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with an S-class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지옥의 왕 (3)
“오오, 저기가 현상대계인 것 같군.”
허공에 존재하는 구체 위에 선 루시퍼가 먼 곳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저기로 가면 돌아갈 수 있을 거다. 음, 추락하는 기분이 들겠지만 별거 아니니 그냥 견디면 된다.”
“…….”
“…….”
“…….”
하지만 루시퍼에게 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도, 달기도, 심지어 강유진조차도…… 기진맥진해 있었으니까.
“다들 왜 그러지?”
“……살아서 여기까지 도달한 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옛날에 왔을 때는 더 힘들었다. 지금은 아주 편한 길이 된 거야.”
“당신이 존경스러워졌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일일이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고난이 있었다.
“이러니까 태공망도 지옥에서는 절대로 탈출할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
“동감이네요.”
달기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중얼거렸다.
그냥 몸으로 때워야 했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달기는 술법으로 버텼는데, 그래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둔갑술이 대부분 풀려서 몸 대부분이 구미호로 돌아간 상태였다.
“그냥 지옥에서 계속 있으면 안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
체력도 정신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유진조차 지쳐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래도 이제 거의 다 온 거다. 저기로 가기만 하면 되니까.”
루시퍼가 우리를 재촉했고, 결국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루시퍼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하지만 루시퍼는 움직이지 않고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루시퍼.”
나는 루시퍼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루시퍼는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우리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당신은 가지 않는 건가?”
“나는 여기에 남겠다.”
루시퍼는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머지않아 지옥은 완전히 소멸한다. 나는 운명을 함께할 생각이다.”
“…….”
나는 가만히 루시퍼의 얼굴을 쳐다봤다.
나와 같은 얼굴이긴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대제국을 지배하던 제왕의 위엄과 책임감이 느껴졌다.
“루시퍼, 당신은…… 부활할 생각은 없는 건가?”
나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지금 분명히 혼의 일부분만 남은 상태지만…… 나하고 강유진에게서 힘을 빼앗으면 현상대계에서도 실체화할 수 있을 텐데.”
강유진과 달기가 내 말을 듣고 흠칫 놀랐다.
“……나는 이미 죽은 존재다, 무명의 왕.”
루시퍼가 천천히 말했다.
“벨리알한테서 얘기를 많이 들었을 텐데.”
“…….”
“여기서 구차하게 되살아나 봤자, 꼴사나울 뿐이다.”
벨리알은 나한테 여러 번 말했다.
루시퍼의 명예로운 죽음을 더럽히는 자들을 용납할 수 없다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루시퍼를 부활시키려는 자들을 용납하지 못했다.
“너도 알다시피, 판데모니움은 사실상 멸망했다.”
“…….”
“생존한 악마들은 인간들과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지. 그런 상황에서 내가 다시 나타나 봤자 혼란이 발생할 뿐이다.”
루시퍼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자신이 이끌던 제국의 멸망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루시퍼, 마지막까지 투쟁하지 않을 건가?”
그런 루시퍼에게, 나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반역자 아니었나? 태공망을 상대로 마지막까지 저항해야 되는 거 아닌가?”
“…….”
“모든 것의 원흉인 태공망에게 직접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분명 있을 텐데.”
루시퍼는 입을 다문 채 가만히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렇게 잠시 동안 내 얼굴을 보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다.”
“어째서지?”
“네가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루시퍼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너에게 맡기겠다, 무명의 왕.”
“루시퍼…….”
“뒤를 이을 자가 있으면 결코 끝이 아니다…… 그렇지 않나?”
비슷한 얘기를 예전에 들은 기억이 있다.
“내가 너한테 전할 수 있는 건 모조리 전했다. 그렇다면 너의 투쟁은 나의 투쟁이기도 하지.”
“…….”
“태공망을 쓰러뜨려라, 무명의 왕.”
루시퍼는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내 머리의 보석으로 만든 물건이자, ‘신의 아들’의 피를 담은 성유물인 성배를 갖고 있다. 또한 내 힘을 재현한 강유진을 부하로 데리고 있지. 분명히 이길 수 있을 거다.”
“……루시퍼.”
나는 루시퍼의 얼굴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당신은 현상대계를 침략해 수많은 인간들을 학살했어. 그러니 나는 당신을 긍정하지는 않아.”
“그래, 그게 자연스럽겠지.”
“하지만 약속하겠어.”
나는 루시퍼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마지막까지 승리를 위해 투쟁하겠다고.”
“……그래, 그 정신이다.”
루시퍼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끌어서 좋을 건 없다. 어서 출발해라.”
“알겠어, 루시퍼.”
그렇게 대화를 나눈 뒤, 나는 다시 루시퍼에게서 등을 돌렸다.
루시퍼가 가르쳐 준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자, 다시금 목소리가 들렸다.
“무명의 왕.”
문득 고개를 돌려 보니, 루시퍼가 미소를 띤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벨리알과 친구가 되어 줘서 고맙다.”
“…….”
그것은 마치 인간 같은 말이었다.
‘루시퍼…….’
나는 문득 루시퍼도 지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루시퍼가 정말로 창조신이 인간을 만들기 전부터 싸움을 계속해 온 존재라면, 그는 모든 우주에서 가장 오랫동안 투쟁해 온 존재다.
그렇다면 그는 너무 오랫동안 싸워 왔다. 슬슬 쉬어도 되는 거 아닐까.
“…….”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조금 끄덕였다.
그리고 광대한 우주를 향해 몸을 던졌다.
