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45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45화 –
바닐라의 허리춤을 꼭 끌어안는 듯한 자세로 두 발이 묶여 있는 인형은, 지금까지 바닐라를 만날 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엘스턴이 분명 바닐라는 인형을 안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건 또 아니었던 걸까?
나는 호기심에 슬쩍 바닐라를 보며 물었다.
“바닐라 양. 이 인형은 이름이 뭐예요?”
“어…… 앗!”
바닐라가 제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인형을 바라보더니, 깜짝 놀라며 얼른 두 손으로 인형을 가리려 했다.
갑자기 왜 그러나 했는데. 바닐라가 내뱉은 말에 금방 의문이 풀렸다.
“내 멍멍이! 멍멍이 자꾸 보면 닳는다고 햇더! 보지 마!”
“그, 그래요?”
“우웅. 소중한 건 숨겨 노코 몰래몰래 바야 한다구 햇서. 안 그럼 나쁜 사람에게 뺏기고 만대!”
“나쁜 사람에게 뺏긴다고요?”
누가 그런 말을 한 걸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이라는 듯 바닐라는 포크레인도 내려놓고 인형을 얼른 제 등 뒤로 숨겼다.
“우웅. 다자르가 그래서 그 사람을 잃어대써.”
“……?”
생뚱맞게 튀어나온 다자르의 이름에 나는 눈을 끔벅였다. 그 사람? 그 사람이 누구지?
“그 사람이 누군데요?”
“……우움.”
슬쩍 물었지만, 바닐라는 이마만 좁힐 뿐 무어라 더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그의 이야기를 하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대신 나는 일부러 고개를 돌려 인형을 모른 척하며 말했다.
“그랬군요. 그럼 보지 않을게요. 대신 계속 이거 가지고 놀까요?”
“웅!”
내 노력이 통했는지, 바닐라는 안심한 얼굴로 포크레인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잃었다고 하는 걸로 봐서 가볍게 접근할 만한 주제는 아닌 것 같다.
나는 바닐라의 말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아이들과 놀아 주는 데 집중했다.
“우아!”
“구래. 네가 거기 잡고. 우웅, 좋아! 자 간다!”
한참을 놀던 바닐라는 돌아갈 시간이 되자 아쉬운 기색으로 일어났다. 곧 점심을 먹을 시간이었다.
그녀를 데리러 나온 시종을 보며 바닐라가 발로 바닥을 문질렀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바닐라에게 싱긋 웃어 주면서 바닥에 얌전히 놓여 있는 포크레인을 가리켰다.
“내일 이 시간에 또 나올래요? 같이 놀아요, 우리.”
“조…… 쪼아!”
바닐라는 한없이 기쁜 얼굴로 밝게 웃으며 시종을 따라 저택으로 돌아갔다.
바닐라와 매일 오전에 놀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우리는 약속한 시간이 되면 모래가 쌓여 있는 공터에 모여서 모래 놀이를 하고 놀았다.
“헤헤! 실리아! 시온! 이거 바!”
“우와아. 바닐라. 정말 잘 만들었네요. 이거, 혹시 멍멍이예요?”
“웅!”
바닐라는 손재주가 좋았다. 그 작은 손으로 멍멍이 얼굴과 제법 비슷하게 흉내 낸 모래 덩이를 보면서 나는 박수를 짝짝 쳤다.
그동안 함께 어울리면서 바닐라가 멍멍이라는 인형에 대한 애착이 크다는 것을 알았고, 그 멍멍이 인형을 선물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어느 날 한창 포크레인으로 모래 쌓기 놀이를 하던 때, 바닐라가 이런 제안을 했다.
“있지, 실리아. 혹시 멍멍이도 데꼬 와도 대? 왜냐며언, 멍멍이가 아침에 못 놀아죠서 섭섭할 거야.”
원래 오전 시간은 멍멍이와 함께 노는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럼요. 당연히 되죠. 악시온도 바닐라의 멍멍이와 놀 수 있다면 기뻐할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밖에 데리고 나오면 우리가 멍멍이를 볼 수밖에 없는데 괜찮겠어요?”
