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56
마담 리스의 연인 (2)
클레이오는 놀라 멜키오르를 쳐다보았다.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담은 내용은 참으로 귀중한 정보였다.
멜키오르는 이 저택의 사용인들 전부를 상대로 스킬을 시험해 볼 시간이 있었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작자였다.
멜키오르가 알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할 때, 마스터 클락의 종류가 바뀌었다 해도 보상품이 크게 변동되진 않은 것 같았다.
8교에서의 보상은 월계수 가지를 조각한 뮈토스의 홀이었다.
시계에 새겨진 나뭇잎이 월계수 잎이라면 보상품과 유사성이 있었다.
‘하지만 저 말을 다 믿어도 되나?’
저 금안의 괴물은 타인을 기만하고 진실 가운데 허위를 섞어 일을 어그러뜨리는 것 역시 진심인 존재였다.
클레이오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약속의 기능을 불러냈다.
사안의 참과 거짓, 요소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 할 수 있습니다.
*주의: 해당 기능사용 시 체내 에테르의 95%를 일시 소모합니다.] [―「적절성 판단」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정말입니까, 저하?”
“그렇다네.”
클레이오는 멜키오르에게 똑바른 시선을 고정한 채 판별의 결과를 파악했다.
[―「적절성 판단」에 의거, 해당 답변은 참으로 판명되었습니다.]일순 에테르 그릇이 위태롭도록 텅 비었으나, 그런 일에 익숙해진 클레이오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은 채 꼿꼿이 서서 버텼다.
외려 그를 동요시킨 건 결과가 참이라는 사실이었다.
‘멜키오르라고 해도 여기서 내도록 버티고 있거나 허망하게 죽고 싶진 않은가 보지? 웬일로 제대로 협조를 하네.’
멜키오르는 적절성 판단도 클레이오의 에테르 그릇이 빈 일도 알아채지 못한 듯, 여전히 온유한 미소만을 짓고 있었다.
클레이오가 운을 뗐다.
“…그렇다면 런레이라는 자가 머물렀다는 호텔부터 탐문을 해보아야겠군요. 천 노인이 시계를 가져다준 호텔이 어디인진 혹시 아십니까?”
이미 읽어본 책을 복기하듯 눈을 깜빡이던 멜키오르가 금세 답변했다.
“흠, 버블링 웰 로드의 파크 호텔이라고 하는군. 잘 탐문해 보도록 하게.”
단서를 알려주면서도 팔걸이에 팔꿈치를 짚고 편안히 고개를 기댄 멜키오르의 자세는 그대로였다.
자신은 거기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이겠다는 비언어적 의사 표시가 깔린 대답이었다.
클레이오는 피곤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이 기억된 세계의 장르는 판타지가 아니라 하드보일드 탐정물인 모양이었다.
***
첼은 파라마운트 댄스홀의 플로어 위를 춤추듯 달렸다.
멋진 댄스 슈즈의 굽이 바닥의 로즈우드 목판과 부딪치며 탭댄스를 추는 듯한 소릴 냈다.
아르데코 양식으로 장식된 홀은 춤추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녀는 경쾌한 몸놀림으로 장애물을 피해 목표를 쫓았다.
첼이 소리쳤다.
“레이! 출구를 막아!”
직원용 출구와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서, 김릿 한 잔을 앞에 둔 채 대기하던 클레이오는 얼른 일어나 마법식을 전개했다.
우선은 서클의 빛을 [감소]시키는 식을 펼치고 그 위로 [차폐] 마법을 걸었다.
터엉!
갑자기 닫힌 문에 이마를 부닥친 붉은 머리 사내가 비명을 질렀다.
“악!”
금세 문 앞에 도달한 첼은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를 질질 끌고서 아직 공연이 시작되지 않은 무대 뒤로 들어갔다.
