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in Character’s Little Sister RAW novel - Chapter (19)
“그렇지만 울었는걸.”
이귀한은 이보배를 보자마자 엉엉 울었다. 정말 다행이라는 듯 펑펑 울었다. 이보배가 느끼던 불안과 경계는 큰오빠의 눈물을 보자 물에 탄 설탕처럼 녹아 사라졌다.
이귀한은 화르세인지의 말대로 악마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1퍼센트만 인간이면 사람이라고 우기기 민망한 수치다.
그러나 이귀한은 동생들이 보고 싶어 돌아왔다. 먹지 않아도 되고, 마시지 않아도 되고, 숨 쉬지 않아도 되고, 자지 않아도 되는 큰오빠가 다시 만나 기쁘다고 엉엉 울어줬으니 그거면 되는 게 아닐까.
“돌아와 줬으니까. 그리워해 줬으니까. 보고 싶어해 줬으니까. 우릴 위해 참고 있으니까.”
“실로 무지몽매하단 말밖에 해줄 말이 없구나. 악마가 사람을 유혹하기 위해 사용할 가장 쉬운 수단이 무엇이겠느냐? 미인의 미소보다 눈물이 더 무섭다는 얘기 들어본 적 없느냐? 하기야, 돼지가 울어봐야 누가 걱정한다고.”
이보배가 뭐라 반박하려는데 이한생이 그녀를 잡아당겼다. 당기기만 하고 지탱해 주진 않아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간신히 중심을 잡고 화내려는데 망나니가 이보배가 서 있던 공간을 노려봤다.
“뭐야, 개미 나왔어?”
“무릎 꿇고 주인에게 감사를 표해라, 돼지. 내가 방금 너를 악의 기운에서 구했다.”
어조와 표정이 모두 진지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다만 이보배의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전등 빛이 닿지 않는 부분에 어둠이 넘실거릴 뿐이다.
빛이 닿지 않는 곳의 그림자. 흙과 돌, 이끼나 곰팡이가 전부여야 할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불길하게 넘실거렸다.
이보배는 등골이 쭈뼛거렸으나 기분 탓으로 넘겼다. 전등 빛으로 확인하니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귀신도 아닌데 악마 얘기도 계속 들으니 무섭네.’
기분이 안 좋아진 이보배는 걸음을 재촉했다.
“얼른 가자.”
“돼지가 앞장서는 걸 잊지 말도록 하여라.”
* * *
복잡하게 꼬인 개미굴을 질주하던 최요한이 발을 멈췄다. 쉬지 않고 달려 지쳐서가 아니다. 이귀한에게 찍은 마커가 가까웠다.
이보배와 이한생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개미굴 구조상 꽤 돌아가야 할 듯했다.
기왕 가까운 것, 무시하고 지나치는 것보단 만난 후 남은 둘을 찾으러 가면 된다. 최요한은 이귀한이 있는 방향으로 한 발짝 걸음을 옮겼다.
평범하게 걸었을 뿐인데 이상하게 다음 걸음을 이을 수 없었다. 발이 진창에 박힌 것처럼 무거웠다. 최요한은 순간 알 수 없는 시선을 느껴 주위를 돌아보고 마력으로 주변을 감지했다.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급체한 듯 속이 불편해졌다. 이내 위장이 아니라 기분 문제인 걸 깨달았다. 마커 위치를 확인하니 이귀한이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이대로라면 곧 마주칠 것이다.
이귀한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전신의 솜털이 쭈뼛 서고 소름이 돋았다. 이보다 등급 높은 균열, 강한 몬스터 앞에서도 이랬던 적이 없기에 최요한은 반사적으로 경계했다.
‘온다!’
마커가 아주 근접했다. 이귀한이 육안으로 보일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그러나 이귀한이 있어야 할 곳엔 아무도 없었다. 빛이 들지 않는 개미굴의 새까만 어둠만이 공허하게 최요한을 반겼다.
‘뭐지?’
