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354
키시온 제5대 자작 (2)
[강화]를 전도할 수 없는 사람이 조종사였다면 진작 사고가 일어났을 날씨였다.온난한 테르게스티와 달리 키시온의 수은주(水銀柱)는 영하였다.
고글에는 성에가 끼고 비행기의 날개 끝이 얼어붙었다. 오는 동안 또다시 카스퍼 멜빌 상사의 기체가 말썽을 부렸다.
지금 이들에겐 평소와 같은 첼레스테스의 엄호가 없었다.
클레이오 역시 이동 중 에테르를 순환시키고 있었기에 마법을 걸기가 여의치 않았다.
카스퍼는 수평의가 망가진 기체를 어떻게든 수습해 비행을 강행했다.
진눈깨비가 몰아치는 악천후 속에서 네 대의 기체가 모두 낙오 없이 키시온 영지에 도달한 건 요행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박의 알갱이가 커지고 풍속이 거세져, 결국 착륙 땐 클레이오가 마법으로 [감속]을 걸어야 했다.
하물며 악천후만이 그들을 방해하는 건 아니었다.
발달된 검사의 기감과, 마법사의 지각에 기이한 불쾌감이 증폭되었다.
무언가 불길한 자장이 키시온 영지 전체를 내리누르는 것만 같았다. 마치 브룬넨의 비행선이 머리 위에 급습해왔던 때와 흡사한 위화감이었다.
키시온 자작저의 내성벽 안에 모두가 내려섰을 땐, 에테르로 안력을 돋우지 않고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기상 상황이었다.
빛이 꺼졌던 포옹의 반구는 영지에 들어선 후에야 통신이 재개됐고, 그제야 아레미스의 신호가 들어와 모두를 자작저로 유도한 참이었다.
파리사 시는 올 초에 모두 소개됐으니 자작저에는 동북수비군만 머무른다는 걸 감안해도 성이 텅 비어있는 상황은 설명이 안 됐다.
겨우 오후 3시인 데도 하늘은 잿빛으로 어둡고 눈과 우박이 뒤섞인 흙먼지 덩이가 성벽 안 곳곳에 쌓여 을씨년스러움을 자아냈다.
아레미스는 강풍에 군모가 날아가지 않도록 양손으로 꾹 누르며 일행을 맞이했다.
밤새도록 대륙을 상하로 가로지르고 전투를 치러낸 일행들만큼이나, 아레미스의 안색도 나빴다.
“왔습니까, 키시온 중위.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한 중위, 전황은 어떻습니까?”
“많이, 어렵습니다.”
앞마당에서 내성벽 위의 사령부로 들어가는 길에 아레미스는 곧장 이시엘 곁으로 따라붙었다. 한시라도 빠른 정보 전달을 위해서였다. 두 사람의 계급은 같았지만 직위의 서열 상 이시엘이 지휘관이 됐다.
그들 바로 뒤를 안젤리움 자매가 쫓으며 아레미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평상시였다면 아레미스의 유별난 사촌인 앤디미온의 존재를 알게 된 레티샤가 짓궂은 농담이라도 했을 텐데, 지금은 그럴 만한 시간도 정신적 여유도 없었다.
이시엘 일행보다 일찍 출발했지만 기차로 이동한 터라 아레미스 역시 막 도착한 참이라 했다. 도리엔에서 파리사 시까지의 선로가 끊기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허나 요행은 거기까지였다.
격전이 벌어지는 줄 알았던 파리사 시는 유령 도시처럼 텅 비었고, 자작저와 병영에도 어린 통신병과 행정병 몇명만 남아있었다.
이시엘은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지금 키시온 자작은 어디에 있습니까?”
“전선에 나가 계십니다. 여기 자작저와 압살롬 방벽 사이, 방벽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도로 앞 여름 궁전에 결계가 쳐져 있지 않습니까? 현재 그곳이 최전선입니다.”
“그럼 왜 그리로 이동하지 않았습니까?”
도리엔에서 이동해 온 니네베 연대의 모르타 중대원들은 아직 출격하지 않은 채 자작저의 병영 안에 대기하는 중이었다.
“정찰병을 보내보니, 자작께서 반구형의 결계를 단단히 봉해 놓아 적들이 침입하지 못하는 대신, 원군도 진입할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결계엔 여러 기능이 있고, 마석과 티플라움 보유량은 일주일도 항전할 수 있는 분량이며, 동북수비군의 상급 기사는 모두 진지에 나가 있어 현재로는 한쪽의 세가 밀리지 않고 응전 중이라고 합니다.”
자작은 지리적 이점이 있는 여름 궁전을 거점으로 삼아 방벽을 넘어온 브룬넨군의 흐름을 끊어놓으려 시도하고 있었다. 여름 궁전 주변에 빼곡히 매설해둔 마도구 역시 제 역할을 다했다.
