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in Character’s Little Sister RAW novel - Chapter (21)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야 하는데 겉은 태우고 속은 녹아버렸다. 박마노가 안타까워하며 몸을 산란실 쪽으로 돌렸다.
개미가 얼마나 많든 상관없었다. 여왕을 지키는 개미를 여왕과 함께 전기 마사지로 지져주려는데 사람의 비명이 들렸다.
“살려주세요!”
열심히 알을 낳는 여왕개미를 위해 일꾼개미들이 입가에 먹이를 가져다 대고 있었다.
산 채로 씹어 먹히게 생긴 사람이 비명을 질렀다. 개미 독에 마비되었는지 움직이진 못했다.
“으아아악!”
“아까비.”
박마노가 안타까워 혀를 차고 진압봉을 휘둘렀다. 박마노의 공격 스킬은 모두 강력하지만 피아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원거리 공격 스킬로 개미만 공격하자니, 전기가 흘러 사람이 다칠 가능성이 높았다. 여왕개미를 단번에 죽이려면 결국 주위에도 피해가 간다. 붙잡힌 사람을 구하려면 몸으로 뚫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요한이만 있었어도.”
박마노가 일이 귀찮아진 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최요한 씨가 동생들을 찾았겠죠?”
“못 찾았어도 괜찮게끔 얼른 처리해야죠.”
그 말이 정답이다. 이해기가 자세를 정비하고 개미의 틈을 살피다가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나갔다.
수백 마리의 균열개미가 이해기를 막으려 몰려들었다. 이해기는 겁먹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개미를 밟고, 가르고, 걷어차니 여왕개미 코앞이었다. 놀란 여왕개미가 이빨을 부딪쳐 위협했다.
이해기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높아봐야 D급 균열의 주인 정도야 그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데다가 애초에 이해기가 노린 상대는 여왕개미가 아니었다.
이해기는 여왕개미의 주둥이 앞에서 기절 직전인 실종자를 둘러메고 높이 뛰어올랐다.
“지금!”
“센스 있네!”
박마노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축전 후 바닥을 지졌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벼락이 불꽃을 튀기며 산란실 바닥을 휩쓸었다. 개미의 비명과 팝콘 터지는 소리가 산란실에 메아리쳤다.
고전압이 쓸고 간 자리엔 새까맣게 탄 개미 사체만 남았다.
이해기가 착지하자 그의 발밑에서 남은 전력이 지지직거렸다. 이게 이해기가 균열에서 허용한 최초의 공격이었는데, 버틸 만했다.
그가 버틸 만했다고 다른 사람도 버틸 수 있는 건 아니었기에 이해기는 바닥을 발로 툭툭 쳐 전기가 모두 가신 걸 확인한 후에 둘러멨던 사람을 내려놓았다.
“괜찮으십니까?”
균열에 휩쓸려, 개미에게 운반돼, 여왕개미에게 먹힐 뻔했다가 수동 자이로드롭을 타 혼이 쏙 빠진 민간인이 말했다.
“바, 바, 박마노다.”
“네, 박마놉니다.”
“살았다!”
“국민 여러분의 성원과 신뢰에 보답하는 관리국이 되겠습니다!”
박마노가 상쾌한 얼굴로 웃었다. 일이 귀찮아질 뻔했는데 이해기가 센스있게 움직여 한 큐에 끝난 것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거래할 자격이 있지. 나랑 합 맞추는 건 처음일 텐데 전투 센스가 좋다.”
“하하하.”
이해기가 박마노와 합을 맞춘 기간이 10년이 넘는다. 홀로 기억하는 추억이 애틋하고 또 아까워 이해기는 억지로 웃었다.
“우리 시민분은 시간 지나면 자연적으로 해독되니까 잠시 여기 계시고.”
이해기는 박마노가 시키는 대로 산란실 구석으로 가엾은 시민을 옮겼다.
“여왕 막타는 이해기 씨가 먹읍시다! 경험치 챙기셔!”
이해기가 귀찮음을 덜 수 있는 센스를 발휘했다면 박마노는 한 방에 잡을 여왕을 쪼렙 거래처를 위해 남겨두는 센스를 발휘했다.
