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24
영원한 겨울의 도시 (2)
문 위의 고대 숫자가 3으로 줄어들었다.
붙들 새도 없이 다른 두 기사가 기민하게 2왕자를 뒤따랐고, 짝을 지어 동료의 등을 지키던 나머지 두 기사 역시 이계로 넘어가려던 찰나.
퍼어억!
최대한의 [강화]를 두른 첼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그들에게 뛰어들었다.
첼은 몸통 둘레가 저와 두 배쯤 차이 나는 거한을 바닥에 처박았다. 방금 클레이오가 쓰러졌던 흙바닥이었다.
곧바로 반격에 들어가려는 기사의 목을 팔꿈치에 꽉 끼워 조르고 무릎으로 그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두 쌍둥이들도 지지 않고, 동료를 구하려 몸을 돌린 나머지 한 기사를 제압했다. 리피가 그자의 오금을 검집 끝으로 찍어 누르고, 레티샤가 뒷목을 쳐 기절시켰다.
첼이 소리쳤다.
“레이! 가! 저 안에선 마법사님이 꼭 필요하잖아!”
쌍둥이들도 결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불명예를 무릅쓰기로 결정했고, 클레이오는 동료들이 마련해준 마지막 기회를 꽉 붙잡았다.
고맙다는 말은 나중에 해도 될 것이다
신음소리도 못 내고서 꽈르륵 기절해버린 크뤼엘 기사들의 손끝은 므네모시네의 문 안으로 팔락이며 사라지는 케이프 코트의 끝자락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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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인 것 같기도 하고, 천 년 같기도 한 결락이 의식과 무의식 사이로 끼어든다.
몸이 떠올랐다 하강하고, 추락했다가 상승하는 흐름을 탔다.
어느새 또다시.
익숙한 고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기억된 세계: 영원한 겨울의 도시] [―므네모시네 여신의 깨어진 보석이 응집시킨 시공의 조각.―‘마스터 클락’을 멈춰 역사의 반복을 중지시켜 주세요. 시간적 동시성을 잃으면 공간은 해체됩니다.
주의: 제한 시간이 다하면 모든 요소가 시작 상태로 리셋됩니다.] [―남은 시간 / 제한 시간:
29:59:45 / 30:00:00]
“허업! 푸하합. 컥.”
클레이오는 차가운 파도에 휩쓸리며 허우적대다가 얕은 곳으로 밀려온 뒤에야 뭍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발끝까지 물에서 빼자 젖은 케이프 코트가 더없이 무겁게 몸을 조여 왔다.
탈진한 마법사는 숨을 헐떡이며 금이 간 콘크리트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코와 귀로 염수가 줄줄 흘렀다. 에테르가 부족해 [세정]이나 [건조]를 걸 수도 없었다.
일단 숨을 골랐다. 일어날 힘이 없기도 했다.
‘에테르, 에테르부터 모으자.’
낯설고 위험한 공간에 무방비로 널브러진 채인데도 불안하거나 두렵진 않았다.
모든 겨울이 저 밖으로 달음질쳐 나간 탓일까?
얼어붙은 바깥과 달리 기억된 공간은 아직 초가을이었다.
공허의 허공과 맞닿은 경계의 이편, 넓게 펼쳐진 만 안쪽의 기후는 비교적 따스했다.
이곳은 기이하게도 평화롭고 몹시 조용했다.
젖은 몸을 어르듯 가볍게 늦가을의 바람이 살랑였다. 약간 쌀쌀했지만 젖은 채로도 여름 정원의 케이프는 코트는 여전히 기능해,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머리맡에선 해풍을 받고 자란 들풀들이 바람에 누웠다.
그가 누운 곳은 선박용 크레인이 늘어선 항구의 끄트머리였다.
‘근현대의 바닷가 풍경은 어디든 비슷해지는 모양이지.’
그는 이곳이 어딘지 알았다.
이제는 클레이오도 ‘기억된 세계’의 구성 원리에 관해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여왕의 정원’은 큐 가든.
‘원형 극장’은 아테네 부근의 디오니소스 극장.
‘전광의 밤’은 공습 중의 런던이었다.
모든 기억된 세계는 지난 세계의 과거를 불완전한 참고문헌 목록처럼 매달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이 어디인지는 자명했다.
단서는 충분히 주어져 있었다.
수백 개의 다리와 핏줄처럼 뻗은 운하, 새벽에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도시.
대공의 거처였던 노란빛 궁전과 색색이 화려한 둥근 돔의 사원을 품은 옛 수도.
북의 베네치아.
그러나 한때는, 무사이 여신들이 시인으로 하여금 송덕케 할 만한 20세기 인물과 같은 이름을 가졌던 장소.
여기는 레닌그라드.
‘아니, 정확하게는 봉쇄된 레닌그라드지.’
이 공간이 재현하고 있는 시기는 2차 대전의 한복판.
