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313
외전3. 지극히 사랑받은 (2)
태어나 앉고 걷고 말하게 된 후로, 나는 내내 웃음이 많은 아이였다.
유모는 내가 보는 사람에게마저 행복을 전염시키는 미소를 짓는다고 했다.
그건 그냥 진실이었단다.
난 정말이지, 잠들었다 일어나는 매일 아침이 기뻐서 견딜 수가 없었거든.
지독한 무기력증으로 몸도 못 가누는 어머니를 돌보는 일조차 기꺼웠고, 신녀님들을 도와 노인 요양원으로 봉사를 가는 일조차 행복했지.
내게 궂고 더러운 일 같은 건 없었단다.
지난 생애의 전반부에 나는 미친 여자로 부둣가의 맨바닥을 뒹굴었고, 후반 동안엔 내내 신녀였지 않니.
노인의 썩은 종기에서 고름을 짜내고, 더러운 이불보를 삶는 일 정돈 하나도 수고롭지 않았다.
손가락과 무릎의 관절이 부드럽고, 전신이 튼튼하고, 생기가 넘치는 처녀인데 무슨 일인들 어려웠겠니!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나는 세간에서 기특하고 갸륵한 딸로 취급받기 일쑤였는데, 어차피 어머니는 곧 돌아가실 테니 순간에 충실했지.
어떤 일이든 끝이 보일 땐 얼마든 최선을 다할 수 있어. 사람은 다 그렇단다. 규율이나 다정을 잃는 건 끝이 안 보일 때지.
그런 사정이니 올바른 처신을 하지 못할 건 뭐가 있겠니?
나는 사내아이들에게도 분내 나는 연시에도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 자녀였고 부친은 그런 내게 크게 만족했다.
나는 아침에 집사만큼 일찍 일어나 어머니의 방에 꽃을 꽂아드렸지. 어머니는 과거보다 훨씬 상태가 좋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가정교사가 드나들어도 될 정도로 집안의 꼴을 갖춰 놓았지.
그 모든 일을 다 겪고 다시 살아보는 소녀 시절은 힘들 것도 괴로울 것도 없었단다. 억압적인 부친 슬하에서 체면을 지켜주는 자녀 노릇을 하는 미성년기는, 인생의 긴 시간 중 아주 짧은 시기에 불과하니까.
포에베와는 두 번째 생애에서도 친구가 되었다. 교회에 미사를 지내러 온 그 앨 붙들어서 무작정 말을 걸었지.
하지만 틈만 나면 교회에 가던 내가 정말로 기다리던 사람은 그이였다.
나는 오로지 기디온을 다시 만나기 위해 생을 살았다.
그이가 모슬리 상사의 상행 책임자가 되어 상사 숙소를 나와 작은 집을 얻고, 야망에 찬 청년답게 지위 높은 이들이 예배석을 지키는 교회에 출석하기를 나는 기다렸다.
그 시대엔, 좋은 평판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처음 하는 일은 교회에 기부를 하는 거였단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미혼의 젊은 청년은 좋은 혼처를 소개받기도 했지.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그이는 라스카 자작가의 영애에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상업학교에 입학하며 스스로 성을 정한 고아가 구 귀족가의 영애와 성혼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늘 바쁜 기디온은 주일에도 미리 교회에 오지를 않고, 찬가를 부르는 때에 딱 맞추어 와 맨 뒷자리에 앉기 일쑤였다. 그러면 모두들 아닌 척 흘깃흘깃 뒤를 돌아보았지.
그렇지만 영애들의 봄바람 같은 추파도, 잘못 떨어뜨린 손수건도, 우연히 고장 난 마차도 기디온을 돌려세운 적은 없단다.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그 어떤 것도 우연히 얻어지거나 운 좋게 주어지리라곤 믿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그에게 단 두 가지를 알려주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단다.
이 세상에는 그냥 주어지는 것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조건 없이 사랑한다는 진실.
항구 도시 콜포스에는 평생 배를 타다 육신이 낡은 치들이 많이도 있었지. 그런 연고 없는 노인들을 교회의 요양원에서 돌보아 주었다.