이해기는 바닥에 즐비한 개미 사체를 지나쳐 여왕균열개미에게 갔다. 개미 사체를 밟을 때마다 바싹 탄 외갑이 부서지고 탄내 나는 체액이 쏟아졌다.
“병정개미의 수가 많은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여왕 잡으면 끝날 거 후딱 해치웁시다.”
타당한 의견이었다. 여왕균열개미는 이해기가 다가가자 신음하며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숨이 간신히 붙은 상태에서 육중한 몸을 일으키는 건 무리였다.
뀨에에엑.
이해기는 손쉽게 여왕균열개미의 숨통을 끊었다. 여왕개미를 잡았다는 시스템 알림이 떴다. 파티를 맺지 않은 박마노가 거의 다 잡은 것을 그가 숨통만 끊어서 그런지 경험치는 많이 주지 않았다.
“이해기 씨!”
박마노가 이해기를 부르더니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고는 엄지를 치켜들었다. 마석은 알아서 몰래 챙기란 의미였다.
개미굴은 일꾼개미에게서 마석이 나오지 않는 대신 보스인 여왕개미의 마석이 가치가 높다. 박마노는 수천만 원대의 마석을 태연하게 넘겼다. 돈과 가오가 넘치는 자만 누릴 수 있는 배포였다.
이해기는 숙련된 솜씨로 여왕균열개미의 가슴을 갈라 마석을 꺼냈다. 이 마석이 균열핵이다.
균열엔 반드시 균열핵이 존재한다. 보스의 체내나 균열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거대한 마석을 파괴하거나 인벤토리에 수납하면 균열이 소멸했다.
“어?”
어린아이 머리만 한 크기의 마석을 집어 든 이해기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마력량이 적다.’
오랫동안 S급, SS급 마석만 본 탓에 눈이 높아져 F급 마석이 허접해 보이나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해기는 눈살을 찌푸리고 산란실 내 마력 농도를 살폈다. 여왕개미가 거대한 체구를 뽐내고 있고 민간인 인질도 있어 미처 산란실 내 마력을 확인하지 못했다.
“마노 누나, 위!”
산란실 천장에 있는 구멍 근처에 날개 달린 균열개미 한 마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박마노는 제 이름이 불리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기를 날렸다.
하지만 공주균열개미는 천장에서 떨어져 허공을 날았다. 박마노가 연달아 공격했지만 날개 끝만 스치고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던 공주균열개미가 천장에 난 구멍으로 쏙 들어가 사라졌다.
“아니, 무슨 개미가 개미처럼 날아야지 나비처럼 날고 지랄이야!”
하늘을 날 수 없는 박마노가 입에서 불을 뿜었다. 이해기는 마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마석은 이해기의 손아귀 힘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더니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속 빈 강정. 여왕이 공주에게 왕위를 물려줬습니다.”
“그거 둥지 절반은 아작 나야 생기는 패턴 아니었나?”
개미굴의 개미가 빠른 속도로 사망해 개미굴의 존속이 위험해질 경우, 여왕개미는 공주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여기서 왕위를 상징하는 물건은 왕관이나 홀이 아니다. 마석이다.
이해기와 박마노가 산란실에 들이닥치기 전에, 여왕은 이미 균열핵을 공주에게 넘겼던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이해기는 얼굴을 굳혔다. 가능한 한 빨리 균열의 주인을 쓰러뜨려 실종자를 구하겠다는 작전이 실패했다.
박마노는 천장에 뚫린 구멍을 보고 이를 갈더니 그에게 물었다.
“벽 타고 가거나 나는 스킬 있습니까?”
“아니요.”
“하긴, 센스 있는 분이니 그런 스킬이 있었으면 이미 잡았겠지. 아놔, 텄네. 거기서 왜 나풀거리냐고, 왜.”
빡친 박마노는 박지랄이 되어 천장에 무의미한 공격을 날렸다. 흙과 돌이 떨어지자 구석에 있던 시민이 비명을 질렀다. 박지랄이 정신 차리고 박마노로 돌아왔다.