“이쪽은 여기 사령실에 대기하던 통신병에게 키시온 자작이 미리 남겨두었던 서신입니다. 보십시오.”
어깨 위의 진눈깨비를 털어낸 아레미스는 내성벽 아래 아치로 들어서자마자 품에서 꺼낸 문서를 이시엘에게 건넸다.
그녀에겐 익숙한, 키시온 자작의 친필 서신이었다.
‘여름 궁전 앞의 도로는 방벽에서 파리사 시와 듀브리스를 향해 이어진 유일한 길입니다. 대군이라 할지라도 깎아지르듯 좁은 폭의 협곡에선 병목 현상을 일으키니, 이곳을 죄면 수적 차이를 극복하고 저들의 침공을 막아낼 승산이 있습니다. 클로토강의 오염을 막기 위해 댐의 수문을 폐쇄했으니, 뒤를 부탁합니다.’
서신을 쥔 이시엘은 마음에 걸리는 단어를 곧장 포착해냈다.
흐름, 대군.
아군이든 적군이든 동시에 동원할 수 있는 병사의 수는 많아도 백 단위였다. 이제까지의 전투 내내 그랬다. 하지만 고작 몇백 명의 기사를 두고서 부친이 저런 표현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여름 궁전의 결계는 클레이오에 의해 설치되고 다리아와 아레미스에 의해 보강되었지만, 그렇다 한들 영원히 버틸 수는 없을 터였다.
동북수비군에 속한 기사의 수는 서른 명 남짓이었다. 새로이 충원한 에테르 감응자의 수도 적었다.
나머지는 잘 훈련받아, 티플라움 무기와 마도구를 써 에테르 감응자를 상대할 수 있는 일반 병사였다. 처음에는 첼의, 나중에는 클레이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무기는 넉넉했다. 하지만 마수나 하급 기사라면 몰라도 중급 이상의 기사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시엘이 아는 부친은 결코 무모한 전략을 택하는 성미가 아니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이 아닌 한.
“적병의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천 명이 넘을 겁니다. 이미 압살롬 방벽 아래 토굴을 건너 온 수만 셈한 겁니다.”
“그렇다면 그 이상의 병력이 방벽 너머에 대기 중이라는 겁니까?”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아군의 병력이 압도적으로 적으니, 일반적인 전술을 활용해선 유의미한 개입을 하기 어렵습니다.”
이시엘의 단단한 무표정에 금이 갔다.
압도적인 병력 차가 날 때 단번에 전황을 뒤집을 최고의 패는 소드마스터였다. 그러나 그는 지금 머나먼 테르게스티에, 에테르 고갈 상태로 의식이 없었다.
이시엘은 이미 바꿀 수 없게 된 상황을 탓하거나 후회하는 대신 키시온 영지의 독특한 지형지물을 이용한 전술 개요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이곳은 그녀가 나고 자란 땅이었다.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자작저 앞마당에, 수도방위대 마법단 문장을 단 무개 차량 한 대가 급정거했다.
부우우우웅― 끼이이이익!
차량의 운전자는 이시엘도 아는 얼굴이었다. 짧은 구릿빛 머리의 마법사, 다리아 이사이였다.
그녀는 우그러져 잘 열리지 않는 차 문을 두어 번 덜컥이더니 닫힌 문을 그대로 두고 차창 밖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조수석에는 에테르 고갈로 인해 의식을 잃은 듯한 에즈라 세르게프가 목을 모로 꼰 채 처박혀 있었다.
두 사람 다 피투성이가 되어 너덜너덜한 모습이었으나 다리아는 저와 동료의 상태를 깨닫지 못한 것처럼 급하게 내성벽 아래 아치를 향했다.
“키시온 중위! 여신님 맙소사, 항공편대가 이리로 향하는 걸 본 듯했는데, 믿고 따라오길 잘했군요! 용케 니네베 연대까지 소식이 갔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다리아의 왼쪽 이마와 머리 위는 겨우 지혈만 해둔 상처가 파여 있었다. 그녀는 자단목으로 깎은 완드를 지팡이처럼 짚으며 절뚝였다. 얼굴은 푸르게 질리고, 제복의 앞깃엔 각혈의 흔적이 적나라했다. 완연한 에테르 고갈의 기색이었다.
이시엘은 다리아를 부축했다.
“들어가서 자세히 이야기 듣도록 하겠습니다. 치료 역시 필요해 보입니다.”
클레이오는 어느새 꺼내두었던 공작의 완드를 가볍게 저어 보였다. 그러나 다리아는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아니오. 그러지 마십시오. 지금 이곳에서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아세르 소령님 한 분뿐입니다. 가능한 한 에테르를 아껴야 합니다.”
그러는 동안, 일행의 후미에 있던 카스퍼는 눈치껏 뛰어 나가 에즈라를 짊어지고 왔다.
