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with an S-class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88
88화. 강남 결전 (1)
“헥토르 각하의 진짜 목적…… 말이냐?”
내 질문을 받은 브라다만테가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그런 걸 술술 불 거라고 생각하느냐?”
“말하지 못하는 건가?”
“이봐, 형씨.”
바닥에 앉아 있던 이규가 험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여자, 보기보다 강단이 있어. 그냥 말로 캐물어서는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어떻게 하려고?”
“매운맛을 보여 줘야지.”
그렇게 말하며 이규가 도끼로 바닥을 찍었다.
“손가락 발가락부터 도끼질 좀 해 주면 울고불고 다 얘기할 거야.”
“웃기는군. 어디 한번 해 보시지?”
“어쭈?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브라다만테와 이규가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이규, 잠시만.”
나는 일단 이규를 제지한 뒤, 브라다만테를 쳐다보며 말했다.
“브라다만테, 조금 이상한데.”
“이상하다고?”
“너는 진정한 정의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했었고, 내가 협력해 준다면 자세한 얘기를 해 주겠다고도 말했었어. 왜 아무 말도 못 해 주겠다는 거지?”
“그건…….”
브라다만테가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너희가 정말로 정의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 거라면, 우리한테 얘기해서 나쁠 건 없을 거야. 혹시 실제로는 사악한 목적을 갖고 움직이고 있는 건가?”
“그, 그럴 리가 없지!”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헥토르는 명예를 중시하는 고매한 인성의 소유자니까.”
“무, 물론이다. 각하는 훌륭하신 분이다.”
“그리고…… 너도 말이지.”
“……나?”
내 말을 듣고 브라다만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를마뉴 12기사의 홍일점으로서,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지려고 수많은 시련을 극복한 영웅…… 그런 불굴의 의지를 지닌 기사가 사악한 존재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
놀란 표정을 짓는 브라다만테에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계속 말했다.
“사실 나는 너를 모델로 삼은 예술 작품을 몇 번 접해 본 적이 있어.”
“나, 나를 모델로 삼은 예술 작품? 그런 게 있었나?”
“몰랐어? 나중에 알려 줄 테니 한번 확인해 봐.”
서사시에서 묘사되는 브라다만테는 유럽의 그리스도교 사회를 수호하는 기사이면서, 이교도인 이슬람 측의 기사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시련을 겪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녀의 그런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화가들은 그녀를 모델로 삼아 여기사 그림을 그렸고, 그녀를 주인공으로 삼은 연극, 오페라, 소설 작품이 수두룩하다.
“흐, 흠…….”
브라다만테가 조금 붉어진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그, 그런가. 그냥 역사에 남았을 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들에도…….”
“그렇다니까.”
“흠…… 그런가…….”
브라다만테의 태도가 살짝 누그러진 걸 확인한 뒤, 나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런 브라다만테 경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려고 할 리가 없다고,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
“다, 당연하지. 나는 정의와 명예를 위해 싸우는 기사니까.”
“다니엘서의 네 번째 짐승을 불러내긴 했지만, 사람들을 해치려는 건 아닐 거야. 어디까지나 진짜 중요한 목적을 위한 일이겠지.”
“그렇지…….”
“천상운도 단순히 사리사욕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겠지. 너희들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 진짜 목적을 향해 움직이고 있을 거야. 그러려면 짐승의 힘이 필요하고 수도권을 지배할 필요가 있는 거겠지.”
내가 알기로…… 천상운은 개인적인 욕심으로 이런 일을 벌일 인물이 아니다.
“천상운이 수도권의 지배자가 되고 강한 힘을 손에 넣어야만 대처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거지.”
“…….”
“비교적 안정되어 있는 한국에서 그렇게 큰일이 벌어진다…… 과연 무엇일까.”
“……내 입으로는 말할 수 없다.”
브라다만테가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믿어 주길 바란다. 우리들은…… 자신의 긍지를 더럽히는 일은 하지 않아.”
“그 말이면 충분해.”
결국 브라다만테는 자세한 얘기는 해 주지 않았지만, 나는 만족스러웠다.
‘이걸로…… 헥토르와 천상운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했으니까.’
직접 말해 주지는 않았지만, 브라다만테는 내가 원하던 대답을 전부 해 준 것과 마찬가지다.
슬쩍 치켜세워 주면서 브라다만테의 기분을 좋게 만든 보람이 있었다.
물론 브라다만테를 도발하여 유도 심문으로 이런 대답을 이끌어 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브라다만테, 비록 지금 우리는 이렇게 적대하고 있지만, 나는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어.”
