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94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94화 –
모로카닐은 눈 깜빡할 사이에 벽에 처박혔다.
콰앙-!
“크윽!”
갑자기 제게 가해진 강력한 힘에 모로카닐이 앓는 소리를 냈다. 방금 전의 충격으로 내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입가에서 핏줄기가 주룩 떨어져 내렸다.
“감히…… ‘그녀’를 입에 올려?”
창틀에 멍하니 앉아 있던 한량 같던 남자는 어디 갔는지. 순식간에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는 다자르는 악마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바닥에 쓰러지다시피 한 모로카닐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온 다자르가 낮게 속삭였다.
“내가 이번 생에 널 살려 두고 있는 이유는 오로지 단 하나. ‘그녀’가 전생에 널 아꼈기 때문이야. 네가 죽은 걸 알면 이번 생의 ‘그녀’가 슬퍼할 테니까. 너도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윽.”
“네 녀석이 ‘그녀’를 감히 넘보고 있던 것도 이제껏 용인해 주었는데. 내 관용을 지나치게 믿고 있는 모양이구나. 내 마음이 그리 넓어 보이나?”
으르렁대듯 들려오는 목소리에 모로카닐이 이를 악물었다.
……이 강대한 힘이라니.
환생하며 새로운 육체를 얻어 조금은 그 힘이 약해졌으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강해진 것처럼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왜 가만히 있지? 너 정도라면, 그래도 나와 맞서 볼 수준은 될 텐데.”
같은 초월자에도 분명 급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로카닐이 다자르에게 손쉽게 제압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
다자르가 마치 준비운동을 하듯 손을 툭툭 풀면서 묻는 말에 모로카닐은 침묵했다.
“……뭐야. 재미없군.”
모로카닐이 당장이라도 맞붙어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별다른 반응이 없자 다자르는 김이 샜다. 모로카닐을 압박하고 있던 힘을 풀고 뒤로 돌았다.
“꺼져. 보기도 싫으니까.”
놀랍게도, 모로카닐은 다자르의 말대로 순순히 그에게서 멀어져 방을 벗어났다. 그가 그림자로 변해 스르륵 사라지는 것까지 모두 확인한 다자르가 감았던 황금빛 눈을 번쩍 떴다.
“……이상한데.”
왜 전혀 맞서 오지 않았지?
전생의 모로카닐은 그래도 제게 이를 드러내곤 했는데. 아니,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분명 그러했다.
이렇게 갑자기 이를 숨기고 꼬리를 마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또는 숨기기 위해 피하는 것 같지 않나.
‘이번 생에서 저 녀석이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건 처음이야.’
……그러고 보니 요새 그 이상한 돌을 만드는 것도 그만둔 것 같던데.
찝찝한 의문에 다자르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 * *
“으랏차. 힘이 샘솟는구만.”
창문에서 햇살이 우수수 쏟아졌다.
침대에서 번쩍 눈을 뜬 나는, 기지개를 쭉 폈다. 시아스터가에 돌아온 다음 날, 컨디션이 최상이었다.
한번 아프고 푹 쉬어서일까.
“이, 일어나셨습니까?”
아침을 가지고 들어오던 칼이 나를 보고 흠칫 놀라는 게 보였다. 마치 일주일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한 꼬질이 자작 영애의 더러움에 놀란 듯한 눈치인데, 내 착각이겠지.
“실리아 님께서 아프시다니, 정말 놀랐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 평생 아프신 적이 없었는데. 제게 감기라도 옮은 걸까요?”
묽은 수프를 내 옆 탁자에 올린 칼이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수프를 보자 입맛이 돌아 재빨리 스푼을 쥐고 해치웠다.
“그러게. 나도 좀 놀랐어. 칼은 좀 괜찮아?”
“그러믄요. 저는 하루 만에 회복했답니다. 시아스터 공작님과 바닐라 영애께서 걱정이 많으셨겠습니다. 아, 물론 악시온 님도요.”
……바닐라는 그렇다 쳐도, 다자르가 내 걱정을 한 건 어떻게 알았지?
내가 고개를 갸웃하는데, 칼은 조용히 후후 웃기만 했다. 왠지 수상쩍은 웃음이다.
“그러고 보니, 실리아 님이 떠나 계신 동안 세드릭 님이 계속 제 말동무를 해 주셨습니다. 저택에 매일 와서 엘스턴 님과 논밭을 확인하셨거든요.”
“세드릭이 엘스턴이랑?”
“네. 두 분이 꽤 자주 함께 계시더군요. 세드릭 님이 어렸을 때 실리아 님의 뒤에 숨어 계시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장성하셔서…….”
칼이 그 뒤로 감회가 새롭다느니, 감동적이라느니 하는 뻔한 레퍼토리를 늘어놓는 것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눈을 끔벅였다.
‘아. 세드릭이 재상이니까 마탑주인 엘스턴과도 안면이 있겠네.’
안면을 넘어 꽤 교류가 잦은 편일지도 몰랐다.
“흐음. 그렇구나. 칼, 나는 논밭을 확인하러 갈 테니까 잠시 악시온 좀 봐주고 있을래?”
“일어나신 지 얼마나 되셨다고요. 좀 더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아. 생각해 보니 몸이 아직 안 돌아온 것 같아. 붕어즙 열 개 정도만 먹으면 기운이 날 것 같…….”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나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다 잽싸게 말을 바꾸는 칼의 눈빛은 아주 단호했다. 나는 씩 웃으며 논밭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내가 앓아누워 있는 동안, ‘안식의 기간’은 정말 끝이 보이고 있었다. 아니, 이미 끝났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하얀 눈 밑으로 새싹이 돋아나고 있는 게 보였으니까.
