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94
194 인명 구조 전문가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린 상관무외가 두려움에 질렸지만 난향은 그 모습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기색이었다.
죽음이 예정된 자의 반응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있겠는가.
그녀가 들어올린 오른손 검지 끝에서 푸르스름한 얼음의 결정이 맺혔다.
요지십절기의 하나인 빙극신지력이 생성한 지강이었다.
번개처럼 허공을 가른 지강이 상관무외의 이마를 꿰뚫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상관무외의 앞에 무형의 강벽이 생겨나며 빙백신지력과 무섭게 충돌했다.
쾅!
굉음과 함께 사방에 얼음 가루가 흩날렸다.
난향의 눈빛이 깊어졌다.
상관무외의 앞에는 황금빛 장포를 입고 같은 색의 복면을 쓴 남자가 서 있었다.
그가 돌아보지도 않고 혀를 차며 상관무외에게 말했다.
“쯧, 한발 늦었군. 정말 쓸모없는 놈이로구나. 그분께서 수년을 기다려 주실 정도로 널 신임하셨거늘, 어떻게 이처럼 실망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단 말이냐.”
잘려 나간 어깨를 잡은 채 상관무외가 고개를 푹 숙이며 허물어지듯 무릎을 꿇었다.
“사자…….”
복면인은 귀찮다는 손짓으로 상관무외의 입을 막은 후 난향에게 말했다.
“얌전히 그 아이를 내려놓고 떠나라. 그러면 내가 측은지심을 발휘해서 이번만은 너희를 살려주도록 하지.”
마치 난향 일행의 생사가 자신의 결정에 달려 있기라도 한 듯 오만한 어투였다.
타라는 평온을 유지했지만 강석초와 아르다반의 얼굴에는 짜증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발작하지 않았다.
복면인을 상대하는 사람은 난향이었고, 그녀의 허락 없이는 어느 누구도 끼어들 수 없었으니까.
난향은 대꾸하는 대신 손을 들어올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단숨에 얼어붙고도 남을 무시무시한 한기가 휘몰아쳤다.
진무앙의 영향을 최대치의 한도까지 받은 터라 그녀도 일단 적으로 판명된 자와 말을 섞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말없이 금포복면인을 향해 신형을 날리며 빙극천강월을 펼쳤다.
스팟-
얼음으로 만들어진 십여 개의 푸른빛 륜이 수레바퀴처럼 회전하며 가공할 기세로 복면인의 전신을 휩쓸어갔다.
복면인의 눈에 흠칫한 기색이 떠올랐다.
륜에 담긴 기세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라는 걸 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훗, 흥미로운 여자로군.”
그는 웃음을 흘리며 빙극천강월을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장난과도 같은 일권이었지만, 그 위력은 가공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와 난향 사이의 공간이 진저리를 치며 터져 나갔다.
콰앙!
그 폭발에 휘말린 륜들은 눈이 녹듯 사라졌다.
난향의 신형이 허공에서 주춤하며 한 자가량 밀려났다.
손해를 본 듯한 모습.
하지만 복면인은 그녀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는 세 걸음이나 뒤로 물러서고 있었으니까.
허공에서 밀려나던 난향이 미끄러지듯 앞으로 날아가며 연속적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차라라라라랑-
맑은 비파음과 함께 빙백신지력으로 생성된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지강 수십 개가 복면인의 전신에 빗발치듯 쏟아졌다.
복면인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그는 자신의 말처럼 한발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상관무외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난향이 전설적인 여중제일고수 요지빙마후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것이 그의 마음에 틈을 만들었다.
미세한 방심이었다.
하지만 난향 같은 절세고수를 상대할 때는 아주 작은 방심조차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것을 말해주듯 일초의 격돌로 난향은 복면인의 기세를 단숨에 꺾어버렸다.
고수들의 싸움에서 한번 꺾인 기세는 되돌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그럴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복면인은 난향을 경시하던 마음을 버렸다. 그리고 십이성 내공을 끌어올려 십삼 권을 내질렀다.
콰우우우우-
막강한 권세와 빙백신지력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콰콰콰쾅!
우르르쾅쾅쾅!
