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05
705화. 미궁 ‘람세스 대신전’ (4)
차가우면서도 아름다운 외모의 반인반수가 나타났다.
“뭐야, 나를 왜?”
바로 그리스 신화에서 수많은 용사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몬스터.
‘메두사’였다.
꼬리를 날름거리는 메두사가 갑작스러운 외부 소환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분명 상대는 자신을 생포해 릭 헤네시란 작자에게 팔아넘긴 장본인이다. 그런데 제법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뜬금없이 자신을 다시 찾으니 황당할 수밖에.
“잘 지냈어?”
진혁이 복잡한 표정을 지은 채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난 잘못 지냈는데….”
미련과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말투.
마치, 헤어진 전 연인과의 대화 같다.
“……?”
메두사가 뭔 개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았거나 진혁이 말을 이었다.
“사실, 널 그렇게 릭 아저씨에게 보내고 나서 마음이 많이 쓰였어. 우리 사이에 나름 추억도 많았잖아?”
“그게 무슨 개소리냐. 너랑 나랑은 죽기 살기로 싸운 기억밖에 없는데, 그것도 그 결계를 이용해서 비겁하게 날 가뒀었지.”
“사소한 걸 일일이 따지지 말고. 좋은 기억만 이야기하자. 아무튼, 그때의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서 너에게 다시 한 번 자유를 주고 싶은데, 그 전에 이번 한 번만 날 도와줬으면 해.”
석상들이 즐비하던 메두사의 안식처.
자유롭게 컬렉션을 모으던 그 시절을 되돌려 주겠다.
“……자유.”
펜다리엘이나 무혼과 마찬가지로 메두사 역시 그 단어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릭의 보물창고에서 오랫동안 갇혔던 상황이라면 더욱더.
“어떻게 할래? 시간 없으니 빨리 정해야 하는데.”
“어째서 그리스의 내로라하는 용사들이 이 몸 앞에서 벌벌 떨었는지 알려주겠다.”
[메두사가 ‘염혼의 낙인’을 받아들입니다.]치이이익!
피부에 새겨진 선명한 붉은색 낙인.
‘좋았어.’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단순히 대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돌로 만들어버리는 사기적인 능력은 이용가치가 넘치다 못해 사기적이었다.
무엇보다. 낙인이 찍혀서 이쪽의 신수가 된 이상 얼마든지 능력치를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게 된 것이 고무적이었다.
진혁이 즉각 무한의 대서고에서 능력을 불러왔다.
[고유능력 ‘멘트라 테이밍’이 발동됩니다!] [최상급 마정석 5개를 소모합니다.] [메두사의 기본 능력치가 200%만큼 상승합니다!]쿠쿠쿠쿠쿠쿠!
메두사의 몸에 새로운 마력이 넘쳐났다.
[메두사가 고유능력 ‘석화의 마안’을 발동합니다!]쩌저저저저적!
시야에 마주친 벌레들의 몸이 그대로 돌로 변하기 시작했다.
“키에에에!”
“케에…!”
물리 내성은 높지만 마법 내성이 낮은 사막의 벌레들은 생소한 석화 능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게다가.
“뭐, 뭐야?”
“내 몸이… 돌이 된다. 끄아아아!”
석화의 저주는 벌레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드레드로어의 플레이어들까지 집어삼키고 있다는 점이다.
벌레들만으로도 벅찬 공격대로서는 난데없이 측면에서 나타난 메두사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적아를 구분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공격하는 메두사의 성향상 회유도 통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짓이냐! 다 같이 죽기라도 하자는 것도 아니고!”
드레드로어의 메인 힐러인 ‘에밀리’가 악에 받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먼저 우리를 죽이려고 한 게 누구였더라?”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언제부터 우리가 동료였다고. 뒤통수를 치고 말 것도 없다.
기회만 보이면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기로 암묵적인 약속이 끝난 상태였으니까.
석화가 진행되는 동안 무방비가 된 플레이어들 사이로 한 줄기 바람이 몰아쳤다.
“실피드. 빠짐없이 수거해.”
“응! 주인!”
