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0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10화 –
에반로아르 자작가에 들어서자마자 칼을 불렀다.
“할아범!”
칼은 대기 중이었는지 후다닥 달려 나왔다.
“실리아 님! 흑흑. 실리아 님께서 이렇게 다른 귀족저에 방문을 하시다니……. 이 늙은이 이제 이 생에 미련이 없습니다.”
그 손에 들고 있는 붕어즙이나 내려놓고 그런 소리를 하지 그래?
쪽쪽 빨아 텅 빈 투명한 용기를 수줍게 손에 든 채로, 칼이 감동에 젖은 얼굴을 했다.
저 붕어즙은 악시온 때문에 살이 쪽쪽 빠져가는 그를 보고 내가 직접 재료를 사서 만들어 준 것이었다.
보약의 덕을 톡톡히 본 칼은 그때부터 눈을 빛내며 붕어즙을 스스로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 저택에 한가득 쌓여 있다.
나는 상큼한 얼굴로 고개를 휙휙 저었다.
“무슨 소리야. 갈 땐 가더라도 악시온의 손주 뒷바라지까지는 하고 가야지. 할아범.”
“어쩜 그런 극악무도한 소리를 하십니까.”
칼이 정색을 하고 내 말을 받았다.
나는 나름 기분이 좋은 상태였으므로, 그의 정색을 사뿐히 무시하고 헤헤 웃으며 그의 주변을 알짱댔다.
“그건 그렇고, 칼. 내가 베어 말려 놓은 벼들 그대로 창고에 있지?”
칼이 한숨을 쉬었다.
“예, 그대로 있지요. 어디 써먹을 데도 없고 말입니다.”
“후후. 이제 더 이상 바느질하지 않아도 돼, 칼. 우리 재정에 여유가 생길 것 같거든.”
음흉하게 웃는 나를 보며 칼이 한 걸음 물러섰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불현듯 휙 다가와 내 손을 두 손으로 꼬옥 잡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지만, 그래도 정도를 걸어야 죽기 전에 후회하지 않는 법입니다. 비록 농사에 찌들었다 한들, 악마에게 영혼을 파시면 안 됩니다. 실리아 님. 아시겠지요?”
칼이 알 수 없는 말을 주절주절 덧붙였다.
“비록 예의범절 따위 밥 말아 먹고, 인간답지 않은 삶을 사시는 실리아 님이시지만! 그래도 저는 실리아 님을 그렇게 키우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에 살짝 눈물마저 맺혀 있었다.
……싸우자는 건가?
나는 그가 내 손을 마주 잡으며 그사이에 찌그러진 붕어즙을 차게 식은 눈으로 응시했다.
붕어즙 입구에서 흘러내린 즙으로 인해 손바닥이 끈적끈적했다.
그 즙을 보고 있자니 문득 다자르가 지껄였던 친구 금붕어가 떠올랐다.
붕어즙을 한 손으로 꽉 움켜쥐어 우그러뜨렸다.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마. 아주 공정한 방법으로 벌 생각이니까. 악시온의 교육 문제도 해결될 거 같아!”
“그, 그게 정말입니까?”
“응. 그 일환으로 말이지. 내일 다시 시아스터 공저로 갈 예정이거든. 오늘 내로 탈곡이랑 도정까지 다 해야 하니까 나 좀 도와줘.”
“……예?”
칼이 눈을 끔벅였다.
몇십 분 후, 칼의 끔벅이던 눈은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실리아니이이임. 너무 힘듭니다아아.”
“조금만 참아!”
으윽. 마땅한 도구가 없으니 탈곡이 이렇게 힘들구나.
나는 칼과 함께 쌀알이 붙어 있는 이삭을 들고 장갑을 낀 손으로 쭉쭉 훑어 내는 중이었다.
하다못해 벼훑이 같은 도구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이곳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전생에 할머니가 쌀농사를 지었던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수확 철엔 일손이 부족하다며 걸핏하면 불려 간 덕분에 어쩌다 보니 쌀농사에 도가 텄다.