커튼 한 겹 너머 저편에서는 무희들이 등장을 준비하며 담배를 피우고, 이편에서는 요란한 음악 소리가 울려 류샤춘의 비명을 파묻었다.
고래고래 소릴 지를 수 있었다 해도 얼른 뒤따라온 클레이오의 [방음] 마법에 막혔을 것이다.
‘진주의 도시’의 8월 13일이 열 번 반복되는 동안, 내내 짝을 지어 런레이를 추적해온 첼과 클레이오는 손발이 척척 맞았다.
“그러니까 제때 대답하면 좋았잖아, 류. 미스터 런레이와 언제 마지막으로 봤다고?”
첼은 레티샤에게 빌린 숏 소드를 뽑아 류샤춘의 목에 댔다.
“거 칼 좀 치우쇼. 아니, 좋은 말로 할 수도 있는 걸….”
“흠, 내가 관상을 좀 보는데 너같이 생긴 놈은 좋은 말은 안 들어 처먹거든.”
류샤춘은 알 수 없겠지만 어제에 이어 이미 두 번째로 그를 만난 첼이 씨익 웃었다.
오금이 달달 떨릴 만한 살벌한 미소였다.
“여기선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안 들릴 거고, 너 같은 놈 따위 황푸강 바닥에 가라앉히면 아무도 안 찾을 거야. 잘 생각해서 대답하는 게 좋을걸.”
첼의 미소가 불길하게 짙어지고, 그녀가 든 칼의 검기 역시 어스레한 가운데 빛을 냈다.
어제의 류샤춘은 자신을 찾는 호구 손님들을 요리조리 휘두르며 돈을 뜯어내고는 잘못된 정보를 가르쳐 줬다.
첼과 클레이오가 지난 열흘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하며 알게 된바, 이 도시의 사람들은 적어도 돈 앞에서는 금액만큼의 정직성을 보이는 편이었다.
그래서 클레이오가 마석 금을 환전한 상당량의 은전을 웨이터에게 찔러 넣었을 때, 그 돈을 날름 받아 챙기고서 거짓 제보를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결국 둘은 한껏 허탕을 친 뒤 제한 시간이 끝날 즈음에야 류샤춘이 거짓말을 했음을 알았다.
그 결과 이번에 첼은 회유 대신 강경책을 택했다.
류샤춘의 숨이 헐떡였다.
첼의 단단한 팔에 몸을 꽉 죈 채 경동맥 위의 피부를 얕게 베이자 웨이터는 거의 혼절하려고 했다.
“말할게요. 말한다니까! 런레이 선생, 머리가 푸르스름하게 검고 긴 봉안을 가진 그 미남, 어제 왔소. 분명 오늘은 오후에 카페 콘스탄틴의 마담을 본댔어요. 마담의 애인이 출장을 가서!”
다급했던지 조리있게 답변한 건 아니었지만 대충 의미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첼이 눈짓으로 물었다.
‘이 말은 맞아?’
「적절성 판단」을 쓰느라 기진맥진해진 클레이오는 간신히 벽을 짚고 선 채 고개만 끄덕였다.
“진작 그렇게 진솔하게 굴어줬으면 얼마나 좋아. 류, 넌 한 달 치 월급을 벌 좋은 기횔 놓친 거야.”
첼은 혼이 빠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웨이터의 덜미를 잡아 올려 다시 플로어로 내보냈다.
본인은 반대로 무희들의 대기실을 향해 들어갔다.
“레이디들, 잠시 실례 좀 하죠!”
코티 분을 바르고 나일론 스타킹을 올려 신던 일군의 무희들이 꺄르르 웃음소릴 냈다.
“어머, 여긴 들어오면 안 되는데.”
“보기 드문 미남이니까 봐줄게.”
“미남이야? 잘 생겼지만 여자애 같은데?”
“어라?”
첼은 타고난 미모를 무기로 사람들의 얼을 빼놓곤, 파라마운트 댄스홀의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물론 한 팔엔, 거꾸러지려는 클레이오를 끼고서였다.