“……저게 뭐람?”
엘스턴이 마법을 설치해 둔 논밭에 도착한 나는,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상천외한 장면에 눈을 비벼야 했다.
“온몸에…… 힘이 없어…….”
“쌀의 신이시여, 부디 저희에게 맛있는 가래떡을 선사해 주시옵고…….”
“어흐흑. 가래떡…… 가래떡…… 가래떡이 부족해!”
흑매로 추정되는 인간들이 비루먹은 말처럼 휘청대며 논밭을 배회하고 있었다.
“…….”
그냥 내 방으로 돌아갈까?
어쩐지 저들의 눈에 보이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데.
나는 논밭으로 향하던 걸음을 천천히 멈추고 슬그머니 뒤로 돌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오. 돌아오셨군요.”
마침 딱 이곳으로 향하던 엘스턴을 마주쳤다.
“실리ㅇ……!”
“쉬잇.”
나는 막 내 이름을 부르려던 엘스턴의 입을 틀어막고 옆구리에 낀 채 후다닥 논밭에서 물러났다.
어쩐지 점점 엘스턴의 얼굴이 노래져 가는 것 같다.
“허억……! 주, 죽을 뻔했습니다. 영애!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저기 논밭에 웬 좀비들이 있어요. 눈에 띄면 귀찮아진다고요.”
“조…… 좀비?”
“걸어 다니는 시체 말이에요.”
“아. ‘저거’요?”
분명 엘스턴이 흑매를 지칭하는 호칭이 며칠 전만 해도 ‘저거’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냥 무시하십시오. 어차피 저들 눈에는 가래떡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던데요. 그나저나 가래떡이 뭔데 저럽니까?”
엘스턴이 소름이 돋는다는 듯 어깨를 떨었다.
그러고 보니 엘스턴은 아직 한 번도 가래떡을 먹어 본 적이 없구나. 나중에 한번 먹여 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툭 물었다.
“지금 쌀의 상태는 어때요?”
“아. 안 그래도 그 얘기를 드리려고 했습니다만. 누가 만든 마법인지는 몰라도 정말 탁월하더군요. 흠흠! 벌써 모두 자란 것 같습니다.”
벌써 자랐다고?
그 소식에 놀란 나는 엘스턴의 자화자찬을 넘어가 주기로 했다.
“정말요?”
“예. 영애께서 노랗게 익은 채로 고개를 숙이면 다 자란 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엘스턴의 말대로였다.
그의 말을 듣고 허겁지겁 좀비들 사이를 해쳐 가 보니, 돔 형식의 흐릿한 마법 벽 안에 벼들이 모두 보기 좋게 익어 있었다.
“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벌써 이렇게 자랐을 줄은 몰랐는데. 그럼 어서 이 소식을 다자르에게 알려야겠는걸.
“고마워요, 엘스턴.”
“별말씀을요.”
엘스턴이 자신감 뿜뿜한 얼굴로 씩 웃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그나저나 악시온…… 님은……? 크흠! 제가 딱히 악시온 님을 보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좀 어제 눈앞을 아른…… 아니, 새, 새로운 장난감을 개발해서 말입니다.”
“아하. 그래요? 지금 악시온은 칼과 함께 있어요.”
엘스턴의 안색이 확 밝아지더니 재빨리 뒷걸음질 치려는 것을 콱 잡았다.
“억.”
“가기 전에 마법진은 제거하고 가야죠. 다 자랐는데 여기서 시간이 더 가면 안 되잖아요.”
“……네에.”
어쩐지 풀이 죽어 보이는 엘스턴을 논밭으로 밀어 넣으며, 좀비들을 둘러보았다.
“우어어어…….”
“우에에……. 가래…… 떡…….”
‘우선 마법진이 완전히 제거되면 그때 흑매들과 추수를 해야겠어.’
이제 곧 봄이 올 때인데, 벼를 추수한다니 조금 기분이 묘했다.
나는 엘스턴을 뒤로하고, 재빨리 내 방으로 향했다. 논밭도 확인했겠다,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칼. 이걸 실베스타인에게 보내 줄래? 곧 엘스턴이 올 건데, 그때 다녀오면 될 것 같아.”
“실베스타인 님에게서 아직 답신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만.”
칼이 내가 건네는 서신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칼의 말대로 아직 답신이 도착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실베스타인에게 서신을 보내야 했다.
“보낼 때 아주, 아주 급한 건이라고 해 줘. 보수는 더 줘도 돼.”
“알겠습니다.”
루벤의 섬에서 앓는 동안 결정한 것.
바로 시아스터가에 돌아오자마자 실베스타인에게 서신을 보내는 것이다.
‘실베스타인을 이곳으로 불러내야 해.’
그가 지금 당장 루벤을 파헤치는 것을 멈추고, 연구를 위한 여행을 마치도록 해야 했다.
혹여라도 그가 악시온이 루벤인 걸 알아차리고 저번의 그 책처럼 주변에 알릴 수도 있으니까.
시아스터의 서재에서 발견한 루벤에 대한 책처럼 말이다.
그를 불러내기 위해서는 강력한 수단이 필요했다. 실리아만큼이나 덕후인 실베스타인의 연구를 멈추게 하려면.
그리고 저 서신에는 내 비장의 무기가 담겨 있었다.
‘곧 헐레벌떡 달려오겠지?’
그와 거리가 꽤 있었으니,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오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었다.
서신에는 루벤의 위치가 적혀 있었으니까.
바로 이곳, 내 눈앞에 말이다.
“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