그땐 백수였던 때라 그대로 농사나 지을까 고민하기도 했었다.
극구 반대하신 부모님 때문에 기업에 취직하긴 했지만.
“이, 이렇게 많은 양을 다 해야 한다고요?”
“가서 밥 한 그릇만 내어주면 왠지 뭐 없어 보이잖아. 밥통 한 통 정도 되는 양은 보여 줘야지.”
“예에?”
힘들어하는 칼을 열심히 도닥여서, 대충 꽤 많은 양의 쌀알을 얻었다.
커다란 바구니에 모아 담고 영차 일어섰다.
“더 힘든 게 남았다고, 칼. 여기서 무너지면 안 돼! 우리 귀여운 악시온을 생각하라고!”
“아, 악시온니이임…… 흑흑.”
헥헥 대며 땀을 닦는 칼을 끌고 옆 구석으로 왔다.
그곳에는 미리 시종들에게 부탁해 부엌에서 가져온 널따란 나무 그릇이 있었다.
두께도 두껍고 강도도 단단한 것이, 절구 그릇으로 쓰기에는 딱이었다.
마침 밀대로 쓰는, 끝이 오목한 나무 봉이 있기에 그것도 부탁해 뒀다.
절구를 찧는 절굿공이로 쓸 생각이었다.
농사일에 관련되어서는 에너지가 쭉쭉 샘솟는 농덕의 몸으로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서슴없이 달려들었다.
“내가 신호하면 여기다가 그 쌀알들을 넣어 줘. 최대한 많이 찧어서 백미로 만들어야 해.”
“예, 예.”
쿵, 쿵, 쿵.
“어푸풋.”
절구로 쓰는 그릇이 두껍고 단단하긴 하지만, 깊이가 너무 얕았다.
그 탓에 쌀알이 튀어 올라 자꾸 입에 들어왔다. 입에만 들어오면 모르겠는데, 눈에까지 튀어 오르니 눈물이 찔끔 나왔다.
‘원래 샐러드를 만드는 용도로 쓰는 그릇이니까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본격적으로 벼농사를 짓게 되면 그때 여러 기구들을 장만해야 할 듯싶었다.
칼이 지쳐 쓰러질 즈음에야 도정이 모두 완료되었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땀을 닦으며 창고 창문을 내다 보았다.
그사이 날이 모두 저물어 하얀 달이 모습을 내밀고 있었다.
“붕어즙을 먹은 보람이 있지, 칼?”
“…….”
장렬히 창고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운 칼에게선 답이 없었다.
피로만이 남은 몸뚱이였지만, 내일 미친 사돈 녀석을 놀래켜 줄 생각을 하니 뿌듯하기만 했다.
남은 건 이제 내일 갓 지은 쌀밥을 사돈에게 먹이는 것뿐이었다.
* * *
오전에 떨어지기 싫다며 우는 악시온을 힘들게 달래고 시아스터 공저로 출발했다.
다자르는 엘스턴도 없으니 보자마자 본모습으로 날 대했다.
“정말 올 줄은 몰랐는데.”
어제 잠깐 만났던 우아한 시아스터 공작님께선 온데간데없었다.
어제는 베스트에 쓰리 버튼 코트까지 완벽히 갖추어 입은 상태였는데, 오늘은 하얀 셔츠 차림이었다.
그마저도 단추가 두세 개 풀려 있었고, 그 탓에 벌려진 셔츠 틈으로 매끈한 쇄골이 보였다.
정갈하게 빗어 넘겼던 검은 머리카락은 자유롭게 흩날리고 있어, 마치 고삐 풀린 야생마 같았다.
게다가 어깨에는 처음 보는 새도 올려놓고 있었다. 작지만 어쩐지 사나움이 느껴지는 붉은 새였다.
나는 그의 모습에도 아랑곳 않고 코끝을 치켜세웠다.
“그럼 제가 도망이라도 갈 줄 알았나 보죠?”
다자르는 답 없이 픽 웃었다.
“그래서 식량은 가져왔나?”