기디온은 요양원의 제법 중요한 기부자였다. 그는 뱃사람들이 경도계 하나 가지고 떠났던 뱃길에서 금을 찾는 이였기에, 바다에 젊음과 활기를 두고 돌아온 이들을 후하게 대했다.
그때는 내가 스무 살이었던가?
사월인가 오월에, 요양원의 후원엔 데이지가 잔뜩 피고 새파란 하늘 아래 삶아 널어 둔 시트가 돛처럼 크게 바람을 받았더랬다.
하늘이 바다고 바다가 하늘이라, 두 다리가 붕 떠오르는 것만 같았지. 나는 신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며 탈수 기계 돌리는 소리로 박자를 맞추었단다.
살아있음이 너무나도 기뻐서.
그 주에는 두 번이나 기디온을 봤어.
그는 여전히 나를 모르고, 새를 보듯 먼발치에서 스쳐 지나간 것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알고 있는 모든 찬미가를 두 번씩 돌려 부를 만큼 신이 났지.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섣부르게 움직여 일을 망치는 대신 온전한 기회를 가질 수 있길 원했거든.
당신은 좀 더 준비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믿고 지지할 때, 더 많은 투자를 얻어서, 섣부르게 서두르지 않고 서쪽으로 떠나야 했다. 가장 올바른 때가 올 때까진 나를 몰라도 좋았다.
이전에는, 그래, 후회뿐인 첫 생애에선 소위 부녀자의 명예라는 알량한 걸 지켜주려고 기디온은 마법사도 제대로 구하지 못한 채 첸트룸 상행을 떠났다는 걸 알았다.
이번에는 달라야 했다. 다를 것이다.
물기를 꼭 짜낸 시트를 팡, 하고 속 시원하게 털어 마지막 빨랫대에 널고 나니 바다로부터 높은 바람이 불어 내 머릿수건이며 앞치마까지 휘날리게 했지.
나는 찬가의 마지막 구절을 부르고, 시트 너머에는 그가 서 있다.
아, 얘야.
그런 광경은 다시 태어나도 잊을 수 없단다.
누군가의 눈에 내가 지극히 사랑스러운 존재로 비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요양원에 기부금을 내러 왔던 기디온은 지름길로 나가기 위해 뒷마당을 가로지르다, 하녀들이 주로 입는 푸른 잔꽃 무늬 옥양목 스커트를 입고 빨래통 앞에 서 있는 처녀에게 그만 반해버리고 말았어.
나중에, 아주 나중에 물어봤지.
얼굴은 봄볕에 타 가슬가슬 붉고, 구겨진 머릿수건이 칠칠치 못하게 흘러내리고, 밑단이 짧은 데다 다 닳은 치마를 두른 여자를 두고 어떻게 에라토 여신을 본 듯 열렬한 얼굴을 할 수 있었냐고.
네 부친은 이렇게 답하지 뭐니.
‘당신을 처음 본 순간 알게 됐소. 살아있음이 축복일 수 있음을. 이 세계가 생동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자각할 능력을, 당신이 일깨워 준 거요.’
정작 나는, 그이를 생각하며 그리도 행복했던 것인데.
기디온은 이전보다 자주 요양원을 찾았고, 나는 늘 평소처럼 그곳에 있었으니, 우리는 곧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는 젊은 연인이 됐다.
그이는 내게 결혼 선물로 무엇이 갖고 싶냐고 묻더구나. 나는 데이지를 심을 수 있는 작은 뒷마당과 당신이라고 말했지.
상행을 떠나기 전날 나는 그이에게 신의를 다하는 맹세까지 하게 시켰단다.
나나 그이나 에테르 감응력이라곤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야.
“돌아와요. 날 만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돌아오는 거예요. 약속해 줘요. 신의를 다해 말해요.”
기디온이 상행을 떠난 사이 어머니가 힘겨웠던 삶을 마쳤다.
나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던 도중, 가족들이 번잡하던 틈을 타 수도원으로 들어갔단다.
그리고는 잠자코 신녀가 되는 과정을 밟았지.
어머니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아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다는 내 해명은 꽤 설득력이 있어, 부친과 유모는 나를 거세게 말릴 수가 없었어.
