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418
외전4. 외할머니의 세계사 (2)
『지금도 기억들은 과거의 세계로부터 현재의 세계로 차곡차곡 쌓여 들고 있단다.
일곱 개의 다른 발음을 가진 이름들이 실은 한 사람의 것일 때,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신화가 저잣거리의 노랫말에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는 알 수 있지.
보아라, 여기에 구세계와 새로운 세계의 매듭이 있구나.
천사와 악마, 천당과 지옥의 이야기, 연인들, 천사들, 구원자들의 이야기들이 모두 그것이다.
세상의 하늘과 땅과 은총과 빛은 모두 기억이라는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니, 과거는 현재의 토대가 되고 현재가 미래를 받치는 기둥이 된다.
바닥이 빠지면 기둥이 흔들리고 기둥이 쓰러지면 하늘이 바닷속으로 무너져 내리지. 여기 우리의 세상은, 지나간 모든 세계의 기억으로 조적된 장소이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 없이는 발 디딜 땅을 가지지 못하는 종족. 그러므로 과거로부터 반복된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벌어진 랑슬로와 이솔트의 비극으로, 돌아가 보자꾸나.
저잣거리의 삿된 것들이 무어라 떠들든, 사자왕 레오니드 리오그난을 진실로 분노케 했던 건 부정의 의심 따위가 아니었다.
이솔트는 절대로 한 개인을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을, 아홉 번 산 레오니드는 이 세상의 인간 중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알았다.
그를 분노케 한 것은 랑슬로가 이솔트에게 한 [언약]이었다.
그때까지 언약은 레오니드만의 것이었다. 그가 네니브 호수의 여왕을 니네베 호수의 여공작으로 맞아들이면서 맺은 서약이었다. 사랑은 아니나, 불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랑슬로 역시 이솔트에게 언약을 맺게 되어, 그것은 더 이상 유일한 맹세가 아니게 되었더라.
왕은 또다시 여섯의 기사를 보냈으나 험준한 트리스테인의 성과 두 마리 무서운 용 피톤은 그들의 진입을 허락지 않았다. 애를 써 한 마리를 동편의 산중에서 무찔렀으나, 나머지 한 마리가 분노하여 기사들 모두가 크게 다쳤다.
피톤을 이겨낸다 한들, 아서 왕의 원탁에는 트리스테인 공작을 검으로 상대해 승리할 기량을 가진 기사가 없기도 했다.
랑슬로는 북부 최고의 강자였다. 척박하고 인구가 적은 영지의 성은 마수와 혹한과 산짐승으로 둘러쳐진 천연의 요새나 마찬가지였다.
검의 극의에 이른 레오니드가 오지 않고서야 돌파할 수 없는 요새였다. 그러니 따스한 땅을 내어주고 모롤트 성문을 여는 거래를 했지 않았겠니.
하지만 왕이 행차한다 한들 소용이 있었으랴. 이솔트는 제 뜻을 꺾는 일이 없는 여인이었으니, 레오니드는 왕비의 전언대로 그녀의 시체만을 볼 수 있게 될 뿐이었을 거다.
진노하고 또 진노한 레오니드는 결국 저를 모시는 모든 기사들에게 [언약]을 요구하게 된다.
이 세상의 언약이 왕과 공작 두 사람만 왕비에게 바친 유이한 것이 아니라, 기사가 주군에게 맹세하는 보편적인 충성의 증명으로 거듭나도록.
레오니드는 칼을 들고 기사들의 목숨을 위협하지는 않았으나, 그보다 더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왕에게 언약지 않는 자는 대성당의 지하에 이름을 새기지 못하리라 천명하였지.
기억의 여신이 낳은 아홉 자녀들이 신으로 군림하는 세계에서 잊힌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이었을까. 원탁의 기사들은 모두 왕에게 언약을 하였다.
하나, 이미 왕비에게 언약을 하여 두 주인을 모실 수 없는 공작께서는, 그 명마저 어기고 말았다.
레오니드는 공작을 공신들의 원탁에서 추방했고, 이후의 여러 세기 동안 트리스테인 사람들은 왕에게 언약할 자격이 없게 되었다.
사자왕은 무작스런 야만의 전사가 아니라 세련된 통치의 기술을 가진 위정자였다.