의식을 잃은 이를 이대로 무개 차량에 방치했다가는 얼마 안가 저체온증에 다다를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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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엘, 클레이오, 리피, 레티샤, 카스퍼, 아이샤, 기젤라, 릴리안, 다리아 그리고 모포를 둘둘 감은 채 간신히 눈만 뜬 에즈라와 잔류해 있던 말단의 통신병까지 적지 않은 인원이 지도를 가운데 두고 탁자를 둘러쌌다.
몇 시간 전까지는 키시온 자작이 머무르며 동북수비군을 지휘하던, 키시온 자작저 내성벽 위의 사령실 안이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지휘관은 이시엘이었다.
그녀가 빠르게 서두를 열었다.
“마법으로 보호되는 압살롬 방벽 아랠 파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적병 중 상급 기사 비율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혹시 그 부분도 파악이 됩니까?”
다리아가 정중히 대답했다. 비록 계급은 이시엘보다 다리아가 높았지만, 니네베 연대의 사령관 자격이 마법단의 마법사보다 지휘권에서 앞섰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여름 궁전과 통신이 연결됐을 때 전달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진격의 원 피해 범위를 역산했습니다. 계산에 따르면 적어도 적병의 3할 이상이 상급 기사로 판단됩니다.”
“이사이 대위님, 히드라의 독으로 그런 것이 가능한 겁니까?”
“이전까지라면 안 됐겠죠. 하지만 지금은 적들로부터 관측되는 에테르의 유량이 이전보다 압도적으로 큽니다. 히드라의 독이 개량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누구의 입에서 나온 것인지 모를 한탄이 내리깔렸다.
다리아의 예측이 맞다면, 삼백 명 이상의 상급 기사가 인위적으로 생성되었다는 뜻이었다. 기존의 히드라의 독으로는 불가능한 발현 확률이었다.
또한 현재 아군의 병력으로는 막아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숫자이기도 했다.
사상 초유의 비상 사태였다.
“중앙에는 어떻게 보고했습니까?”
몸을 돌린 이시엘이 저를 쳐다보며 묻자, 앳된 얼굴의 통신병은 군기가 바짝 든 말투로 답했다.
“동북수비군에선 적의 침공 사실을 파악한 새벽 여섯 시경 곧바로 1급 비상 회선을 열었습니다. 국왕 대리님께 키시온 자작님이 직접 보고 하셨습니닷!”
“그리고는?”
“곧바로 방벽에 제1소대를 파견했지만 저지가 여의치 않자, 자작님께선 더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며 직접 전군을 이끌고서 여름 궁전으로 가셨습니다.”
“이후 룬데인 사령부에서 회신은 있었나?”
“전신이 끊기기 전까지는 30분 간격으로 상황을 보고했는데 그때에도 회신은 없었습니다아!”
사령실의 공기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모두가 머릿속에서 떠올리면서도 차마 언급하지 못한 이름의 존재감이 뇌리에서 부풀었다.
멜키오르 리오그난.
룬데인에서 파리사 시까지는 기차로 7시간 거리였다. 지원 병력 편성 시간을 고려한다 해도 사람이든 연락이든 무엇이든, 이곳에 도착해야 하는 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다.
리피와 레티샤가 눈빛으로 생각을 주고받았다.
‘통신 상황이 문제가 아니었네.’
‘그래. 차라리 그게 문제여야 했는데.’
최초 보고 후 9시간 동안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는 건, 국왕 대리가 키시온 영지를 버렸다는 뜻이다.
아레미스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이사이 대위님, 그럼 도대체 전화선은 왜 끊긴 겁니까? 모든 유선, 무선 통신 기구가 먹통입니다. 까닭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리아는 말하기도 버거운 듯 목 뒤를 꾹꾹 눌렀다.
“저들이 운용하는 비행선의 차폐 장벽 기능을 발전시킨 종류의 자장이 키시온 영지를 뒤덮고 있습니다. 장비의 핵을 파괴해야하는데….”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얼굴을 한 에즈라가, 하얗게 껍질이 일어난 입술로 횡설수설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으건, 아직 산 안 넘었어, 저기, 산 너머 있어. 여기 브룬넨이랑 가깝잖아. 너무 가까워. 응. 아레미스, 안녕.”
에즈라는 약한 섬망 상태에 빠져 있었다. 외상은 다리아보다 적었으나 정신적 충격이 큰 것 같았다.
“세르게프 소령님께선 좀 더 안정을 취해야 할 것 같군요.”
“당분간은 제정신 안 돌아올 겁니다. 티플라움 광산과 연구소 폭발을 저지하려다 실패하고, 이제까지의 연구물이 함께 매몰된 걸 안 뒤로 내내 이렇습니다.”
아레미스의 단정한 말씨가 거칠게 갈라졌다.
“폭발이요? 적의 별동대가 있었습니까?”
다리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마수 다이어울프를 베며 산을 넘어온 척후병 몇과 조우하긴 했지만 저와 세르게프 소령님이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광산 폐쇄는 적의 소행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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