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with an S-class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28
28화. D급 성좌 (3)
이죽헌과 계약할 생각은 없다.
내 말을 듣고 하후은은 꽤 놀란 듯했다.
“아니…… 어째서입니까?”
통신창을 통해 하후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 녀석은 재능이 있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S급 성좌의 지원을 받으면서 다시금 실력을 키운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하후은, 이죽헌한테 아직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 지요.”
하후은이 살짝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저는 생전에 무예 실력이 별로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런 말을 해 봤자 별로 설득력이 없겠습니다만…… 이죽헌은 제대로 단련만 한다면 훨씬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
“이죽헌은 지금 정도 실력이 자기 한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착각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자포자기에 빠져서 단련을 게을리하게 되었고, 나태한 생활을 하면서 성장은커녕 오히려 실력이 후퇴된 상태입니다.”
하긴 습격받는 와중에도 텐트 안에서 늘어지게 잠자고 있던 걸 보면 평소 생활이 짐작이 간다.
“정신 차리고 다시 수련을 시작하고…… 실력 있는 자들한테 더 배우고 경험을 쌓으면, 더 강해질 겁니다.”
“그럼 그거면 된 거 아닙니까.”
“네?”
“굳이 저하고 계약하지 않아도, 지금 상태로도 더 강해질 수 있는 거 아닙니까.”
“…….”
하후은은 할 말을 잃은 듯했다.
“물론 하후은, 당신이 이죽헌을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저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계약할 생각은 없다고…….”
“네, 그렇지요.”
“그러면 어떻게…….”
“이죽헌을 강유진 일행에 포함시켜, 함께 행동하며 갱생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내가 이죽헌과의 계약을 거부한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D급 성좌와 계약했지만 검술 실력은 뛰어나고 강력한 성좌무구를 지닌 계약자…… 이 캐릭터가 아까워.’
이죽헌하고 계약해서 S급 강화 각인을 덕지덕지 붙여 주고 특대 가호를 잔뜩 내려 준다고 치자.
그렇게 해서 이죽헌이 강해져 봤자 무슨 매력이 있을까?
‘D급 성좌와 계약한 채, 한계를 뛰어넘으며 역경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더 매력이 있지.’
게다가 이죽헌은 껄렁껄렁한 양아치다.
우직할 정도로 올곧은 강유진을 따라다니면서 아옹다옹하며 점점 성장해 나간다…… 이 케미에서도 재미가 창출된다.
말하자면 이죽헌은 강유진을 주인공으로 한 콘텐츠에서 중요한 ‘조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죽헌이 활약해 봤자 내 근원력은 늘어나지 않는다는 건데…….’
이죽헌이 하후은과 계약한 상태라면 하후은의 근원력만 올라간다.
하지만 이 부분은 그냥 감수해야 할 것이다.
강유진을 주인공으로 한 콘텐츠에 매력적인 조연을 추가한다는 메리트가 더 크다.
‘지금 강유진뿐만 아니라 이죽헌한테도 후원금이 들어오고 있어. 패배했는데도 불구하고 후원금이 들어온다는 건, 그만큼 가치가 있는 캐릭터라는 거지.’
그리고…… 훗날 이죽헌하고 새로 계약을 맺을 수도 있다.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무명의 성좌, 당신은…….”
하후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자기와의 계약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이죽헌을 갱생시켜 주겠다는 말에 감동한 듯했다.
“정말로 당신은, 대인이시군요.”
“저한테도 메리트가 있어서 하는 일입니다.”
“아닙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통신창 속의 하후은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문득 생각이 나 상태창을 열어 봤다.
‘이런 걸로도 오르는 건가.’
하후은에게 감명을 준 탓일 것이다.
방금 전보다 근원력이 500만 포인트 정도 증가해 있었다.
* * *
“일어나.”
“윽!”
뺨을 가볍게 때려서 이죽헌을 깨웠다.
“뭐, 뭐야?”
정신을 차린 이죽헌은 발버둥 쳤지만, 팔다리가 묶여 있다는 걸 깨닫고 움직임을 멈췄다.
“너희 패거리는 궤멸됐어. 아지트는 박살 났고, 네 부하들도 몇 명 도망친 걸 빼면 다 생포된 상태야.”