실피드가 요리조리 몸을 날리며 플레이어들이 걸치고 있는 몇몇 아이템들을 빼앗았다.
이런 애들이 소유하고 있는 아이템들이야 뻔한 수준이다.
태고의 신격이나 상위 주신들과 싸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성유물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하지.
그러나 몇몇 강화에 필요하거나 이후 에덴과의 전쟁에서 필요한 아이템들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 있었다.
[‘알데바란의 파편 조각’을 획득하셨습니다.] [‘알 수 없는 나팔’을 획득하셨습니다.] [‘안디애나 존슨’의 복원 세트를 획득하셨습니다!]진혁이 새로 얻은 아이템들을 아공간 인벤토리 한 켠에 잘 보관해두었다.
먼 이후에 일을 대비한 안배.
이것들이 빛을 발하는 건 한참이 지난 이후의 일일 거다.
‘그래도 꼭 필요하긴 한 것들이지. 흐음. 그나저나 이번 이벤트에서 얻는 게 기대 이상으로 많네.’
살짝 안쓰러운 감정이 들긴 들었다.
그래도 어차피 조각상이 될 운명인데, 이런 걸 가지고 있어 봐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거다.
‘뭐, 나중에 몇몇은 석화의 저주를 풀어주고 더 큰 대가를 요구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돌멩이가 되든, 되살아나든.
이곳에 있는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옥뿐이다.
“우리를 전부 적으로 돌리면 너희도 무사하긴 힘들 거다.”
에밀리가 벌레들과 그들을 이끄는 여왕, 샤레이크를 가리켰다.
“크오오오오!”
샤레이크의 쩌렁쩌렁한 포효소리에 벌레들에게 진행되던 석화가 풀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메두사의 능력이 사기적이라도 훨씬 상위 레벨의 네임드 몬스터를 넘어설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것도 네가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진혁의 시선이 옆에 있는 두 명의 수하에게 향했다.
스릉….
철컹!
무기를 뽑아 든 월영과 티본이 각각 진혁의 좌우에 섰다.
“우린 지금부터 마이어란 놈을 뒤쫓아 책을 확보하러 간다. 뒤를 맡겨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달그락! 모처럼의 싸움인데 고작 벌레여왕 따위를 잡는 게 고작이라니. 조금 아쉽다. 마스터.”
“하하하하. 제정신이냐! 네놈들 전부가 덤벼도 모자란 것을. 고작 둘을 믿고 맡… 어? 어어?”
말을 하던 에밀리의 눈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음영대의 대주. ‘월영’이 마력을 해방합니다!] [그랜드 데스나이트 ‘티본’이 마력을 해방합니다!]콰콰콰콰콰콰콰콰!
상상을 초월하는 폭풍이 둥지 전체를 휩쓸었다.
“키이이…?”
“크릭 크르륵…!?”
플레이어들을 갉아먹던 벌레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저릿저릿!
본능을 잠식하는 압도적인 공포에 일순간 특유의 호전성까지 사라져버린 탓이다.
“…….”
샤레이크 역시 월영과 티본의 기세에 자신도 모르게 십 미터가 넘게 거리를 벌렸다.
“모쪼록 아무 걱정 마시길.”
“달그락. 금방 정리하고 기다리고 있겠다.”
월영과 티본이 진혁을 향해 예를 취했다.
***
같은 시각.
“최악이로군요.”
“후우.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대회를 주최하는 세계 각성자 협회의 관계자들 역시 비상이 걸렸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무대와 수십 번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구현화한 가상 공간. 한 치의 변수도 용납하지 않겠노라고 확신한 지가 고작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자신감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일이 발생해버렸다.
람세스 대신전에 들어간 플레이어들이 블랙홀에라도 삼켜진 것마냥 계속해서 사라지고 있다.
이변을 감지한 대형 길드들이 후발대를 보냈지만, 그들 역시 몇 시간 째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미 시청자들의 불만과 걱정은 폭발한 지 오래였고.
협회는 이번 참사의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을 위해 총력전을 벌여야만 하는 지경에 놓였다.
여러 대형 길드들의 선발대가 람세스 대신전에서 실종된 동안, 이들을 구하기 위한 구조대가 급조되었다.
