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55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55화 –
다자르는 제 앞에 앉아 있는 여인을 물끄러미 보았다.
백금발에 동그란 눈, 청초하고 가련한 외모를 지닌 그녀는 외모와는 달리 심성이 굳고…….
‘음.’
속으로 그녀를 수식할 적절한 단어를 찾던 그가 이내 답을 찾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야생마.’
그래, 야생마.
아주 만족스러운 답이었다.
절대 길들여지지 않을 것 같은, 강인하고 거친 야생마.
이제껏 그가 실리아를 보며 느낀 인상이었다.
‘딸랑이 흔들라고. 딸랑이 몰라? 당신이 울렸으니까 책임지고 달래라고, 이 무뢰배야!’
‘다자르, 이 나쁜 놈아!’
제가 제국의 공작인 것도, 전생을 기억하는 초월자인 것도.
그녀에겐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오직 그녀 자신과 그녀의 아들, 악시온이었다.
아니, 요새는 바닐라까지 추가되었나. 지난날 그녀가 바닐라를 위해 한 일들을 떠올리며 다자르는 속으로 생각했다.
‘원치는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군.’
자신이 그녀를 꽤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왜 자꾸 남의 얼굴을 힐끔대요?”
“내가 언제?”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실리아가 다자르의 시선을 눈치채고 불퉁한 얼굴을 했다.
다자르가 무고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하자, 실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보면서 계속 히죽댔잖아요. 속으로 제 욕 했죠.”
“아닌데.”
“맞잖아요.”
“아니라니까?”
다자르는 조금 억울해졌다. 오히려 야생마 같다고 칭찬했는데.
그녀는 제 마음을 몰라 주고 있다.
속으로 든 생각을 그대로 뱉었다간 더 욕을 먹을 다자르였지만, 다행히 그는 제 생각을 뱉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루벤의 추종자’들에게 표적이 될 뻔했다는 건 왜 말 안 했어?”
“그거야, 그때는…… 아니, 그걸 제가 왜 다자르에게 말해야 하는데요?”
당당히 그녀의 변명을 들을 자세를 잡던 다자르가 멈칫했다.
어. 왜 말해야 하더라.
“그야…… 네가 위험해지면 곤란하니까?”
“왜 곤란해요?”
실리아가 뚱한 얼굴로 물었다.
다자르는 잠깐 머리가 굳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그녀가 위험에 처하면 곤란해지는 이유는 두 가지나 있었다.
대외적으로, 그녀가 이 대륙을 구하기 위한 새로운 식량을 개발하고 있어서였고.
외부에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녀가 루벤과 연관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다자르의 머리는 그 어떤 이유도 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그녀가 위험해지면 곤란한 이유는, 그 두 가지 때문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으니까.
“납치라도 당하면 내가 귀찮아지잖아.”
대충 떠오른 대로 둘러대기는 했는데, 썩 만족스럽지 못한 대답이었다.
실리아의 눈썹이 더욱 치솟은 걸 보면 그녀의 기분을 더 나쁘게 한 것 같기도 하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문득 바닐라와 악시온, 그리고 실리아와 함께 넷이 피크닉이라는 걸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뭐지?’
다자르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했다.
그녀가 다치면 매우 곤란하다는 건 알겠는데.
그 이유를 저 자신도 적절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앞서 왜 그때 그 피크닉이 떠올랐는지도.
“뭐, 아무래도 새로운 식량 개발을 맡고 있는 사람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곤란하겠죠.”
뚱한 얼굴로 다자르를 빤히 보던 실리아가, 저 스스로 적당한 답을 찾았는지 그리 말했다.
다자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지…….”
어딘가 여운이 남는 목소리였지만, 실리아는 쯧 혀를 차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감도는 사이, 마차는 빠르게 달려 시아스터 공작가에 도착했다.
“그럼, 전 이만 들어갈게요.”
실리아가 냉큼 마차에서 내리고는, 빠르게 별관 쪽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뒷모습을 다자르가 멀거니 서서 바라보다가, 그 또한 천천히 걸음을 뗐다.
방금 전 마차에서 답을 찾지 못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 기묘한 감각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가 다리를 놀려 도착한 곳은 시아스터 공작가의 정문이었다.
“엇. 대장님께서 여기는 웬일이십니까?”
정문에 쪼그려 앉아 호위를 서고 있던 흑매 하나가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쉬어라.”
“예, 옛!”
다자르의 칼답에 흑매 녀석이 땀을 쪼르륵 흘리고는 어색한 얼굴로 제 자리를 찾아 헤맸다.
“수고하십시오!”
“그래.”
