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with an S-class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지옥의 왕 (2)
“지옥 곳곳에 있던 인간들의 영혼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걸 보고도, 다른 악마들은 별다른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기이함을 느끼고 조사를 시작했지. 그리고 인간의 영혼이 사라지는 것뿐만 아니라, 지옥을 구성하고 있던 영적 에너지까지 어디론가 유출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대로 가면 지옥은 말라 비틀어져 완전히 붕괴할 것이다…… 나는 악마들을 소집하여 그 사실을 알리려 했지만, 그때 마침 인간 세상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지.”
“차원이 뒤틀리고 세상이 찢어져 인간 세상으로 가는 통로가 활짝 열리게 되었지. 그 사실을 알고 악마들은 환호했다. 지금이야말로 인간 세상을 침략할 때라고 말이다.”
“나는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인간 세상으로 침략을 시작했다. 아군을 혼란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지옥이 붕괴하기 시작했다는 정보는 그냥 덮어 버렸지. 그렇게 우리는 지옥에서 탈출해 인간 세상으로 몰려갔지만…… 우리 앞에 펼쳐진 건 본래 우리 지옥과 직접 연결되어 있던 환상대계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인 현상대계였지.”
“차원의 뒤틀림은 현상대계와 환상대계가 서로 뒤섞이면서 발생한 것이었다. 그래도 악마들은 상관하지 않고 현상대계를 침략했지.”
“하지만 나는 의문을 느꼈다. 지옥의 붕괴, 현상대계와 환상대계의 중첩, 그동안 이 정도로 큰 변화가 발생한 적은 없었지.”
“나는 개인적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거대한 존재가 이 모든 것의 배후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지.”
“하지만…… 나는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나를 감시하기 시작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여러 번 나에게 경고를 보냈다. 하지만 나는 그걸 무시했다. 이 루시퍼는 그런 것에 굴할 존재가 아니니까.”
“그리고 그들은 결국…… 인간들의 불완전한 마법 의식에 개입하여, 내가 갖고 있던 에너지를 폭주시켜 나를 자멸시켰던 것이다.”
* * *
‘루시퍼 또한…… 태공망에게 제거당했던 건가?!’
루시퍼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경악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과 그 동료들뿐만이 아니었다.
루시퍼도 태공망을 조사하다가 당한 것이었다.
“그러면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지.”
루시퍼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산산조각 났던 내 혼이 왜 너에게 들어가 있을까, 무명의 왕.”
“답은 하나뿐이지.”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태공망이 내 안에 집어넣은 거야. 산산조각 난 당신의 혼을 긁어모아서 말이지.”
“바로 그거다.”
루시퍼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에 하민아가 지적했지만, 너는 본래 성좌가 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랬지.”
“태공망은 너를 성좌로 만드는 과정에서 내 혼을 ‘부품’으로 사용한 거다. 너에게 성좌가 될 자격이 있다고 위장하기 위해.”
역시…… 그랬던 건가.
예전부터 생각해 왔던 거지만, 루시퍼가 확인해 준 덕분에 이젠 완전히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S급 성좌가 된 건, 태공망의 음모다.
“중요한 건 여기서부터다, 무명의 왕.”
루시퍼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공망은 왜 너를 S급 성좌로 만들었을까?”
“……모르겠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목적으로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선택한 이유도 모르겠어.”
“흠…….”
“나는 당신하고도 태공망하고도 아무런 관계가 없어. 왜 굳이 나를 선택했을까.”
“무명의 왕, 그건 아닐 수도 있다.”
“뭐?”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고, 나는 루시퍼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게 무슨 소리지?”
“너한테는 분명 인연이 있었던 거다, 무명의 왕.”
루시퍼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태공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인간 사회 속에 숨어들기도 했다. 하민아는 그럴 때 만난 여자였지.”
판데모니움에서 악마들을 지휘하던 루시퍼가 어떻게 하민아 와 만났을까 궁금했는데, 그런 이유였던 건가.