그 중에 하나가 단독으로 행동하고 있는 천유성이었다.
처음에는 부탁을 가장한 협박으로 찍어누르려 했는데….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그건 오산이었다.
파츠츠…!
눈이 시릴 정도로 타오르는 검기.
아니, 이건 검기 따위가 아니라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검강이었다.
그것도 순수함에 극에 달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수준 아닌가?
쿠웅!
털썩.
부탁(?)을 하러 갔던 협회의 직원들이 모조리 바닥에 쓰러졌다.
그 중에는 AAA급에 이르는 랭커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왜 그딴 곳에 가야하는 거지? 난 나대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천유성의 검 끝이 앞으로 뻗었다.
일말의 타협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서려 있었다.
“수, 수많은 사람들을 구한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협회 측에서 막대한 돈과 보상을 약속할 겁니다. 아니, 도와만 주신다면 아예 백지 수표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협회의 직원이 쩔쩔매며 말을 이었다.
한 명의 손이라도 아쉬운 이때. 랭커마저 손쉽게 제압하는 천유성은 반드시 포섭해야하는 대상이었다.
어떤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말이다.
“관심없다.”
천유성이 단칼에 마지막 제안마저 그어버린 뒤 몸을 돌려 걸음을 이어나갔다.
“하아.”
워낙에 단호한 반응에 협회 직원이 고개를 떨궜다.
동료들인 것으로 추측되는 인물들도 대신전 안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긴 했으나, 메인 이벤트 시작 이후 따로 다니는 걸로 보면 동료애라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물어보자면….
“그 안에는 천유성 님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강진혁 씨를 비롯한….”
우뚝하고.
천유성의 걸음이 멈췄다.
“강진혁이… 그 안에 있다고?”
“먹혔나… 가 아니라. 예! 맞습니다. 강진혁 씨를 비롯해 테레사 씨와 티본과 월영씨도 갇혀 있습니다.”
협회 직원이 파악하고 있던 신상정보들을 줄줄이 읽어나갔다.
“워낙 비상 상황인 지라 대회가 더 진행될지도 미지수입니다. 다시 말해 이번 람세스 대신전에서 가장 큰 역할을 세운 사람이 대회의 우승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상 마지막 기회.
대회의 우승은 물론, 전 인류가 지켜보는 앞에서 신전 안에 갇혀 있는 이들을 구해낸다면, 그걸로 자신이 모든 플레이어들의 위에 있음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안내해라. 그 신전인지 뭔지 하는 곳으로.”
천유성이 몸을 돌렸다.
***
타다다다다!
드레드로어의 공격대가 몸으로 희생양이 된 사이.
마이어와 키요프 그리고 이반코비치를 비롯한 길드의 주력은 원래 가려고 했던 목적지로 몸을 날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린다.
어차피 벌레 군락지에 버려진 이들의 생존 확률은 0.
동정이라는 하찮은 감정에 휘둘릴 시간에 책을 확보하는 데 모든 신경을 쏟아야만 한다.
“얼마나 남았지?”
“허억. 헉! 곧…! 거의 다 왔습니다!”
탐험가가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외쳤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두웠던 통로의 색깔이 달라지며 흑요석으로 장식된 방이 나타났다.
얼핏 봐도 심상치 않다.
온갖 종류의 고대 언어로 장식되어 있는 방.
갈라진 흑요석 틈 사이로 올라오는 검은색 연기 역시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함정이 많아 보이는군.”
마이어가 번개처럼 검을 휘둘렀다.
칼날이 긴 궤적을 그리며 통로를 가로질렀다.
콰콰콰콰콰쾅!
양 옆에서 검은 가루로 만들어진 파장이 어지럽게 교차했다.
검기로 만들어진 초승달이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냥 맨 몸으로 갈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방법이 있나?”
“그게….”
탐험가들이 우물쭈물 서로의 눈치를 봤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모를까.
각 길드들의 메인 탐험가도 아니고. 당장 공략법을 내놓는 건 그들 수준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바로 그때.
“거 참 빠르기도 하네.”
마이어의 뒤에서 가장 듣기 싫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