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54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54화 –
내가 나의 존재 의미에 관한 심각한 고찰에 빠져 있는 사이, 렛시가 툭 말했다.
“그대들과 함께 나 또한, 이 대륙을 지키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그건 잘 알고 있겠지.”
“……당연하죠.”
“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던 다자르와 모로카닐이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렛시가 살짝 내 눈치를 보았다.
그녀가 황제인 걸 알릴 생각은 없지만, 우선 지금 이 자리에 날 불러들였으니 이런 자리를 주선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별다른 반응이 없는 날 보고 안심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대륙을 지키는 이들은 우리뿐만이 아니지.”
“뭐, 그렇긴 하죠.”
다자르가 살짝 입꼬리를 비틀며 답했다.
렛시가 지칭한 다른 이들에 대한 감정이 썩 좋지 않은 듯했다.
자연스레 신전에 대한 평이 좋지 않았던 그날의 다자르가 떠올랐다.
‘신전을 말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렛시가 보자기를 살짝 들춰 차를 한 모금 입에 댔다.
보자기 아래로 여성치고는 강인한 턱선이 드러났다가 이내 사라졌다. 언뜻 드러난 입술은 붉디붉어 어딘가 중성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고 보니 황제의 초상화…… 도 한 번 본 적이 없네.’
워낙 속세와는 거리를 두고 살아온 실리아 덕분에, 렛시의 본 얼굴을 모르고 있었다.
‘저 보자기를 꽁꽁 두르고 있는 보람이 없네. 미안하게도.’
노란 보자기로 둘러싸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가리면 뭐 하나. 대놓고 보여도 나는 얼굴을 알아보지도 못할 텐데.
혼자 머리를 긁적이다가, 슬쩍 심각해진 분위기에 살그머니 손을 내렸다.
“두 사람에게는 각자 다른 일을 맡겼었다. 모로카닐은 현재 ‘루벤의 추종자’들을 쫓고 있지.”
“음. 뭐,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습니다.”
다자르가 제 앞에 놓인 찻잔의 테두리를 검지로 빙글 쓸었다. 그는 모로카닐의 업무를 듣고도 별 감흥이 없는 얼굴이었다.
“저 녀석의 능력을 생각하면 그럴 만하죠.”
“그래. 그리고 최근 그들의 꼬리를 잡았다.”
“오호.”
모로카닐의 능력이라.
그게 뭘까, 하고 생각하다가 긴밀해지는 세 쌍의 눈동자에 절로 숨을 멈췄다.
“최근 수도의 슬럼가에서 이상한 종교를 포교하는 일들이 늘었다지.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짓이다.”
“…….”
다자르가 눈살을 찌푸렸다.
“수도의 슬럼가요?”
“그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자르의 눈이 살짝 내게 닿았다 떨어졌다.
바로 그때. 모로카닐이 입을 열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타깃에게 표식을 묻히고 그 타깃을 끊임없이 쫓아 종교에 들도록 한다더군요. 타깃은 대부분 여성이었는데, 그 여인들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통점?”
“모두 밝은색의 백금발이었죠. 흔치 않은 색인 건 알고 계시지요?”
“……밝은색의 백금발?”
그러자 잠시 떨어졌던 황금빛 눈동자가 다시 휙, 내게 꽂혔다.
“여기 에반로아르 영애도 비슷한 색을 지니고 계시죠. 그래서, 슬럼가에서 한번 표적이 된 적이 있습니다.”
“뭐?”
다자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눈썹을 까딱였다.
그의 눈이 살짝 일렁였다.
“그걸 왜 말 안 했지?”
지금 나한테 묻는 건가?
나는 모로카닐과 다자르를 번갈아 보다가, 떨떠름하게 입술을 뗐다.
“그야, 별로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사실 타이밍을 놓친 것도 있었다.
“……너, 정말.”
“왜요. 뭐요.”
“하. 아니다. 아니야.”
다자르가 무어라 잔소리를 할 것처럼 드릉드릉 시동을 걸다가, 이내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러고는 모로카닐에게 물었다.