“무명의 성좌…….”
“자세히 얘기해 줄 수 없는 당신 입장은 이해해. 그러니 일단 지금은 더 이상 캐묻지 않겠어. 고문 같은 것도 하지 않을 테니까, 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좋아.”
“처음부터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았다…….”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브라다만테를 보면서, 나는 그녀의 태도가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상황 변화에 따라 더 많은 정보를 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헥토르와 교섭을 해야 할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형씨.”
이규가 내 목에 팔을 두르면서 소리 없이 씩 웃었다.
“형씨가 가장 나쁜 놈인 것 같아.”
“……비밀이니까 떠들고 다니지 마.”
브라다만테에게 들리지 않도록, 나와 이규는 작은 목소리로 귓속말을 했다.
* * *
이현제가 각지에 배치해 뒀던 경비대를 통해, 강남으로 이동하기 위한 승합차를 금방 입수할 수 있었다.
현재 강유진, 석태준, 이죽헌, 주민하, 이현제, 그리고 서영미로 둔갑한 달기는 차를 타고 강변북로를 달리는 중이었다.
“한강 주변 분위기가 심상치 않군요.”
운전석에 앉은 주민하의 말대로, 한강에서는 다양한 몬스터들이 날뛰고 있었다.
한강 다리 위에서도 우글거리고 있어서, 이현제 휘하의 한강 경비대들이 대처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지난번 토벌 이후로 개체수가 줄어들었을 텐데도 저렇게 많은 숫자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건…….”
“강남에서 벌어지는 이변에 호응하고 있는 거겠지.”
그렇게 대꾸하면서 이현제가 창문 밖을 쳐다봤다.
강 건너에서 거대한 기운이 하늘 높이 솟구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게 본격적으로 ‘짐승’이 되기 전에, 천상운을 막아야 해.”
“최대한 빨리 한강 이남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주민하가 엑셀을 밟아 속력을 올렸다.
“한강 주변의 혼란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내 부하들을 강남까지 전진시킬 수가 없어. 우리들이 강남으로 내려가 천상운하고 결판을 내야 해. 그리고…….”
그렇게 말하던 이현제가 옆에 앉아 있는 강유진에게 시선을 향했다.
“천상운은 우리가 자기들 앞까지 오는 걸 기대하고 있을 거야.”
“……천상운의 심리를 잘 아나 보지?”
“그래.”
이현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건 우리가 도착하도록 길을 열어 놓고 있을 거라는 얘기는 아니야. 방금 윤미호와 최철민이 우리를 습격했듯이, 자기 부하들을 투입해서 우리들을 막으려 하겠지.”
“…….”
“그리고 천상운은 그렇게 도착한 우리들을 쓰러뜨리고, 이 시나리오를 종결시키고 싶어할 거야.”
“……이현제.”
강유진은 예전부터 궁금했던 걸 물어보기로 했다.
“결국 시나리오는 대체 뭐지? 이벤트나 퀘스트처럼 클리어 조건이나 보상도 안 나오는데 말이야.”
“정확한 건 몰라. 다만…….”
이현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세상의 흐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건이 시나리오로 규정된다고 알고 있어.”
“이 세상의 흐름…….”
“그래서 시나리오에는 특별한 달성 조건이 없어. 이벤트나 퀘스트는 달성 조건을 충족하면 끝나는 거지만, 시나리오는 어떤 식으로 끝냐느냐가 중요해.”
“그렇다면 이번 시나리오는 천상운을 막느냐 못 막느냐에 달렸다는 건가?”
“그렇지, 만약 천상운을 막지 못한다면 이번 시나리오는 천상운이 짐승의 힘을 얻어 세상을 손에 넣는 결말로 끝나는 거야. 천상운을 막는다면 그게 무산되는 결말인 거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때, 뒷좌석에 앉은 달기가 입을 열었다.
“이벤트나 퀘스트는 계약자가 주체가 되지만, 시나리오는 다르지요.”
“…….”
“굳이 말하자면 시나리오의 주체는 이 세상입니다. 우리들은 그 시나리오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등장인물에 지나지 않죠.”
그렇게 말하면서 달기는 창문 밖을 쳐다봤다.
“물론…… 주인공이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말이지요.”
달기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그럼 그 시나리오는 누가 정하는 거지? 시나리오냐 아니냐를 정하는 존재가 있을 거 아냐?”
“후후.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군요.”
정말로 몰라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서영미 행세를 하고 있어서 얼버무리는 건지 알 수 없는 태도였다.