“우선순위 조정합니다. 보스 처치보다 발견한 실종자 보호와 탈출을 최우선으로 하겠습니다.”
“아뇨,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나도 알지만 어쩔 수 없잖습니까.”
이해기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산란실 내 병정균열개미의 수로 짐작건대 일꾼균열개미들이 동족 포식을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이보배와 이한생도 위험했다.
‘최악은 형이 폭주하는 거지만.’
이해기는 형을 믿었다. 이귀한이라면 분명 끝까지 이성을 유지하고 동생들을 지킬 것이다.
“이제 와 실종자를 찾을 시간이 없습니다. 공주를 잡죠.”
“날개가 없는데 무슨 수로.”
“저 정도로 좁은 통로면 벽에 무기를 박아 타고 오를 수 있잖아요?”
이해기는 아직 이전 능력치를 회복하지 못해 불가능하지만 박마노라면 점프해 천장에 닿을 수 있다. 이해기의 부족한 추진력은 박마노가 밑에서 던져 올려 주는 걸로 해결하면 된다.
“오호라.”
이해기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박마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쉰 넘은 아재가 치근거리는 것처럼 굴더니 현장에선 제 할 일 하는 양반이었구먼.”
박마노가 힘차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이해기는 약간 억울해졌다.
‘쉰은 안 넘었는데.’
이해기가 박마노의 손을 마주 잡자 손이 힘차게 흔들렸다.
“저, 저는? 두고 가지 말아주세요! 살려주세요!”
둘의 대화로 두 사람이 공주개미를 쫓아갈 걸 알게 된 시민이 떨었다.
“하하하, 두고 간다뇨. 저 박마놉니다.”
박마노가 부하의 미소를 흉내 내면서 고리가 달린 벨트와 밧줄을 꺼냈다. 박마노는 허리와 가슴에 벨트를 찬 후 시민을 등에 업었다.
“속이 불편하면 토해도 괜찮습니다. 아하하하.”
“사, 사, 살.”
“괜찮아요, 괜찮아. 저 박마놉니다.”
박마노가 양손 깍지를 껴 자세를 잡았다. 이해기는 거리를 벌렸다가 박마노를 향해 달렸다. 깍지 낀 손을 밟고 힘차게 뛰어올라 공주균열개미가 들어간 통로에 진입 성공했다. 통로가 좁아 다리와 등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이해기는 대충 자리 잡은 후 신호했다. 박마노는 시민의 애원을 무시하고 솟구쳐 올랐다.
“끄아아악!”
이해기표 자이로드롭에 이어 박마노표 청룡열차에 탑승한 시민이 감격의 비명을 질렀다. 업힌 시민은 기절해 축 늘어졌다.
박마노는 시민의 목이 부러지지 않도록 잘 고정되었는지 재차 확인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튄 개미 새끼. 반드시 잡는다.”
“이동하겠습니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평범했던 균열. 자신과 가족들이 말려들면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어 이해기는 마냥 답답했다. 딱 하나 바라는 것은 가족의 안전뿐이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좋아. 무사해라, 보배야, 한생아!’
또다시 그 상실을 경험한다면 이해기는 버틸 자신이 없었다. 회귀자야말로 상실에 가장 취약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해기는 입안에 들어온 흙을 씹어 삼켰다.
몹시 썼다.
* * *
“한 명이 부족하다!”
식량 창고엔 모두 51명이 있다. 균열 입구로 진입한 최요한을 빼면 50명이 된다.
[48/49]시스템이 알려준 균열에 흡수된 사람과 확보한 사람의 수였다. 이한생은 퀘스트를 받은 수주자이니 제외. 인간이라 보기에 99퍼센트 부적절한 이귀한을 빼면 48명이 된다.
이보배는 발끈했다.
“큰오빠가 전투계 각성자라 보호해야 할 인원에 안 넣은 거겠지! 사람이 아니라 안 넣었다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악마를 악마라고 하는데 뭐가 문제냐, 돼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니. 이귀한은 악마 또는 악마에 준하는 무언가다.
8년 전이었으면 관절기가 작렬했을 건방진 발언이지만 지금의 이귀한은 풀이 죽었다.