날벼락이 치는 듯한 폭음과 함께 땅이 뒤집히고 주변 전각들이 폭삭 주저앉았다.
“크으…….”
희미한 신음과 함께 일곱 자나 밀려난 복면인이 흔들리는 몸을 안정시키려 애쓰며 소리쳤다.
“정녕 그대가 요지빙마후 본인이란 말이오!”
많이 놀란 듯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있었고, 처음과 달리 말을 놓지 못했다.
그도 무공을 보고 난향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이다.
물론 그의 질문에 대한 난향의 대답은 말이 아니라 줄을 꿰듯 이어지는 공격이었다.
이번 충돌로 한 자를 밀려났던 그녀가 다시 바람처럼 전진하며 손을 뻗었다.
그녀의 장심에서 극한의 한기를 품은 강기가 흘러나왔다.
우우우웅-
얼음 폭풍과도 같은 거대한 장강이 복면인의 전신을 뒤덮었다.
요지십절기 중 하나인 빙백수라신장이었다.
복면인은 이를 악물며 단전의 내공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끌어올려 일권에 실었다.
그가 평생을 고련한 최후의 절초였다.
더 밀리면 위험하다는 것을 그도 직감한 것이다.
쿠우우우-
일장 일권이 가공할 기세로 충돌했다.
콰콰쾅-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엄청난 기파가 방원 수십 장을 태풍처럼 휩쓸었다.
우르르쾅쾅쾅!
풀썩풀썩…….
흙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전각들이 종이로 만든 것처럼 무너졌다.
그리고 부서진 기왓조각들이 흙먼지를 뚫으며 사방으로 날았다.
동시에 어디선가 일어난 회색의 연기가 단숨에 백여 장을 뒤덮었다.
투투투툭-
강석초가 혼원탄옥강으로 날아드는 돌조각들을 튕겨내며 중얼거렸다.
“끝이 난 건가?”
흙먼지가 가라앉자 난향이 보였다.
금포복면인과 상관무외는 보이지 않았다.
강석초와 타라, 아르다반이 눈을 크게 떴다.
강석초가 난향에게 물었다.
“이 낭랑, 그 자식들 어디 갔어?”
난향이 그들에게 걸어오며 대답했다.
“도망쳤어.”
“도망? 기척을 못 느꼈는데?”
“놈이 터트린 연막 때문이야. 거기에 무인의 기척을 차단하는 공능이 있었던 것 같아. 그 때문에 나도 놈을 놓쳤어.”
강석초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잡아서 조졌으면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
그와 달리 난향은 아쉬운 기색이 아니었다.
“무앙이 돌아오기 전에 소소를 안전하게 되찾았으니 그걸로 우리 역할은 다 한 거야.”
강석초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 맞장구쳤다.
“그건 그러네.”
그가 난향에게 물었다.
“그 복면을 뒤집어쓴 놈, 누구인지 알겠어?”
난향은 고개를 저었다.
강석초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도 모르겠더라구. 놈이 쓴 권법은 분명히 이백 년 전 천하제일고수라 불리던 권왕 석문의의 진천단악권 같았는데… 그가 은거하며 실전되었다고 알려진 무공을 익힌 자가 왜 동창을 돕고 있는 거지?”
난향은 별 관심이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궁금하면 네가 계속 조사해 봐.”
“이 낭랑, 좀 관심을 더 가져주면 안 될까? 저놈들이 이대로 소소를 포기할 거 같지 않아. 게다가 아까 복면 쓴 놈이 상관무외에게 ‘그분’ 어쩌고 하는 말 들었잖아.”
“놈이 말한 ‘그분’이 동창 제독이거나, 설령 황제라도 관심 없어. 놈들이 소소를 계속 노린다면 지옥을 보게 될 테니까.”
강석초는 입을 다물었다.
누가 그들에게 지옥을 보여줄지는 듣지 않아도 뻔했다.
난향이 세 남녀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고생했어. 돌아가자.”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 * *
호북성과 하남성의 경계 지역에 있는 산속.
밤하늘엔 용이 꿈틀거리듯 흘러가는 은하수로 가득했다.
