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S-class summon RAW novel - Chapter 50
나 혼자 S급 소환수 50화
얼어붙은 유물 (4)
타다닥!
어둑해진 설산에 모닥불 하나가 피어올랐다.
거친 바람이 불었지만, 마법 때문인지 불은 멀쩡했다.
“유아린 팀장님, 오늘은 여기서 숙영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세요.”
이곳은 요새 북쪽으로 가는 오솔길.
다섯 명의 일성 멤버가 불에 최대한 붙어 몸을 녹이고 있었다.
혹한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그리고 무척이나 길고 춥다.
그렇기에 무리하지 않고 쉬면서 천천히 가는 거다.
마라톤에서 전속력으로 달리지 않는 것처럼.
“그나저나 다른 길드원들은 잘하고 있으려나요?”
길드원들 중 누군가 슬쩍 입을 열었다.
일성의 힐러를 담당하고 있는 붉은 머리칼의 여성이었다.
무려 10장의 입장 카드를 따냈던 일성이었지만, 그들은 팀을 둘로 나누었다.
사람이 많으면 거추장스럽다는 유아린의 말 때문이었다.
“북쪽도 아닌데 뭐 걱정할 거 있겠냐.”
한 사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하긴, 거기서 쩔쩔매면 일성의 이름을 반납해야죠. 더군다나 거긴 사람도 많은데.”
“우리 걱정이나 하자. 진짜 시련은 오늘 밤부터야. 이제부터 제대로 잠자긴 글렀다고 생각해야 해.”
“그래도 우린 얼음공주님이 계시잖아요.”
길드원들이 옆을 슬쩍 봤다.
거대한 털 늑대에 기대어 멍하니 모닥불을 바라보는 흑발의 유아린이 보였다.
화장을 하지 않았음에도 결점 없는 미모에 길드원들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되는 모습이었다.
“…….”
그녀는 길드원들의 대화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시선이 느껴지자, 결국 목을 돌려 그들을 바라본다.
“경계에 집중해 주시겠어요?”
살짝 피곤한 듯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
길드원들의 정신이 번뜩 들기에 충분했다.
“아? 네, 넵! 죄송합니다!”
멤버들은 그녀를 어려워했다.
필요한 말이 아니면 입을 여는 법이 없었고, 대답 역시 항상 차가웠기 때문이다.
보통 같았으면 사회생활도 못 한다며 뭐라 했을 법도 한데, 그녀는 일성에서도 거의 최상위 티어의 실력자다.
여기 있는 넷이 덤벼도 어찌하지 못할 압도적인 격차.
일성 회장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니, 할 말이 없는 거다.
“자자, 정신 차리고 경계하자고.”
“넵, 알겠습니다.”
“기파도 최대한 넓혀, 먼 곳까지 감시해.”
그때, 붉은 머리 여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만요.”
이상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감고 집중했다.
“……주변에 누군가 있는데요?”
“누구, 몬스터?”
유아린을 제외한 네 서머너들이 전부 벌떡 일어나 전투태세를 갖췄다.
날이 어두워 시야가 제한되기에,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몬스터는 아니고…… 사람 같은데요?”
“뭐, 사람?”
일순간, 그들이 당황했다.
이곳은 북쪽으로 가는 길이다.
일성 길드가 아니고서야 감히 시도조차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시련의 길.
그런 곳에 그들을 제외한 사람이 있다니, 믿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몇 명인데?”
“…… 그게.”
“왜, 빨리 좀 말해봐라.”
사내가 보채자 붉은 머리가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한 명인 것 같은데요?”
“……뭐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의심의 눈동자로 그녀를 쳐다본 사내가 말을 이었다.
“이쪽 길은 끈질기고 강력한 놈들이 거의 무한대로 튀어나오는 곳이야.”
“알죠.”
“한 명이라면 힐러나 서포터도 없이 돌파해야 한다는 말인데,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진즉에 죽었어야 옳다.
“그래도…… 제 감각엔 그렇게 잡힙니다.”
“네 감각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맞아요, 사람.”
그때, 제 자리에 앉아 가만히 쉬고 있던 유아린이 말을 꺼냈다.