“자자, 여러분. 가정 내 문제는 댁에서 풀어주시고요. 한 명 빼고 전원 확보라니 다행입니다. 모두 이한생 씨의 공입니다.”
“훗, 신께서 날 굽어살피시는 증거지.”
망나니는 기고만장하고 대악마는 쭈구리가 되었다. 이보배는 이귀한을 위로해 주기 위해 다가가다가 화르세인지에게 붙잡혔다.
“왜?”
“옮는다.”
화르세인지는 기고만장한 와중에도 이귀한 오염 물질설을 밀었다. 말하는 투만 들으면 흑사병 보균자나 방사능 폐기물이 따로 없었다.
붙잡힌 이보배 대신 최요한이 이귀한에게 접근했다.
“제가 과장님 상태를 살펴보니 한곳에 머물러 계시는 게 전투 중이신 것 같아요. 이귀한 씨가 이쪽을 탐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가 왜?”
최요한이 선량한 미소를 지었다. 가면 때문에 보이지 않겠지만 이귀한은 모두 파악하고 있으리라 여겼다.
“제가 말씀드리는 걸 잊었네요. 이해기 씨가 과장님과 같이 계십니다.”
“둘째는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애 아니라 괜찮은데.”
“과장님이 여왕개미를 찾으러 가셨으니 산란실에 계실 겁니다. 산란실은 찾지 못한 실종자가 있을 유력한 후보지예요.”
그 말에 이귀한이 미끼를 물었다.
“셋째 버스는 내가 몬다! 그런데 힘은 안 쓸 거라니까요.”
“저보다 청각이 좋으신 것 같던데 그 정도만 신경 써주셔도 괜찮습니다.”
낚시에 성공한 최요한의 말에 웃음기가 묻어났다. 이보배는 슬슬 저 착한 인상의 청년이 마냥 선량한 호인은 아님을 눈치챘다.
‘하긴, 범죄자 체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니까.’
외근으로 바쁜 박마노를 대신해 서류 업무를 대신하는 보좌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이한생이 작게 중얼거렸다.
“악마의 지능이 낮은 듯하군. 그나마 다행이야.”
‘너보다 성적 좋았거든.’
최요한은 방향을 제대로 확인하는 듯하더니 바닥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산란실은 아래쪽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조용히 시켜줘.”
“알겠습니다.”
“웃는 거 안 돼, 우는 거 안 돼, 살려달라는 말도 금지.”
이귀한은 사람들에게 협조를 요청하려는 최요한에게 세 가지 조건을 밝혔다. 무미건조한 어조의 요구에 최요한이 약간 긴장했다.
“셋째야, 내가 버스 태워줄게! 너흰 떠들어도 돼.”
최요한을 대할 땐 무미건조하던 얼굴이 동생에게 향하자 웃음꽃이 피었다.
“음, 아냐. 잡음 끼면 작은 소리가 안 들리잖아.”
“아냐. 나 너무 집중하면 무의식적으로 뿌셔뿌셔 해버리니까 너희 목소리 들리는 게 좋아.”
사람이 많을 때 몰살 충동을 느끼더니 집중해도 파괴 충동이 인단다. 이보배는 이귀한의 정신 상태가 심히 걱정되었다.
‘나가자마자 정신과부터 알아봐야지.’
상담을 받으면 내부의 파괴 충동이 완화되지 않을까? 가족 상담과 병행하면 막내 오빠와의 관계 개선도 꾀할 수 있을지 모르고 말이다.
“여러분, 잠시 조용히 해주세요.”
사람이 모여 있으면 아무리 조용히 시켜도 시끄럽게 마련이다. 하지만 최요한이 부탁하자 식량 창고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균열의 날로 인해 한국인의 고질병인 안전 불감증이 완치되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균열 내 기계 오작동으로 불안정하게 깜빡이는 핸드폰 불빛과 옆 사람의 온기에 의지해 균열에 떨어진 공포를 이겨내던 사람들은 적막을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한두 명이 입을 틀어막고 흐느끼기 시작하니 전체로 번졌다. 다행히 이귀한이 청취를 마친 뒤였다.