아름드리나무로 둘러싸인 공터의 풀밭에 누워 하늘을 보던 진무앙이 갑자기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귀가 가려워? 어떤 놈이 또 내 욕을 하고 있나?”
다시 큰대자로 누운 그가 말을 이었다.
“내일이면 하남성에 들어갈 것이고, 닷새 뒤엔 난향의 얼굴을 보며 술을 마실 수 있겠네.”
마음만 먹으면 이 밤이 가기 전 낙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무앙은 그렇게 걸음을 재촉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사람들을 떠나 혼자가 되었을 때 그는 시간이라는 걸 의식하지 않았다.
일부러 외면한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되었다.
삼십 년을 자고 일어나도, 백 년을 면벽하고 나와도, 아무 생각 없이 주지육림에 빠져 천 년을 보내다 불현듯 정신을 차려도, 시간은 눈곱만큼도 줄어들지 않았다…….
뭐하러 그런 걸 의식하며 지낸단 말인가.
그래 봤자 머리만 복잡해질 뿐이었다.
진무앙은 죽립으로 얼굴을 덮었다.
낭인에게 노숙이란 영원한 친구와 같다.
모닥불도 없고, 아무것도 깔지 않아 등에 잔돌까지 박히는 풀밭이었지만 진무앙은 전혀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수화불침의 그에게 모닥불이 필요할 리 없었다. 게다가 그는 가시덤불 위에서도 꿀잠을 잘 수 있는 남자였다.
그러니 풀밭에서의 노숙이 불편할 리가 없는 것이다.
드르르릉- 드르릉-
잠시 후 공터에 코 고는 소리가 낮게 깔렸다.
하지만 진무앙의 편안한 잠자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헉헉헉헉헉-”
가까운 곳에서 들려온 거친 숨소리가 그를 깨웠기 때문이다.
눈을 뜬 그는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 앉았다.
타타타타탁-
열을 세기도 전에 아름드리나무 사이에서 여기저기 피를 흘리는 십칠팔 세가량의 소녀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를 본 소녀의 눈이 커지더니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달려오던 그대로 나뒹굴었다.
털썩. 데구르-
진무앙은 혀를 찼다.
그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평소에 감각을 보통 사람 수준으로 유지했다.
감각을 개방해서 주변 정보를 있는 대로 끌어 모아봤자 일만 늘어날 뿐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감각을 닫고 지냈다.
그 덕분에(?) 눈앞의 소녀가 이렇게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두 팔로 바닥을 짚고 안간힘을 써서 상체를 일으킨 소녀가 그에게 말했다.
“소… 소협… 제발… 살려주세요.”
진무앙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내가 왜 널 죽여? 안 죽여.”
소녀는 눈앞의 남자가 자신의 말을 오해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가 보통 사람과 뭔가 다르다는 것도 본능적으로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이 너무 급해서 그 다름이 무엇인지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 저 말고… 제 일행을 살려주세요. 그들이 위험해요.”
진무앙을 다시 누우며 말했다.
“어린 소저, 살 놈은 살 거고, 죽을 놈은 어차피 죽어. 그게 세상사야.”
“도… 돈을 드릴게요. 우리 아가씨는 돈이 아주 많으세요. 소협이 그분을 구해주신다면 만 냥이든 이만 냥이든 원하는 대로 주실 거예요.”
절반쯤 누웠던 진무앙이 번개같이 일어나 앉았다.
물주 노릇을 하는 아르다반이 아직 낙양에 머물고 있으니 돈은 그에게 별반 매력이 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소녀가 말한, 돈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에 대한 부분이 그의 관심을 확 끌어당겼다.
그가 물었다.
“아가씨가 있어?”
진무앙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움찔한 소녀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몇 살이냐?”
“올해 묘령…….”
“예쁘냐?”
“그럼요. 우리 아가씨는 천상십화 중 목단화라고 칭송받는…….”
진무앙이 벌떡 일어섰다.
“가자.”
말귀를 못 알아들은 소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어딜……?”
진무앙이 소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일행을 구해달라며? 너, 진짜 사람 제대로 찾아온 거다. 내가 천하에 둘도 없는 인명 구조 전문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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