독일군의 바리케이드 대신 기억된 세계의 경계가 도시와 허무 사이를 구분해내고 있었다.
오로지 환상 속에서.
그러나 희망 없이 고립되어 있다는 점에서 환상과 실제는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쿠쿵.
쿠쿠쿵.
잠시간의 평화는 흩어졌다. 멀리서 ‘하늘의 귀족’이 잔인한 불을 흩뿌리며 도시를 침탈했다.
클레이오는 여전히 에테르 순환을 그치지 않았다.
저들은 멀고, 클레이오의 목적은 마수를 잡는 것이 아니다. 따스한 낮이 이어질 동안 에테르를 조금이라도 더 모아야 했다.
‘영원한 겨울의 도시’는 이름 그대로의 던전이었다. 이곳의 한낮은 언제든 그믐의 밤으로 변할 수 있었다.
날아다니는 비행기 그림자나 으르렁대는 석상 따위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 도시에 나타나는 것 중 가장 무서운 마수는 어둠과 냉기 ― 룬데인을 집어삼킬 뻔했던 두터운 추위의 장막, ‘혹한’이었다.
지금 당장은 물 아래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검은 것.
톡.
반쯤 눈을 감은 채 생각을 정리하던 클레이오의 뺨 위로 미지근한 물방울이 떨어졌다.
하늘이 여전히 맑은데 여린 그늘이 지고.
“클레이오.”
한 손에 검을 든 이시엘이 허리를 숙여 클레이오를 들여다보았다.
젖어 꽃잎의 심처럼 짙게 붉어진 머리카락 끝에 또다시 물이 맺혔다가, 토옥, 클레이오의 창백한 이마를 적시며 떨어졌다.
한여름을 응축한 듯한 녹색의 시선이 클레이오를 훑었다. 부상 여부를 살피는 눈길일 뿐임을 알면서도 기묘한 감명이 있었다.
상황, 인물, 배경 전체가 어긋나는, 참으로 적절치 못한 서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시엘은 클레이오의 젖은 얼굴을 손등으로 쓱, 무심히 훔쳤다.
“어떻게, 날 금방 찾았네.”
“인기척이 전혀 없는 곳이라 네가 첨벙이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 다친 데가 있나?”
“아니.”
“그런데 일어날 수 없는 건가?”
“이제 일어나야지.”
누운 채로 입술만 달싹이는 클레이오를 보고서 이시엘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좀 더 쉬어라. 기후를 바꾸는 대마법을 펼친 직후이잖나. 에테르 순환이 좀 더 필요할 것 같군.”
“아서와 합류해야 하잖아….”
“네가 에테르 고갈 상태인 채로 이 기억된 세계의 가운데에 나아가느니 잠시간은 휴식 시간을 갖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자신의 꼴이 정말 못 봐줄 상태긴 한 모양이었다. 아서바라기이자 아서지킴이인 이시엘이 당장 아서를 찾으러 가잔 말을 반려할 정도면.
그 호의를 받아들여 클레이오는 누운 채 에테르 순환에만 집중했다.
젖은 머리를 털털 털어낸 이시엘은 방수포 배낭 안에서 포옹의 반구를 찾아 꺼냈다.
반구 안의 필라멘트는 빛을 내지 않고 수정은 여전히 투명하기만 했다.
“아서 신호는 안 잡혀?”
“그렇다.”
아서는 포옹의 반구 감마의 신호 범위를 넘어선 위치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클레이오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이 기억된 세계 역시 실제 세계를 축으로 연결된 공간이었다. 아서에게 위협이 닥쳤다면 ‘약속’이 고지를 보내왔을 것이다.
“발목 잡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서는 무사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 자식은 6레벨 검사 중에서도 발군으로 세잖아. 정 안 되면 성흔도 있고.”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아서 님을 믿는다.”
“응.”
그렇게 클레이오와 이시엘은 조금 더 앉아 있었다.
펼쳐진 바다는 검푸르게 깊었다. 남쪽의 휴양지처럼 썩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었다.
그저 가공의 늦가을이 보내오는 바람이 옷과 머리카락을 말리길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두 사람은 말이 없어도 편안했다.
쿠구구구.
쿠쿠쿠쿵.
또다시 폭격이 연이었다.
이번에는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불이 번졌다.
이시엘은 검의 그립을 쥐었고, 클레이오는 빈약한 고개를 꺾어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보았다.
강과 만을 잇는 간척지의 해안 창고 위로 커다란 에테르 덩어리가 명중했다.
가장자리가 이지러지는 어설픈 날개의 형상. 창고를 공격하는 것은 그림자로부터 떨어져 내린 푸른 에테르의 덩어리였다.
강과 만을 잇는 간척지의 해안 창고 위로 커다란 에테르 덩어리가 명중했다.
사이렌 소리는 들려오다가, 어느 순간 끊겼다.
설탕이 타는 달콤하면서도 씁쓰레한 향내가 펼쳐졌다.