“……네?”
“아까부터 노골적으로 우리만 따라오고 있었어요.”
“저, 정말입니까?”
“네, 확실해요.”
“그런데 왜 말씀을…….”
“딱히 적대감이 없어 보여서요.”
“아, 그렇군요……. 그럼 어떡할까요?”
“…….”
할 말만 하고 다시 고개를 돌리는 유아린.
사내의 머리에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원하는 대로 하라는 소리이리라.
그녀는 아니면 아니라고 칼같이 말하는 성격이니까.
“준비하자.”
“네? 뭘요?”
붉은 머리 여성이 되물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합류시켜서 같이 싸워야지. 앞으로의 길이 험난한데 전력 하나라도 더 있으면 편할 테니까.”
“전력이 될까요? 그냥 우리가 버스 태워줄 거 같은데…….”
“여기서 지금까지 버텨낸 사람이야, 보통 서머너는 아닐 거다.”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뭐.”
“그 사람이 누구든, 우리한테는 팀장님이 있잖아요.”
“아, 그건 인정이지…….”
이들이 얼마나 유아린에게 의지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 * *
“크르릉!”
“응?”
데몰리션의 낮은 울부짖음에 진도윤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와 동시에 신속하게 피닉스를 역소환했다.
주변에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뭐야, 이제 찾은 건가?’
시선이 닿는 곳까지 거리를 두고 따라가던 진도윤이었다.
혹시나 여명의 속삭임처럼 히든 피스 속으로 사라지면 골치 아파지니까.
아마 저들도 A급이기에, 금방 찾을 수 있었을 거다.
“거기 사람이요? 얘기 좀 나눕시다!”
역시나, 멀리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르륵!
어두운 시야 속, 횃불의 빛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와 동시에 서로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쪽은……?”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진도윤을 쳐다볼 때, 붉은 머리 여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 세상에 저게 뭐야, 드, 드래곤?”
어둠 속에 드러난 데몰리션의 형체를 본 모양이다.
“이거, 내 소환수인데.”
“당신, 진도윤이었군요?”
이어지는 붉은 머리의 대답에 진도윤이 입술을 오므렸다.
“오, 날 알아?”
“모를 수가 없지요. 이번 은하 길드 간부들을 단숨에 처리하셨던 분인데.”
과연, 빅3라는 걸까.
매스컴에 나가지도 않은 비공개 정보를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듣고 있던 사내도 앞으로 나섰다.
“굳이 혼자 무리해 가면서, 우리를 따라오는 이유라도 있나?”
“솔직히 말해줘? 아니면 가식적으로?”
“당연히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지.”
“난 이번 던전에서 기여도 1등을 해야 할 사정이 있다. 그 비법을 너희 길드의 유아린이 아는 것 같았고, 그래서 따라다니는 거야.”
“공주님을 따라다니면서 비법을 배운 다음에, 기여도까지 훔치겠다는 거네? 지나치게 솔직한 거 아닌가?”
“뭐, 솔직히 말하라며?”
진도윤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을 때 나타나는 행동이기도 했다.
“……그렇긴 하지.”
사내가 턱을 문지르며 고심했다.
유아린이 아무 대답도 안 했으니, 모든 판단은 자신이 내려야 한다.
‘진도윤이라면…… 협회장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야.’
아무리 일성이라 해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협회와의 관계를 생각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잠깐의 시간이 흘렀고, 고민은 빨랐다.
“그렇다면 나도 솔직히 말하지.”
“언제든지.”
“네가 기여도 1등을 하든 말든 난 관심 없어. 어차피 얼음공주님이 1등 할 거란 사실은 변함이 없거든.”
“정말?”
“공주님은 대중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신 분이다.”
“으음, 그래서?”
“그냥 이쪽에 붙어서 함께하자. 다만, 공주님이 싫다고 하면 그땐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오?’
의외의 대답에 진도윤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솔직히 혼자라 살짝 걱정한 것도 있는데, 일성이 먼저 손을 내밀어준 거다.
그로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야, 고맙지.”
씨익 웃으며 능청스럽게 합류하는 진도윤이었다.