“또한 나는 계약자 조직에 접근하여 내 수족으로 만들기도 했다.”
“계약자 조직?”
“너도 기억하고 있을 거다, 무명의 왕.”
“잠깐, 설마…….”
“그래, 유럽에서 아시아로 도망쳐…… 성경을 이용한 마법 의식으로 세상을 뒤집어엎으려 하던 그 조직이다.”
“……!”
예전에 내가 아직 천상운 곁에 있었을 무렵, 한국에 잠입했다가 팔부중의 토벌 대상이 되었던 조직이 있었다.
천상운은 그 조직의 유산을 이어받아 ‘짐승’을 출현시켜 수도권을 지배하려 했었다.
‘이게 이렇게 이어지다니……!’
그들은 성경에 포함된 예언서를 이용해 오컬트적인 발상으로 음모를 꾸몄다.
루시퍼 같은 악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면 자연스러워진다.
“무명의 왕, 너는 나하고 아무런 인연이 없었던 게 아니다.”
“하지만, 이건 아주 미약한 인연인데…….”
나는 루시퍼 본인과 접촉한 것도 아니다.
루시퍼의 영향을 받은 조직하고 약간 접촉했을 뿐이다.
심지어 그 조직을 토벌한 건 내가 아니라 천상운이었다.
“무명의 왕, 혹시 너는…… 그 조직이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순식간에 이해하지 않았나?”
“그건…… 그랬지. 천상운한테 설명해 줘야 해서.”
“어쩌면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뭐?”
“이런 가설을 세워 볼 수 있지. 내가 사망한 이후에도 태공망 혹은 그 끄나풀들은 내가 남긴 조직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조직이 마지막으로 도달한 땅에서…… 고도의 오컬트적 마법 의식을 한눈에 꿰뚫어 보는, 매우 비상한 두뇌를 지닌 존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
“그러면, 상상력을 더 발휘해 보도록 할까.”
루시퍼가 계속 말했다.
“본래 태공망은 모종의 목적을 위해 현상대계에서 쓸 만한 인간을 물색하고 있었다. 성좌가 될 정도의 인물은 아니지만, 뛰어난 지혜를 갖고 있는 인재를 여러 명 찾아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있었던 거다.”
“그렇게 해 놓고, 그중 한 명을 골라서 성좌로 만들었던 건가?”
“마침 네가 사망한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던 거겠지. 어쩌면 후보 중에서 네가 가장 적성이 맞았는지도 모르고.”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죽기 직전에 강하게 열망했던 걸 떠올렸다.
나는 그때 D급 성좌와 계약한 내 처지를 비관하고,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반드시 S급 성좌라고 마음속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당신 얘기는 전부 가설이야.”
“그렇지, 전부 다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 가설대로라면 모든 걸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어.”
“그러면 그걸 바탕으로 대책을 생각할 수 있지.”
그렇게 말하며 루시퍼가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무명의 왕, 이건 우리 모두 예상치 못했던 큰 기회다.”
나와 눈을 마주치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태공망도 이건 전혀 예상 못 했을 거다.”
“그렇겠지. 당신이 다시 깨어날 걸 알았으면 주민하도 우리를 지옥에 보내지 않았을 테고.”
“시간이 별로 없다.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나와 루시퍼는 눈을 마주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의 생각은 일치한 상태였다.
“무명의 왕, 아마 지옥을 벗어나면 나는 다시 잠들게 될 것이다. 지옥 밖에서는 네가 모든 것을 해야 한다.”
“……그렇겠지.”
“그러니 너에게 맡긴다. 현재의 나로서는 불가능한, 절대자에게 반역하는 역할을 너에게 맡긴다.”
루시퍼의 눈동자에는, 분명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나 루시퍼의 뒤를 이어, 절대자에게 반역하도록 해라, 무명의 왕.”
* * *
“마치…… 무명의 왕이 두 명 있는 것 같군요.”