의아해하는 최요한의 발밑 그림자가 그의 몸을 타고 기어올랐다. 최요한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순간 바닥에 들러붙었던 발이 떨어졌다. 꼭 가위에 눌리다 깨어난 사람처럼 최요한은 숨을 몰아쉬었다.
“내가 계속.”
코앞에서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최요한은 깜짝 놀라 거리를 벌렸다. 분명 아무도 없었던 어둠 속에서 이귀한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달싹였다.
“막내랑 셋째를 찾고 있는데.”
‘조금 전엔 왜 안 보인 거지?’
“이귀한 씨 맞으세요?”
“못 찾겠어.”
빛이 들지 않는 곳엔 어둠 또한 공평하게 깔린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이귀한 주위만 더 어둡게 보였다. 어둠에 파묻힌 이귀한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젠장.’
최요한은 자신이 착각했음을 깨닫고 야시경과 가면을 벗었다. 야시경이란 본래 어두워 보이지 않는 걸 보기 위한 물건이다. 야시경을 썼는데도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는 건 그것이 정상적인 어둠이 아님을 의미했다.
“이귀한 씨, 저 아시죠? 과장님과 함께 뵈었잖아요. 이보배 씨가 병원에 가실 때 제가 에스코트도 해드렸는데요. 이번에 이한생 씨 찾아달라고 도움도 요청하셨잖아요.”
최요한이 상냥하게 웃었다. 상대를 속이기 위한 미소엔 숙달되었다고 여겼는데 지금처럼 웃기 힘든 건 처음이었다.
동생 이름이 나오자 이귀한 주위의 어둠이 미세하게 걷혔다.
“계속, 계속, 계속 찾고 있는데.”
“네, 저도 찾으려고 진입했어요.”
“범위를 더 늘릴까 생각해 봤는데 그럼 애들한테 안 좋을 거 같아서. 그래서 계속 걸어서 찾는데 못 찾겠어.”
“이보배 씨와 이한생 씨는 같이 있습니다. 느리지만 계속 이동 중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두 분 다 상태는 양호해요.”
“가까워?”
“길을 돌아가야 하지만 그리 멀지 않습니다.”
“다 부숴 버리고 싶은데……. 안 되겠지?”
“굴이 무너져 매몰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참아주세요.”
“응! 그래서 계속 참고 있었습니다!”
어둠이 걷혔다. 개미굴은 여전히 빛 한 점 들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최요한은 해가 뜬 것처럼 세상이 밝고 아름답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막내랑 셋째 빨리 찾아주세요, 헌터님.”
최요한의 코앞까지 걸어온 이귀한은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다. 최요한은 박마노에게 들었던 충고를 떠올리고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천외천이라더니, 하늘이 아니라 무저갱이잖아요, 과장님.’
“그럼 가시죠. 빙 돌아가야 할 것 같지만요. 야시경은 없어도 괜찮으시죠?”
“네!”
최요한은 가면과 야시경을 다시 썼다.
마커가 있어 거리와 방향은 파악할 수 있지만 복잡하게 얽힌 개미굴이다 보니 영 가까워지질 않았다. 최요한은 개미굴이 뚫린 모양을 예상하면서 길을 잡았다.
‘꽤 돌아가야겠군.’
길을 돌아가야 하는 것과 별개로 최요한의 심기는 복잡했다. 개미굴을 꽤 이동했는데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개미가 없네요.”
“저는 모르는 일이고 힘을 숨기지 않음.”
“아하하, 죽인 건 아니시죠? 개미들이 난폭해져서 실종자가 다칠 위험이 있어요.”
“헉.”
찔리는 게 있는 듯 이귀한이 눈을 좌우로 굴렸다. 동생 일이라면 평범하게 반응하는 이귀한이 이실직고했다.
“균열 막 들어오고 짜증 나서 좀 죽였는데.”
“열 몇 마리 정도는 괜찮습니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이 개미굴은 막 생성되었으니 최대 오십 마리까지는 버티지 않을까 싶네요.”