귀화한 트리스테인의 사람들을 핍박하고 농지를 수탈하면, 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깊은 랑슬로가 뜻을 꺾거나 괴로움을 겪을 것을 알았음에도 그 방도만은 쓰지를 않았다.
영지민이 아니라 자신만의 벌이라면 무엇이든 상관없었으므로, 랑슬로는 원탁에서의 축출이란 대가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나중에 이 기억이 모두 실전된 뒤에야 트리스테인의 공작들은 알비온의 왕에게 [언약]을 하게 되고, 상원의 인명록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초대 공작으로부터 11대손의 딸이 알비온의 왕비가 된 후에.
랑슬로가 생애 동안의 모든 명예를 포기하고 받아들였던 이솔트의 체제는 금시에 끝이 났다.
봄이 오기 전 마지막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 이솔트에게 산기가 닥쳤다.
트리스테인의 모든 아이들을 다 받았던 산파가 손녀와 함께 성심으로 이솔트를 보필하였으나 레오니드의 장자는 지독히도 난산이었다.
탄생의 밤, 꼬박 사흘의 진통 끝에 태어난 아이는 둘이었다.
산파는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날카로운 칼, 이 땅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들의 탯줄을 끊어낸 날붙이로 두 아이의 탯줄 역시 잘랐다.
꼭 같이 생긴 두 사내애의 솜털 같은 머리카락은 금빛이었다. 두 부모의 머리색을 닮아서 자라도 검게 되지는 않을 밝은색이었다.
탯줄을 자른 아이들을 힘없이 넘겨다본 이솔트는 탄식했다.
‘어째서 쌍생아인가. 이럴 수는 없다. 이래서는 이야기가 어긋나고야 말아.’
이솔트는 맏이를 산파의 품에 안겨 내보내고 둘째를 제 가까이 눕히게 했다.
어미는 자식의 자그만 손등에 사람들의 눈을 가릴 마법식을 새겨주었더랬다. 갓난쟁이가 울까봐 도닥도닥 [경감]을 걸어주면서.
‘랑슬로의 태를 잘랐던 칼로 너의 태도 갈랐으니 너는 그의 핏줄이 되어도 좋겠지. 이 땅의 기억을 가지고 이 땅의 아들이 되어라.’
이윽고 산파의 손녀가 산실에서 안고 나온 쌍생아 중 아우는 태어났을 적과 달리 깊은 밤처럼 검은 머리로 보였다.
그 애는 갈레스라는 이름을 얻어, 2대 아르모리크 공작이 된다.
산실에서 저러한 일이 벌어지는 동안, 공작께서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면,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호수로 나가 계셨다.
검을 차고 갑옷을 차려입고서 그리했다.
산고를 겪는 동안엔 저 대마법사 이솔트라 해도 마법이 약해졌고, 성문을 지키던 한 마리 흑룡도 저의 창조주를 걱정하듯 풀이 죽었다.
호수는 성에 가까이 닿아 있고 유일하게 난 한 줄기 도로는 호수와 성 사이를 굽어 오니, 침입자는 그 누구든 공작의 앞을 지나야 했을 거다.
그러나 검을 들어도 정신은 산란하였고 도무지 걸음걸음이 떼어지질 않았다. 저 지독한 산고를 이기고 살아남는다 하여도, 자신의 검이 이솔트를 사망케 하리라.
이솔트가 단언했으니 여기 큰 별조각이 박힌 보검은 그녀의 생명을 끊어낼 것이다. 가장 지혜롭고 가장 현명한 마법사의 선고라면, 그녀의 불멸도 자신의 검으로는 파훼할 수 있으리라.
지켜야 할 언약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공작의 앞에, 잔잔하던 데키마 호수가 파도치더니 물결을 헤치고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너는 누구냐. 신원을 밝히라. 왕이 보낸 자냐.’
‘나는 얀바르. 밝힐 가문 같은 것은 없고, 왕께서 보낸 자가 맞다.’
아이가 태어난다면 모든 일이 끝날 것을 레오니드 역시 아는 터. 사람의 길로는 시간이 맞지 않아, 얀바르로 하여금 호수의 길을 걷게 한 것이었다.
