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56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56화 –
“누님. 제가 요새 기가 허한가 봅니다.”
“……네?”
나는 내 앞에서 갑자기 기를 논하는 레온을 멀뚱히 보았다.
그가 괴롭다는 듯 하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몸을 움츠렸다.
“왜 저를 그렇게 보십니까? 제가 못 미더우신 겁니까!”
“제 눈이 어떤데요.”
“썩은 동태눈 같습니다.”
이걸 그냥…….
“이젠 포효하는 흑곰 같기도 하네요.”
“…….”
다 귀찮다.
지난날 육묘해 둔 모들을 살펴보기 위해 창고에 온 참이었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괴로움을 토로하는 레온은 정말 생뚱맞기 그지없었다.
나는 빨리 자신에게 이유를 물어봐 달라는 듯 몸을 비비 꼬기 시작한 레온을 보며, 무기력하게 물었다.
“그래요. 왜요? 왜 기가 허한 것 같은데요? 요새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조상님이 갑자기 꿈에 나타나서 이제 같이 가자고 그래요?”
“……그, 그런. 그런 무서움 꿈을 꾸는 사람도 있단 말입니까? 저는 아직 멀었군요.”
그리 말하는 레온을 멀거니 보고 있으려니, 이전과 조금 다른 점이 눈에 띈다.
‘음. 다크서클이 좀 많이 내려왔네.’
워낙 온몸이 하얀 탓에, 다크서클이 더욱 부각되어 보인다.
“그럼 조상님 꿈을 꾼 건 아닌 것 같고. 뭔데요?”
그러자 레온이 울상을 지으며 투덜투덜 말했다.
“제가 이 모라고 하는 것들이 귀여워서 말입니다. 매일 누님 몰래 밤마다 슬쩍 와서 노래를 불러 주고 가곤 했단 말이죠?”
“노래요……?”
“네! 무럭무럭 자라려면 일단 잠을 잘 자야 합니다. 그래서 자장가를 불러 주었죠.”
이 X라이를 누군가 좀 말려 주세요.
과거 원작을 읽을 때 그가 내 최애였다는 사실이 나를 심히 괴롭게 했다. 잠시 현타가 온 내가 비틀대며 머리를 부여잡자 레온이 놀란 얼굴로 날 붙잡았다.
“앗! 누님! 조상님 꿈을 꾼 사람이 바로 누님이셨군요!”
……그냥 죽일까?
그럼 저 아무 말이나 내뱉는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내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레온은 척 어딘가를 가리키며 주절댔다.
그의 기다란 검지는 육묘해 둔 모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기, 저 아기들이 제가 노래를 불러 주니 반짝반짝 빛이 나더란 말입니다!”
“……?”
애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헛소리도 작작 해야지.
나는 뚱한 얼굴로 레온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게 말이 돼요? 레온이 헛것을 봤나 보죠.”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제가 아무리 X라이라고 한들, 식물이 스스로 갑자기 빛을 반짝반짝 내는 건 이상한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아하. 놀랍군.
나는 레온의 비상한 상식 수준에 감탄했다. 자기가 또라이인 걸 알고 있었다니. 정말 놀라워. 나는 레온에 대한 평가를 조금 올려 주기로 했다.
내 감탄 어린 눈빛을 봤는지, 레온이 어깨를 살짝 펴면서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제 기가 요새 허한가, 한 겁니다. 누님.”
휴우. 그가 깊게 숨을 내쉬며 제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왠지 잠도 잘 안 오는 것 같고요. 이상한 헛것을 보고요.”
휴우우.
다시 한번 깊게 숨을 내쉰 그가 살짝 헛기침을 하고 진지한 얼굴을 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누님.”
일생일대의 전쟁을 눈앞에 둔 장군을 떠오르게 하는 그런 얼굴이었다.
나도 덩달아 심각해져서 그에게 집중했다.
“네. 뭔데요?”
“생각해 본 건데. 제가 이렇게 기가 허해진 건…….”
그가 주변을 슬쩍 둘러보더니 비밀 이야기를 하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요새 가래떡을 못 먹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다른 녀석들이 오기 전에 어서 제게 가래떡을……!”
순식간에 갓 뽑은 무처럼 변한 내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지 그는 신나서 가래떡을 외쳤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가 저 멀리로 나가떨어졌다.
꾸엑! 새된 비명을 지르면서.
“야, 이 단장 녀석아. 우리 몰래 먼저 이곳으로 와서 누님한테 아양 떠는 걸 지금껏 몰랐을 줄 알아? 우리가 다 지켜봤다고. 엉?”
“맞아. 저 비겁한 단장 자식. 우리를 따돌리고 몰래 가래떡을 혼자 독차지하려고 해?”
“죽어라, 죽어!”
퍽퍽. 퍽퍽퍽.
갑자기 나타난 흑매들이 우르르 몰려와 레온을 밟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해탈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모른 척 자리를 벗어났다.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창고를 나서는 동안, 말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휴. 아예 상대를 말아야지.
“곧 떠날 바닐라나 보러 가야겠다.”
분명 레온이 보았다는 그 반짝반짝 빛도 가래떡을 먹기 위한 거짓 구실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방에 들러 악시온을 안아 들고 얼른 걸음을 옮겼다.