“다행!”
최요한은 아무것도 찾지 못한 통로에 야광도료로 표시를 남겼다. 마커를 확인하니 이보배와 이한생은 꾸준히 어딘가로 이동 중이었다.
이한생이야 그렇다 쳐도 이보배는 균열에 휘말렸을 시 대처법에 대해 알고 있을 텐데 어딜 그렇게 가고 있는 건지 의문이었다.
‘설마 개미에게 운반되고 있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남매와 함께 다른 실종자도 찾을 수 있으니 나쁜 일은 아니다. 단, 이씨 남매가 무사하다는 전제에 한해서.
‘둘 다 무사해야 할 텐데.’
남매가 무사하지 못할 경우 이귀한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불안한 생각을 돌릴 겸, 미지의 강자에 대한 정보도 모을 겸, 최요한은 입을 열었다.
“이보배 씨가 데리러 오신 날, 관리국 지하에서 바로 알아차리셨던 걸 보면 탐지 스킬이 있으신가 봐요.”
“저는 힘을 숨기지 않음.”
“이번에도 쓰신 것 같고. 이한생 씨 찾을 땐 왜 안 쓰셨어요?”
이귀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보배 씨가 엄청 걱정하시던데.”
동생 얘길 꺼내도 묵묵부답이었다. 반응이 관리국 지하에 있을 때와 비슷했다. 그땐 흉흉한 기운이 맴돌았지만 지금은 무관심하다는 차이가 있었다.
‘가족과 있을 때와 대응이 다르네.’
동생들이 있을 땐 최요한의 질문에 대답도 해주고 대화에 응하더니 둘만 남게 되자 처음으로 돌아갔다. 낯을 가리는 건지 상대할 가치를 못 느끼는 건지 의문이었다. 최요한은 후자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아까 애들에게 안 좋을 거라 말씀하셨는데, 그것 때문인가요? 탐지 스킬이 범위 내 사람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거나.”
“스킬 아닌데.”
“그럼 이세계에서 배운 기술이나 특기, 마법인가요? 제가 알기로 이세계에서 배운 기술도 시간이 지나면 스킬로 편입된다고…….”
“그냥 나랑 엮이면 안 좋은데. 내 존재 자체가 그냥…….”
이귀한이 머리를 마구 헤집더니 고개를 푹 떨궜다.
“생각하니 우울하당. 아, 세계 다 뿌수고 싶다.”
“물어봐서 죄송합니다. 부디 참아주세요.”
미지의 강자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다 위험도만 재확인한 최요한이 입을 다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참혹한 범죄 현장을 발견했다.
“이건.”
둔기에 두들겨 맞아 죽은 균열개미 사체를 발견한 최요한이 심각하게 현장을 살폈다.
‘솜씨가 다르다. 최소 두 명이 저질렀군.’
“개미 죽이지 말라고 했는데?”
“네, 그런데 다른 분이 신나게 저지르셨네요. 공익광고를 안 보시는 분인가.”
몬스터에게 쫓기는 게 아니면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 실종자의 의무거늘, 이 콤비는 너무 활발했다.
“위험?”
“아뇨, 이 정도는 아직 괜찮습니다. 과장님이 여왕개미를 잡으러 가시기도 하셨고. 길만 잘 찾으면 이보배 씨와 이한생 씨 찾기 전에 균열이 소멸될 수도 있죠.”
일반인이 전력 질주하는 속도로 움직이던 두 사람은 균열개미 사체를 발견하고 속도가 자연스럽게 늦춰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또 다른 학살 현장과 마주쳤다.
“또 있네?”
“우와. 진짜 신나서 저지르셨네요. 안에서 각성이라도 하셨나.”
최요한은 개미 사체를 조사한 후 연쇄살충범이 2인조 콤비임을 확신했다.
“여기 보시면 이 개미들은 한 방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쪽은 여러 대를 때렸고 개미가 반항한 흔적이 있어요. 뉴비 각성자와 비각성자 콤비, 또는 뉴비 각성자와 비전투계 각성자 조합으로 추리됩니다.”