무엇보다 서원을 하기 전엔 언제든 데리고 나올 수 있다 여겼으니 부친도 안이한 태도를 보인 거고.
나는 수도원에서도 매일 새벽마다 자진해 서무실을 청소하며 신문을 제일 먼저 읽었어.
상단이 돌아오면 그다음 날 아침에 바로 알 수 있도록 말이야.
내 아이야, 알고 있니?
우리 여신께서 말씀으로 임하시는 세계에서, 말은 곧 마법의 도구이며 의지의 토대란다.
기디온은 엄숙하게 신의를 약속했고, 평생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입 밖으로 낸 약속은 반드시 지켜냈다.
나는 우리가 나누었던 신의의 약속이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단다.
뭐 그건 내가 제멋대로 믿고 있는 바이지만, 적어도 신의의 증표였던 투어멀린 브로치 쪽은 진짜로 효과가 있었지.
어머니가 정신이 성할 적에 미리 물려준 마석 투어멀린 브로치는 물을 정화하는 데 굉장한 효력을 발휘했다고 하더구나.
바닷물을 민물로 만들어주는 투어멀린의 힘으로 기디온과 함께 떨어진 일행들은 생명을 구했다.
눈을 돌리면 코앞에 있던 호수가 갑자기 사라지고, 흰 모래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대륙에서 마침내 상단이 돌아왔다.
생사의 경계를 몇 번이나 넘나든 모험 끝에 그는 나와의 약속을 지켜낸 거야.
그때 콜포스로 귀항한 배는 단 한 척이었다. 대선단이 한 척으로 줄어들어 온 것이다.
기디온은 인내심을 잃은 투자자들에게 꽤나 가혹하게 시달렸지.
그는 죽은 이들의 목숨값을 치르고, 산 사람의 노동력에도 마땅한 값을 치르고, 이자가 붙은 부채까지 변상을 해 냈다.
그랬더니, 선창 아래를 묵직하게 채웠던 마석과 마도구는 고작 한 상자만 남았더랬다.
기디온은 그걸로 상사를 재정비하고, 길모퉁이 삼각형 대지에 비뚜름하게 지어진 작은 이층집을 샀단다.
나는 살아 있는 기디온과 함께라면, 기둥이 삭아서 벽이 안 부스러지도록 하려면 마법사를 불러야 하는 집에 살림을 차려도 즐겁기만 했단다.
간난신고 끝에 상행에서 돌아온 기디온은 더 이상 남의 평판이나 지위 고하의 차이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어.
우리의 삶이 언제든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남의 눈이나 비법률적 규율 따위가 무슨 상관이겠니!
우리는 드레스도, 축복도, 부케도 없이 신녀님 한 분만을 모시고 결혼했다. 교회에서 나오자마자 시청으로 달려가 시청 직원을 증인으로 삼고서 혼인 신고서를 내 버렸지.
우리는 콜포스에서, 막 바뀐 혼인법에 따라 결혼한 첫 번째 부부였단다.
이때에는 세상이 이전 생애와 달라지지 뭐니? 카롤링거가 정치적 혼란에 휩싸이고 룬데인의 거리마다 대자보가 나붙던 시절 사람들은 자유를 갈망했고, 저 높으신 분들은 낡은 법을 조금씩 다시 쓰기 시작했지. 그래서 난 부친의 허락 없이도 기디온의 성을 가질 수 있었단다. 세상에서 단둘, 우리들만이 가진 성을.
우리 사이에 관습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최초였고, 나는 어디에서나 그이를 사납게 지켰단다. 악마가 거느렸다는 머리 셋 달린 파수견처럼 말이야!
나는 그이와 함께 메리디에스를 지나, 라주 해협을 거쳐, 세리카까지 가 보았지.
데르니에 대륙에서 아세르 상단의 배가 닿지 않는 땅은 없었고, 작은 상단에선 상단주가 많은 일을 직접 해야 했거든.
내게 주어진 두 번째 생애에서 우리 부부는 56년간 해로했다.
아세르 상사의 사업은 좋을 때도 있었고 나쁠 때도 있었다.
그이는 사업 감각이 탁월하고 선구안이 있었지만, 그이의 출신과 자본의 부족이 번번이 발목을 잡았지.