“악시온, 우리 누나한테 인사하러 갈까?”
“우웅?”
처음으로 ‘안식의 장’에 다자르와 참석하기로 한 바닐라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가지 않기로 했으니까.’
여기서 ‘우리’는, 에반로아르의 사람들이다. 나와 악시온, 그리고 칼.
지난번 렛시와의 만남을 통해 ‘루벤의 추종자’가 ‘안식의 장’에 나타난다는 걸 알지 않았나.
악시온이 루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안식의 장’이라니.
‘게다가 나와 유사한 외모의 사람을 자기들 쪽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잖아.’
여러모로 위험하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다자르에게는 이미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였다. 다자르도 흔쾌히 그러라고 했고 말이다.
그런데.
“시러어어어어어! 앙 가면 앙 대-!”
“바닐라…….”
“우아앙-!”
바닐라라는 장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는 바닥에 드러누운 채 사지를 휘저으며 엉엉 우는 바닐라를 아연하게 바라보았다.
“엉니랑 시온이 앙 가면 앙 대-!”
옆에 서 있던 다자르의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한가득 맺혔다. 내 얼굴도 비슷할 것이다.
“얘가 이렇게 떼를 쓰는 건 처음 보는데.”
“그래요……?”
다자르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우우…… 우우우……”
“아, 악시온.”
바닐라가 엉엉 울자 악시온도 덩달아 울상을 짓기 시작했다. 으아아. 안 돼! 울지 마!
“우아…… 우아앙…….”
“우에에에엥-!”
“얘들아, 잠깐, 응? 뚝, 하자. 뚝!”
필사적으로 아이들이 우는 걸 막으려 했지만 이미 시작된 울음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택이 떠나가라 우는 둘을 보며 다자르가 두 손을 살짝 들어 올리는 게 보였다.
패배자의 항복 표시였다.
그의 얼굴이 말하고 있었다.
어떻게 좀 해 봐!
으윽. 나는 혼란의 도가니탕 속에서 급히 마른세수를 하고 바닐라를 번쩍 안아 들었다.
“우엥…… 흐끕!”
갑자기 들어 올려지자 놀란 바닐라가 순간이지만 울음을 멈췄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를 내 품으로 꼭 안으면서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어여쁜 바닐라가 왜 우는 걸까? 이렇게 서럽게 울면 시온이 마음이 아파요.”
“우우, 시온이가……?”
“응. 바닐라가 우니까 시온이도 따라 울잖아.”
“우……. 흐끕.”
그제야 악시온이 울고 있는 걸 안 모양인지, 바닐라가 입술을 꾹 다물고 울음을 참으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발갛게 물든 뺨 위로 눈물 자국이 서럽게 맺혔다. 바닐라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 눈물을 닦으면서 물었다.
“시온이한테 우리 바닐라가 왜 이렇게 슬픈지 이유를 말해 줄 수 있을까?”
“그거언…….”
바닐라가 고개를 숙이고 우물쭈물하다가, 멈칫멈칫 입을 열었다.
“책에서 읽어써. 거기 앙 가면 앙 댄다구우.”
“안 가면 안 된다고? 왜?”
“거기 앙 가면 가족이가 아니야.”
가족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바닐라의 뜻을 헤아리지 못해 눈을 끔벅이는데, 옆에서 자신은 그 뜻을 알았다는 듯 다자르가 끼어들었다.
“귀족들이 안식의 장에 대해 가지고 있는 통념을 말하는 것 같군.”
“통념이요?”
“그래.”
다자르가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헤집으며 답했다.
“안식의 장은 제국의 모든 귀족들이 반의무적으로 참석하는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지. 여기서 반의무적이라는 건, 안식의 장에 대해 귀족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때문이야.”
신기하게도, 농사일에 빠져 바깥일에는 개미 솜털만큼도 관심이 없던 실리아도 안식의 장에는 매년 참석하곤 했다.
매년 가기 싫다는 실리아를 실베스타인이 사정사정하며 데리고 갔던 장면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동생아. 안식의 장마저 참석하지 않으면 네가 우리 에반로아르 자작가에서 결국 퇴출당한 줄 알 거라니까.’
‘그렇게 생각하라지.’
‘실리아아아. 이 오라버니를 이렇게 버리는 거니? 우리 이렇게 가족이 아니게 되는 거야? 응?’
그래도 오빠라고, 실리아는 제법 실베스타인에게 약했던 것 같다. 결국 매년 같이 안식의 장에 참석했던 걸 보면.
그리고 매년 사건 사고를 터트리고 다녔던 건 떠올리지 말도록 하자.
“안식의 장에 대부분의 귀족들이 참석하다 보니, 참석하지 않는 자들은…… 가족에게서 인정받지 못하는, 흠이 있는 자들이라고 여기게 됐지.”
그러면서 왜 나를 힐끔대는 거야? 나는 뚱한 얼굴로 다자르를 바라보았다.
“우, 우린 가족이자나. 같이 가야 대. 실리아랑 시온이랑 다자르랑 나랑, 다 우리 가족이야! 그러치?”
그때 바닐라가 엄청난 소리를 훌쩍이며 내뱉었다.
네? 가족이요? 저 다자르랑, 제가요?
다자르와 내 눈이 동시에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