최요한은 두 개의 마커가 움직이던 행적을 떠올리고 허탈하게 웃었다.
“이보배 씨와 이한생 씨 작품이네요. 두 분 다 건강하신 모양입니다.”
최요한의 말만 듣다가 직접 동생들이 건강하다는 증거를 보게 되자 이귀한이 활짝 웃었다. 이귀한은 신나게 어깨춤을 추었다.
“역시 내 동생이야. 개미 따위에게 지지 않아!”
“두 분이 개미에게 잡히지 않아 다행이네요. 다른 실종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빨리 찾죠.”
얼른 찾아서 잔혹한 학살을 막아야 한다. 최요한은 늦췄던 속도를 높였다.
‘길이 꼬인 게 아니었나.’
당초 남매를 찾아 마커를 주시했을 때, 이씨 남매는 이 근방을 헤매고 있었다. 그래서 길이 복잡하게 꼬여 있으리라 여겼는데 그렇지 않았다.
‘설마 개미 잡느라 왔다 갔다 한 건 아니겠지.’
불길한 예감이 최요한을 사로잡았다. 이귀한이 방금 지나친 통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조금 전 통로 안쪽에 인간 다수.”
“식량 창고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식량 창고를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귀한이 최요한을 앞질렀다. 그동안은 동생들의 위치를 몰라 답답하게 따라갔다는 듯 최요한이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였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이귀한 때문에 최요한은 허탈해져 고개를 저었다.
“과장님은 따라잡을 수 있으려나.”
천벌 콤비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최요한은 한숨을 쉬고 마커를 향해 달렸다.
* * *
빠루 무쌍을 찍던 이보배와 이한생은 식량 창고를 발견했다. 창고에 생포되어 있던 실종자 무리도 찾았다. 다들 개미 독에 당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다행히 균열개미 독은 단순한 마비 독이라 생명엔 지장이 없다. 균열개미는 식량 창고에 식량을 산 채로 잡아둔다. 괜히 생존자를 빼돌려 개미를 자극하느니 식량 창고에 얌전히 숨어 있는 게 나았다.
“이제 여기 숨어 있자.”
“무슨 소리냐! 아직 실종자가 남았다!”
“우리도 실종자거든!”
이보배가 정신 못 차린 막내 오빠에게 로 사랑을 주입해 주려는데 복병이 등장했다. 식량 창고에서 덜덜 떨던 실종자였다.
어두운 개미굴에서 덜덜 떨다가 전등 불빛을 본 실종자들이 아우성쳤다.
“우리 애! 우리 애 좀 찾아주세요!”
“저희 알바생도 찾아주세요!”
“헌터님!”
“헌터님! 부탁드려요!”
입만 산(정말로 몸이 마비되어 입만 움직인다) 실종자들이 도움을 요청했다. 일행과 떨어진 실종자의 눈빛이 큰오빠를 찾던 이보배 자신의 과거와 겹쳐 보였다.
당황한 이보배는 딱 잘라 거절하지 못했다. 자신들도 똑같이 균열에 흡수된 피해자라고 말하면 되는데 입이 열리지 않았다.
이보배가 거절하지 못하는 사이 화르세인지는 혼자 창고를 나가 버렸다. 이보배는 허둥지둥 막내 오빠 뒤를 쫓았다.
‘이 인간이!’
기고만장한 것이 전형적인 각성 하이였다. 하루에 레벨 업을 세 번이나 했으니 뿅 가서 충고는 뇌에 닿지도 않을 것이다.
“이 미친 새끼가, 내가 들인 병원비가 얼만데 나가 죽으려고!”
“성신과 시스템 신께서 날 굽어살피신다! 너희 같은 평범한 천것은 범접하지 못할 고귀하고 신성한 신의 사랑이 날 비추신다 이 말이다.”
“고귀하고 신성한 신의 사랑이 각성이지? 나도 각성자거든?”