루시퍼의 유산을 이어받은 채, 지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렇게 우리는 타천사처럼 추락을 시작했다.
* * *
알래스카.
판데모니움에 밀려난 미합중국 임시 정부가 존재하는 토지.
그 혹한(酷寒)의 땅에서 이죽헌은 털모자를 쓰고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하, 진짜. 추운 곳에서 몬스터 잡으려니까 죽겠네. 눈 때문에 움직이는 것도 힘들고.”
“그게 네가 할 소리냐?”
그렇게 대꾸한 건 라운드에서 ‘모드레드’라는 코드네임을 쓰던 클라이브 스트라이더였다.
“네가 우리를 데려온 거잖아?”
“너희도 자진해서 따라온 거잖아!”
이죽헌이 이끄는 원정대가 알래스카에 도착한 건 일주일 전이었다.
미합중국 임시정부와 접촉해 동맹을 맺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알래스카는 엄청나게 많은 몬스터들이 우글대는 가혹한 환경이었고, 임시정부는 외부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이죽헌은 원정대를 이끌고 몬스터 토벌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미국 놈들,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 줬으니까 잠수함 몇 척 정도는 빌려주겠지?”
“제대로 뜯어내야 해. 수지 타산이 안 맞는다고.”
그런 대화를 나누며, 이죽헌은 동료들과 함께 계속해서 몬스터를 쓰러뜨렸다.
콰콰쾅!
그러던 도중, 갑자기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왔다.
“뭐, 뭐야?”
“미사일이라도 터진 거야?”
“뭐가 떨어진 것 같은데?”
이죽헌은 다급히 폭발음이 들린 쪽으로 향했다.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현장에 도착하자, 커다란 크레이터가 이죽헌의 눈앞에 나타났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건가……?”
이죽헌은 크레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눈에 익은 얼굴들을 발견했다.
“아야야…….
“추락한다는 건 그냥 개념적인 의미인 거고, 현상대계로 전이하는 건 줄 알았는데…….”
“설마 중간부터 정말로 대기권 돌파를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성배의 힘에다가 달기의 술법을 조합하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먼지가 되었을 거야…….”
쓰러져서 중얼대는 세 사람을 보고, 이죽헌은 손에 들고 있던 의천검을 떨어뜨렸다.
“어…… 이죽헌이잖아?”
가장 먼저 일어난 강유진이 옷을 툭툭 털면서 이죽헌을 쳐다봤다.
“네가 왜 여기 있냐?”
“내가 할 소리야……!”
이죽헌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 * *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오네.”
대략적인 설명을 들은 뒤, 이죽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꿈꾼 건 아니지?”
“전부 사실이야.”
“나 참…….”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폐쇄된 미군 기지 안이었다.
우리를 발견한 이죽헌이 여기로 안내해 줬다.
“그리고 거기 너…… 아니, 당신…… 아니, 성좌님.”
“그냥 강유진이 하는 것처럼 김무명이라고 불러도 돼.”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수는…….”
나를 보면서 이죽헌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쨌든,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무명의 왕. 이렇게 만나 뵈어서 영광입니다.”
“……어색하다, 야.”
결국 존댓말을 하며 고개를 숙이는 이죽헌을 보면서, 나는 낯간지러움을 느꼈다.
“어쨌든 이죽헌…… 무사히 알래스카에 도착해서 다행이야. 내가 바빠서 별로 지원도 못 해 줬는데 큰 성과를 이룬 것 같아. 여러 나라 계약자들을 이끌고 알래스카까지 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정말 대단해.”
“무, 무슨 말씀을!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강유진 님 태도하고 이죽헌 님 태도하고 바뀐 거 아니에요?”
이죽헌을 보면서 달기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강유진은 불만스러워하는 표정을 지고 있었다.
“김무명, 나한테는 그런 식으로 칭찬해 준 적 없었잖아.”
“그랬던가?”
“……너무하네.”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문이 열리며 클라이브가 얼굴을 내밀었다.
“다들 도착했어.”
클라이브가 물러서자, 한 무리의 집단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무명!”
“왜 이리 사람을 걱정하게 만들어!”
“매번 이런 식이면 저희도 곤란합니다, 무명의 왕.”
이아손, 이규, 용길공주가 다급히 나에게로 달려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명 님……!”
49호가 눈물을 글썽이며 나에게 매달렸다.
“이번에는! 진짜로! 죽은 줄 알았다고요!”
“그래그래, 미안해.”
나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우는 49호를 토닥여 줬다.
“미안하다고 말하면 끝인 줄 알아요? 정말 너무하셔요!”
“미안, 지옥 좀 다녀오느라 어쩔 수 없었어.”
“다음에 갈 때는 저도 같이 데려가시든가!”
“아니, 그건 좀…….”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다른 성좌들을 쳐다봤다.
“시간이 별로 없어. 주민하나 태공망이 내 귀환을 눈치채기 전에, 빠르게 움직여야 해.”
그들도 세계 전체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지옥에서 돌아왔다는 걸 감지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알겠어.”
이아손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면 되지?”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동원해, 반격을 시작해야 해.”
상대방은 손가락을 까딱하는 것 하나만으로 우리를 지옥으로 날려 보낼 수 있는 존재다.
괜히 시간 끌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여 봤자 더 위험해진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
“우리들의 모든 것을 쏟아붓자고.”
지금까지 성좌로서 쌓아 온 모든 것을 모조리 쏟아부어, 최후의 결전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