웨이터가 소란을 부려 어깨들에게 붙잡히면 일이 복잡해질 테니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카바레의 뒷문을 빠져나온 두 사람은 오늘의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 / 제한 시간 / 반복:01:24:07 / 14:00:00 / 14회 ]
뛰느라 비뚤어진 모자를 고쳐 쓰며 첼이 말했다.
“콘스탄틴 카페까진 오늘 가볼 수 있겠네. 코밑에 두고도 몰랐군.”
콘스탄틴 카페는 백계 러시아인 마담이 운영하는 가게로 샴페인과 코냑, 차와 커피를 모두 파는 카페였다.
두 사람은 이미 온 상하이를 휘저으며 열흘을 보낸 뒤였다.
경마장과 호텔, 백화점과 레스토랑으로 번성한 버블링 웰 로드 주변은 눈감고도 거닐 수 있을 만치 익숙해졌다.
“그래. 가서 물어보고 난 샴페인 한잔할래. 아까 시킨 김릿은 맛도 못 봤다고.”
“애석하게도 이미 알코올 없인 못 움직일 지경이 됐구나.”
“그 웨이터가 쓸데없이 거짓말만 안 했어도 기력 좀 아꼈을 텐데.”
“역시 처음부터 먼저 한 방 먹여주고 시작하자니까. 그 뺀질거리는 표정 보면 알지. 네 성흔 쓸 것도 없었어.”
두 사람은 댄스홀 후문의 뒷골목, 쓰레기통과 환기구로 복잡한 틈새를 피해 환한 대로로 나왔다.
도시의 휘황한 전기등 아래에 드러난 첼의 모습은 누구나 뒤돌아볼 만큼 인상적이었다.
약간 찌그러진 파나마 햇에 시가를 질겅질겅 문 첼은, 마피아와 사립탑정 사이의 역할을 연기하는 흑백 필름 전성기의 할리우드 배우처럼 보였다.
반항적인 에너지로 가득 찬 매력은 그녀의 것이다.
키만 대나무처럼 컸지 시들시들한 동행은 얼굴에서 빛이 나는 친구를 보며 생각했다.
‘얘는 나날이 얼굴빛이 좋아지네. 피곤하지도 않나.’
이 일이 첼에게는 썩 적성에 맞는 모양이었다.
‘마담 리스의 옷장에서 멋대로 옷을 빌려 입어도 맵시가 나고.’
아침마다 마담 리스의 옷방 앞에서 새로이 만나는 첼의 얼굴엔 뜨거운 열의와, 거기에서 비롯된 일종의 광휘가 감돌았다.
세 개의 침실을 터서 만든 마담 리스의 드레싱 룸에는 온 벽을 가득 채우며 여러 종류의 의복과 구두가 갖춰져 있어서, 이래저래 차려입기는 좋았다.
첼이 입을 만한 멋진 정장도 여러 벌이었는데, 무대 의상이라고 했다.
옷의 치수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마담 리스는 이 시대 사람으로선 이례적으로 키가 컸다. 178cm쯤 되는 첼과 엇비슷한 것 같았다.
매번 반복이 새로 시작될 때마다 저택에 가서 항상 다른 방식으로 옷을 갖춰 입고 나오는 게 첼 나름의 의식이었다.
반면 클레이오는 언제나의 케이프 코트 차림에, 던전에 들어오며 잃어버린 모자를 대신해 늘 똑같은 보울러 햇만 하나 빌려 썼다.
어느 모로 봐도 일행 같지 않은 두 사람이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서 온 도시를 헤집으며 다녔다.
마담 리스의 연인을 찾아가는 과정 중 주어지는 실마리는 매일 바뀌는 마담의 편지, 발로 뛰는 탐문의 결과, 그리고 「적절성 판단」의 판정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첼에게는 「적절성 판단」을 공개하고 성흔의 추가 기능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예언도 하는데 참말 거짓말을 알아보는 정도야.’라며 첼은 그리 놀라는 기색도 없이 클레이오를 믿어주었다.