“……!”
강유진의 말을 듣고 이죽헌은 잠시 놀란 표정을 했다.
하지만 곧 입술을 깨물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렇게 되었구만.”
“너희가 관리하던 이 근방의 도로는 앞으로 흑룡회에서 관리할 거야. 물론 너희들처럼 악질적으로 통행료를 징수하지는 않을 테고.”
“어련히 잘 하시겠지.”
이죽헌은 코웃음을 치면서 강유진을 노려봤다.
“그래서, 나를 어떻게 할 거지? 판데모니움의 악마들한테 제물로 바치기라도 할 건가?”
“무슨 헛소리야?”
“너희 흑룡회 놈들은 그런 짓을 한다고 들었는데?”
“일단 나는 흑룡회 소속이 아니고, 흑룡회에서 그런 짓을 한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어.”
“그래? 헛소문이었나?”
“어쨌든.”
강유진이 몸을 숙이며 이죽헌과 눈높이를 맞췄다.
“뭐야?”
“너, 메시지 봤냐?”
“메시지?”
“성좌들 메시지 말이야.”
“뭐?”
이죽헌이 의아해하면서 눈을 움직였다.
그리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후원금이 왜 이렇게 많이 들어왔어?”
“많은 건가?”
“아니, S급 성좌하고 계약한 기대주인 데다가 싸움에서 승리한 너한테 후원금이 많이 들어오는 건 이해가 되는데…… 왜 나한테도 이만큼이나 들어온 거지? 1000만 코인이 넘는데.”
“그중에서 마지막으로 들어온 후원금 확인해 봐.”
“어? 왜 성좌 이름이 없지?”
“그분이 나와 계약한 ‘이름 없는 분’이야.”
“……!”
이죽헌이 쓰러진 뒤 많은 성좌들이 후원금을 던져 줬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뜬 메시지를 보고 강유진은 눈을 의심했다.
그분이 누군가에게 코인을 후원해 주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강유진은 한참 고민했다. 옆에 있던 석태준한테도 의견을 구했다.
“좀처럼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그분이, 너한테 후원금을 보내 주셨어. 이게 무슨 의미일까.”
“글쎄, 나는…….”
“이죽헌, 나는 네가 그분에게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해.”
“뭐?”
“이죽헌.”
다시금 이죽헌의 이름을 부르며, 강유진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특별한 계획이 있어?”
“그런 건, 딱히…….”
“계획이 없으면, 우리하고 같이 다니는 게 어떨까.”
“……뭐?”
이죽헌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자, 옆에서 석태준이 얼굴을 내밀었다.
“아, 제가 설명할게요.”
“도대체 뭐가 뭔지…….”
“음, 사실 저도 강유진 씨가 왜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닌데.”
석태준이 쓴웃음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말하자면, 우리하고 계약하고 있는 S급 성좌가 이죽헌 당신의 실력을 인정한 것 같다는 거죠. 강유진 씨는 그 성좌님을 신봉하고 있어서, 거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거든요.”
“……?”
“그분이 인정한 사람이면 그냥 보내기 아깝다, 그냥 데리고 다니면서 함께 그분의 이상을 실현하자, 뭐 이런 논리인 거죠.”
“아니, 대체 무슨 소리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데.”
“음……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이죽헌이 인상을 찡그리며 어이없어하는 걸 보고, 강유진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죽헌, 너는 자기 자신을 쓰레기라고 했었지?”
“……그런데?”
“너는 네가 D급 성좌와 계약해서 쓰레기라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잘못된 말이야.”
“뭐라고?”
“네가 쓰레기라면, 그건 네가 그동안 쓰레기짓을 해 왔기 때문이지.”
그 말을 듣고 이죽헌이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너는 아까 나를 금수저라고 했었지. 하지만 몇 주 전만 해도 나는 지하 실험실에서 인체 실험을 당하던 모르모트였어.”
“뭐?”
“운 좋게 그분에게 구원받아서, 그런 처지에서 탈출할 수 있었지만…… 자유를 찾았다고 해서 아무런 목표 의식 없이 그냥 살아가기만 했다면, 그건 별로 가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거야. 네가 말하는 쓰레기하고 큰 차이가 없었겠지.”