“너는 평범한 각성자 아니냐. 신성력을 받지 못한 일개 각성자에 불과하지. 나는 다르다! 나는 너 같은 돼지는 이해할 수 없는 운명의 소유자니라!”
이해할 수 없는 운명의 소유자답게 이해할 수 없는 짓만 골라 했다.
신의 가호가 진짜 있다면 어디로 가든 개미와 마주치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닐까. 정반대로 남매는 창고에서 나오자마자 실종자를 운반하는 개미 무리와 조우했다. 쉽게 승리해 실종자를 구출했으나 이보배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얼른 들어라!”
실종자 운반을 모두 이보배가 떠맡아서는 아니다. 절대로.
어두컴컴한 흙 굴 한복판에 몸이 마비되고 겁에 질린 사람을 두고 갈 수 없는 노릇이다. 결국 이보배는 실종자를 질질 끌거나 업어서 식량 창고로 옮겼다.
화르세인지가 빠루를 휘두르며 호탕하게 웃었다.
“보아라! 이것이 화르세인지 드 체키빙이 걷는 운명이다. 승리와 정의의 길. 아, 이쪽은 재수가 없으니 가지 말자.”
‘진짜 신이 보우하시면 어디서나 당당하게 걸어야지 이 양반아.’
화르세인지는 중간중간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며 길을 피했다. 그렇게 균열 곳곳에 흩어져 있던 실종자를 운반하는 개미를 습격하니 창고에 모인 사람이 마흔 명을 넘었다.
“헉헉.”
이보배는 땀을 닦고 물을 마셨다. 처음 식량 창고에 스무 명가량 있었던 걸 생각하면 최소 열다섯 명을 그녀가 운반했다.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무엇하느냐! 전리품을 챙기는 것은 종의 일이다!”
‘무슨 개미가 다 여기로 와.’
분명 흡수된 사람은 균열 곳곳에 흩어져 있을 텐데 개미들이 이쪽으로만 운반해 오는 것이 이상했다. 식량 창고가 여기에만 있는 듯했다.
‘멍청한 개미 같으니. 분산투자도 모르나? 식량처럼 중요한 건 한곳에 몰아두는 게 아닌데!’
빠루 휘두르랴 사람 옮기랴. 이보배의 전신이 비명을 질렀다. 똑같이 빠루를 휘두르지만 레벨 업으로 피로를 잊은 망나니 혼자 건강했다.
“이제 슬슬 숨자. 병정개미가 아직도 안 뜨는 게 더 수상해.”
“이만큼 돌아다녔는데 보이지 않으면 처음부터 없었던 것 아니냐. 멍청한 돼지가 잘못 기억하는 게지.”
“내가 너보다 성적 좋았거든!”
깊은 빡침은 이보배가 묻어둔 막내 오빠의 진실한 호칭을 부활시키고 말았다. 큰오빠는 큰오빠요, 작은오빠는 작은오빠니, 막내 오빠는 너일 수밖에 없더라.
“괘씸한 주둥이는 여기서 나간 후 벌해주마. 저기 개미가 또 있다! 아하하!”
망나니가 균열개미 10마리를 발견하고 달려갔다. 한 대 치면 바로 죽으니 참 신날 것이다. 상식과 문화가 전혀 다른 세계로 떨어져 불안하던 차에 스트레스도 해소되니 희열을 느끼겠지.
그리고 그 희열은 개미가 옆에 있는 동족을 잡아먹으면서 공포로 치환되었다.
“뭐, 뭐냐!”
“히익, 병정균열개미!”
동족을 포식한 일꾼균열개미가 병정균열개미로 진화했다. 크기는 대형견 정도로 커지고 껍데기는 단단해져 외갑이라 할 만한 강도를 자랑했다.
캬악!
병정균열개미 5마리가 위협적으로 입을 벌렸다.
“도망쳐!”
이보배가 후퇴를 외치는데 망할 망나니가 선빵을 때렸다.