대체 뭘 수고하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자르는 계속해서 걸어서 정문을 지났다. 그리고 한쪽 구석을 바라보며 손짓했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었기에, 아마 흑매 녀석이 보았다면 제 대장이 미쳤나 싶었을 것이다.
“잘 따라오고 있지?”
“…….”
다자르는 당연히 누군가가 제 손짓을 보고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무도 없는데도 말이다.
그가 정문을 벗어나 조금 걷다가 우뚝 멈췄다.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내가 보고 싶어졌어?”
“…….”
언뜻 다정하게 들리는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선 숨기지 못한 노기가 묻어 나왔다.
다자르가 한쪽 입꼬리를 슥 올린 채 뒤돌았다.
“아무리 네 능력이 그림자라고 해도, 내 결계를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다자르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을 바라보며 이죽댔다.
“아. 혹시 전생에 못다 한 것을 결론 짓자고 찾아온 건가?”
“……그런 건 아닙니다.”
놀랍게도,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 얼핏 흔들리더니, 바닥에서부터 무언가가 쑤욱 올라와 형체를 갖췄다.
아까 전 렛시와 함께 헤어졌던 모로카닐이었다.
그가 부복하고 있던 자세를 풀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뭐야? 왜 그렇게 쥐새끼처럼 내 저택에 숨어들어 와? 우리 이번 생에서는 서로 불가침을 약속하지 않았나?”
“…….”
모로카닐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평소 상냥한 미소가 기본으로 깔려 있는 녀석이 표정을 없애니 마치 감정 없는 인형처럼 느껴졌다.
실리아가 본다면 조금 놀랄 만한 모습이었으나, 다자르는 알고 있었다.
이게 이 녀석의 진정한 얼굴이라는 걸 말이다.
“그 약속을 깨려던 건 아닙니다.”
“……그럼? 왜 왔는데? 그것도 나 몰래.”
정확히는 몰래 숨어들려다가 걸린 거였지만.
다자르가 눈썹을 까딱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원래도 짜증 나는 녀석이지만, 지금은 조금 더 짜증이 났다.
답이 한 박자씩 느리고 눈에 초점도 안 맞는 게, 어딘가 넋이 나간 것 같이 보였던 까닭이다.
“그냥, 좀 어쩌다 보니.”
“좀 어쩌다 보니……?”
이건 무슨 바보 같은 대답인가.
“너 모로카닐 아니지? 루벤의 추종자가 보낸 인형이지?”
“아닙니다.”
그가 모로카닐이 분명하다는 건, 특유의 기운으로 다자르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런 멍청한 대답을 하면서 넋 나간 얼굴로 감히 제 영역을 침범할 생각을 했단 말인가.
다자르는 좀처럼 답을 찾을 수 없어 인상을 찡그렸다.
“폐하를 모셔다드리고 문득 걷다 보니, 궁금해져서요.”
그때 모로카닐이 살짝 먼 곳을 바라보며 답했다.
“뭐가?”
“그 새로운 식량이라는 거 말입니다.”
흐응. 딱히 이것도 적절한 대답이 아닌 것 같다.
“폐하께서 이야기하시길, 아주 맛있었다고 해서요. 그냥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
그래, 뭐. 맛있긴 하지.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다자르가 눈을 더 가늘게 뜨는데, 모로카닐이 문득 실리아의 이름을 꺼냈다.
“에반로아르…… 영애께서는 들어가신 겁니까?”
“그 녀석은 왜 찾아?”
“온 김에 얼굴을 뵐까 하고요.”
아까 봤는데?
다자르가 황당한 얼굴을 했다.
이 녀석,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닌가. 아니면 그사이 루벤의 추종자들에게 잡혀서 조종이라도 당하고 있는 건가.
합리적인 의심을 떠올리고 있던 다자르에게서, 모로카닐이 살짝 멀어졌다.
“아닙니다. 생각해 보니 기별도 없이 찾아뵙는 건 무례한 일이군요. 그럼 전 이만.”
“……?”
모로카닐은 그리 말하고는 휙 몸을 돌렸다.
조금 급해 보이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자르는 생각했다.
저 녀석. 어딘가 수상하다고.
그리고 마음 한구석이 매우 불쾌하고, 찝찝하다고.
* * *
이런.
빠른 걸음으로 걷던 모로카닐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를 발견했다는 생각에 너무 흥분했어.’
위험했다.
‘다자르에게 걸릴 뻔하지 않았나.’
다자르에게 실리아가 ‘그녀’라는 걸 걸리면 안 되었다.
그랬다가는 전처럼 빼앗기고 말 것이니까.
‘다행히 그에게는 저주가 걸려 있으니.’
모로카닐, 그가 한참은 앞서 있는 셈이었다.
그는 이 기회를 결코 놓칠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