멜키오르 국왕 대리가 무엇인가 나랏일에 쓴다고 증기선은 모두 징발해 가는 바람에 두 번째로 준비했던 첸트룸 상행마저 무산되었을 땐 그만 도산하는 줄로만 알았단다.
그 후로도 몇 년간은 정국이 혼란스러웠지. 국외로 탈출했던 아서 왕자가 측근들과 함께 귀국할 때까지 작은 상사들은 아주 애를 먹었다.
물론, 저 높은 분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내 인생은 계속 이어져 나갔단다.
배를 타지 않을 땐 자그마한 삼층집의 뒷마당에선 한해살이, 여러해살이풀들을 키웠고, 너와 네 형제도 쑥쑥 자라났지.
우리의 행복에 슬픔의 그림자는 오직 한 겹뿐이었어.
네가 우리를 떠나간 것.
얘야, 너는 말이지, 내 인생에 드리운, 결코 걷히지 않는 애도의 베일이었단다.
너는 내 모친의 우울을 물려받았다.
갓난아기 때부터 쭉 이어서 잠을 자는 일이 드물었고 유모의 손은 싫다고 뿌리치며 경기를 했지.
꼭 나나 그이가 안아주어야만 다만 몇 시간이라도 자고, 젖을 떼는 것도 한참 느렸어.
열한 살 난 블라드는 어린 동생에게 은근히 샘을 내면서도, 또 한편으로 의젓하게 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나중에 자라 블라드는 사업을 물려받았고, 너는 학자로서 고전을 연구했지.
결국 너는 서른네 살 되던 해에, 룬데인 동안에서 강에 뛰어들어 죽었다. 조류가 바뀌어 강이 사납게 흐르는 날을 골라서.
마치 여신의 가호가 눈 감는 그날을 알기 위해 살아왔던 것처럼, 룬데인 수도원 도서관에 딸려 있던 네 방은 소지품 하나 없이 정리되어 있었고, 도서관에서 빌렸던 모든 책들은 제때에 반납되어 있더구나.
나는 신학과 천문학의 고담준론 같은 건 모른다.
하지만 여신의 자비가 옅어지고, 달의 기욺에 따라 물의 방향이 바뀌는 날이 세상에 있다는 것만은 결코 잊지 못하게 되었단다. 17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주기를.
네가 가기 달포쯤 전일까?
좀처럼 부모를 보러오지 않는 네가 콜포스에 들르기에, 그저 즐겁고 기쁘게만 여겼던 것을 내가 얼마나 후회했는지… 이제는 말하는 것도 의미는 없겠구나.
너의 유해는 메모리아 외해로 흘러가 버려 몇 번을 수색해도 결국 찾을 수 없었다.
나와 기디온은 빈 무덤을 지어야 했다.
우리 내외는 가문의 이름으로, 룬데인 동안의 토지를 매입해 공원묘지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멜키오르 왕자가 일으킨 룬데인 대화재 이후 폐허로 방치되던 땅이었지.
묘지에 안치된 묘비는 하나였다.
아홉 여신이 모두 늘어선 조각으로 네 비석을 감싸고, 사철 다른 꽃이 피도록 정원을 조성했지.
세월이 흐른 후 룬데인 동안도 개발의 광풍을 맞이했지. 드 네쥬 호텔의 후계자 소피아 르페브르가 그 땅을 엄청나게 탐냈지만 우리는 결코 그녀에게 공원을 넘겨줄 수 없었다.
헌데 그렇게 버티던 것이 허무하게도, 내 두 번째 삶에선 알비온이 공습당해 공원이 파괴되었지.
브룬넨에 귀화한 마인라트 대공 ― 아슬란 카스틸리엔의 장남이자 필리프 왕의 손자 된 자가, 조부의 나라를 석기시대로 되돌리리라 장담하는 연설을 했던 게 기억나는구나.
지직거리는 라디오의 볼륨을 올리고 모두가 모여서 그 연설을 들었지.
그때 첼레스테스 경이 전사하고, 온 거리가 남색 리본을 단 사람들의 추모 물결로 어지러웠던 것이 기억난다.
아니, 어쩌면 첫 번째 삶에서도 그랬을까?