호수의 통로는 무기도 삿된 마음도 허하지 않는지라, 마음이 아이처럼 맑아 다른 생각이 없고 무기 하나 없이도 공작과 대면할 수 있는 얀바르만이 죽지 않고 그리로 건너올 수 있었다.
아직은 세르게프의 성을 받기 전, 그저 설화 석고 세공 장인의 아들이던 초대 로디언 후작이 바로 그였다.
‘오늘이 해산일인 줄 어찌 알았소.’
‘폐하께서 천기를 읽어 아셨다 하더라.’
‘그러면 장자를 받으러 오셨는가.’
‘장자를 맞이하고, 또한 공작 당신에게도 전할 것이 있다.’
‘무엇인가.’
‘‘잉크는 깊은 물 속에서 흐려지고 종이는 찢길 터이니 이자의 목소리를 빌어 보낸다. 나는 그이를 해방시켜주려 해본 적이 없는 줄 믿는다면, 무지한 판단이다.
그대는 이솔트가 요구하는 해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별의 조각이 크게 박힌 검으로 이솔트를 베면 그녀는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영혼마저 흩어져 사라져버린다. 이 생애는 마지막 생애가 되어버린다.
그대는 그래도 좋은가? 이솔트의 영혼이 부재하는 우주를 견뎌낼 각오가 되어 있나? 네니브의 여왕은 신이 우리 인간에게 내린 그들의 자비이다.’’
아직도 검을 칼집으로 돌려놓지 않은 공작 앞으로, 너무 젊어 아직 어리게 보이는 얼굴을 한 사내애가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이제 랑슬로는 사람이 한 번 살고 죽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여기서 이솔트가 죽는다 하더라도 저승의 여섯 강물을 지나 언젠가 또다시 돌아오리라고만 여겼다.
‘‘너는 저승의 강물을 생각해낼지 모르나, 그와는 같지 않다. 지금 이 세상은 아홉 번 반복된 것이고 이솔트는 이솔트의 이름으로만 아홉 번을 살았다. 너와 나 역시 그러하니라. 한때 너는 여기 대륙 서편 전체를 지배하는 왕이었으나 이솔트를 찾아 헤매다 광대한 왕국을 한 세대 만에 거꾸러트리고 말았지. 두 번째 생의 너는 이솔트를 단검에 죽였으며, 언제에는 내가 너를 처형했다. 우리의 악연이 참으로 깊다.’’
‘왕께 전하시오, 얀바르. 이솔트 여왕께서 몇 번을 살았다 한들 나에게 그분은 늘 처음이고 한 번이었소.’
‘폐하께서는 공작이 그리 말할 거라고 하셨소. 그분의 대답이 여기 있소. ‘그래서 그이는 네게 안식을 구하는 것인가 보다. 무지의 안락함조차도 아쉬워서.’’
‘왕께서는 이 모든 내막을 어찌 아셨는가?’
‘왕의 증표에 서린 기억이라 하셨다. 신이 내리신 사자의 검, 날에 파인 테와 결마다 기억들이 고여 있는 신물을 통해.’
얀바르는 허리춤에서 낡은 주머니를 꺼내 끈을 풀었다. 그 안에는 설화 석고로 자그맣게 조각한 사자의 검이 들었다.
‘왕께서는 네게 이 사자의 검을 맡기셨다. ‘별에서 말미암은 호수의 어두운 진흙을 바르면 밤중에는 사자의 검이 별의 보검으로 보일 것이다. 이 그믐밤 동안 사자의 검은 네 것이다. 이는 이솔트의 이 생애는 끝낼지언정, 영혼을 흩어놓지는 못할 신물이노라.’ 전하셨다.’
랑슬로는 내막을 몰랐으나 그 당시, 몸에 깃든 신물을 떼어내기 위하여 레오니드 왕은 설화 석고 관 안에 누워 독을 먹었다. 그 이후에, 관과 같은 설화 석고로 깎아낸 검에 제 피를 부어, 사자의 검을 옮겨놓은 것이었다.
설화 석고의 검은 랑슬로를 마주하자 제자리에서 뱅그르르 돌더니 돌연 장검으로 변하였다.