“방향이 아래랬지?”
“네, 실종자가 거기 있나요?”
“사람이 셋, 개미는 다수. 근데 이거.”
바닥에 귀를 붙였던 이귀한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두어 발자국 물러나 지면을 가리켰다.
“가까워지는데?”
“네?”
최요한이 되물었다가 금방 지면을 노려보았다. 이귀한은 이보배에게 달려가다가 망나니의 격렬한 저항에 막혔다.
“저리 가라, 이 악마야!”
“끙, 막내 다치면 형아가 이놈 한다.”
“돼지는 죽는 게 네놈에게 오염되는 것보다 행복할 것이다!”
“난 사는 게 좋거든!”
이보배는 가족들만 있다면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좋았다. 자신의 몸은 스스로 지키잔 생각에 이보배는 빠루를 굳세게 쥐었다.
지면이 들썩이더니 흙이 아래로 풀썩 꺼지고 구멍이 생겼다. 창고 바닥에 생긴 구멍에서 일꾼균열개미와 병정균열개미가 우르르 몰려나왔다.
“꺄아아아악!”
“으아아악! 살려주세요!”
“도망, 도망쳐야 해!”
“개미 떼다!”
개미가 튀어나오는 소리에 사람들이 겁에 질렸다. 마비가 다 풀리지 않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창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움직이시면 위험합니다!”
최요한이 잔상이 보일 정도로 빠르게 개미를 잡았지만 구멍에서 쏟아지는 개미의 수가 너무 많았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진정 안 되시겠지만 진정하셔야 살아요!”
“으아아악!”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일꾼균열개미야 크게 위협적이지 않았으나 병정균열개미가 문제였다.
도울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이보배가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데 잡힌 손이 잡아당겨졌다. 화르세인지였다.
‘이번에도 돕자고 말하려나?’
이보배가 침을 꿀꺽 삼키고 뛰쳐나가려는데 화르세인지가 말했다.
“작전상 후퇴다.”
‘이 새끼가.’
망할 망나니가 뻔뻔하게 도주를 종용했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과 오빠라면 이보배도 당연히 오빠를 선택한다. 하지만 저 사람 중에 열 몇 명은 이보배가 땀 흘려가며 운반했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이제 와 발을 빼자니.
마음이 도와주는 쪽으로 기우는데 최요한이 이귀한에게 요청했다.
“시민들에게 가는 개미만 막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에엥.”
어수선한 식량 창고에서 홀로 여유롭던 이귀한이 싫은 소리를 냈다.
동생들이 도망가면 뒤를 봐주고 남으려고 하면 지킬 생각이었지, 그 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았다.
이보배는 결국 돕기로 결정했다.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지만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큰오빠,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줘. 부탁이야. 큰오빠는 강하다고 했잖아.”
“난 살육과 파괴 전문이라니까.”
말은 투덜거려도 이귀한이 움직였다. 그는 창고에서 도망치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붙잡아 한군데에 몰았다. 달라붙는 개미는 발로 차 죽이고 대충 인원수를 헤아리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검고 불길한 기운의 막이 사람들을 감쌌다. 막은 구체가 되어 사람을 가뒀다. 갇힌 사람들이 놀라 막을 두드리며 뭐라 외쳤다. 하지만 막이 소리를 차단하는지 이보배의 귀엔 아무 소리도 닿지 않았다.
“외부에서 공격해도 안에 안 닿아.”
“정말, 감사합니다!”
최요한이 감사를 표하고 개미 잡기에 몰두했다. 이귀한은 구멍에서 기어 올라오는 개미들을 단번에 죽일까 하다가 그만두고 일일이 때려잡았다.
‘거리가 조금 가까웠지?’
아닌 게 아니라 이귀한이 근처에서 힘을 쓰자 화르세인지가 발작했다.
“크어억! 사악한 힘이 내 생명을 깎아먹는다. 나 죽어…….”
공격 기술이 아니었음에도 화르세인지가 고꾸라지면서 코피를 흘렸다. 이보배는 상극이란 말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겼다.
“버스 태워주다 셋째 잡겠네.”