* * *
“팀장님, 진도윤이라는 사람인데 그냥 함께하자고 했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네, 그러세요.”
의외로 쿨하게 대답하는 그녀.
“목표가 이번 던전에서 기여도 1등을 먹는 거라는 데도요?”
“……상관없어요.”
유아린과의 첫 만남은 그냥 아무것도 없었다.
눈에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처럼 서늘한 답변.
진도윤도 굳이 인사하지는 않았다.
‘소문이 사실인가 보네.’
얼음처럼 차가워서 얼음공주.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참 어울리는 이명이었다.
“그것보다 이제 슬슬 싸울 준비 하세요.”
“네?”
“꽤나 시끄럽게 하면서 오셨나 봐요?”
진도윤을 살짝 바라보는 유아린.
‘이런, 눈치 깠나 보네.’
진도윤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오면서 이리저리 흔적을 남겨뒀다.
몬스터들이 잘 찾아올 수 있도록 육포나 마른 생선도 떨어뜨려 놓았다.
유아린의 전력도 파악할 겸, 기여도도 먹을 생각이었는데 들키고 만 것이다.
그 말은 주변 사항을 인지할 수 있는 감응력의 기파가 상당히 넓다는 말.
‘생각보다 대단한데?’
유아린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하는 진도윤이었다.
크르릉!
키이이이!
그때였다.
어두컴컴한 숲속.
사방에서 을씨년스러운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수가 꽤 많아 보입니다!”
“전투 준비해!”
진도윤 역시 눈을 감고 몬스터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사족 보행을 하는 녀석도 있고 이족 보행을 하는 녀석도 있다.
차가운 지역에 서식하는 북극곰과 거인족일 가능성이 컸다.
“온다.”
“온다고요? 뭐, 뭐가요?”
쿵! 쿵! 쿵!
붉은 머리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강렬한 한파가 쏟아졌다.
몰려오는 몬스터들.
진도윤은 슬쩍 유아린을 흘겨봤다.
‘어디, 어떻게 싸우나 볼까?’
그 역시 데몰리션을 허공 위에 띄웠다.
후웅! 후웅!
트럭만 한 크기의 드래곤이 날갯짓을 하며 올라섰다.
“새, 생각보다 수가 너무 많…….”
많아요! 라고 붉은 머리가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쐐애애액!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거대한 주먹이 튀어나왔다.
목표는 그녀가 서 있는 자리.
“꺄아아악!”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서포터인 붉은 머리가 막아내기에는 너무도 빠르고 정교한 공격.
피하기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걱!
그러나 거인족의 팔에 직선이 하나 그어졌다.
푸화학!
동시에 시뻘건 피가 튀어나와 하얀 눈 위에 쏟아져 내렸다.
광속의 공격으로 거인의 팔이 단숨에 잘린 것이다.
“꺄아악?”
“정신 차리세요.”
“티, 팀장님?”
파파파팟!
그 순간 플래시 터지듯 사방에 빛이 번쩍였다.
경이로운 속도의 하얀 늑대가 사방에 있는 몬스터를 썰어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두 방도 아니었다.
오직 한 방에 상대의 급소를 찾아 잘라내는 하얀 늑대.
진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펜리르다.’
신을 먹는 늑대.
‘펜-리르’(★★★★★★).
피닉스와 같이 A급 상위 티어에 있는 신수족으로 굉장히 희소한 소환수 중에 하나였다.
그도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
굉장히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는데, 기르는 것에 성공했나 보다.
‘그러나 고작 A급으로 비빌 순 없지.’
늑대가 사방을 정리하고 있다지만, 아직 몬스터는 많이 남았다.
그리고 더는 유아린에게 기여도를 뺏길 수는 없다.
“데몰리션.”
“크르릉?”
“우리도 질 수 없지. 뉴클리어 한방 조져볼까?”
“크르르릉!”
당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울부짖는 데몰리션.
녀석도 자신의 먹잇감을 다 가져가는 펜-리르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좋아, 준비하자고.”
진도윤은 현, S급 소환수인 녀석이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광역기인 ‘뉴클리어 브레스’(S급)를 날릴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