“그 녀석들이 왜 백금발의 여인을 표적으로 하는지는 모르나?”
“그건 아직…….”
“놈들이 꼬리 자르는 걸 참 잘하더군. 그 정보는 얻지 못했지만, 다른 정보는 따로 얻었다.”
렛시가 품 안에서 서류를 꺼냈다.
동그랗게 말린 서류는 그녀가 툭 밀어 펼치자, 마치 한 번도 말린 적 없다는 듯 자연스럽게 일자로 펴졌다.
어떤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 것처럼.
“그놈들이 이번에 ‘안식의 장’에서 뭔가 일을 치를 계획인 것 같더군.”
“……안식의 장에서 말입니까?”
“그래. 겁도 없지.”
안식의 장. ‘안식의 기간’이 시작되기 전, 황제가 귀족들을 모아 사교의 장을 여는 날.
단순히 무도회를 즐기는 날이라기보다는, 시 낭송과 더불어 학술적 지식을 뽐내고, 각 가문의 연간 주요 소식들을 전하는 날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망년회 같은……?’
망년회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매우 컸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때 ‘루벤의 추종자’가 뭔가 일을 저지를 예정이라는 것 같았다.
렛시와 모로카닐, 다자르는 한동안 머리를 모아 그날에 대해 계획을 짰다.
찻잔의 차가 모두 식을 즘, 그들의 계획은 끝이 났다.
“아! 이런.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군. 원래 어서 논의를 끝내고 실리아와 놀 생각이었는데.”
품에서 시계를 꺼내 확인한 렛시가 화들짝 놀라며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어서 다자르가 맡은 일을 공유하고 이 이야기는 끝내도록 하지. 오늘 실리아가 우리와 함께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렛시가 이제껏 기다린 날 보며 미안하다는 듯 흠흠,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모로카닐의 눈에 궁금한 빛이 서렸다.
다자르와 내가 새로운 식량을 개발하는 걸, 초월자들은 아무래도 모르고 있는 듯했다.
‘그때 신전에서 마주한 에이슈와 코라도 모르는 것 같았어. 내 소개를 했는데도 별 반응이 없었으니까.’
그럼 재상인 세드릭과 황제 렛시, 다자르만 알고 있는 건가.
‘아. 엘스턴도 알고 있지.’
그럼 성녀도 알고 있겠군.
초월자들은 생각보다 교류가 적고 서로의 일을 공유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모로카닐과 다자르가 이렇게 사이가 나쁜 걸 보면 조금 이해가 가긴 한다.
“실리아는 지금 다자르와 함께 제국민들이 먹을 수 있는 새로운 식량을 개발하고 있다.”
“……!”
모로카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놀란 낯으로 나를 한 번, 렛시를 한 번 보더니 천천히 턱을 쓸었다.
“대단하군요. 다른 귀족들이 이 소식을 알면 모두 놀랄 겁니다.”
놀라긴 하겠지. 그 농덕 영애가 드디어 능력을 발휘한다고.
그러나 썩 반가운 반응은 아니었다.
“물론, 기밀이겠지만요.”
“모로카닐, 그대도 알다시피 지금 미아르의 성장이 멈추는 현상이 계속해서 퍼지고 있다. 실리아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내가 친구인 게 자랑스럽다는 듯 렛시가 살짝 어깨를 펴며 말했다.
덕분에 뭐 한 거 없는 나는 조금 민망해졌다.
“새로운 식량이라. 궁금하군요. 어떤 건지 저도 한번 보러 가도 됩니까?”
모로카닐이 동그래진 눈으로 얼른 물어왔다.
“어, 그…….”
그 말에 허락하기 위해 입을 열던 순간이었다.
“어딜 와? 안 돼.”
“럼요…….”
다자르가 내 말을 가로채고 나와 모로카닐 사이를 막아 내듯 슬며시 어깨를 들이밀었다.
턱을 괸 채 들이민 어깨 덕에 모로카닐이 반만 보였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내 저택에 지금 같이 있거든. 네 방문은 허락하지 못하겠으니, 올 생각은 하지도 마.”
