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12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112화 –
세드릭의 손등에 힘줄이 서는 모습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어떤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실리아. 아카데미에 너에 대한 소문을 퍼뜨린 건…… 네가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나와만 친구가 되었으면 해서야. 그러니까 날 버리지 마. 응?’
‘왜? 세드릭. 넌 네 친구가 불행했으면 좋겠어?’
‘……그래야 네가 날 떠나지 않을 거잖아. 그리고 그래야만, 가까이서 그가 나타난 걸 알 수 있어.’
‘……미친놈. 뭐라는 거야?’
아카데미 교복을 입고 있는 걸로 봐서 분명 과거 그와 함께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던 중일 것이다.
퍼뜩 스쳐 지나간 장면과 함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껏 실리아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모두 세드릭이 퍼뜨려 왔다는 것과, 아카데미에서 그 일을 알게 된 실리아가 세드릭에게 절교를 선언한 것.
그 이후부터 그를 멀리한 채로, 저택에 틀어박혀 농덕의 길을 걸은 듯했다.
그리고 그때 세드릭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이미 실리아가 루벤의 안내자…… 곧, 루벤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대체 어떻게……?’
자연스레 의문이 떠올랐지만, 지금 이렇게 태평하게 과거나 회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목덜미에 느껴지는 날카로운 감촉에 순간 퍼뜩 정신을 차렸다. 뭐 하고 있는 거야, 나.
두 손에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주었다. 숨겨져 있던 근육이 무쇠 팔뚝 위로 불끈 솟았다. 그리고 세드릭의 손을 가뿐히 밀쳐 냈다.
탁!
챙그랑!
세드릭의 손목을 쳐 내며 날아간 단도가 바닥을 굴렀다.
“어, 어떻게 조종에 걸리지 않은 거지……?”
세드릭이 황망한 목소리로 비틀댔다. 나는 그를 휙 밀쳐 아예 내게서 떨어뜨려 놓았다.
힐끗 그림자를 보았지만 모로카닐은 여전히 잠잠했다.
‘반드시 날 지켜 주겠다더니.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비장하게 말하던 모로카닐을 생각하면 뭔가 사정이 생긴 듯했지만. 아무도 날 구하러 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알아서 살아남는 수밖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세드릭을 노려보았다.
잠시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있던 그가 불현듯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갑자기 외쳤다.
“이 여자를 붙잡아!”
그 목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광장에 메아리가 울릴 정도였다. 지금 세드릭이 말한 ‘이 여자’가 누구인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를 에워싼 채 무릎 꿇고 있던 이들이 좀비처럼 비틀대며 일어나기 시작했으니까.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야……?’
아무리 내가 성인 남성을 거뜬히 날려 버릴 만큼 강력한 무쇠 팔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쪽수에는 밀릴 수밖에 없다고!
“실리아. 이리 와요. 얌전히 제게 잡히도록 해요.”
그때 마치 뱀이 먹이를 휘감듯이 팔 사이로 스르륵 얇은 손가락이 얽혀 왔다. 미야의 손이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좀 어렵겠네요. 미야.”
작게 중얼대며 재빨리 그녀의 손을 빼냈다. 그리고 무작정 출구가 있던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게 다가오던 모두가 일제히따라 달려오기 시작했고.
“으윽.”
내 몸의 나름 초월적인 힘 덕분에 어찌어찌 그들을 피해 달아나고는 있지만, 이대로라면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대체…… 언제…….”
대체 언제 나타날 건데!
속으로 버럭 외치며 온몸으로 나를 막으려 달려드는 남자를 밟고 뛰어올랐다. 그런 날 잡기 위해 다섯 명의 장정이 뒤따라 뛰었다.
으아아. 이대로는 잡히겠어!
한 번에 다섯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제길. 이 멍멍이 자식! 대체 어디 있는 거냐고오!!”
발목을 붙잡은 남자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추락하면서 비명을 지르듯 버럭 외쳤다. 호위로 모로카닐이 따라온다고 했지만 지금 생각나는 건 이상하게도 다자르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내 머리 위에서 쩌저적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나더니, 불쑥 팔 하나가 나타났다. 잔뜩 숨이 찬 목소리도 함께.
“하아, 하아…… 미안하다. 늦었다. 그, 괜찮냐?”
“다, 다자르!”
이 사람 목소리가 이렇게 달콤했던가?
발목이 잡혀 아래로 끌려가던 몸이 덜컥 멈췄다. 다자르의 손이 내 몸에 닿은 직후였다. 신력으로 무슨 수를 쓴 듯했다.
“네가 말한 안개도 그렇지만, 이 공간 전체에 결계가 깔려 있어서. 뚫고 들어오는 데에 시간이 걸렸어. 아마 모로카닐 녀석도 이 공간에 들어온 뒤부터는 제대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거야. 이 결계는 정신을 조작하거든.”
“어…… 그, 그래요?”
