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60
260 악연이 있지요?
신무제는 다시 우문백령이 누워 있는 관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신무제의 눈이 심연처럼 깊게 가라앉았다.
‘놈이 암천광무존이든, 파천이든, 혹은 둘 다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자가 오마병의 합일체인 환요를 이 지경으로 만들 수 있는 절대초강자라는 것과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거대한 장애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천천히 뒷짐졌다.
‘환요는 오마병을 하나로 모은 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능력을 최대치까지 끌어내지 못한 상태다. 패배의 원인이 그 때문일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 하지만 그렇게 막연한 추측은 기분을 나아지게 할 수는 있어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환요의 패배는 그자에게 실력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현실을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우문백령은 옥으로 빚은 조각상처럼 누워 있을 뿐이었다.
‘환요가 패퇴당했다는 건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힘으로는 그자를 죽일 수 없다는 걸 뜻한다.’
암담한 결론이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절망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의 눈 깊은 곳엔 이글거리는 맹렬한 투지와 증오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내가 예상한 것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그자를 죽일 수 없을 뿐, 미래에도 불가능한 건 아니야. 아직 시도하지 않은 방법들이 남아 있으니까.’
“으득…….”
그의 입술 사이로 이를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난 반드시 그자를 죽인다. 놈은 지옥천멸검의 주인이었던 할바마마를 죽였고, 아바마마를 평생 병마에 시달리게 만든 자니까.’
그의 눈앞에 평생 병약하던 부친 현덕제의 마지막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들아, 반드시 그자를 죽여라. 그자는 네 할아버지를 죽였고, 황실의 존엄을 시궁창에 처박았다. 그의 목을 베어 성문에 걸어놓아라. 제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 그리고 천한 무림인들이 황실의 존엄을 숭배하도록 하기 위해서 반드시 그자를 죽여야 한다.”
현덕제는 그 말을 끝으로 숨을 거뒀다.
한을 풀지 못하고 저승 문턱을 밟았기 때문인지 그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
느릿하게 내쉬는 신무제의 숨결엔 무시무시한 살기가 실려 있었다.
‘할바마마께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혼백을 유지한 채 지옥천멸검을 받아들이신 분이셨다. 그리고 아버님은 마병의 합일체인 환요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드신 분이고.’
대혼돈 시대를 열었던 천무제가 무림을 말살할 수 있는 절대무공을 어디서 얻었는지는 지금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가졌던 힘의 근원은 환우십병 중 하나인 지옥천멸검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던 건 그가 죽을 때까지 많은 사람 앞에서 지옥천멸검을 들고 싸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지옥천멸검을 휘둘렀던 건 후세의 무림사가들이 ‘황궁겁란’이라 명명한 단 한 번의 싸움뿐이었다.
그리고 당시 싸움의 목격자도 단 한 명뿐이었다.
천무제는 그 싸움에서 패해 죽었고, 목격자는 그의 사후 황제로 즉위했다.
그가 바로 천무제의 아들 현덕제였다.
신무제의 아버지 현덕제는 사람들에게 평생 병마에 시달리다 죽은 무능한 황제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의 생전 황실의 기강은 문란의 극을 달렸고, 제국 전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민란이 벌어졌다.
국경은 침범하는 외국의 군사들과 들끓는 마적 떼로 하루도 평안할 때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현덕제가 무능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부친인 천무제에 버금가는 천재였다. 단지 세상에 그것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는 천재적인 재능으로 마병을 결합해 환요를 만들어내는 게 가능하다는 걸 알아냈다.
암천광무존에게 복수할 수 있다고 확신한 그는 환요를 손에 넣어 지배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래서 제국의 경영에 무관심했고, 결국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눈앞에서 암천광무존의 마수에 할바마마가 쓰러지는 것을 본 아버님은 평생을 극심한 두려움 속에서 사셨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셨고.’
신무제는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할바마마와 아바마마가 남기신 유산으로 나는 혼백을 유지한 채 지옥천멸검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마병의 합일체인 환요를 만들어 복종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나는 두 분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그자를 죽이는 데는 실패했다…….’
그는 우문백령을 내려다보았다.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는다. 그자의 정체가 분명해진 이상 완벽한 준비를 마친 후에 공격한다.’
그의 눈빛이 심원해졌다.
‘이번 결과는 실망스럽지만 그건 성급하게 환요를 투입한 결과다. 다시 환요를 투입하기 전에 먼저 그 능력을 완전히 끌어내야 한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그리고 나머지 마병들을 모두 모아 환요를 완성시킨다. 그렇게 해도 종가주는 나를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계와의 통로를 만들기 위해서 칠마병을 모두 모으는 건 그도 동의한 일이니까.’
우문백령의 가슴에 난 관통상에 시선이 닿은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상처는 그가 이곳에 내려와 처음 보았을 때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상처가 아무는 게 정말 느리군. 이 속도라면 회복에 몇 달은 걸리겠어.”
중얼거리는 그의 상념이 이어졌다.
‘칠마병을 복속시킨 마병환요로도 놈을 죽이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존마’를 만든다.’
신무제는 얼마 전 현덕제가 미완성으로 남긴 마병의 활용법 ‘존마’를 완성했다.
문제는 그것을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칠마병을 모두 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마병의 수를 줄여서 존마를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러면 칠마병을 다 모았을 경우에 비해 권능이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났다.
‘나머지 두 개의 마병을 얻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에만 오마병으로 ‘존마’를 만든다. 그 작업을 하기 위해선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자와 마계삼가를 충돌하게 만들어 양측의 힘을 소진시킨다. 그러면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마계삼가가 그자에게 회생불능의 타격을 입힌다면 그때 내가 나서서 그자의 숨통을 끊는다.’