그 후 매번 반복마다 천 선생에게 받는 편지에다 자체 조사 결과를 더해 추적망을 좁혀갔다.
그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마담 리스의 편지는, 말하자면 게임 퀘스트의 힌트 또는 지시 사항 같은 것으로, 진행 상황을 체크하는 데 도움을 줬다.
동일한 편지가 반복되었다면 진행은 막힌 것, 다른 편지를 받았다면 조건을 클리어했으니 다음 진행을 하라는 의미.
그런 연유로 두 번째 반복의 날부터 넷, 아니, 두 사람의 탐정 동업이 시작되었다.
조사엔 첼과 클레이오만 나서고, 쌍둥이들은 대기조가 됐다. 꽤 어이없는 연유였다.
양장을 입은 사람들이 여전히 모자를 쓰고 끈을 매는 구두를 신던 시대이니, 낯선 최신문물이 좀 섞여 있다 해도 마법이 있는 세상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적응을 어려워하진 않았다.
원래라면 이런 재미난 일에 빠질 리 없는 쌍둥이들이었지만 이번엔 나서기가 어려웠다.
단서가 가리키는 장소 대부분이 애들을 데리고 갈 수가 없는 곳이었다.
표정이 순수하고 직설적인 쌍둥이들에겐 아직 어린이 같은 인상이 남아있었다.
상하이는 30년대 당시 세계 수위의 대도시였다.
방탕과 향락, 범죄와 유흥의 중심지였던 마도의 그늘로 중학생 나이쯤 될 애들을 이끌고 다니긴 몹시 어려웠다.
런레이의 추적은 각종 나이트클럽이며 바, 아편굴과 마작방, 카바레, 투기장을 망라하는 여정이었다. 그런 데서 안젤리움 쌍둥이는 입구도 못 넘었다.
탐정 일을 시작하던 두 번째 반복의 날, 첼, 클레이오, 레티샤, 리피까지 넷이서 나이트클럽에 출입하려던 순간 경비원이 막아섰다.
대수롭지 않게 힘으로 날려버렸지만, 후에 신고를 받고 온 경찰들에게 쫓겨 그날은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다
반면, 키가 크고 표정이 삭막한 클레이오는 잠들었을 땐 어려 보여도 눈 뜨고 움직이면 꽤 나이가 있는 느낌이라 어디서든 입장이 금지되는 일은 없었다.
첼이야 말할 것도 없이 밤놀이에 익숙한 한량의 기운을 풀풀 풍겼다.
이전에도 비슷한 작전을 함께 해서인지 첼과 클레이오는 서로 죽이 잘 맞았다.
어쩔 수 없이 쌍둥이들은 새로운 하루가 시작할 때 첼과 클레이오의 모험담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고, 쉬에 저택에서 맹훈련을 거듭했다.
천 노인이 꾸려 주는 중화 산해진미는 보너스 같은 거였다.
안젤리움 쌍둥이들이 훈련만 하는 건 아니었다. 저택에서 두문불출하는 멜키오르의 감시역을 겸했다. 그가 무슨 돌발 행동을 할지도 모르니 감시는 필요했다.
이런 사정으로, 애들까지 험한 델 데리고 갈 필요 없어 클레이오는 내심 안심했다.
마수도 용맹하게 때려잡고 사람의 힘으로 눈사태도 치울 수 있는 아이들이지만, 이 던전의 에테르 한 가닥 두르지 않은 인물들은 때론 마수보다 위험해질 수 있는 존재들이었으므로.
클레이오는 새삼 이 던전의 생생함이 거리껴졌다.
‘말이 통한다는 건 편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종류의 위험에 사람을 노출시키잖아. 어떻게든 빨리 끝을 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