“받아라, 정의의 검!”
그다지 정의롭지 않고 검도 아니었던 공격은 병정개미의 외갑에 맞고 튕겨 나갔다.
“어째서 이놈들에겐 정의의 검이 듣지 않는 게냐!”
“방어력이 높으니까!”
병정균열개미는 D등급. 레벨은 놀랍게도 10에서 15 사이다. 1에서 5레벨의 균열개미가 동족 하나 잡아먹었다고 그렇게 폭렙하는 게 어디 있느냐고 항의해선 안 된다. 그런 거 일일이 따지다가 혈압이 올라 죽은 사람이 많았다. 진짜로.
“너보다 레벨이 5는 높을 텐데 당연히 공격이 안 먹히겠지!”
“말이 많구나, 후퇴한다! 전략적 후퇴다!”
“살기 위한 후퇴겠지, 바보야!”
부활한 ‘너’에 이어 이보배는 봉인해 두었던 막내 오빠의 호칭을 하나 더 잠금 해제했다.
샤아아악!
병정균열개미가 도망치는 둘에게 개미 산을 뱉었다. 흙바닥에 부딪힌 개미 산이 연기를 내뿜으며 흙을 녹였다. 물어봤자 생채기 조금 내는 게 끝인 균열개미와 달리 몹시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이보배와 이한생은 기겁하고 달렸다.
“멍청아! 등신아! 인생에 도움 안 되는 새끼! 산소 축내는 새끼! 열라 하찮은 새끼야아!”
이보배는 봉인해 두었던 호칭을 모조리 잠금 해제했다. 병정개미 두 마리가 천장에 달라붙어 둘을 앞지르더니 뛰어내려 앞을 가로막았다.
샤아아악!
병정개미가 산을 뱉었다.
‘못 피해!’
이보배는 얼굴을 가리고 눈을 꽉 감았다. 개미 산이 떨어질 위치가 딱 얼굴이었다. 넓게 퍼지는 탓에 몸을 굽혀 피할 수도 없었다.
“이 멍청한 돼지가!”
기억에 선명한 체온이 그녀를 감쌌다. 얼굴 곳곳이 불타듯 아팠지만 각오했던 것에 비해 면적이 좁았다. 턱없이 작았다.
“크윽.”
그러니까 말이다. 인생에 하등 도움 안 될 거라 여겼던 새끼가 왜 하필 그때 착한 오빠 노릇을 했을까. 왜 감싸선 식물인간이 되어버리고, 이번엔 왜 감싸서 등에 화상을 입느냐 이거다.
“크으윽! 시발. 아파.”
“오빠? 괜찮아, 막내 오빠?”
“뇌가 있으면 생각을 해라, 돼지야. 괜찮아 보이느냐?”
개미들은 남매가 티격태격하게 놔두지 않았다. 쓰러진 적에게 입을 벌리고 동시에 달려들었다. 이한생이 부상당한 몸으로 재차 이보배를 감쌌다.
병정균열개미의 위협적인 이빨이 이한생과 이보배의 몸에 파고들었다. 이보배를 감싼 이한생의 팔에 힘이 더 들어갔다.
이보배는 세계가 뒤집힌 것처럼 갑자기 숨이 막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영혼이 뽑혀 나가는 듯한 기괴한 감각이 이보배를 훑고 지나갔다.
키에에에에엑!
사정없이 남매를 물어뜯던 개미들이 일시에 비명을 지르더니 악취 나는 체액을 쏟고 쓰러졌다. 이보배는 허둥지둥 막내 오빠의 아래에서 빠져나와 포션을 꺼냈다.
이상한 감각은 뭐고 개미가 왜 쓰러졌는지 알 겨를이 어딨는가. 막내 오빠가 죽게 생겼는데.
“어떡해, 어떡해, 막내 오빠.”
넓게 퍼지는 개미 산을 몸으로 막는 바람에 이한생의 등은 녹은 옷과 피부가 들러붙어 보기만 해도 끔찍했다. 이보배를 감쌌던 팔다리는 개미에게 물려 피투성이였다.