“당연하죠. 우선 부엌으로 안내 좀요.”
“부엌? 웬 부엌?”
“그야, 밥을 지어야 하니까요.”
부엌에 가야 밥을 지을 거 아니니.
내 불퉁한 눈을 본 다자르가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섰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밥을 지어?”
“네. 궁금한 건 나중에 한꺼번에 물으시고요. 일단 먹어 보고 말하세요.”
그러자 다자르가 뒤에 서 있던 시종에게 손짓했다. 이전에 나와 엘스턴을 응접실로 안내했던 시종이었다.
“안내해.”
“네. 각하.”
나는 안내받은 부엌에서 시종들의 도움을 통해 쌀을 짓기 적절한 냄비를 얻었다.
그리고 정성 들여 쌀을 씻고 밥을 짓기 시작했다.
냄비와 물, 그리고 불만 있으면 밥 짓는 건 문제 없지.
이 한국인에게 있어선 말이야. 훗.
귀족가의 여식이 팔을 걷어붙이고 시종들이나 쓰는 부엌에서 손에 물을 묻히고 요리를 하니, 다들 신기해하는 얼굴이었다.
신기해하라지 뭐.
이곳에서 이미지를 신경 쓸 이유도 없었기에 난 코를 훔치며 열심히 밥을 지었다.
적당히 시간이 지나자 커다란 냄비에서 고소하면서도 언뜻 단 향이 나기 시작했다.
밥이 되어 가는 향이다.
“저게 무슨 냄새지?”
“무슨 냄새인지는 몰라도 입맛이 도는걸?”
“그러게. 뭔가 맛있는 냄새야!”
시종들이 속닥댔다.
그러고는 밥이 완성되어 주걱으로 밥을 뒤적이자 참지 못하고 근처를 어슬렁댔다.
난 주걱에 묻은 밥을 몇 톨 집어 입 안에 넣고 굴렸다.
음. 이 정도면 딱 괜찮은 것 같아.
‘좀 아쉽긴 하지만.’
우리가 어떤 민족이던가.
치느님이라고 부르짖는 치킨과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먹어야 하는 삼겹살.
두 음식이 어느 날 원자재 값 상승을 이유로 가격이 천 원 오르는 것은 ‘아, 그런 뜻깊은 사정이.’ 하며 이해해 줄 수 있지만.
공깃밥이 천 원이 아닌 이천 원이 되는 것은 눈 뜨고 보지 못하는 민족이 아니던가.
예시가 좀 어긋나긴 했지만, 어쨌든 쌀의 민족이란 뜻이었다.
그러니 내 입은 당연히 쌀에 한해서는 고급 중의 고급.
오랜 기간 방치해 둔 벼와 급히 탈곡, 도정의 과정을 거친 쌀알, 그리고 낯선 냄비로 만든 밥의 수준이 최상급일 수는 없었다.
‘맛은 대충 괜찮은데, 찰기나 향이 좀 아쉽네.’
하지만 나쁜 정도는 아니다.
나는 쌀을 주걱으로 팍팍 뒤집어서 냄비째로 들고 다자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집무실로 보이는 방에 있었다.
“……그건 뭐지?”
“뭐긴요. 어제 말한 그 식량이죠.”
“오호.”
마호가니 책상에서 삐딱한 자세로 서류를 뒤적이고 있던 그가 벌떡 일어섰다. 그사이 날아간 건지, 그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붉은 새는 없었다. 새가 어디로 간 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와 내 사이가 그런 질문을 편히 할 정도는 아니었으므로 그만두었다.
나는 그가 향하는, 한편에 마련된 테이블로 가서 냄비를 쿠웅 내려놓았다.
그가 거대한 냄비를 힐끗 보며 중얼댔다.
“역시. 저번에 날 밀치던 힘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칭찬 고맙고요.”
나는 시종에게 부탁해 함께 가져온 밥그릇에 직접 깎아 만든 주걱으로 밥을 휙휙 펐다.
그리고 스푼과 함께 그에게 내밀었다.
“먹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