그는 팔짱을 꼈다.
‘양측을 충돌시키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천군과 신녀도 이번에 호도협에서 환요와 그자가 마병을 사용해 싸우는 걸 보았을 것이다. 그러니 은밀하게 손을 써서 마병을 손에 넣으려 하겠지.’
마계삼가의 수장은 마계의 독문무공인 만겁마안으로 휘하의 장로와 호법, 그리고 원주 등 핵심요인들과 안력을 공유할 수 있었다.
자신의 뜻을 부하에게 전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이라도 부하들의 눈을 통해 돌아가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지시를 내릴 수 있었다.
즉, 천군과 신녀가 호도협에서 진무앙과 마병환요가 싸우는 것을 삼호법과 제이원주의 눈을 통해 보았을 가능성이 십 할인 것이다.
‘칠마병에 대한 그들의 탐욕을 자극한다면 그자와의 충돌을 만들어내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마계삼가의 수장들을 이용하려는 어마어마한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지만, 신무제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물론 그것은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화산의 혼돈성흔으로 마계의 존재는 특정 조건을 갖춘 장소에서만 실체를 갖고 생존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곳을 벗어나면 그들도 죽는다. 그것이 바로 그자들의 약점이지……. 종가주가 내게 의지하고, 천군과 신녀가 직접 오지 못한 채 이 세계 인간의 정신을 장악해 활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고.’
그는 천천히 등을 돌렸다.
* * *
신무제가 황성의 지하 광장에 있던 그 시각.
천군과 신녀는 황도 고관들의 주택가에 있는 작은 장원에서 마주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은 신녀였다.
“천군도 호도협에서의 싸움을 모두 보셨겠죠?”
“물론입니다.”
신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무앙이 암천광무존이 맞다고 해도 그 정도로 강하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마병환요를 패퇴시키다니… 보면서도 믿기 어려웠어요.”
천군이 쓴웃음이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해하기 어렵긴 신녀와 마찬가지입니다.”
말로는 동의한다고 했지만 그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 부분은 신녀와 결이 많이 달랐다.
그는 시황릉에서 칠호법 묵철마야의 눈을 통해 진무앙의 무력을 본 사람이었다.
당시 진무앙의 무력은 분명 놀라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오마병을 사용하는 환요를 상대할 정도로 강하지는 않다는 것이 천군의 판단이었다.
그러니 불과 한두 달 만에 진무앙이 어떻게 환요를 패퇴시킬 정도로 강해질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곳에서 본신의 실력을 다 드러내지 않았었던 걸까? 하지만 시황릉에서의 그는 이백 년 전 십만마교에 난입했을 때와 비슷한 무력이었다. 그런데 호도협의 그는 그때와 비교해 너무 강했어. 대체 그사이 그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궁금했지만 진무앙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는 한 해답을 얻을 수 없는 의문이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신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천군은 과거 암천광무존과 맺은 악연이 있지요?”
천군이 미간을 와락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신녀는 아직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겁니까?”
“이 세계의 인간이 혼돈의 결계 안으로 쳐들어온 거잖아요. 그것도 모자라 마계와 이곳의 경계 지점에 전신마가가 세운 십만마교까지 붕괴시켰고요. 정말 대사건이었죠. 그러니 어떻게 그것을 잊을 수 있겠어요? 그 소식을 접하고 많이 놀랐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한걸요.”
“너무 수치스러워서 비수로 심장을 쿡쿡 찌르는 것 같군요.”
“이번에 그 빚을 꼭 갚으셔야지요.”
천군이 쓰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가슴을 짚었다.
“그러고 싶은데, 몸이 이따위라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몸으로는 본가의 마공을 제대로 펼치기 어렵다는 걸 신녀도 잘 알지 않습니까.”
“알지요, 나 또한 천군과 다르지 않으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신녀가 말을 이었다.
“서로 돕기로 했으니 그자를 상대할 방법을 같이 찾아보아요.”
“신녀가 그렇게까지 나오신다면 나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하하.”
천군의 웃음을 들으며 신녀가 물었다.
“그런데 마병환요는 어디로 갔을까요? 천군은 궁금하지 않으세요?”
“궁금합니다. 신녀는 그것이 어디에 있을지 짐작이 가는 곳이 있습니까?”
신녀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호도협에 보냈던 제이원주 아이가 그 자리에서 진무앙에게 참살당하는 바람에 추적을 할 수 없었잖아요.”
“나도 그곳에서 삼호법을 잃었습니다.”
“천군, 그런데 환요에게서 묘한 걸 느끼지 못하셨나요?”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전 그곳의 싸움이 너무 순식간에 결판이 나서 많은 걸 보지는 못했습니다.”
“난 환요가 마치 이지가 없는 실혼인이나 강시 같았어요.”
신녀의 말에 천군의 안색이 굳어졌다.
천무령을 각성한 환우십병은 자아가 있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당연히 이지를 상실한 실혼인이나 죽은 자를 되살려 만든 강시와는 아예 상관이 없었다.
“어디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겁니까?”
“진무앙과 싸울 때 환요가 한 마디라도 하는 걸 들으셨나요?”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거야 말할 틈이 없을 정도로 공수전환의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왠지 환요가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였어요.”
“환요를 완성한 천무령이 자아를 잃은 것처럼 보였단 말입니까?”
“예.”
천군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신녀의 말에는 그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중대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가 물었다.
“그럼 신녀는 환요가 다른 마병을 얻으라는 누군가의 조종을 받고 진무앙과 싸웠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