김무명과 루시퍼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달기가 중얼거렸다.
“생김새가 똑같으니까 당연하지.”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요.”
강유진이 별생각 없이 대꾸하자, 달기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얘기하는 걸 듣고 있으니, 둘이 많이 비슷해요. 머리를 쓰는 방법을 비롯해서…… 혼이 닮았다고 해야 할까요.”
“뭐?”
“방금 무명의 왕은 미약한 인연밖에 없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 몰라요.”
혼이 닮았다.
그건 강유진이 생각지도 못한 얘기였다.
“강유진, 루시퍼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투쟁해 온 혁명가지요.”
“혁명가? 악마들의 왕이?”
“선악을 떠나서 생각해 보자면, 그는 유일신이라는 절대 권력을 상대로 용감하게 반기를 든 존재예요. 전지전능한 존재 앞에서 ‘자기 의지로’ 반역한 거예요. 그것도 혼자 반역한 게 아니라 주위 천사들의 호응까지 얻어서 거대한 전쟁을 주도했죠.”
“…….”
“결국 루시퍼는 패배해서 이 지옥에 떨어졌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투쟁했어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웠죠.”
달기는 강유진을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
“무명의 왕하고 닮지 않았나요?”
“무명의 왕하고…….”
“물론 사악한 악마들의 왕인 루시퍼를 무명의 왕하고 비교해서는 안 되겠지만…… 선악을 떠나서 생각해 보자면, 분명히 닮았다고 생각해요.”
“…….”
“어쩌면 태공망이 무명의 왕을 선택한 건……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한 뒤, 달기는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지금 상하이에 감금되어 있는 하민아가 불쌍하네요. 이런 광경을 보지 못하다니.”
그건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 * *
“좋아, 대충 정리가 되었군.”
대략적인 이야기를 마친 뒤, 루시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슬슬 지상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그게…… 가능한 건가?”
“그래, 주민하나 태공망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루시퍼는 씩 웃었다.
“나는 이 지옥을 지배하는 제왕 루시퍼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 통로쯤은 알고 있지.”
“……믿음직하네.”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여전히 위화감이 있지만, 루시퍼가 옆에 있으니 정말로 든든했다.
“무명의 왕, 주민하는 아주 큰 실수를 한 거야.”
“맞아. 최대의 실수였지.”
그렇다.
나를 지옥으로 보낸 건 주민하의 가장 큰 실수였다.
태공망도 루시퍼가 깨어날 일은 영영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옥으로 가니 루시퍼가 깨어났다. 우리의 탈출을 도와주는 것뿐만 아니라 나와 머리를 맞대고 태공망의 음모를 파헤쳐 주기까지 했다.
“너와 만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무명의 왕.”
“나야말로…… 당신하고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었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지. 아주 험한 길이 될 텐데…… 괜찮겠나?”
“잠깐.”
나는 기억을 되새기며 물었다.
“혹시 당신이 에덴동산에 숨어 들어갈 때 지나간 그 길 말인가?”
“그렇지.”
“…….”
밀턴의 『실낙원』에 의하면, 먼 옛날 사탄 즉 루시퍼는 유일신이 창조한 에덴동산에 잠입하기 위해 혈혈단신 지옥에서 출발했다.
그는 온갖 괴물들이 지키는 지옥의 관문을 통과한 뒤, 밤과 혼돈이 지배하는 태고의 심연 속에 몸을 던져야 했다.
그곳은 위도 아래도 없고, 바다도 아니고, 육지도 아니며, 시간과 공간도 의미가 없는 곳이었다.
본래 천사의 날개를 퍼덕이며 장엄하게 비행하던 루시퍼도 여기서는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면서 통과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태초의 원소들이 루시퍼를 공격해 댔는데, 『실낙원』에서는 아르고호나 오디세우스가 겪었던 것보다 더 위협적이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좀 더 편한 길 없나?”
“하하하. 고난 없는 영광은 없는 법이지.”
루시퍼가 악마처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