나는 미친 채로 수도원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저 바깥세상에서 벌어진 일들은 몰랐다.
내게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행복도 불행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오래 살며 생애 동안 두 번의 대전쟁을 겪었다.
너 다음에는 블라드가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고, 기디온이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사랑했던 세 남자의 장례를 모두 치르고 남은 평생 상복을 입었다.
내 삶은 결국 사랑의 기록이자 실천이었다.
그러니 나의 좀 지나쳤던 사랑이 결국 신과 닿게 되는 것은 필연이었을까?
그이가 죽었을 때, 늦은 밤 조문을 온 이는 평생 만나리라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인물이었단다.
그때 나는 죽지 않는 신녀, 두 번의 전쟁 동안에도 내내 잠들어있었던 룬데인의 대주교가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사실 자체에 놀랐던 것 같다.
그 자줏빛 눈, 흰 머리의 여인은 내게 기묘한 예언을 했지.
“내 자매의 후손이여, 여기에 있었나요. 본디 단 한 명의 자손만이 어머니의 신비와 기이를 이어받는 법인데, 당신네 자매들은 두 사람 모두 완전하고 두 사람 모두 불완전하군요. 누구보다 신에 가까운 딸들, 인간 가운데 신성이 거하도록 하는 이여.
당신의 자매 역시 사랑으로 희생을 선택하였고, 당신은 자매를 닮았습니다. 이곳에선 이름이 불리지 않는 신의, 아이들이여.
결국에 당신은 일부이나마 ‘기억’을 찾았고, 그리하여 모든 것이 여기서부터 다시 쓰일 것입니다.
당신의 두 번째 아이는 지극히 인간다운 방식으로 지식을 탐구하여 자유로이 판면을 벗어났건만… 결국 이 되풀이되는 역사가 당신들을 포착해내고 말았군요.
그 애는 질긴 생명과 끊이지 않을 삶 전체를 다 바쳐 역사에 헌신해야 할 거예요.
그것은… 참으로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일. 신이었던 이라 할지라도 견뎌내기 어려운 과정이 될 터인 즉.
이것이 당신이 치를 대가이나, 이 역시도 어떠한 예정일지 모르겠습니다.
이 세계는 이미 일곱 번째로 반복되었습니다. 당신과 내게 주어진 돌이킴의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내 말하니 들으세요.
남은 삶을 치열하게 살아요. 결코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은 기억의 기회를 되새겨 보세요. 그렇다면, 당신의 아이를 역사로부터 사면시킬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당신은 오래 전 강에서 온 이이니, 당신의 아이 역시 시간의 강에서 끝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 애가 역사에서 해방될 기회는 단 한 번뿐. 선택은 당신이 하세요, 텔마.”
나는 신녀의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했기에 고개조차 끄덕이지 않는 나를 스쳐, 대주교께서는 기디온의 관을 들여다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나는 곧 그 일을 잊어버렸다.
상사를 매각하고 자산과 부채를 처리하는 일로 몇 년을 골머리를 썩이고 나니, 나는 또 어느새 혼자선 침대도 내려오지 못하는 노인이 되었더랬다.
불행했나? 행복했나?
그렇게 정산되지 않는다. 그게 삶이다. 후회 없는 삶이었다.
내 사랑은 모두가 떠나갔지만, 그럼에도 사랑했던 이들의 성은 룬데인의 지명으로 남았다.
그때엔 그것이 기꺼웠는데.
지금은 또 그렇지만도 않구나.
내 아이야.
내가 너를 너무나 사랑하여, 그 사랑이 과도하여, 너를 역사에 남기고 말았지. 네 이름이 등기된 역사는 네게 엄청난 고난을 안길 것을 모르고.
너로 하여금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연쇄에 얽매이도록 할 줄 알았다면 나는 애도조차도 그쳤을 것이다.
나와 달리 네게 반복은 엄혹한 저주였을 뿐이었는데.
무지의 과실을 사죄하여야 할까?
어리석은 인간의 일.
몇 번을 다시 살아도 인간은 신처럼 세상을 볼 수가 없더구나. 내게 그런 성스러운 자질 따윈 없었으니까.
내게 있던 것?
오직 사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