“우…… 우웅! 시온이랑 실리아는 갠차나!”
바닐라는 그다음 날부터 멍멍이 인형을 데리고 나와 함께 놀기 시작했다.
멍멍이 인형은 멍멍이라는 이름에 맞게, 강아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인형이었다. 코끝이라든가 꼬리가 닳아 해진 걸로 봐서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던 것 같지만, 꽤 질이 좋아 보이는 인형이었다.
‘누가 준 걸까?’
혹시 바닐라의 친부모가 준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 묻지는 않았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바닐라가 가끔 나와 악시온을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곤 했던 까닭이다.
정확히는 악시온과 놀아 주고 있는 나를 향해서였다.
그 눈빛을 받다 보니, 바닐라에게도 같이 놀아 줄 부모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
‘다자르가 필요해.’
* * *
“……뭐?”
툭. 다자르의 입에 물려있던 담뱃대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뜨뜨!”
그러면서 담뱃대 안에 들어 있던 불씨라도 떨어진 모양이다. 다자르가 황급히 창틀에서 내려와 두 손을 후후 불었다.
“왜 이렇게 놀라요?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갑자기 넷이서 피크닉을 가자는데. 그럼 안 놀라?”
“피크닉을 가는 게 왜 놀라워요?”
“…….”
무어라 답을 하지 못한 다자르가 바닥에 떨어진 담뱃대를 들어 창틀에 올리고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러고는 중얼대듯 딴소리를 내뱉었다.
“그 녀석이 싫어할걸.”
“누구요. 설마 바닐라?”
“그래. 그러니까 갈 수 있을 리가 없…….”
“같이 간다고 했는데요? 이번 기회에 바닐라와 좀 친해지고 싶지 않아요?”
다자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난번에는 바닐라와 티격태격 말을 잘 주고받길래 그 재수 없음이 바닐라에게도 유지되는구나 싶었는데. 사실은 바닐라에게 조심스러워하고 있는 걸 보니, 조금 기분이 묘했다.
의도치 않게 다자르의 여린 부분을 발견해 버린 느낌이랄까.
멍한 얼굴의 다자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러다 정들겠다 싶어서 얼른 툭 말했다.
“그러니까 같이 가요. 뒷동산으로. 내일 아침 9시까지 나와요.”
“……!”
그러고는 다자르가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자리를 벗어났다. 저 사람이야, 언제나 한량처럼 시간을 죽이고 있으니 시간은 충분할 것이었다.
“자, 바닐라. 준비됐어요?”
“웅! 시온도 준비대떠?”
“우아!”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피크닉을 가기 위해 약속 장소에 모였다. 바닐라는 잔뜩 흥분한 기색이었다.
바닐라가 두 손을 높이 치켜들며 외쳤다.
“피크니익! 책에서 일거써! 행복해보여써!”
“그래요? 오늘 우리 재밌게 피크닉 다녀와요.”
“웅! 가자아!”
가장 신이 난 바닐라가 앞장서고, 그 뒤를 악시온을 안은 내가 따랐다. 그리고 내 뒤에는…….
“내가 무슨 짐꾼이야?”
툴툴거리며 따르는 다자르가 있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익숙지 않은지, 어색한 얼굴이었다.
괜스레 툴툴대고는 있었지만 이 어색한 상황을 어떻게든 넘어가기 위한 방어 행동처럼 보였다.
“짐꾼인 거 이제 알았어요? 우리 셋이 어떻게 그걸 다 들고 가요. 당연히 피크닉에 짐꾼 한 명은 필요하죠.”
“흑매 녀석들도 있잖아. 너네 그 집사도 있고.”
“어머. 흑매라뇨. 그런 쓰레기들을 어떻게 아이들 앞에 선보일 수 있어요. 게다가, 칼은 노인이라구요. 노인 공경 몰라요?”
“……말을 말자.”
티격태격하며 오르다 보니, 금방 뒷동산의 정상에 도착했다. 사실 시아스터가의 뒷동산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근처 산에 비하면 손톱 만 했지만, 아이들을 위한 피크닉으로는 제격이었다.