사자의 검을 쥔 랑슬로는 갈등했다. 이솔트에게 한 [언약]을 어겨 그녀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지 못한다면, 제게 남은 모든 기억이 사라질 텐데. 그 모든 기억이, 그녀의 웃음과 흰 발이 모두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릴 텐데.
그때, 몸을 추스른 이솔트가 지체하지 않고 산실을 나와 호숫가에 다다랐다.
‘준비는 되었느냐. 그것이 네 검이지? 이전에는 그 검에 그토록 큰 별조각이 박혀 있지 않았기에 내 영혼을 흩어놓지는 못했으나, 이제는 다르지.’
‘이솔트 님.’
‘자, 랑슬로야, 네 할 일을 하라.’
그믐의 밤은 어두웠다. 랑슬로가 허리에 찬 별의 보검은 보이지 않고 손에 든 사자의 검이 대신 어두운 광택을 발했다.
이솔트는 모르타 호수의 물가로 다가가 머리채를 젖히고 긴 목덜미를 드러냈다.
달도 없는 밤 희게 드러난 목덜미는 랑슬로의 시야에 각인된단다. 천 년 동안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광경을 잊을 수 있겠는가?
랑슬로는 검을 들어 여인의 숨을 끊었다.
그러나 검이 제 명을 가르던 순간, 이솔트는 알 수 있었다. 제게 주어진 안식이 영영 지나쳐버렸음을. 여신이 약조했던 영면이 떠나갔음을. 제 생명을 앗아가는 도구는 별의 보검이 아니라 사자의 검임을. 무사 여신이 주조한 사자의 검은 신성의 그림자를 지닌 이솔트를 온전히 죽일 수가 없어서, 영혼의 소멸에는 닿지를 못하였다.
레오니드와 랑슬로의 작당을 알아챈 이솔트는 스러져가는 생명을 붙들고서 분노의 고성을 질렀다.
‘이 빌어먹을 종자들! 구원의 여지가 없는 족속들! 너희는 너희가 한 짓이 무엇인지 모른다!’
영원한 종결이 아닌 순간의 안식 따위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솔트는 몸부림을 쳤다.
사자의 검이 이솔트에게서 뽑혀 나왔다. 손에 익숙지 않은 무기를 다루느라 랑슬로 역시 제 손과 몸통에 상처를 입었다. 두 사람의 피는 혼곤하게 얽혔다.
신살자는 이미 여러 번 신의 환생체를 죽여 보았으나, 첫 번째 세계에서 일어났던 일이 같은 조건 가운데 반복된 것은 처음이었다.
거기에서.
신살자와 옛 신의 핏물은 깊숙이 뒤섞이며 이솔트의 영혼을 부식시켰다. 낡은 지 오래라 이미 곳곳에 균열이 간 영혼을.
인간의 이기심과 신살자의 의지가 마침내는 에라토의 환생체에게 스미고 만 것이다.
최초의 살해자가 억겁의 세월 동안 간직했던 그 집요한 결의가, 모두 이솔트에게로 흘러갔다.
첫 세계의 제사장, 사랑의 의미를 세상에서 소거시킨 자로부터 비롯된 영혼의 심이.
이솔트는 분노를 알고 증오를 알고 자애를 잃고 박애를 상실했다. 그녀가 헌신했던 인류는 그녀에게 오로지 배신만을 돌려주었다. 이것은 인간의 원죄였다.
사랑의 신에게 사랑을 빼앗고 그 영혼에 증오를 불어넣은 불모의 존재가 한 일이다. 창조와는 연이 없고 그저 태우고 소거하며 소멸시킬 그 증오의 의지는, 신살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절명하는 이솔트는 저주의 말을 외치게 되었다.
‘이 썩을 것! 랑슬로, 너의 자손들에겐 슬픔이 끊이지 않을 것이며, 내 고통이 검은 죽이 되어 산맥 아래서 들끓게 될 것이다! 거기에서 마수들이 태어나고 또 태어나리라! 호수의 기사, 너는 그 재앙을 막으며 봄을 모르고 꽃도 피지 않을 동토에 영원히 붙박이리라. 피톤은 너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적대할 것이며, 에테르를 쓰는 자들은 제가 휘두르는 위력만큼의 고통을 겪을 것이다! 내가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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