“……대충 알겠어.”
그렇게 말하고 강유진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결국 시나리오라고 해서 특별히 뭔가 다르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건가.”
“야, 강유진. 너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옆에서 이죽헌이 한마디 했지만, 강유진은 담담히 대답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뿐이야.”
“뭐?”
“나쁜 놈들을 쳐부수는 거지.”
확신을 갖고, 그렇게 단언했다.
“천상운이 무슨 심정으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 그건 잘 몰라. 크게 관심도 없고 말이지.”
“강유진…….”
“하지만 천상운을 막아야 하는 건 분명하지.”
그렇게 말하며 강유진은 이현제를 쳐다봤다.
“세상의 운명 같은 건 당신들 팔부중이나 성좌들이 알아서 고민하겠지. 나는 그런 건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천상운을 막겠어.”
“…….”
“그분도 내가 그렇게 하는 걸 기대하고 계실 테니까.”
직접 ‘이름 없는 분’의 지시를 받은 건 아니다.
하지만 아까 이현제가 문중하고 대화를 할 때, 문중이 ‘이건 너희들의 성좌하고도 의견 조율이 끝난 얘기다.’라고 말해 줬다.
문중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지금 이 싸움은 그분이 원하는 싸움이라는 얘기가 된다.
“최선을 다해, 목숨 걸고 싸워 봐야지.”
“…….”
이현제가 강유진을 지그시 쳐다봤다.
그리고 잠시 뒤 한숨을 내쉬었다.
“나한테도 너처럼 흔들림 없는 의지가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당신은 꽤 흔들림 없어 보이는데?”
“아니야, 지금도…… 천상운의 배신에 상당히 동요하고 있어.”
그렇게 말하며 이현제가 쓴웃음을 지었다.
“웃긴 일이지. 그동안 팔부중으로서도 개인으로서도 많이 충돌해 왔지만, 나는 천상운을 친구처럼 생각하고 있었어.”
“…….”
“그래도…… 막아야겠지.”
“그래.”
마음을 다잡는 듯이 주먹을 꽉 쥐는 이현제에게, 강유진은 천천히 말했다.
“이현제, 지금 수도권 각지에서 혼란이 벌어지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천상운을 막을 수 있는 건 우리밖에 없어.”
“……맞아.”
“당신은 팔부중이야. 같은 팔부중이 저지른 불상사는 책임지고 해결해야지.”
그렇게 말한 뒤, 강유진은 문득 고개를 돌려 석태준을 쳐다봤다.
“석태준.”
“네?”
“당신도 책임지고 키메라를 되찾아.”
“……!”
“그동안 키메라하고 계속 동고동락했잖아. 천상운이 키메라를 죽이지 않았다면 멀쩡히 살아 있겠지.”
그 말을 들고 석태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책임지고 탈환해. 아니, 구출해 내라고.”
“……알겠습니다!”
석태준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뒤 강유진은 이죽헌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러고 보니, 이죽헌.”
“왜?”
“그 무기, 쓸 만한 것 같아?”
“……물론이지.”
이죽헌이 아까부터 계속 살펴보고 있는 검을 살짝 치켜들었다.
“가벼우면서도 매우 예리하고 튼튼해. 이런 검은 본 적이 없어.”
그것은 이죽헌이 기습적인 승리를 거뒀던 윤미호의 검이었다.
“지난번에 네가 빌려줬던 뒤랑달 레플리카와는 달리 내 스타일에도 잘 맞을 것 같고, 이거라면…….”
그동안 이죽헌은 좋은 칼이 없다고 종종 불평했다.
예전에 명검 중의 명검인 청강검을 쓰던 이죽헌 입장에서는 어떤 칼을 써도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전리품으로 손에 넣은 윤미호의 검은 이죽헌이 보기에도 매우 훌륭한 무기인 것 같았다.
“잘됐네.”
그렇게 대답했을 때, 차량이 크게 흔들렸다.
“한남 대교를 통해 한강을 건너겠습니다. 몬스터들의 습격이 예상되니 대비 부탁드리겠습니다.”
운전석에 앉은 주민하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한강 너머에 천상운의 부하들로 보이는 집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숫자가 제법 많군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주민하는 어딘가 들떠 있는 것 같았다.
“아주 위험할 것 같습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기대되는군요.”
“……특이한 사람이네요.”
뒤에서 달기가 짤막하게 중얼거렸지만, 주민하는 대꾸하지 않고 엑셀을 강하게 밟았다.
이제 곧…… 천상운 세력과의 결전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