가 혼란에 뒤덮였을 당시.
마경에서 쏟아져 나온 마수들이 지구의 반 이상을 뒤덮을 정도로 절망적인 시기였다.
[그 이유는 본녀도 잘 알 수 없으나, 뫼비우스는 율법을 어기고 지구에서 ‘성역’을 사용했다고 들었느니라.]“그때 성역을 사용했던 거라면….”
지금에야 율법의 제약이 좀 약해졌다고 한들, 그때는 베가처럼 북극성의 성좌가 아닌 이상 의체 상태로도 현신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그때 성역을 사용했다면.
“어떻게 소멸하지 않은 거야?”
[그건 본녀도 잘 모르겠느니라.]베가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지금과 달리 당시 성좌들은 ‘율법’을 어기는 것을 아주 큰 중죄라고 생각했느니라.]뭐, 지금 성좌를 제약하고 있는 율법이라는 건 일종의 창조주가 만들어낸 규율이었으니 성좌들이 그를 어기는 것을 ‘죄’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기독교로 치면 십계명 같은 거니까.’
성소가 아닌 장소에서 성좌의 힘을 사용해서 안 된다는 거룩한 규율을.
깼다.
짓밟고, 짓이겼다.
“그래서 성소에서 추방당한 거야?”
[그렇다고 들었느니라.]베가의 말에 따르면 당시 황도 13궁의 일원이었던 ‘뫼비우스’가 성소 밖으로 추방당함에 따라 지금의 황도 12궁이 만들어진 거라고 한다.
[사실 본녀도 직접 보거나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소문으로는 북극성의 성좌와 견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녔으며, 무척 교활하고 포악한 자라 들었느니라.]“…그래?”
오진을 만나기 전 신전에 홀로 은둔한 채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던 베가가 저런 소문을 들었을 정도면 성좌 사이에서도 꽤나 악명이 높았던 모양.
‘북극성의 성좌와 견줄 정도라.’
얼마 전 상대했던 안셀라두스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성좌라는 건 베가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천마 말고도 신경 쓸 놈이 하나 더 늘었네.’
오진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알려줘서 고마워, 베가.”
[설마 뫼비우스를 쫓을 생각인 게냐?]“아니, 지금 당장은 쫓아봤자 못 이길 것 같아서.”
흑성회 집행관들의 서열이 검은 별의 성좌의 서열과 일치한다면.
뫼비우스는 검은 별의 성좌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존재일 터.
이제 막 가장 밑바닥 서열의 안셀라두스를 잡은 직후인데 다짜고짜 우두머리를 노릴 수는 없었다.
‘뭐, RPG 게임도 아니고 나중에 만나고 싶다고 나중에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직접 뫼비우스의 뒤를 쫓을 생각은 없었다.
[현명한 생각이니라.]“그럼 난 이만 돌아가 볼게.”
[버, 벌써 돌아가는 게냐?]베가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오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이사벨라에 대한 얘기를 전했다.
[아아. 그 아이의 입장에선 충분히 서운할 수 있겠구나.]베가 또한 공감한다는 듯 오진의 뺨을 살며시 꼬집었다.
[하여간 나쁜 아이로구나.]“끄응.”
[후후. 그럼 내일 가서 그 아이를 잘 위로해 주고 오거라.]“알았어. 베가도 제약이 끝나면 보자.”
[그, 그전에는 안 되는 게냐?]일주일조차 기다리기 싫다는 건가.
오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 시간 나면 한 번 더 놀러올게.”
인정하기는 싫지만.
어차피 거문고자리의 성흔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베가와 주기적으로 ‘별의 교접’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몸 조심히 있거라, 나의 아이야.]방긋 미소 지으며 손을 젓는 베가를 뒤로 하고 오진은 신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베가의 제약이 풀릴 때까지, 그가 성소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 * *
“어디 보자… 저녁 8시 20분에 도착한다고 했지?”
오진은 인천 국제 공항으로 차를 이끌며 로베르토에게 전달받은 비행기 도착 예정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이탈리아에 남은 일이 많기는 했는지 가문이고 뭐고 다 제쳐두고 날아올 것 같았던 이사벨라의 귀국 시간은 늦은 저녁이었다.
‘굳이 무리해서 올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그래도 오겠다는데 어쩌겠는가.
오진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 예정인 출구로 나가 이사벨라를 기다렸다.
“어째 공항인데 사람이 없네.”
이사벨라는 일반 비행기가 아닌 콜그란데 가문의 전용기를 타고 오는 터라 그녀가 나온다는 출구 쪽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오진은 선물용 겸 사죄용으로 산 비싼 와인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의자 옆에 내려놓으며 이사벨라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렇게 8시 30분이 됐다.
“슬슬 도착해서 입국심사 하고 있겠네.”
9시.
“…생각보다 좀 오래 걸리네. 전용기라 짐을 찾을 필요도 없을 텐데.”
9시 30분.
“비행기가 연착된 건가?”
아니.
생각해보면 전용기가 연착될 이유가 없다.
오진이 눈을 찌푸리며 아무도 나오지 않는 공항 출구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을 때.
우우우우웅!
주머니 속에 넣어둔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떠오른 건 로베르토의 이름.
“여보세요?”
-오, 오진 씨! 거기 아가씨 도착하셨습니까?!
“아니요. 기다리고 있는데 한 시간 째 나오질 않고 있습니다. 무슨 상황입니까 이게?”
-아, 아아. 어,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공포에 질린 로베르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오진은 등골을 타고 퍼지는 불길한 예감을 억누르며 물었다.
로베르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가씨가 타신 비행기가… 시, 실종됐습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