이보배는 상처가 가장 심각한 등부터 포션을 발랐다. B급 포션이었다.
“으헝헝. 이거 어떡해.”
그냥 포션을 부으면 천이 재생되는 살 안에 박히기 때문에 이보배는 어쩔 수 없이 천을 잡아 뜯었다. 옷이 제거되자마자 쥐 죽은 듯 쓰러져 있던 화르세인지가 고개를 쳐들었다.
“크아악! 이 미친 돼지가!”
생살이 찢기는 고통에 이한생이 도마 위 횟감처럼 펄떡였다. 이보배는 쌍욕을 시전하려는 이한생의 입에 포션을 물렸다.
“어헝헝, 우리 막내 오빠 어떡해. 죽으면 어떡해.”
막내 오빠의 등엔 이미 큰 흉터가 있었다. 8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던 흉이다. 그런데 오늘 큰 흉이 하나 더 늘었다. 피부를 아예 뜯어 재생시키는 게 아니면, B급 포션으론 흉을 없앨 수 없었다.
흉이 진 것보다 흉이 생긴 원인과 당시의 고통이 이보배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러니까 바보야, 왜 날 감싸. 멍청하게, 너는 피해야지.”
이보배는 상처가 다 나아 붉은 기만 남은 막내 오빠의 등을 때렸다. 이보배의 손만 아팠지만 화르세인지가 발작하듯 외쳤다.
“너는 죽었다! 내 손으로 죽여주마! 내 고귀한 손에 돼지의 피를 묻히기 싫어 참았거늘 감히 목숨을 구해준 주인을 때려?”
서로를 놀리고, 비웃고, 죽이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관계. 그것이 바로 남매지간이다. 유전자 단위로 투쟁이 설계된 이 관계엔 예외가 있었으니.
“막내야, 셋째야! 무사한 거지!”
“큰오빠!”
나이 차가 있을 경우 투쟁심이 줄어든다. 이보배는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큰오빠를 보고 안심한 나머지 서럽게 울었다. 이보배는 울면서 하소연했다.
“막내 오빠가, 등신 같이이, 히잉, 나 감싸고, 또, 바보가, 멍청이가, 허엉.”
안도와 서러움이 복받친 나머지 이보배는 횡설수설했다. 이귀한이 가까이 다가가자 이보배 품에 안겨 있던 이한생이 질겁했다.
“으아악, 악마다! 오지 마!”
“우리 셋째가 또 막내를 감쌌구나. 장하다!”
“빨리 도, 도망쳐야……. 돼지는 이리 와라!”
참으로 감격스럽게도, 망나니는 이귀한을 두려워하면서도 이보배를 등 뒤로 잡아끌었다. 누가 봐도 지켜주려는 자세였다. 이귀한이 입을 틀어막았다.
“우리 셋째가 말은 험하게 해도 막내를 아꼈지. 형은 믿었다.”
“저리 꺼져라, 이 악마야! 개미를 죽이고 도와준 척 속이려는 거지? 돼지는 멍청해서 속겠지만 나는 속지 않는다! 나는 두 신의 가호를 받는, 우, 우에에엑.”
서슬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이귀한을 경계하던 망나니가 갑자기 속을 게워냈다. 이보배는 서럽게 이한생을 불렀다.
“막내 오빠!”
“우웨에에엑.”
마신 포션은 모두 흡수되었기 때문에 소화되다 만 햄버거가 쏟아졌다. 이보배는 화르세인지의 등을 두드려 주려다 회복한 지 얼마 안 된 등을 두드려도 되나 싶어 내민 손을 움츠렸다.
“소, 속지 않는다. 너는 역병 같은……. 악의…….”
이보배와 둘만 있을 때 설명하고 죽어버리는 조연 같은 역할을 했던 게 복선이었던 것일까. 화르세인지가 조연이 죽을 때 남기는 대사 비슷한 걸 읊더니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