이귀한은 코피 흘리는 동생을 심란한 얼굴로 바라보다 뒤에서 달려드는 개미를 붙잡은 뒤 다리와 더듬이, 이빨 순으로 뜯었다. 누가 봐도 화풀이였다.
이귀한이 개미를 무자비하게 쥐어뜯어 죽이는 동안 이보배는 손수건을 꺼내 이한생의 코를 틀어막았다.
“괜찮아, 막내 오빠? 토할 때는 기절하더니 지금은 코피가 나도 기절 안 하네. 공격이 아니라 그런가?”
“멍청하고 보는 눈 없는 돼지가!”
화르세인지가 이보배의 손에서 손수건을 뺏어 코를 막았다. 이보배가 D급 포션을 꺼내자 화르세인지가 원샷했다.
“지금 저들의 혼이 빨려 나가는 게 보이지 않느냐? 저대로 내버려 두면 생기를 빼앗기고 혼이 오염되어 영혼의 강에 돌아가지 못하고 소멸할 때까지 구천을 떠돌게 될 것이다!”
화르세인지가 사람들을 보호하는 막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 또한 공격 기술이란 소리에 이보배는 막 내부를 살폈다. 구해달라 외치던 사람들이 모두 쓰러져 실신한 상태였다. 이보배는 깜짝 놀라 이귀한을 찾았다.
“큰오빠, 저 사람들 괜찮은 거야? 전부 기절했는데?”
이귀한이 쥐어뜯던 개미를 뒤로 던지고 어깨를 으쓱였다.
“출력 낮췄어. 최소 보름은 탈모, 혓바늘, 소화불량, 빈혈, 두통, 가위를 동반한 수면 장애, 발기부전, 생리 불순, 설사에 시달리겠지만 죽지는 않을 거야!”
“잔인한 악마!”
“혼을 건드려서 기억장애도 있겠지만 괜찮을 거야. 살려만 두면 되는 거잖아.”
최소가 보름이면 최장기간은 얼마란 말인가. 이보배는 밀려오는 두려움에 차마 묻지 못했다.
망나니가 악마, 악마 해도 와닿지 않았는데 이번만큼은 큰오빠가 사악한 악마 그 자체로 보였다.
‘아냐, 진정하자. 그래도 살리려고 한 거잖아. 물려 죽거나 개미 산에 녹아 죽는 것보다 낫지. 구하는 거야. 치질이랑 변비가 안 낀 게 어디야.’
치질과 변비가 꼈으면 이보배도 이귀한에게 악마라 외쳤으리라.
“사악한 악마! 크윽, 피는 왜 멈추지 않는 거냐!”
화르세인지가 도통 멎지 않는 코피에 짜증 냈다. 이보배가 고심 끝에 인벤토리에서 아까 준 B급 포션을 꺼내 마시라고 권했다. 화르세인지는 코로 포션을 마시는 셀프 물고문을 견뎠다. B급 포션을 몇 모금 마셨음에도 출혈이 멎지 않았다.
“아까 정화인지 뭔지 써서 나았잖아. 또 쓸 순 없는 거야?”
“신성력이 모자라다.”
“어떻게 해야 채워지는데?”
“퀘스트를 완료하거나 레벨 업을 해야 하느니라.”
출혈 자체는 적어서 대단한 상처로 보이진 않았다. 문제는 코피가 난 원인이다. 평범한 코피가 아닌 만큼 시간이 지나면서 그친다는 보장이 없었다.
‘레벨 업이라.’
이보배는 균열개미로 시선을 돌렸다. 개미는 거의 처리된 상태였다.
최요한이 원힛원킬로 균열개미를 학살했다. 광역기가 없는지 진압봉과 팔다리로 처리한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속도였다.
이보배의 시선을 눈치챈 최요한이 태연하게 우는소리를 냈다.
“도와주셨는데 금방 끝내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는 이런 일 대 다수 싸움에 약하거든요.”
구멍에서 나온 개미들은 더 이상 최요한과 이귀한에게 달려들지 않고 눈치를 살폈다. 도망가지 않는 이유가 궁금할 정도로 일방적인 전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