한 차례 마법을 구성할 만한 에테르가 모인 것을 확인한 클레이오는 비슬비슬 일어나 이시엘을 이끌었다.
이제는 움직여야 할 시간이었다.
“저기, 도시 안쪽으로. 불이 난 곳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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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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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도 하늘의 귀족이 있었다.
물론 편대 비행을 하던 하늘의 귀족 4기 정도는 클레이오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목재 창고 위로 에테르 폭탄을 떨구던 검은 그림자는 클레이오가 내쏜 아킬레우스의 창에 꿰여 모두 소멸했다.
이제 6레벨에 오른 클레이오에게 5레벨 마수는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다만 체력과 에테르가 부족한 게 문제일 뿐.
마수는 소멸했어도 마수가 남긴 불은 한 번에 사그라지지 않아서 식량이 쌓여 있던 목재 창고를 거의 다 태우고서야 꺼졌다.
불이 일으킨 어두운 잿빛 구름은 하늘을 뒤덮었다. 설탕이 타는 냄새는 이 창고로부터 바닷가까지 흘러온 온 것이었다.
이시엘은 날래게 움직여 마수가 추락한 자리에 남은 마석 은을 차곡차곡 그러모아 왔다.
지난번 마리아 교수가 모아다 준 마석 은은 정말로 질이 좋아, 클레이오가 거듭 감탄하던 걸 이시엘도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하늘의 귀족이 뱉어 놓는 마석 은은 순도가 매우 높아 마법에 쓰면 위력이 남달랐다.
이리저리 녹아 뭉쳐진 은괴를 클레이오가 집어넣기 좋도록 손수건에 싸서 건네던 이시엘은 동료가 보이는 행동에 의아해했다.
클레이오는 마석 은도 도외시하고선 제 몫의 배낭에다 창고 가장자리에 남은 식량을 잔뜩 집어넣고 있었다.
불에 녹아 가장자리가 흘러내리던 버터는 종이에 싸고, 설탕, 가공육, 말린 빵까지 더해 배낭의 빈자리를 채웠다.
“비상식량은 충분히 넣어 왔는데, 그걸 왜 챙기지?”
클레이오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갑작스레 던전이 열려 아이들에게 다 전하지 못한 사항이 많았다.
“이시엘, 네 가방을 열어 봐.”
마석 은을 클레이오의 배낭 앞주머니에 손수 넣어준 후, 이시엘은 제 등 뒤의 배낭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기억된 세계로 이동할 때 쓰도록 꾸린 가방 안은 항상 들어 있던 말린 소시지, 비스킷, 설탕과 찻잎이 모두 재와 눈에 섞인 질척한 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속주머니를 방수포로 만들지 않았다면 다른 소지품까지 전부 젖어버렸을 판이었다. 그나마 물통 안의 내용물은 멀쩡해서 다행이었다.
“이게 무슨 변고인가.”
“아마, 기억된 세계로 이동할 때 이미 이렇게 됐을 거야. 이 기억된 세계의… 특징이야. 여기선 식량이 모두 삭아서 사라져.”
어떤 의미에서는 지독하게 악의적인 설계라고 생각했지만, 클레이오는 그 점을 굳이 입에 담진 않았다.
“체류 기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다행이다.”
“그래. 이틀 정도 굶는다고 죽진 않으니까. 그렇지만 굶고 싸우면 잘 싸울 수 없으니 식량을 좀 챙겨가자.”
날씨가 춥고 운동량이 많으면 칼로리 소모가 더더욱 빨라졌다. 검사들은 신체 능력이 좋은 만큼 더 빈번하게 허기를 느끼는 편이었다.
“네 예측의 성흔이 없었더라면 큰 고생을 했겠군.”
“뭐어….”
클레이오는 칭찬 들을 때면 늘 어색하게 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눈빛이 떨리고 손가락이 안절부절못하게 뒤엉켜 배낭을 여미는 데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자, 이시엘 네 배낭도 줘봐. 마저 채워 넣고 아서를 만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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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동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근대에 구획된 도시의 길은 곧고 쭉 뻗어 있어서 헛갈릴 염려가 적었다.
이보다 더 복잡한 길이라 하더라도 문제는 없었다. 클레이오의 머릿속에는 2단 접지로 컬러 인쇄해 별지로 끼워 넣었던 이 도시와 미술관의 지도가 남아있었다.
이미 까마득해진 전생이지만 「기억」은 확실하게 작동했다.
이쪽 세상으로 넘어오기 꼭 두 달 전, 민기철 교수의 에르미타주 탐방기를 편집한 덕에 불러올 수 있게 된 정보였다.
‘에르미타주 탐방기… 본문 4도로 찍고 지도 두 장 별지에다 디자이너가 우겨서 표지도 수입지를 쓴 바람에 제작비가 엄청 뛰었던 책인데, 그게 이렇게 도움이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