공간 전체에 결계가 걸려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니, 그런데 결계? 결계라니. 그건 초월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내가 두 눈에 물음표를 담는데, 다자르가 이럴 시간이 없다는 듯 공간에서 완전히 몸을 빼냈다. 그러자 그 뒤로 우루루, 검은 남자들이 떨어져 내렸다.
“으아악. 주군! 갑자기 그렇게 나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야, 이 새끼야. 내 위에서 안 비켜?”
“아야야. 누가 네 위에 떨어지고 싶어서 떨어졌냐? 아이 씨. 이거 뭐야? 이 사람들 눈이 빙빙 돌았는데? 이거 마치 우리 대장 레온 눈깔 같지 않아?”
“앗! 누님! 이곳에 계셨군요! 저희가 왔으니 걱정 마시고 한숨 주무십쇼! 끄, 끝나고 맛있는 가래떡 하나만 먹을 수 있다면 제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돠!”
“이 비겁한 자식! 누님, 저도요!”
굳이 누구인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가래떡 홀릭 흑매라는 것을.
“저 녀석이 그 교주 녀석인가?”
그때 언제 소환한 건지 모를, 둥둥 떠 있는 검 위에 올라탄 다자르가 내 발목을 붙잡고 있던 남자의 발을 차 떨어져 나가게 했다. 그러고는 흑매들을 힐끔 보았다. 그들은 바닥에 내려와 제각기 가래떡은 자신의 것이라며 투닥 대고 있었다.
“흑매.”
다자르가 나지막이 그들을 불렀다. 그러자 놀랍게도 흑매들의 장난스럽던 분위기가 급변했다. 그들이 일제히 다자르를 향해 부복하며 답했다.
“네, 주군.”
다자르는 그들의 이러한 변화가 당연하다는 듯 무심한 얼굴로 명했다.
“저 교주는 생포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재우도록.”
“존명!”
나지막한 명령에 흑매가 오른손을 제 심장 쪽에 척 가져다 대며 답했다. 그러고는 마치 미리 자신의 구역을 정한 것처럼 동시에 흩어졌다. 그 모습이 마치 쏜살같이 날아가는 검은 독수리처럼 보였다.
‘우와…… 이건 좀 색다른데.’
항상 가래떡에 미쳐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만 마주해 왔는데. 아니. 흑매는 원래 만났을 때부터 제정신이 아니었지. 아무튼 이런 모습은 ‘균열의 날’ 이후 처음으로 보는 것이었다.
다자르가 명을 내리는 건 더더욱.
“그럼 나는 일단 이 녀석을 깨워야겠어.”
“네?”
다자르가 성큼성큼 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구해 줘서 고맙긴 한데. 갑자기 왜 이렇게 가까이 다가와?
그의 체 향이 훅 풍길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다자르가 불현듯 발을 들어 쿵! 바닥을 찍었다.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뭘 하는 건가 싶었지만, 이내 이어진 모로카닐의 앓는 소리에 깨달았다.
“으윽…….”
다자르는 내 그림자, 곧 그림자에 숨어 있던 모로카닐을 밟은 것이라는 걸.
“잘 잤냐?”
“대체…… 이게 무슨…….”
모로카닐이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대며, 스르륵 그림자에서 분리되었다. 두 번 봐도 신기한 모습이다. 다자르가 밟은 곳이 이마였는지, 그는 이마를 부여잡고 있었다.
“설명은 우선 나중에 하고. 우선 이곳을 모두 막는 게 좋겠어. 여기에 있는 녀석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다자르는 모로카닐의 엉덩이를 쾅 걷어차 쫓아내고는 내게 한 걸음 다가왔다. 아니, 그렇게 자꾸 다가오면 코가 부딪힐 것 같은데 말이죠.
“뭐, 뭐예요?”
“뭐긴. 손잡자는 거지.”
“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보니, 언제 내밀었는지 모를 다자르의 손이 날 향해 내밀어져 있었다. 곧고 기다란 손가락은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예뻤다.
“저 녀석은 지금 네 호위를 할 상태가 아닐 거야. 우리 손 자주 잡았잖아? 그런 거라고 생각해.”
“…….”
지금 이곳에서도 ‘그녀’에 대한 기억을 위해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는 건가? 아님, 혹시 이제야 몸이 떨리기 시작한 나를 달래려는 걸까.
“빨리, 손 이리 줘.”
다자르가 그렇게 말하며 손을 살짝 흔들었다. 나는 그걸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느릿느릿 손을 뻗었다. 최근 자주 잡던 것인데,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막 그의 손을 잡으려던 찰나였다.
“주군! 그쪽으로 교주가……!”
“으아아아-!”
동물이 울부짖는 듯한 괴음과 함께, 레온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섬뜩한 소리가 이어졌다.
푸욱!
“쿨럭…….”
나는 내 옷자락에 묻은 붉은 액체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