“……시아스터 공작가에 함께 있다고요?”
모로카닐이 살짝 눈을 가늘게 뜬 채 물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내게 묻는 것 같았다.
나는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왜 변명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그게 식량 개발에는 효과적이어서요.”
“…….”
모로카닐이 복잡한 얼굴로 무어라 말하려다가,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그가 나설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러면서 자신도 왜 자신이 복잡한 얼굴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살짝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 모습이 퍽 천사 같았다.
‘……내 옆은 악마 같고.’
외양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퍽 반대되는 둘과의 두 번째 만남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럼 놀아 볼까요? 렛시?”
“좋다!”
대신 렛시와 나의 수다 삼매경이 시작되었다.
어제 하엘 경이 정원에서 개구리를 보고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생각했다.
‘곧 열릴 안식의 장에서 루벤의 추종자들이 일을 벌인다는 거지? 그곳에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건가?’
* * *
“데려다줘서 고맙다. 모로카닐.”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폐하.”
스칼렛은 제 앞에 있는 개구멍을 보며 주변을 살폈다. 모로카닐의 능력 덕에 아무도 그녀를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해야 마음이 편했다.
“부디 조심히 들어가시기를.”
“알았다. 하엘 경이 제발 눈치채지 말았어야 할 텐데.”
“…….”
호위 기사를 떼어 놓고 잘도 돌아다니는 황제를, 모로카닐은 조금 난감한 눈으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녀로서는 어쩔 수 없을 것이었다.
아무리 호위 기사라고 한들, 믿을 수 없을 테니까.
“아. 그러고 보니, 혹시……. 다자르가 루벤이 나타났다고 이야기하진 않던가?”
“루벤, 말씀입니까?”
갑작스러운 주제에 모로카닐이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그러자 스칼렛이 살짝 눈을 내리깔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능력 중 하나가 루벤을 감지하는 것이라는 건 말 안 해도 잘 알고 있겠지. 루벤의 추종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아직 루벤이 나타나지 않은 게 이상해서 말이야.”
“……루벤의 추종자들이 미리 준비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루벤이 태어나기 전에 그가 활약할 세상을요. 또는, 루벤이 태어나긴 했으나 아직 다자르에게 발견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요. 루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숨길 줄 아니까요.”
“너희들의 전생에서 마주한 루벤처럼 말인가?”
스칼렛의 질문에 모로카닐이 조금 침묵하다가 답했다.
“……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이전 세계에서도 루벤의 발견이 늦었다고 했지. 감지를 할 수 있다고 해도 완벽할 수는 없는데, 내가 너무 기대를 하고 있었나 보군.”
“아닙니다. 시아스터가는 특별하니, 당연한 기대지요.”
스칼렛이 알았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손을 휙 들었다.
“내가 바쁜 사람을 너무 오래 붙잡았구나. 그럼, 잘 가게. 모로카닐.”
“아닙니다.”
그녀가 개구멍을 엉금엉금 기어 지나가는 걸, 모로카닐은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발을 돌렸다. 황제와 이전 세계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더니, 그가 맡겨 둔 예약이 생각난 것이다.
“슬슬 예약 건이 완료되었으려나.”
그가 제 기운을 담아 주문해 둔 돌이 또 완성되었을 즘이다.
모로카닐은 제 저택으로 향하려던 발을 돌려, 수도의 골목길로 향했다.
그가 주문해 둔 돌을 찾기 위해서.
“안녕하세요.”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가게에 들어선 그는, 곧바로 달리듯 튀어나왔다.
“헉, 허억.”
그의 손에는 실리아가 맡겨 놓고 간 돌과 쪽지가 들려 있었다.
모로카닐의 숨이 불안정하게 터져 나오고, 눈동자가 거세게 떨렸다.
“……맙소사.”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환희와 의심, 기쁨. 그리고 두려움이 깃든 목소리는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그녀’를 찾기 위해 준비한 돌이 제 역할을 해냈다.
그가 마른세수를 하며 비틀비틀 걸음을 뗐다.
그가 향하는 곳은, 실리아가 있는 곳.
시아스터 공작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