과거를 떠올리며, 강유진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죽헌, 나는 그분의 뜻을 받들어 살게 되면서,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어.”
“…….”
“너도 마음만 먹는다면, 쓰레기 같은 삶에서 벗어나서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거야.”
“……너 무슨 종교 믿냐? 지금 전도하는 거야?”
이죽헌이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가치 있는 삶은 무슨…… 참 나…….”
“진지하게 하는 얘기야.”
“진지하든 안 진지하든 개소리야. 애초에…….”
그렇게 이죽헌이 말하고 있었을 때.
쿠콰쾅!!
굉음과 함께, 갑자기 도로 옆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뭐야?!”
“산사태?!”
지금 있는 곳은 산을 깎아서 만든 도로였다.
그런데 도로 옆에 있는 산에서 갑자기 폭발이 일어나면서 산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야?!”
“아아악!”
“사, 살려 줘!”
주위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함께 철혈반을 제압했던 흑룡회 멤버들 중 상당수가 산사태에 휘말린 것 같았다.
강유진과 석태준, 이죽헌은 조금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토사에 깔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해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석태준, 괜찮아?”
“네, 키메라가 도와줘서…… 강유진 씨는요?”
“…….”
“헉, 어깨에……!”
콘크리트 조각 같은 게 날아와 강유진의 오른쪽 어깨에 꽤 심한 상처를 남겼다.
“이, 이봐 너, 방금 날 지키려고 다친 거야?”
“글쎄, 기억이 안 나는데.”
“강유진 씨, 일단 회복약으로……!”
“아니, 회복약은 넣어 둬.”
“네? 아니 왜…….”
“산사태에 깔린 사람들 중에 더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야, 아니, 무슨……!”
이죽헌이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지만, 강유진은 대꾸하지 않았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이쪽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뭐?”
“그러고 보니 마태수가 그런 얘기를 했었지.”
이죽헌은 계약자와의 일대일 근접전에 능하지만, 반대로 원거리 전투에는 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죽헌과 철혈반이 마법사 타입 계약자들에게 궤멸당하지 않은 건, 철혈반과 동맹 관계에 있는 조직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아무런 전조 없이 진행하는 기습이라서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만약 그 조직이 나타나서 철혈반과 함께 반격한다면 주의하라…… 라는 게 마태수의 설명이었다.
“너희와 동맹 관계에 있는 조직…… 그놈들이 너희를 도와주러 온 건가?”
“어, 근데…….”
“아니, 그게 아닌가.”
강유진은 곧바로 생각을 바꿨다.
이죽헌과 철혈반을 구출하러 온 거라면 이렇게 다짜고짜 산사태를 불러일으킬 리는 없다.
“이번 기회에 철혈반도 흑룡회도 한꺼번에 쓸어버릴 생각인 건가.”
“……!”
그 직후.
다시 한번 폭발음과 함께 또 다른 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팀 헤카테, 라고 했던가.”
고속 도로를 점거하고 있는 조직 중 하나.
뛰어난 마법 공격형 계약자를 보유한 그 조직에서, 이죽헌을 배신하고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을 몰살시키려 하고 있었다.
* * *
“크악!”
“하후은?”
관측기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주시하고 있는 사이, 통신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죠?”
어느새 통신창에서 하후은의 모습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다시금 하후은을 불러 보려 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
하후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먼저 36호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귀여운 친구.”
모습을 드러낸 건 하후은이 아니었다.
갈색 머리카락의 백인 여성이 나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이름이 없는 것 같던데 뭐라고 부르면 되지? 익명 씨?”
“…….”
“뭐, 상관없어.”
내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노려보자, 그녀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말했다.
“내 성좌명은 ‘독수리의 마녀’…… 지금 네 계약자들을 습격하고 있는 팀 헤카테의 뒤를 봐주고 있는 성좌야.”
자기소개를 마친 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너하고 네 계약자, 요즘 너무 나대는 것 같아서 밟아 주려고 하는데…… 괜찮겠지?”
백작이 경고했던 ‘나를 견제하려 하는 성좌’가, 비로소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