“우아아아아! 저기 봐, 실리아! 저기에 호수가 보여!”
“맞아요. 호수가 보이네요. 예쁘다, 그쵸?”
“웅! 시오온. 호수가 네 눈처럼 반짝거려. 예뿌다.”
크으. 저런 시적인 표현이라니. 어린아이의 어휘는 때로 놀랍단 말이야.
나는 바닐라의 표현법에 감탄하다가, 두 아이가 손을 잡고 나란히 앉아 있는 걸 보며 또 감탄했다.
이대로만 잘 진행되면 두 아이의 미래는 걱정 없겠는걸. 후후…….
“왜 그렇게 음흉하게 웃지?”
“……제가 언제요?”
“방금. 그렇게 웃었잖아. 넌 가끔 그럴 때가 있더라. 특히 혼자 무슨 생각을 할 때. 그때마다 거울을 보여 주고 싶다니까.”
“…….”
저 자식이.
“왔으면 얼른 바닐라 옆에 앉아요. 사진 찍게.”
“……사진?”
“네. 제가 오늘을 위해서 엘스턴에게 특별히 빌려온 마법 물품이 있다고요.”
나는 피크닉 바구니에서 샌드위치와 우유가 든 유리병, 냅킨을 꺼냈다. 그 후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던 대망의 가래떡과 꿀을 꺼냈다.
“바닐라. 혹시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한번 먹어 볼래요?”
“우웅?”
악시온의 손을 잡은 채 호수를 바라보고 있던 바닐라가 고개를 돌렸다. 가장 먼저 다자르를 보고 눈을 끔벅이더니, 내 손에 들린 가래떡을 보았다.
“자, 이걸 여기 꿀에 찍어서 먹으면 아주 맛있어요. 한번 먹어 봐요.”
“우와아.”
바닐라가 가래떡을 두 손으로 붙잡고 혀를 내밀어 할짝, 꿀을 맛보고는 천천히 용기를 내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바닐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마이떠!”
“그래요? 다행이다. 그럼 우리 이렇게 다 같이 모여 볼까요?”
악시온을 내 앞에 두고,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다자르는 머뭇머뭇하더니, 떡에 정신이 팔려 있는 바닐라의 옆에 슬쩍 앉았다.
나는 그사이 재빨리 피크닉 바구니에 함께 넣어 두었던 마법 물품을 꺼냈다. 엘스턴이 눈물을 훌쩍이며 내어준 것이었다.
아주 소중한 것이라고 하면서.
“자, 다들 저길 봐요!”
“우아!”
“……흥.”
버튼을 누르자 찰칵, 마법이 작동되는 소리가 나면서 사진이 찍혔다.
“사진은 나중에 엘스턴이 현상해서 준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최대한 많이 찍읍시다!”
그래야 뽕을 뽑지!
사진을 최대한 많이 찍어서, 바닐라와 다자르에게 줄 생각이었다. 자고로 남는 건 사진! 그리고 그건 곧 추억이다.
추억을 많이 남기다 보면 사이가 깊어지는 법이지.
물론 바닐라와 악시온의 사진도 많이 찍고.
“……뭐, 나쁘지 않네.”
그때 바닐라가 헤헤 웃는 걸 지켜보던 다자르가 툭 말했다.
피크닉에 기뻤던 모양인지, 바닐라는 다자르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제법 그에게 잘 다가갔다. 동산을 올라갈 때는 그의 손을 붙잡기도 했으니까.
게다가 방금 사진을 찍을 때에는 그의 무릎에 기대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잠깐 시간 내어 피크닉을 왔을 뿐인데, 둘의 분위기는 이전의 그 티격태격하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조금은 부녀지간으로 보이는 느낌이랄까.
왠지 흐뭇했다.
* * *
……그렇게 생각했던 게 바로 오늘이었는데 말이다.
“흐어어엉! 실리아! 흐끕……. 으아앙!”
바닐라가 왜 내 앞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